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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인 서울 ㅣ 사계절 1318 문고 122
한정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3월
평점 :

“어느 날 아침, 불안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반희는 자신이 손바닥만 한 토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본문 중~”
어느 날 아침, 토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본 반희는 그것이 꿈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얼마 전까지 키우던 토끼 짝귀를 떠올립니다. 짝귀는 컵라면 국물을 뒤집어 쓴 후 다용도실에서 쓸쓸하게 죽고 말았었지요.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자신의 방에서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처럼.
몇 달 전, 성적표가 나온 바로 다음 날, 꿈속에서 아빠에게 무지막지하게 두드려 맞으며 험한 욕까지 들었던 반희는 지금의 이 상황도 그 때처럼 생생하게 꾸는 꿈일 거라 믿으며 그 순간을 즐기는데요.
바로 그때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 소리, 작은 토끼가 된 반희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죠. 우여곡절 끝에 겨우 혓바닥으로 열게 된 메시지 창엔 알 수 없는 글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자신과는 급이 다르다며 무시하던 두 친구가 보낸 메시지, 한 친구는 돈이 필요 없다 하고 한 친구는 돈을 달라고 하는 상황, 하지만 반희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반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등을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수 있는 것도 실력이야. 그게 무엇이든 말이야. 잘 기억해. 한번 빼앗기면 다시는 못 찾아. 아빠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또 뭐랬지? 네가 1등 하는 게 너만의 문제인 줄 알아? 아빠의 명예고 엄마의 체면이고 우리 가족의 자존심 같은 거야! 라고 했던가? 본문 중~”
반희는 어떻게 해서는 무조건 1등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예서처럼. 그래서 1등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던 친구에게 하지 말아야 될 일을 하고야 말았는데요. 그 사건으로 인해 반희는 자신이 차라리 짝귀처럼 토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그레고르 잠자가 그랬던 것처럼 반희도 토끼가 아닌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자신이 악몽을 꾸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 꿈에서 제발 깨어나기를 바랬던 반희, 반희는 잠자와 다르게 인간 반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 "우리 오랜만에 소풍 가는 것 같은데?"
"맞아요. 당신 그 분홍색 티셔츠도 잘 어울려요."
"난 원피스 입었어. 이것도 참 잘 어울려. 백설 공주랑 똑같은 색이야."
"그래, 어서 출발하자."
가족들의 목소리는 그 어느 띠보다 밝고 경쾌하게 들렸다.
"참, 반희는 안 가? 내가 반희한테 피리 불어 줄 건데....."
누나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크게 들리는 듯하더니, 리코더 소리가 났다.
"삐삐삑삑,삐이이."
"안 돼. 그거 버리고 와. 안 그러면 진짜 토끼 못 만나."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코더 소리는 금세 멎었다. 그리고 무언가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버렸어. 이제 가. 진짜 토끼 만나러 가!"
곧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그다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본문 중~“
'변신 인 서울'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인 '변신'을 패러디한 이야기입니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로 변한 이후 돈을 벌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하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그레고르 잠자의 가치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만 인정받았다면 '변신 인 서울'의 반희는 부모들이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1등을 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었죠. 그레고르 잠자와 반희는 부모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도구였을 뿐,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자 가차 없이 버려지게 되는데요. 가족들 중 유일하게 이해하고 보듬어 주던 존재들이었던 잠자의 동생과 반희의 누나조차도 결국은 오빠와 동생에게서 돌아서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더 반희의 마지막 모습은 제발 그레고르 잠자와는 달라지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답니다. 사족이지만 한 마디 덧붙이면 거대하고 혐오스러운 벌레가 아니라 손바닥만한 토끼로 변신했다는 것이 그나마 참 다행이었다고 할까요?
시대는 다르지만 인간 존재의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변신'과 '변신 인 서울', 작가님의 마지막 말을 덧붙이며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런데 그거 알고 있나요? 우리는 그 누구라도 토끼가 될 수있습니다. 작가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