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0. 1부
손녀가 할머니로부터 듣는 증조모의 이야기
백정인 증조모는 백정의 신분과는 상이하게 하늘 보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고조모를 뒤로 하고
일본 군사에게 잡혀가는 것을 피해, 알지도 못했던 남자를 따라 개성으로 떠난다.
개성 사람들은 백정인 증조모를 따돌리고, 백정인 증조모를 데려왔다는 이유만으로 증조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그녀를 데려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이라며 함께 개성에 가자고 제안한 것은 증조부였지만, 허영심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결국 그도 사람들의 처우에, 또 처음부터 양인인듯 굽히지 않는 증조모의 태도의 불만을 가지고 억울함과 울화를 안고 증조모를 무시한다. 그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인생을 그녀가 빼앗았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에서 증조모가 기대를 품었던 것은 새비 아주머니와 새비 아저씨뿐이다.
그 누구 위에도 서려고 하지 않고, 아내를 귀하게 여기며, 돌연 일본으로 떠난 서비 아저씨.

그녀에게는 희망이라는 싹이 있었다. 그건 아무리 뽑아내도 잡초처럼 퍼져나가서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희망을 지배할 수 없었다. 희망이 끌고 가면 그곳이 가시덤불이라도 그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말대로 그건 안전한 삶이 아니었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따라 기차를 타고개성으로 가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를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의 경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념하지 못하는 마음은얼마나 질기고 얼마나 괴로운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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