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 책을 처음 접하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다시 읽어도 그 충격은 여전하다. 인간의 삶이 이토록 비극적일 수 있을까.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이 누군가의 소박한 인생을 이토록 처참하게 짓밟아도 되는 것인가. 국가 권력의 잔인함과 악함, 그리고 그것에 당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지독한 나약함 앞에 분노와 회의감이 동시에 밀려든다. 모든 것을 잃은 이시바와 옴이 여전히 서로를 의지하며 디나를 찾아오고, 그 안에서 아주 작은 온정이 오가는 모습은 거대한 절망 속에서도 미쳐버리지 않고 인간성을 끝까지 붙잡으려는 그들의 눈물겨운 몸부림을 볼수 있다. 기차 선로에 스스로 몸을 던져 생를 마감한 마넥은 거대한 절망 속에 한 줄기 희망을 보지 못했기에 생를 포기했던 것일까. 아니면 절망만이 가득한 세상에 홀로 멀쩡하게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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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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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후반부, 터너가 엘우드의 이름으로 살아왔다는 반전이 있었다. ˝결국 엘우드는 살아남지 못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깊은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품고 살던 한 소년의 정의로움과 선함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동안 인종차별을 다룬 책들을 몇 권 접해 왔지만, <니클의 소년들>이 유독 시리게 다가온 이유는 가장 취약한 곳에 몰려 있던 ‘어린아이들‘, 그리고 돌아갈 곳이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마땅할 아이들이 오히려 부당한 사회의 시스템 아래 방치되고 짓밟히는 모습은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오랜 세월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지내야 했던 니클의 소년들. 그들이 조금만 더 일찍 세상 밖으로 나와 따뜻한 빛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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캑터스
사라 헤이우드 지음, 김나연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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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다섯의 수잔은 철저히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직장인이다. 그녀는 독신주의자로,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통제 아래 일상을 꾸려나간다. 가벼운 만남을 유지하는 리처드와의 관계 역시 그녀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즐거움을 줄 뿐이다. 하지만 평온하던 그녀의 세계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부고와 함께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남동생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성된 유서를 확인한 수잔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생이 어머니를 조종했을 거라는 의구심 속에 법적 투쟁을 선언한다. 가족 간의 골이 깊어지는 혼란 속에서, 롭은 중재자를 자처하며 수잔의 곁을 맴돈다. 수잔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리처드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처드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며 가정을 꾸리자고 제안하지만, 수전은 단호히 거절한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을 거부해온 그녀는 아이 또한 자신이 혼자 힘으로 키우겠노라 다짐한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부, 수전은 자신의 근간을 흔드는 충격적인 가정사와 마주한다. 크나큰 충격을 받은 수잔이었지만 임신과 출산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수전은 롭에게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한다. 결국 수전은 홀로 서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롭과 함께하기로 결심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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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꿈결 클래식 7
조지 오웰 지음, 더미 그림, 추미옥 옮김 / 꿈결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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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시 집어 들었다. 술술 읽히는 플롯이라 두세 시간 내외면 완독할 수 있을 만큼 몰입감이 뛰어나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덕분에 전개 과정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이면에 깔린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오웰은 이 소설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스탈린이 통치하던 소련의 무겁고 어두운 시대상을 정교하게 비유해냈다. 이야기는 인간의 압제 아래 있던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시작된다. 동물들은 더 이상 인간에게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노동하며 그 대가를 정당하게 누리는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그 중심에는 돼지인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있다. 소설 속 돼지들은 가장 영리한 두뇌를 가진 집단으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권력욕에 눈먼 부류이기도 하다. 그들은 다른 동물들을 속여 노동력을 착취하고, 교묘한 말재주로 우위를 점하며 동료들을 농락한다.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은 정치적 견해 차이로 대립을 이어가다 나폴레옹의 계략으로 스노볼이 쫓겨나면서 농장은 본격적인 나폴레옹의 독재 체제로 접어든다.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동물들은 죽어라 일만 할 뿐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던 혁명 초기의 의지는 희미해지고, 자유로운 삶에 대한 희망도 잊혀 간다. 특히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충직한 말 복서다. 그는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적으로 일하지만, 결국 노쇠하여 쓸모가 없어지자 도살장에 팔려 간다. 죽는 순간까지도 나폴레옹을 믿으며 충성을 다했던 복서의 최후는, 권력이 노동 계층을 어떻게 소모품으로 다루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깊은 슬픔을 안겨준다.
결말에 이르러 나폴레옹은 그토록 증오하던 인간과 손을 잡는다. 인간처럼 두 발로 걷는 법을 흉내 내는 돼지들의 모습은 점차 인간의 형상과 겹쳐지고,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동물들은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혁명의 주체가 어느새 자신이 타도하려던 독재자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비극적인 장면과 함께 소설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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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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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에게는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어린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이 태어날 당시, 어머니는 고령 출산으로 인해 건강이 약해진 상태였다. 넬 역시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회복을 돕기 위해 집안일을 도맡으며 사실상 ‘작은 보호자‘ 역할을 수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여동생은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아이의 기질은 태생적으로 예민했다.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끊임없이 보채는 아이 때문에 가정은 피로에 짓눌리게 된다. 예민한 아이를 돌보느라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고, 넬은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동생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가중되는 돌봄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내한다.

대학 시절, 넬은 남자친구인 빌에게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나의 전 공작부인>을 가르쳐주며 이해시키려 애쓰지만, 문학적 해석의 차이와 미묘한 자존심 싸움은 결국 사소한 다툼으로 번지며 이별을 맞이한다. 대학 졸업 후, 넬은 또래 친구들이 결혼을 통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것과 대조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채 주거지와 직장을 옮겨 다니며 자유롭지만 불안정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다 업무 파트너였던 오나의 남편,티그를 만난다. 넬은 티그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관계를 지속하며, 그와 함께 시골 농장에서 동거하기에 이른다.

농장에서의 삶은 복잡했다. 주말이면 티그와 오나 사이의 아이들이 방문하여 불편한 기류가 흐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며 넬과 티그 사이에도 아이가 생기고 그들만의 가정이 공고해지는 동안, 홀로 남겨진 티그의 아내 오나는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티그와 넬의 아이가 성장할 무렵, 부동산 중개인인 **릴리**라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릴리는 넬과 티그에게 딱 맞는 집을 두 차례나 소개해 줄 정도로 유능했고, 넬이 동정심과 책임감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전처인 오나가 살 집을 마련해 주려 할 때도 릴리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얼마 후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릴리는 오나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홀로 숨진 모습을 발견하고, 이어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오나의 아들이 창문을 깨고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려다 깨진 유리에 다리를 심하게 다쳐 피를 흘리는 참혹한 광경까지 마주한다. 오나의 죽음과 피를 철철 흘리는 아들을 목격한 릴리는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결국 타인의 삶과 공간을 연결해주던 그녀는 그 사건을 계기로 부동산 중개업을 그만둔다.

마지막 두 챕터는 넬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년기를 다룬다. 아버지는 시력을 잃고 침대에 갇힌 무력한 존재가 된다. 넬은 그런 아버지 곁을 지키며 실패로 끝난 탐험 기록을 읽어주며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며 기억의 미로 속으로 빠져든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아버지가 곤충학 실험실에서 함께했던 ‘소년들‘을 기억하고 있으며, 종종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의 제목처럼 읽는 내내 상당한 혼란을 느꼈다. 1인칭 화자가 ‘넬‘임을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이야기의 흐름을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두 챕터에서 다시 1인칭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이야기를 할 때, 이들이 앞서 나온 넬의 부모님임을 추측하는 과정 또한 까다로웠다. 각 단편의 내용은 흥미롭고 잘 읽히지만, 그 파편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숙제였다.

소설에서 넬이 겪은 도덕적 혼란은 어떤것이었을까. 유부남인 티그를 만나며 넬은 전처 오나에 대해 죄책감과 동정심을 동시에 느꼈다. 넬이 티그와 점차 안정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반면 오나는 외롭고 약한 모습으로 늙어가기 때문이다. 그러한 오나의 모습에 넬은 챔임감을 느낀다. 티그와 동거를 시작할 무렵 티그와 오나의 자녀들을 떳떳하게 대할 수 없어 숨어 지내야 했던 시간 동안, 그녀가 견뎠을 수치심과 티그를 향한 복합적인 분노 또한 짐작해 보게 된다.

어린 시절, 예민한 여동생을 왜 자신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으며 겪었던 갈등, 그리고 소설의 끝에서 죽음을 앞둔 부모님을 지켜보며 느꼈을 감정 또한 정답 없는 혼란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넬의 감정을 추측하며 읽는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으나, 완독하기가 쉽지 않았고 읽는 과정에서 넬 처럼 나역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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