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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평점 :
넬에게는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어린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이 태어날 당시, 어머니는 고령 출산으로 인해 건강이 약해진 상태였다. 넬 역시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회복을 돕기 위해 집안일을 도맡으며 사실상 ‘작은 보호자‘ 역할을 수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여동생은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아이의 기질은 태생적으로 예민했다.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끊임없이 보채는 아이 때문에 가정은 피로에 짓눌리게 된다. 예민한 아이를 돌보느라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고, 넬은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동생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가중되는 돌봄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내한다.
대학 시절, 넬은 남자친구인 빌에게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나의 전 공작부인>을 가르쳐주며 이해시키려 애쓰지만, 문학적 해석의 차이와 미묘한 자존심 싸움은 결국 사소한 다툼으로 번지며 이별을 맞이한다. 대학 졸업 후, 넬은 또래 친구들이 결혼을 통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것과 대조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채 주거지와 직장을 옮겨 다니며 자유롭지만 불안정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다 업무 파트너였던 오나의 남편,티그를 만난다. 넬은 티그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관계를 지속하며, 그와 함께 시골 농장에서 동거하기에 이른다.
농장에서의 삶은 복잡했다. 주말이면 티그와 오나 사이의 아이들이 방문하여 불편한 기류가 흐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며 넬과 티그 사이에도 아이가 생기고 그들만의 가정이 공고해지는 동안, 홀로 남겨진 티그의 아내 오나는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티그와 넬의 아이가 성장할 무렵, 부동산 중개인인 **릴리**라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릴리는 넬과 티그에게 딱 맞는 집을 두 차례나 소개해 줄 정도로 유능했고, 넬이 동정심과 책임감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전처인 오나가 살 집을 마련해 주려 할 때도 릴리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얼마 후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릴리는 오나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홀로 숨진 모습을 발견하고, 이어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오나의 아들이 창문을 깨고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려다 깨진 유리에 다리를 심하게 다쳐 피를 흘리는 참혹한 광경까지 마주한다. 오나의 죽음과 피를 철철 흘리는 아들을 목격한 릴리는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결국 타인의 삶과 공간을 연결해주던 그녀는 그 사건을 계기로 부동산 중개업을 그만둔다.
마지막 두 챕터는 넬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년기를 다룬다. 아버지는 시력을 잃고 침대에 갇힌 무력한 존재가 된다. 넬은 그런 아버지 곁을 지키며 실패로 끝난 탐험 기록을 읽어주며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며 기억의 미로 속으로 빠져든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아버지가 곤충학 실험실에서 함께했던 ‘소년들‘을 기억하고 있으며, 종종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의 제목처럼 읽는 내내 상당한 혼란을 느꼈다. 1인칭 화자가 ‘넬‘임을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이야기의 흐름을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두 챕터에서 다시 1인칭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이야기를 할 때, 이들이 앞서 나온 넬의 부모님임을 추측하는 과정 또한 까다로웠다. 각 단편의 내용은 흥미롭고 잘 읽히지만, 그 파편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숙제였다.
소설에서 넬이 겪은 도덕적 혼란은 어떤것이었을까. 유부남인 티그를 만나며 넬은 전처 오나에 대해 죄책감과 동정심을 동시에 느꼈다. 넬이 티그와 점차 안정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반면 오나는 외롭고 약한 모습으로 늙어가기 때문이다. 그러한 오나의 모습에 넬은 챔임감을 느낀다. 티그와 동거를 시작할 무렵 티그와 오나의 자녀들을 떳떳하게 대할 수 없어 숨어 지내야 했던 시간 동안, 그녀가 견뎠을 수치심과 티그를 향한 복합적인 분노 또한 짐작해 보게 된다.
어린 시절, 예민한 여동생을 왜 자신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으며 겪었던 갈등, 그리고 소설의 끝에서 죽음을 앞둔 부모님을 지켜보며 느꼈을 감정 또한 정답 없는 혼란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넬의 감정을 추측하며 읽는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으나, 완독하기가 쉽지 않았고 읽는 과정에서 넬 처럼 나역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