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을 읽고 눈물이 난 건 처음이다.
작가는 살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글을 쓰다 수십번 도망갔다는 것에서,
그리고 읽혀지는 글에서
한줄 한줄에 진심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책에 기대었다. 책은 슬픔이 쉴 자리를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크고 작은 슬픔을 덜어놓기위해서 책을 읽고, 기록을 하고, 때때로 일기를 쓴다.

지금은 여전히 패배자의 생각에 머무른다.
나의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은 대답을 하지만,
마음 한 켠이 쑤신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나아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의 부족함을 알고, 직면하는 나는,
언젠가는 온전히 행복해지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나의 모자람없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줘야겠다.
내가 나의 엄마이자, 아빠이자, 둘도 없는 친구니깐!
가장 소중하게 대하여줄 것!

나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들고 책 앞에 서곤 했다. 삶도, 세계도, 타인도, 나 자신조차도 책에 포개어 읽었다. 책은 내가 들고 온 슬픔이 쉴 자리를 반드시 만들어 주었다. 슬픔 의 얼굴은 구체적이었다.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 환자, 외국인, 반에서 뚱뚱한 남자애, 아무도 춤추자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원했다. 고통으로 부서진 자리마다 열리는 가능성 을 책 속에서 찾았다.
죽고, 아프고, 다치고, 미친 사람들이 즐비한 책 사이를 헤매며 내 삶의 마디들을 만들어 갔다.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애썼지만 매번 실패하고 타협했다. 쓸 때의 나는 여기 없다. 이 글들은 나였던 것,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닌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사라지는 일이지만 나는 내 젊음을 부러워하지도 그리워 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나는 여기에 두고, 여전히 처음인 많은 것들에 매번 새롭게 놀라면서 다음으로 가고 싶다.
행간을 서성이며 배운 것들 덕분에 반드시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앞으로를 기대한다. - P10

다만 ‘지금‘ 같이 놀고 싶은 친구를 만났고, 같이 놀면 재밌는 사람을 만났으니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우리는 서로가 느끼는 감정이 같을 수 없는 한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치관 우선순위를 체크하는 테스트를 했을 때 우리는 둘 다 최우선 순위로 ‘나‘를 꼽았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를 돌보고 아낀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우리의 건강함이 마음에 들었다.

엄마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출근하면서 "간 다"라고 말하는 인사다. "갔다 올게, 아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해 봐." 시간에 쫓겨 인사 없이 훌렁 나가는 일이 다반사지만, 아침에 이렇게 한마디씩 나눌 여유가 있으면 새삼 깨닫곤 한다. 집 나선 가족이 돌아 오지 않는 일이 엄마에게는 평생의 상처라는 걸. 삼십 년 넘는 세월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 흉터가, 엄마에게는 아버지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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