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의하면, 그의 두 번째 장편 <무한한 재미>는 ‘20세기 말 미국 문학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작’이며, <타임>지 선정 ‘20세기 100대 걸작 영어소설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모은 작가지만 나는 이 에세이집을 통해 처음 접한 작가이다. 표지에 웬 텁수룩한 아저씨가 반다나를 머리에 질끈 묶은 그림을 보고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제목이 던지는 궁금함-과연 뭐길래 재밌다고들 하지만 두 번 다시 하기 싫을까?- 그리고 트위터 친구 쮸의 강력 추천으로 글을 읽게 되었다.

소감 : 와.
2차 소감 : 우와.
3차 소감 : 대애박.
4차 소감 : 소설 번역 좀 해주세욜 소설 번역 좀 해주세욜 소설 번역 좀 해주...(사실 번역이 된다 해도.. 과연 <무한한 재미>가 번역된다고 내가 읽을 수 있을까? 그 전에 정보손실 적은 우리말 번역이 가능하긴 한 걸까?)
5차 소감 : 북플에 독후감 적으로 옴.

총명하다. 번역가 김명남님은 애정이 듬뿍 담긴 뜻에서 ‘제 뇌에 갇힌 헛똑똑이 백인 남자’라고 작가를 표현했지만 내 느낌은 총명이란 말은 이 작가를 위해 존재하는 말이었구나, 아니 영어 화자니까 intelligence라 그래야 하나? 아무튼 이 단어는 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였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책은 총 9편의 에세이를 담았다. 각각 다른 에세이 단행본, 잡지 기고문 등에서 번역자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엄선한 글들이다.


-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잡지 <하퍼스>의 청탁으로 호화 크루즈 여행을 한 경험을 옮긴 것이다. 돈으로 산, ‘응석받이 당하기’식 현대인의 휴식 내면에 배어든 자본주의의 씁쓸한 뒷모습을 참 구석구석 잘도 파헤치는데, ‘으음..’하고 심각하게 읽은 것이 아니라 ‘그만해 이 미친 자얔ㅋㅋㅋㅋㅋㅋㅋㅋ’ 하며 읽었다. 물론 그는 미치지 않았다. 맑은 이성과 도덕심이 있어야 이런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


- 카프카의 웃김에 관한 몇 마디 말
카프카 문학의 해학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그를 통해 성취한 카프카의 문학적 업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의이다.

“차라리 학생들에게 카프카의 모든 이야기를 일종의 문으로 상상해보라고 요구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문에 다가가서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우리는 점점 더 세게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데, 그냥 들어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꼭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정확히 그 절박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 문으로 꼭 들어가야 한다는 필사적인 절박함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문을 두드리고 들이받고 찬다고. 그러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데... 문이 바깥쪽으로 열린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내내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곳에 그동안 내내 들어 있었던 거라고.”

엑스포메이션(Exformation 소통에서 표면적으로는 지워져 있지만 그 소통을 통해 수신자의 마음속에서 환기됨으로써 특정한 연상 관계가 폭발적으로 맺어지도록 만드는 핵심 정보)이란 훌륭한 단어를 알았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
가너의 <현대 미국 영어 어법 사전> 서평이다. 월리스는 이 글에서 사전의 서평뿐 아니라 문법을 올바로 지킨, 표준 영어 구사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규범주의자 vs 기술주의자의 논쟁을 소개하는 와중에 스티븐 핑커를 포함한 구조주의자•기술주의자들이 문법나치(라고 본인이 자칭)인 작가에 의해 도륙이 나는 참상을 구경할 수 있다.


-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
911 테러 당일 작가는 톰프슨 아주머니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이 집에 모인 이웃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사건의 비극성과 미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 넌즈시 이야기한다.


- 랍스터를 생각해봐
생각해보자. 랍스터는 끓는 물에 산 채로 삶길 때, 고통을 느낄까 느끼지 못할까.


-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조지프 프랭크가 평생을 바쳐 달성한 도스토옙스키의 전기에 관한 서평과 도스토옙스키의 인생과 작품, 그리고 작가의 인생과 그가 속한 시대와 작품을 어떻게 연관시켜 평론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한다.


-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
테니스 선수 페더러에 대한 예찬. 내가 스포츠 쪽은 문외한이라 그냥 설렁설렁 읽었다.


-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
창작 아카데미를 통해 양산되고 있는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관한 통찰.


- 재미의 본질
픽션 창작을 통한 자기 통찰과 그에 따르는 재미에 관한 설명. 중간에 새옹지마 고사가 인용되어 있는데 중국의 이야기인지 한국의 이야기인지 헷갈려 한다.




* 김명남님 번역. 포텐이 터진다는 게 이런 의미구나 느낄 수 있다. ‘느리터분’ ‘응석받이 당하다’ 같은 단어 선택도 좋지만 월리스가 운율을 담아 쓴 문장의 경우 그 운율을 반영하는데 우리말 문장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다.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1962-2008. 우울증으로 힘들어 했고 항우울제 복용, 전기충격요법 등의 치료 과정에서 부작용이 있었다고 한다. 세 번째 장편소설 <창백한 왕> 집필 중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 빌려보지 말고 사 읽을걸. 아~~~~~ 사서 읽을걸!!!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18-08-18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책이 읽고 싶어지는 리뷰는 오랜만이네요^^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19 21:04   좋아요 1 | URL
독서,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ㅎㅎ 특히 첫 에세이 배꼽 실종 주의보..

CREBBP 2018-08-18 14: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4차 소감까지가 저랑 똑같네요. 저는 아직 끝에 몇 개 덜 읽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게, 엄선했다는게, 엄선했기 때문에 영문판의 여러 에세이집에 수록된 다른 에세이들을 한글로 만날 기회가 적어진다는..
읽고서도 그걸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불가능해보였는데, 이렇게 정리가 가능하군요. 대단하십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19 21:10   좋아요 1 | URL
수록되지 않은 다른 에세이들이 다른 책으로 번역되어 나오길 기대해보네요!

레삭매냐 2018-09-15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오자 마자 사긴 했는데...

좀 사서 읽다 말았네요. 그닥 재미가
없는 것 같더라구요.

무한한 재미도 원서로 사서 잘 모셔
두고 있습니다. 나중에 번역서 나오면
대조해 가면서 읽으려구요.

역시 독서와 구매는 차이가 있는 모
양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9-15 17:30   좋아요 0 | URL
무한한 재미.. 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제게 과연 올까 싶습니다 ㅠㅠ 월리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무한한 재미는 언젠가 올려주실 레삭매냐님의 리뷰를 읽는 걸로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