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공주 대 검지대왕
신형건 지음, 강나래 그림 / 끝없는이야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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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 생활 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는데요. 2020년은 망한 해라며 그냥 없었던 일 년이라고 생각하자는 분들도 있죠. 연말이 가까워오는데 확진자 수가 점점 늘어만 가는 안타까운 현실, 집콕이 일상인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요?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이 끝나면 무얼 할까요? 숙제, 예습이나 복습 아니면 책을 읽을까요? 물론 학생이니 당연히 하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가장 많이 하는 건 게임이나 스마트폰 들여다보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엄마, 아빠는 무얼 하냐구요? 역시나 작은 기기에 온 세상을 담아 놓은 듯한 스마트폰과 친구를 하고 있지요. 그 작은 기기 속엔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들이 들어 있는 걸까요?

 

시집 '엄지 공주 대 검지 대왕'은 우리의 일상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스마트폰, 그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모습, 코로나로 변한 일상, 환경, 난민, 저출산, 입양 그리고 친구와 가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33편의 시에 담아놓았는데요. 아이들이 읽어도 어른들이 읽어도 누가 읽어도 좋은 시들이랍니다.

 

 

 

기도 시간

 

맛난 음식을 주문해 놓고

엄마, 아빠, 할머니, 동생, 누나

온 식구가 상 앞에 둘러앉았습니다.

 

, 이제부터

아무런 말이 필요 없습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볼 필요도

없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감사 기도를 올리세요.

스마트폰 하느님께

열렬히 기도하세요.

 

엄지공주 대 검지대왕 중~“

 

혹시 이런 풍경이 너무나 낯선 풍경인가요? 우리집은 안타깝게도 이런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답니다. 물론 매 번 이러지는 않지만, 어쨌든 각자의 스마트폰 세상에 빠져 있다가 음식이 오면 식탁에 모이고는 한답니다. 여러분은 음식이 배달되어 오는 동안 무얼 하시나요?

 

이렇게 스마트폰 세상에 빠져 있다 보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우는 일도 점점 사라지지는 않을까요? 안부 인사, 새해 인사도 깨톡으로 하는 세상, 언젠가는 웃음도 문자로 하는 시대가 오지는 않을까요?

 

웃음 박물관에서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웃음을 싹 잊어버렸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야.

(중략)

, 웃음 박물관 소장품인 이 가상현실 기록물을 한 번 체험해 봐.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니고 그냥 무표정하게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중략)

좋아 , 그러게 ㅋㅋㅋ, 멋져 ㅎㅎㅎ, 헐 대박 , 개좋아 ㅋㅋ, ㅎㅎ,ㅋㅋㅋㅋ.... 그때부터 사람들은 사이에 웃음을 가두기 시작한 거란다.

(중략)

언제부턴가 더는 소리로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지. 결국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웃음 장애를 갖게 되고 만 거야.

(중략)

 

엄지공주 대 검지대왕 중~“

 

 

작년 여름 아이슬란드에서 700살 된 빙하의 장례식이 열렸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요. 기후학자들이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하고자 빙하 장례식을 했다고 합니다. 오크 화산을 700년간 덮고 있었던 오크 빙하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점점 크기가 줄어들다가 겨우 분화구에만 얼음이 덮여 있다고 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떤 장례식

 

개미가 죽으면

누가 장례식을 치러 주지?

쇠똥구리가 죽으면, 수달이 죽으면 누가

땅에 묻어 주지?

(중략)

사람들 중엔 다른 생명들이 죽었다고

장례식을 치러 주는 이가 없단다.

(중략)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뭔가 달라진 것 같더구나.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산에 오르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가 보았더니

알프스산맥 피졸산 정상 빙하 앞에 다다라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또 어떤 이는 추도사를 읽고,

장중하게 알펜호른을 연주하고 조화를 던졌단다.

아니, 빙하에게도 생명이 있던가? 빙하 장례식이라니!

(중략)

이 웃픈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실은 사람들이 결코 기억하지 않는 생명들이

하나둘 죽어 갈 때만다 어머니인 지구가

장례식을 치러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세계 곳곳의 빙하들이 속절없이 녹아내린 건

뭇 생명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구가 흘린

뜨거운 눈물이었다는 것을.

 

엄지공주 대 검지대왕 중~“

 

여러분은 빙하들이 속절없이 녹아내린 것이" 어머니인 지구가 흘린 뜨거운 눈물이었다는 것을." 아셨나요? 언젠가 지구가 더 이상 눈물조차 흘릴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 대신에'에선 코로나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는데도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 때문에 플라타너스와 돌하르방과 또 다른 누군가가 대신 가슴을 졸이는 이야기, '한쪽 눈을 가린 사람들이'에선 시리아 내전으로 한쪽 눈을 잃은 생후 2개월 아기 카림의 이야기, '그리고...남은 사람은 셋'에선 친구 이야기, '자라지 않는 아이'에선 노르웨이에 입양되었다가 대한민국 고시텔에서 하늘나라로 떠난 입양아에 관한 이야기 등 함께 나누고픈 시들이 정말 많은데요. 모두 다 나눌 수는 없겠죠? 마지막으로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엄지 공주 대 검지 대왕'을 만나 보아요.

 

 

엄지공주 대 검지대왕

 

나는

엄지공주

 

사뿐사뿐 춤을 추듯

엄지 둘을 놀리고

 

우리 아빠는

검지 대왕

 

뚜벅뚜벅 독수리 타법으로

검지 하나만 부리니

 

휴대전화 문자로

말씨름을 벌일 때마다

이 엄지공주가

 

백전백승

 

엄지공주 대 검지대왕 중~“

 

여러분은 엄지족인가요? 검지족인가요? 꿈오리는 검지족인데요. 우리집 두 형제는 엄지족이더라구요. 그래서 시에 나온 것처럼 누가 문자를 빨리 보내나 시험을 해봤더랬죠. 검지 하나로 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을 해도 검지족 아이들한테 지더라구요. 여러분은 어떤까요?

 

끝으로 시인의 말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전하고픈 말을 대신합니다. 코로나로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없지만, 잠깐이나마 하늘 한 번 쳐다볼 수 있는 여유를, 잠시나마 근처 공원에서 계절을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지구가 더 이상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새 시집 '엄지 공주 대 검지 대왕'을 펴내면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루하루 분주한 일상을 살면서도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아름다운 자연이 눈앞에 다가오지요. 온갖 생명이 숨 쉬는 자연을 관찰하고 호흡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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