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인 [바움가트너]란 소설은 은퇴를 앞둔 70대 교수, 바움가트너가 사별한 아내와 작별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70년 중, 2년 정도의 짧은 시간을 다룬다. '가트너'란 단어의 뜻이 정원사임을 고려하면 이 한 권의 소설은 작가가 바움가트너를 통해 가꾼 정원처럼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돼 있어 2년이란 시간이 그리 짧지 않음을 느낀다.

바움가트너는 아내가 남긴 작품을 통해 그녀를 추억한다. 소설 중간중간에 삽입된 아내의 소설들은 이야기의 전환점이 되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는데 폴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이란 사실을 알고 보는 독자의 입장에선 그가 자신에게 익숙하고 능숙한 '소설'을 한없이 보여주고 가는구나, 란 슬픔이 차오른다.

소설 속 소설을 통해 여러 이야기가 즐비한 [바움가트너]는 그래서인지 '바움가트너'란 인물을 '폴 오스터'란 작가와 겹쳐 보게 된다. '바움가트너'가 중간중간 자신의 어릴 적 삶을 언급하는 장면에서 이건 누구의 이야기일까, 고민하게 만들며 때로는 작가의 자서전이란 착각 속에 읽게 된다. 그 정도로 [바움가트너]는 얇은 책임에도 삶을 깊이 있게 고찰하여 작가만의 철학을 짙게 보여준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상실과 상실되지 않은 것은 연결되어 있음을 언급하며 위로와 용기를 준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들은 생을 소박하게 묘사한, 공감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문장들이었다. 대단한 정의나 논리도 아닌 보편적인 시선에서 깨끗하게 담아낸 단어들이 퍽 위로를 준다.

한 사람의 생에 중, 고작 2년일지라도 [바움가트너]의 이야기 속에는 참 스쳐 간 계절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나의 2년이란 세월 속에도 참 많은 계절이 스쳤음을 체감하며 새삼스럽게 그 모든 것은 이어져 있기에 지나간 것이구나 한다.


(가제본 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데란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데란]은 600페이지의 벽돌책으로 산문시 형태를 띠기도 하며 문체가 여러 종이를 잘라 붙인 듯 난해하기 때문에 문단 안에서도 문장을 끊으며 읽어야 한다. 문체가 어려운 것에 비해 구조는 4부작으로 태초, 일상, 종말 전조, 종말 이후 이렇게 나뉘기 때문에 흐름은 비교적 간단하다.

1971년 데이비드 R. 번치가 보여주는 2064년이란 미래는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마치 예언서와 같다.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지구
▫️자신의 존재감을 위한 전쟁
▫️기술 발전에 반비례하는 문화
▫️살점 인간에 대한 경멸과 무지
▫️사랑 없는 가족

작가는 감정이 아닌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 쓴 작품이기 때문에 [모데란]은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주제는 단순하기 때문에 이를 중점으로 보면 작가가 주는 낯섦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성어가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금속의 긁는 소리와 부딪히는 소리로 공포를 조장할 수 있으나, 나는 이 소리가 야만인의 소리처럼 들렸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작품의 구조와 10번째 성채인 주인공 '그' 때문인데, 1부 태초는 거룩하고 웅장하지만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마치 태양을 향해 날아간 이카로스처럼 추락하기 위해 내달리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주인공인 10번째 성채는 본인이 사람임을 이제 막 인지하기 시작한 어리숙한 생명처럼 끊임없이 고뇌한다. 이러한 의성어 사용과 산문시 형태로 즐비한 주인공의 고뇌 덕분에 [모데란]은 굉장히 특이한 작품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모데란이란 곳에서 '나'라는 인종이 살점 인간이라 불리는데 읽는 동안 은근히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우월함과 미개함을 나누는 기준이 터무니없고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똑같은 살점 인간이었던 '그'의 방종함은 분노를 불러일으키나 신에게 기대어 자신의 존엄을 증명하려는 나약한 어리석음은 현실의 우리와 별다른 것 없어 보인다. 읽으면서 '그'에게 경멸과 연민을 번갈아 느끼니 감정의 폭이 깊어졌다.

[모데란]은 어렵다기보다 낯선 작품이라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를 예술이란 분야로 넓게 보면 뒤샹, 잭슨 폴록, 피카소 등 낯섦과 충격을 준 작품들은 항상 등장했으니까. 오히려 신금속 인간을 사람이라 볼 수 있는지, 인간은 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지 등의 사회 문제를 하나의 현상이 아닌 인간의 본능, 고질적인 문제로 보고 화두를 제시하니 다른 경제학이나 사회과학의 저서보다 더 큰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 본다.

독서 분야를 넓히고 책을 작품으로써 접근하고 싶은 분에게 [모데란]을 추천한다. 고전 SF소설만큼 다양성의 시발점이 되는 책은 없으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 - 사과와 장미부터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인류와 역사를 함께 만든 식물 이야기 테마로 읽는 역사 8
사이먼 반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는 과일, 곡물, 꽃, 나무, 버섯까지 온갖 종류의 식물이 가진 역사가 쓰여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역사뿐만 아니라 삽화와 예술 작품 그리고 요리, 문화, 명칭 등 폭 넓은 정보를 하나로 정리 해줬다는 점이다. 한 종류의 정보가 아닌 온갖 정보를 다 담고 있으니 말 그대로 백과사전이다.

작가는 30년 동안 기자로 활동했고 꾸준히 자연과 동식물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식물에 대한 애정이 일관되게 담겨 있어 읽기 편했다.

작가는 말이 없으나 풍성한 이야기를 품은 식물들이 가진 존재의 힘에 대해 말하며 그 중요성을 꼭 찝어준다. 인간은 아마로 옷의 형태를 만들고 인디고로 색을 입혀 입는다. 당연하게 먹고 입고 사는 곳을 식물에 얻었다는 사실이 낯간지럽다.

많은 사람에게 쌀은 거의 공기 같은 존재다. 그들 삶에서 쌀이란 서양인의 삶에서 빵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삶의 일부라기보다 삶 자체이고, 내일로 나아갈 힘니다.
(122P)

분쟁 티크(Conflict Teak)라는 표현은 1988년 미얀마에서 민주화 시위대를 학살하자 국제 원조가 중단되면서 티크나무를 대량으로 벌목, 판매하면서 생긴 단어라고 한다. 티크나무가 말할 줄 알았다면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지 않을까, 읽으면서 인간이 이름 지어 부르는 행동은 어쩔 수 없다지만 참 함부로 부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크나무 사례뿐만 아니라 많은 식물의 이름과 역사는 인간으로 하여금 불명예를 겪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차별 아닌지 멋대로 바꿔 부르고 상징성을 바꾸는 인간의 행위 말이다.

잔디뿐만 아니라 온갖 식물이 어울림으로써 푸름을 완성된다. 푸름 안에는 맑은 데이지도 있으니 푸른 들판을 보며 잡초라 일컫지 말아야지, 책을 통해 식물을 알게 되니 낮은 곳의 세상에 눈길이 간다.

식물은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오롯이 혼자서 생존하지 못하는 인간에 비해 식물은 우리보다 더 강하고 대단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가만 생각해 본다. 내가 식물에 폭력을 행사한 일이 없었는지, 그들의 존속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양성과 생명의 존중을 배우는데 많은 도움이 된 책이다. 어린 친구들이 이 책을 많이 보았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는 하드보일드 탐정 스페이드가 나오는 소설로 유명하다. 하드보일드는 냉정, 비정한 것으로 해석하면 적당할 것 같다.

흐릿한 필름지로 흑백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소설은 어린 시절 티비를 통해 보던 그 고전 영화 중 하나처럼 낭만에 빠져 보기 좋은 책이니 고전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고전의 맛이다.

[몰타의 매]는 다수의 인물이 오래된 유물인 몰타의 매를 차지하기 위해 탐정 스페이드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물론 인물 중에 주인공과 얽힐 아름다운 여성 브리지드 오쇼네시도 나온다.

보통 추리 소설은 살인 사건이 터지면서 시작되지만 [몰타의 매]의 경우 매 조각상을 차지하기 위해 인물들이 서로 배신하고 살인하며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스페이드는 점점 사건에 깊게 연루되고 주변 인물들은 거짓말만 하니 주인공은 위기 속의 위기에 놓인다. 결말은 당연히 해결이지만 비정한 탐정은 독백조차 안 하니 독자가 범인을 찾기는 어려운 책이다. (그저 즐기길😉)

[몰타의 매]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불쌍하다고 느낀 인물은 주인공 샘 스페이드이다.
주인공은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상황에 둘러싸여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는 거짓말에 상처받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냉정한 탐정인데 중간중간 그가 삶의 고독과 허무함에 대해 언급할 때면 환경이 그를 얼마나 차가운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직감하게 된다.

🔖
그 순간 그는 죽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찾아오며, 사람은 눈먼 운명이 허락하는 동안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그런 운명의 불공평함이 아니었다. 최초의 충격이 지난 뒤 그 점은 받아들였다. 그를 괴롭힌 것은 그가 영위해 온 정연한 일상이라는 게 인생 본래의 길이 아니라 인생을 벗어난 길이라는 깨달음이었다.
(85-86P)

고전 추리 소설답게 샘 스페이드 탐정의 주변에는 매력적인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는 모두를 사랑하나 모두를 믿지 않는다. 그는 어리석은 사랑으로 얼빠진 사람이 되기보다, 가정을 이뤄 한곳에 정착하기보다 떠도는 삶을 선택한다.

이는 아마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삶은 언제 떠날지 모르는 것이라는 그만의 인생철학 때문일지도 아니면 항상 배신과 살인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의 생존 방식일 수도, 하드보일드 탐정의 인생은 근사하고 달콤해 보이지만 깊은 곳에서 쓴맛이 난다.

소설은 캐릭터가 주는 메시지 말고도 사건을 통해 주는 메시지가 있는데 이는 결말에 해당되어 생략한다.

1. 세가지 살인사건의 범인
2. 숨겨진 몰타의 매 조각상의 위치
3. 사건을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달콤 씁쓸한 다크 초콜릿 같은 추리 소설로 위 세 가지가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읽어 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정의 온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4
정다연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다연 시인의 에세이 [다정의 온도]는 얼어붙은 겨울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모과청을 담고 소묘를 배우는 시인의 일상을 읽어 내려가면 평범한 것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평범한 일상의 가치가 유달리 낯설게 느껴졌다.

시인의 에세이는 좀 더 특별하지 않을까, 어리석은 기대감에 충분한 답을 준 책은 때로는 산문시 같아 누군가가 나를 위해 불러주는 노랫말 같았고,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너무 반짝이게 써 내려가 우리의 일상이 이토록 아름다웠나 가만히 지난 과거를 음미해 보게도 했다.

[다정의 온도]에서 인상 깊었던 단어들은 모두 주는 행위와 관련 있었다. 다정을 담아 타인에게 건네는 나의 일부, 편지, 엽서, 선물, 메일 같은 것들 말이다. 나의 시간과 돈을 고려하지 않고 내어주는 그 다정함이란 측정할 수 있는 범주에 있는가, 책 장을 넘기며 스치는 내 손이 너무 차갑게 느껴져 부끄러웠다.

외로움과 슬픔을 동반하며 현명하게 평범한 하루를 지켜낼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면 정다연 시인의 에세이 [다정의 온도]를 추천한다. 공감과 다정함의 힘이란 대단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우리 일상을 버티는 힘이 되어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