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거라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장편소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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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헤밍웨이의 장편. 재미있어서 책장이 휙휙 넘어갔지만 읽는 입맛은 깔깔하고 건조했다. 아무래도 1인칭 서술자인 프레데릭 헨리가 독자에게 쉽게 자기 마음을 전해주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냉랭함엔 제1차 세계대전이란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겠지. 딱히 이렇다할 인생철학을 갖고 있지 않은 인물인 헨리에게 사랑이 찾아오는데, 그녀는 영국인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였다. 처음엔 가벼운 기분으로 사귀기 시작했으나 점점 그녀에 대한 사랑은 깊어가고, 결국 임신을 계기로 헨리는 소설에서 처음으로 삶에 대한 의욕과 책임감을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장르는 하드보일드 아니었던가. 냉정한 문체에서도 그랬겠지만 처음부터 소설이 해피엔딩으로 끝날리 없다는 걸 짐작했지만 그래도 끝은 허무했다. 헨리의 인생을 돌려놓은 사랑의 숨결이, 그리하여 헨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줬는지에 대해 열린 결말로 적혔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역자 해설을 읽어보니 소설 엔딩 후 펼쳐질 헨리의 삶이 희망적으로 묘사되어 있던데 나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다. 이 커플에게 임신은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태어날 생명에 대한 애착의 묘사가 없다.

“아, 가엾고 가엾은 캐트. 이것이 우리가 사랑을 나눈 대가다. 이것이 덫의 결말이다. 이것이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 얻는 결과다. 그렇지만 고맙게도 질소 가스가 있다. 이런 마취제가 나오기 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견뎠을까? 일단 고통이 시작되면, 물방아를 돌리는 물처럼 계속해서 그 고통을 겪어야 한다.”

사랑의 결과는 결국 사랑하는 캐서린의 고통이며 또한 헨리 자신의 슬픔일 뿐이다.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이 인물들의 삶의 희망으로 이어지지 않아서인지 나는 오히려 사랑의 허무함을 읽으며 느꼈을 뿐이다.

그리고 캐서린 바클리의 성격 묘사가 괴로웠다. 용기있고 아름다우며 똑똑한 여성인데도, 소설 내내 그녀는 헨리에게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한다. 임신으로 변한 몸매로 인해 헨리의 마음이 떠날까 걱정하는 부분은 읽는 내가 아주 답답했다. 어쩌면 관찰자인 헨리가 캐서린을 자기 관점으로만 묘사해서 이런 점만 부각되었을 수도 있겠으나 헤밍웨이 이름 앞에 호처럼 따라 붙는 ‘마초’란 선입견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사람에게 여자란 고작 이런 정도인가. 이게 구원의 모습인가.

소설은 헤밍웨이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기자로 일하다가 1차 대전 참전을 위해 적십자사에 가입, 이탈리아로 배치되어 앰뷸런스 운전을 하다가 부상, 밀라노 병원으로 후송되어 7살 연상의 간호사 아그네스와 사랑에 빠진다. 소설의 기본 이야기틀과 상당히 비슷하다. 소설은 1929년에 출간되었는데 전해 1928년, 그가 마음을 크게 주던 아버지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은 헤밍웨이 추모비 비문 인용.
“그는 무엇보다도 가을을 사랑하였다. 미루나무 숲의 노란 잎사귀들, 송어가 뛰노는 냇물에 흘러가는 잎사귀들, 그리고 저 언덕 너머의 높푸르고 바람 없는 하늘을. 이제 그는 영원히 이런 풍경과 하나가 되었다.”




* 역자해설 인용 : “이 소설의 제목 『무기여 잘 있거라』는 두 가지 대상에 작별을 고한다. 탈리아멘토 강에 뛰어들어 단독 평화 조약을 맺은 헨리가 전쟁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 그 하나이며, (중략) 캐서린의 <양팔arms>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 다른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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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0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1-24 09:34   좋아요 1 | URL
그렇게 볼 수도 있었겠군요. 캐서린처럼 강인한 여성이(그녀는 쉽사리 겁을 먹지 않고 갑작스런 스위스 망명에도 당황하지 않으며 헨리에게 용기를 주죠) 왜 자꾸 헨리에게서 사랑을 확인하고 못난(?) 자신을 미안해하는지 선뜻 이해가 힘들었는데, 오히려 사랑으로 인해 캐서린의 강한 외면 사이에 틈이 벌어져 사랑에 대한 갈망, 연약한 모습이 배어져 나오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덕분에 할 수 있었어요. 글보다 더 빛나는 덧글 감사합니다. 저 혼자서는 떠올릴 수 없는 생각이었어요~

2018-01-30 0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1-30 12:03   좋아요 1 | URL
아니 건방..아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할 수 없는 다른 생각을 읽는 것은 언제나 놀랍고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