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rk of genius>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창의적인 발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궁리하고 고심해도 진부한 말들만 나오는게 현실이다. 만약 아이슈타인과 같은 천재적 발상을 배움으로써 할 수 만 있다면! 이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거다. 생각은 배운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오직 스스로 생각해야만 한다.


하지만 <생각의 탄생>에서는 생각하는 몇 가지 기술들을 알려준다. 창조적 발상을 하며 살았던 위인들의 경험들을 탐구하면서 도출한 몇 가지 생각의 방법들을 말이다.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위의 13가지가 저자들이 말하는 천재들의 발상 방법들이다.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 피카소, 베르그송, 레오나르도 다빈치, 제인 구달, 에셔 등 걸출한 학자들과 예술가들의 삶을 반추해보고 그들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 하나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당신에게 오렌지 하나가 주어졌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그 오렌지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주황색 공같이 생겼다는 관찰이 전부이지 않은가. 창의의 대가들은 오렌지를 유심히 관찰한다. 도톨도톨한 표면을 가지고 있고 산성 액체의 향기를 풍기는 비타민 C 향기. 주변의 공기보다는 살짝 낮아 수증기가 겉에 낀 주황색 고체. 관찰의 대가들은 오렌지를 보고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전면적으로 느끼고 있다.


위의 13가지 방법들은 일련의 병합적이고 종합적이다. 오렌지를 계속해서 관찰해보자. 당신은 오렌지를 관찰하고 느낀 것들을 머릿속으로 형상화시킨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오렌지는 당신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당신은 오렌지에게서 원을 추상시키기도 하고 상큼함같은 관념들을 추상시키기도 한다. 그 오렌지의 겉면에 관찰되는 일련의 줄무늬들. 당신은 오렌지 표면에서 패턴을 인식한다. 혹은 매일 아침 오렌지를 먹으며 출근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그 사람의 패턴을 인식할 수도 있다. 아니면, 오렌지를 관찰하고 패턴을 관찰하며 한라봉과 비슷하다는 유추를 하게 된다. 내가 오렌지라면 어떨까? 감정이입하며 오렌지처럼 나무에 매달려 몸으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오렌지를 2차원 평면에 그림으로써 차원적 사고를 할 수도 있고 오렌지 모형을 만들며 오렌지가 어디서 수확되고 어떤 유통경로를 가지는 지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오렌지를 던지며 놀이를 해볼 수도 있고 오렌지를 일부러 썩혀보기도 한다. 오렌지를 잘게 잘라 3m 길이로 변형시켜볼 수도 있고 갈아 보기도 한다. 


앞선 13가지 생각의 도구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서로 연결되며 종합되면서 새로운 생각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이러한 자유분방한 사고의 뒤죽박죽이야말로 창조적 생각을 만들어내며 멋진 아이디어와 발견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수학, 과학, 미술, 기술 등 다양한 분과들로 나뉘어 연결되지 않는 줄기처럼 존재한다. 직선으로 뻗쳐나가는 학문의 분과들은 서로 만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단순히 암기를 하며 '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익힌 것이지 '이해'한 것이 아니다. 물리학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으며 회전력의 원리에 빠삭하게 익힌 학생이 실제 문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것은 그저 아는 것이지 이해한 것이 아니다. 배움에 대한 직관과 정신을 통한 이해가 없는 학생은 창조적 발상을 할 수 없다. 때문에 직관과 느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느낌'도 필히 커리큘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p.32)"


"예술가, 다시 말해 창조하는 사람은 수학, 논리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유전학, 고생물학, 인문과학, 역사학을 망라한 다양한 분야의 식견과 창의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p.428)" 우리에겐 통섭이 필요하다. 다른 분야에 무지한 스페셜리스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히려 해만 될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합적인 영향력을 사고하지 않음으로써 무지의 죄를 저지르고 편협한 사고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분야의 지식이 자신의 지식의 깊이를 더 해줄것임에도 불구하고 배우지 않는 게으름의 죄를 저지르고 있다. 


교양이 사라진 시대. 우리에겐 전인적 교육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초, 중, 고 교육은 어떤 배움을 추구하고 있는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청년들은 더 이상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서는 안된다. 제너럴리스트한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만 한다. 


"종합지는 이상이나 꿈이 아니다. 그것은 당위이며 필수다.(p.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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