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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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가득 채운 소녀의 모습은 신비한 느낌도 들고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주인공 수정의 모습이 정말 이러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이야기, 현실인 듯 현실 아닌 이야기, 할머니가 들려주던 어느 전설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제1회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한국 고전 서사의 하나인 연명담 또는 연명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 왔다고 합니다. 연명담이란 주인공이 목숨의 햇수를 늘려 오래 사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단명소녀 투쟁기' 는 연명설화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개가 됩니다. 주인공이 미성년 남성이 아니라 열아홉 살 소녀이며,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바뀌는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가 개척해 나간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 동반자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

'단명소녀 투쟁기' ~“

 

수정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입시 전문 점쟁이인 북두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북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정을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수정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기 때문에 대학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싫다면요?

'단명소녀 투쟁기' ~“

 

북두는 죽음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죽음을 멈출 수도 있다는 말을 합니다. 북망산을 등지고 남동쪽으로 걸어가라는 북두, 휘청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수정을 점집에서 일하는 은주 아줌마가 떡집으로 데려갑니다. 이제 막 쪄낸 백설기를 백 조각으로 잘라 달라고 주문한 은주 아줌마는 그 백설기를 수정의 가방에 넣으며, 백 살까지 만수무강하라는 의미로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하철역 부근을 지나던 수정이 낯선 남자에게 붙잡혀 울음을 터뜨린 순간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수정을 물고 달리던 개의 옆구리에서 날개가 나오고 개는 하늘을 날아갑니다. 그 개의 이름은 '내일', 만약 수정이에게 '내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검은 산들에 둘러싸인 낯선 들판, 수정과 내일 앞에 이안이라는 아이가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다는 이안, 수정은 이안을 구해준 이가 북두라는 말에 놀랍니다. 수정이 만난 점쟁이 북두와 이안이 만난 스님 북두, 북두는 어떤 존재일까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이 내가 죽기를 바란대.

'단명소녀 투쟁기' ~“

 

이안은 수정이와 같은 열아홉 살이었지만, 수정이와 달리 죽으려고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죽고 싶지 않는 수정과 죽고 싶은 이안, 날이 저물자 둘은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로 합니다.

그날 밤, 수정이와 이안이 머물고 있는 집에 배가 고프다는 일곱 명의 아이들과 일곱 명의 노인이 찾아옵니다. 백설기를 나눠 주는 이안,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아이들과 백설기로 만든 죽을 대접받는 노인들, 노인들은 죽을 먹는 동안 점점 빨리 늙어갑니다. 그 중 가장 빨리 늙은 노인이 죽고 여섯 노인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개 '내일'이 그 여섯 노인의 뒤를 따라가는데요. 여섯 명의 노인들에겐 아직 내일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요? 일곱 명의 아이와 일곱 명의 노인에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 것일까요?

 

도망치는 자는 붙잡히게 되지만, 쫓는 자는 붙잡게 된다.

'단명소녀 투쟁기' ~“

 

다음 날 아침, 북두라는 승려가 나타나 둘이 원하는 것은 다르지만 같은 곳으로 가야한다고 알려줍니다. 수정과 이안은 마치 저승사자 같은 복장을 하고 큰 개 '내일'을 타고 저승을 향해 날아갑니다.

저승의 신을 만나게 된 이안과 수정은 그에게서 낡은 명부 두 권과 검 두 자루를 받게 됩니다. 검은 명부를 받은 수정과 흰 명부를 받은 이안, 저승의 신은 명부에 적힌 자들을 모두 찾아내어 죽이는 순간 수정이는 천수를 얻고, 이안은 영면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들의 명부를 보고 놀라는 수정과 이안, 명부에 적힌 자들은 누구일까요?

수정과 이안은 명부에 적힌 자들을 죽이고 자신들이 희망(希望)하는 천수와 영면을 얻을 수 있을까요?

 

수정과 이안, 북두와 일곱 명의 아이와 일곱 명의 노인, '내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와 저승의 신, 그들 사이의 연결 고리는 무엇일까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깨어난 수정, 지극히 현실적인 그곳은 어디일까요?

 

내일은 개같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

(중략)

칼은 나를 아프게 하는 방식으로

나를 살리거나 죽이지만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

'단명소녀 투쟁기' ~“

 

마지막 장이 반전을 선사하는 '단명소녀 투쟁기',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업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가 소유의 집을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어느 누구도 단명자 취급을 받지 않기를 바라며, '작가의 말'로 전하고픈 말을 대신합니다.

 

앞으로도 세상은 우리를 계속 죽이고 싶어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 단명(短命)을 타고난 것이고, 어쩌면 끊을 단으로 끊어야 할 최종 목표는 저 짧은 단인지도 모르겠다. 단단(斷短)할 것을, 더 단단해 질 것을 약속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

'우리 같이 내일을 만나요', 꾹꾹 눌러 쓴 듯한 친필 사인을 보며, 모든 이들이 내일을 만나기를 또한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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