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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06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7월
평점 :
<무기여 잘 있거라>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헤밍웨이의 장편.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아빌라의 한 산골에서 다리 폭파를 수행하는 인민전선 테러리스트 로버트 조던과 지역 파르티잔들의 나흘을 이야기한다. <무기여...>에서 보여준 ‘잃어버린 세대’의 허무주의와 주인공 프레데릭 헨리의 냉정함과 성격의 납작함 비해, 이 소설의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진일보한 인물이다. 작품이 적혀진 시기(<무기여..>는 1929년에, <누구를..>은 1940년에 발표되었다)로 보아 작가의 성숙도와 관련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이너마이트 전문가이자 전직 스페인어 강사인 로버트 조던은, 인민전선 테러리스트가 가진 냉철함을 잘 유지하면서도 전쟁의 참상과 비극에 대해 고민할 줄 아는 캐릭터다. 그는 살인에 대해 통찰하고, 그 살인은 전쟁 중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해도 죽인 사람들 중 파시스트는 과연 몇 명이나 있었는지 고민한다. 동료 파르티잔들을 무조건 성인들로 묘사하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대결을 하게 되는 파시스트 베렌도 중위의 성실함 역시 묘사가 잘 되어, 독자는 전쟁에 대한 일방적인 승부가 아니라 전쟁이란 비극 자체에 대한 생각을 나눠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파시스트들을 도리깨질하면 그 껍데기는 없어지고 자유의 낟알이 나온단 말이지.” 필라르가 조던과 마리아에게 이야기한 과거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혁명에 대한 서사엔 공화국 인민전선의 학살의 광경이 뚜렷이 기록되어 있다. 마을의 공화주의자들은, 경찰들은 권총으로 즉결처형, 파시스트들은 도리깨로 내려친 후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인다. 파시스트들은 많은 수의 농민들을 학살했겠지. 그런데 그 학살에 똑같은 학살로 맞서는 건 읽기가 괴롭다. 그렇다고 살려둔다고 파시스트들이 공화국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 힘든 문제를 헤밍웨이는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목하게 되는 인물은 안셀모 노인이다. 고민하는 악당은 피곤하지만 고민하는 주인공은 공감의 자장이 넓다. 로버트 조던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살인에 대한 고민을 할 줄 아는 자이나 그의 결론은 대부분 도피와 합리화로 빠진다. 하지만 안셀모 영감은 확실히 죄책감을 가지는 자다.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이런 살인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만이 전쟁이란 지옥에서 인류를 구원해줄 것이다. 안셀모 영감에게선 참된 종교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신에게 기도를 하지 않는다. 자신만 편애받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에 대해 회의적이나 어느 종교인보다 속죄에 관한 통찰이 깊은 인물이다. 교회에 대해선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전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파시스트들의 편이었을테니. 하지만 이런 사실도 그들에게서 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가진 못한다.
로버트 조던은 이 나흘을 40년처럼 살아간다. 그런 깊은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은 마리아와의 사랑이었다. 이 소설은 전쟁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슬픈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다. 마리아 캐릭터가 맹한 거는 좀 성질 나지만 아직 19살 아가씨고, 그리고 필라르 캐릭터가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주며 균형을 이루려 하니 <무기여 잘 있거라>보다는 나았다.
그런데 로버트 조던은 왜 스페인내전에 참가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미국인들이 참전한 이유는 알겠다. 근데 몬태나 주의 한 대학 스페인어 강사였던 로버트 조던은 어떤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자기 목숨을 걸고 참전했을까.
작품은 신념을 가진 공화주의자들을 위한 애가이며 사랑의 위대함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책의 제일 앞 장에 인용된 존 던의 시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아무도 자신만으로 완전한 섬이 되지는 않는 것이니, 모든 사람이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 한 줌 흙이 바닷물에 씻겨 나간다면 유럽은 그만큼 더 작아지는 것이리라.
이는 하나의 곶이 씻겨 나가고 그대의 친구, 그대의 영지가 씻겨 나갈 때에도 마찬가지이리라. 나 자신이 이 인류의 한 부분이니, 친구의 죽음은 곧 나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하지 말라. 그것은 곧 너 자신을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 스페인 내전에 관한 영화로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가 유일하게 본 영화다. 역시 전쟁의 이야기이면서 한 소녀의 자기 성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https://youtu.be/EqYiSlkvRuw
* 공화국 인민전선의 투쟁에도, 이탈리아와 독일의 도움으로 내전에선 프랑코 정권이 승리하고 이후 38년 간 독재한다 어휴 어휴 어휴..
* ‘라 파시오나리아’ 돌로레스 이바루리 고메스의 삶은 산하님 블로그에 잘 정리되어 있다.
http://nasanha.egloos.com/m/11213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