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 Search for Meaning


인간은 의미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이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알아야만 고통스러운 현실을 참아가며 살아갈 수 있다.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야 하는 이유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활력을 잃은 채 살아가는 좀비와 같을 것이다. 이 시대에 좀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 슈비츠에서 몇 년간 강제 노역을 했다. 노동력으로서 가치가 없는 인간은 곧 바로 가스실에 보내져 죽임을 당하고, 겨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빵 몇조각만이 식단으로 나오는 곳에서 빅터 프랭클은 인간성의 끝을 보았다.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온 프랭클은 지난 날을 회고하며 이 책을 썼다. 그리고 의미를 통해 삶의 회복을 만드는 '로고테라피(logotheraphy)' 치료를 만들어 냈다. "로고테라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의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본다.(p.151)"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본능적인 욕구를 2차적으로 합리화시키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p.151)" 인간이라면 누구나 의미를 추구하기에 그것을 살리는 것이 로고테라피의 본질적인 측면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더 이상 삶에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들에겐 살아야 하는 이유가 결핍되어 있다. 그것이 질병이건 실존적 위기이건 그들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못한다. 나치 수용소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그곳은 너무나 열악하고 힘들었다. 매일 같이 잣행해지는 지옥같은 노동은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강제로 죽임을 당하거나 건강이 악화되 죽는 사람도 있었지만 삶에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내 곧 죽는다는 사실을 프랭클은 발견했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언젠가는 풀려나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버텨냈다. 삶에 대한 '당위성'이 인간의 삶을 연장시켜 준것이다. 나치에게 채찍을 맞으며 고통을 받아도 몇몇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추억을 상상하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겨냈다. 


◆의미를 찾는 세 가지 방법


로고테라피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둘째, 어떤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셋째,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p.166)"



첫번 째와 두번 째는 적극적 자유의 표지로서 성숙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무엇가를 경험하고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치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이 절망과 시련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굴복하지 않고 삶에 희망을 찾아가려고 했던 태도 때문이었다. 


◆초의미


과잉 강박이라던지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 내부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로고테라피는 의미를 통해서 이들을 치료하는데 자신을 넘어선 '초의미'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과잉 강박과 불안에 떨고 있는 이들을 치료할 수 있다.


자신을 넘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상태를 알려줌으로써 이들을 치료한다는 소리다. 정신 병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인데 강박에 걸려있는 사람들은 특히나 그러하다. 불면증에 걸린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로고테라피는 이들에게 일부러 자지 않으려고 해보라고 시도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해 조소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빠져 나오게 만드는 것으로써 '초의미'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선과 악의 교차성


프랭클은 나치 중에서도 수감자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보였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같은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같은 수감자들을 괴롭힌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즉, 선과 악의 이분법은 단순한 사고라는 것이다. 


의미가 사라진 현재


전쟁이 사라진 오늘 날, 사람들은 행복할까? 역설적으로 힘들고 고달팠던 시기에 의미를 찾으며 자신의 삶에 충만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으며 오늘날엔 물질적 풍요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게 '일요병'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일을 하다가, 주말만 되면 공허한 자신의 실존에 대해서 방황하는 증세를 말한다. 이 일요병이라는 유령은 현대인들의 병폐적인 증상에 대해 대표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가? 우리는 반드시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만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떤 인생을 살라고 빅터 프랭클은 말하지 않지만 삶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삶에 의미를 찾은 그 순간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니체의 글귀를 말해준다. 또한 인생을 두 번 사는 것 처럼 살아보라고 제시한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p.215)"


또한 삶의 의미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만약 그렇게 쉬운거라면 모든 인간이 충만한 삶을 살아갈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스피노자의 격언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 만큼이나 실현시키는 것도 힘들다"




https://larus3.tistory.com/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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