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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이운경 옮김 / 한문화 / 2003년 6월
평점 :
이 책은 책을 기획한 윌리엄 어윈 외 16명의 저자들(모두 철학교수들)이 집필한 15편의 철학 칼럼 모음집이다. 어쩐지 번역판에서는 슬라보예 지젝이 대표저자로 나와있지만 그의 한국에서의 인기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매트릭스>란 영화를 통해 철학적 질문을 함께 생각해보고 철학적 입문서로서 작용하기를 바라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여러 저자들이 <매트릭스>의 메시지를 다면적으로 분석하고 다양한 질문들을 던진다. 또한 소크라테스•예수•붓다의 모습으로서의 네오, 가상현실을 통한 우리의 실재 세계의 모습 탐구, 정신분석학적 분석, 포스트모더니티에 관한 고찰, 데카르트와 칸트, 라깡, 사르트르 등을 등장시켜 영화 속에 묘사된 현실과 인간 존재의 여러 측면들을 살펴본다.
마지막 지젝이 쓴 칼럼은 내가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용어에 대한 의미를 몰라 읽기가 어려웠다. 반의 반도 이해 못한 듯. 이를테면 영제도를 통한 영차이, 그것이 이뤄내는 중층적인 의미.. 이런 말들은 나에게 수수께끼일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칼럼들은 쉽고 재미있게 읽혔으며 특히 <매트릭스>를 보고 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답의 실마리들을 얻어올 수 있었다.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사이퍼의 선택이 왜 나쁜가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트리니티의 대답은 아무래도 무언가 부족하다.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허구적 행복을 누리는 일이 왜 나쁜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칸트와 사르트르를 인용한다. 간단히 말해 스스로의 의지로 쟁취한 자유와 행복이 아니면 결국 우리는 분리의 불행을 겪게 될 거란 것이다. 그러므로 네오는 토마스 앤더슨으로 살면서 늘 불만스럽고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괴로움에 시달린다. 또한 우리의 실존은 태어난 목적이 없기에 허무하지만 본질을 찾아 떠나는 여정으로서의 삶이 가능하기에 존재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가상현실의 주어진 경험에 의한 수동적인 삶은 우리를 비본질의 세계로 이끌 뿐이다.
그리고 자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매트릭스가 자본주의 현실의 은유라고 봤을 때, 개인은 제도의 식민지에 다름 아니다. 이런 현실 하에서는 주체가 사라지고 어떤 선택을 하든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구절은 자유에 대한 희망을 준다.
“흥미로운 것은,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일정한 사건들은 원자의 방사능 자연붕괴처럼 순수하게 무계획적이라는 것, 즉 어떤 특정한 원인없이 발생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이 자유의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네오가 오라클에게 한 “내가 그(the one)가 아니지요?” 라는 질문에 “미안하구나 얘야”라는 대답을 들었음에도 ‘그’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모피어스를 구하려는 네오의 희생 의지(자유), 그리고 네오를 ‘그’라고 여긴 트리니티의 믿음의 의지(역시 자유) 때문임이 가능해진다.
또 사소한 거지만, 왜 시온을 근거지로 두고 있는 함선의 이름이 ‘느부가넷살’인지 궁금했는데, 그것은 꿈이 매개였다. 바빌론의 왕 느부가넷살은 시온을 공격한 자였으나 꿈을 통해 시련을 예고 받는다. 느부가넷살의 함장은 모피어스이고, 모피어스는 꿈의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꿈에선 계시를 받을 수 있고, 이 계시는 구원자에 관한 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