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은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영화 매트릭스에 영감을 준 책이다. 가상이 실재(real)가 되는 것. 이것이 책 <시뮬라시옹>을 한 마디로 압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미지(image)라는 것은 실재를 모방한 것이다. 서양 철학의 시초인 플라톤은 이것을 이데아의 모방이며 진실을 얕게 가지고 있는것이라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현실 세계가 이미지이다. 그리고 이미지의 이미지는 예술 작품이다.
서양 철학의 역사는 '실재'를 탐구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플라톤은 이데아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리스텔레스는 원인을 무한 소급했을 때 거슬러 올라가는 부동의 동자가 실재라고 주장했다. 칸트에 이르면 물자체라고 하여 실재는 알 수 없다는 주장에 이른다. 그러다 20세기 후반, 장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더니스트(post-modernist)로서 활동하게 되는데 이는 간략하게 우리가 '매트릭스'안에 살 수 있는 확률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실재 자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확실한 회의론자라고 말하면 될까? 아니면 실재를 창조하는 자라고 하면 될까?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가상현실과 이미지가 실재 자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하고 있다. 확실히 포스트 모너니즘을 대표하는 사상가 답다.
Matrix
영화 매트릭스의 배경은 기계가 인간 세계를 지배해버리는 바람에, 인간들은 기계들이 만들어 놓은 가상 세계 '매트릭스'안에 살게 되는 설정이다. 인간은 가공품처럼 만들어져 기계의 건전지로 활용된다. 인간은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눈을 뜨지 못한 채 매트릭스라는 관념의 감옥에서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매트릭스를 '실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생각하게 된다'라는 부분은 적합한 표현인가? 매트릭스 안에 살아가는 존재는 자신의 세계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트릭스 밖에 존재하는 기계들과 인간들은 알고 있다. 그것은 기계가 만들어낸 가공의 세계라는 걸.
우리 또한 가공의 세계에 살고 있다.
관람석에 앉아 영화 매트릭스를 보고 있으면 재미가 있다. 필름이 돌아가고 수많은 장면들이 쏟아진다. 스토리 또한 흥미롭다.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려는 인간들의 투쟁을 그리는 스토리는 꽤나 섬뜩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와 별개의 문제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또한 매트릭스라면?
철학에 있어서 정해진 대답은 없다. 각자 자기만의 모험을 할 뿐이다. 우리가 관념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철학적으로는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동시에 가공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산업
매년 쏟아지는 어벤져스 영화를 보며 우리는 열광한다. 토르와 아이언맨을 비롯한 어벤져스가 타노스를 무찔렀을 때 우리는 얼마나 기뻤는가. 전 세계에서 몇 억명이 보는 이 영화는 우리를 가상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를 통해서 가상의 세계가 실재를 형성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가상 세계는 전적으로 허구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가상 세계가 현실인것 처럼 생각하곤 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해리포터의 마법 주문을 외치며 노는 걸 보고 있으면, 가상의 현실 침투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가 문화산업이다.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은 사상가들에 의해 많이 파헤쳐 졌다. <계몽의 변증법>, <일차원적 인간>이 대표적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을 통해 가상이 실재가 되어버린 상황을 철학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이는 앞서 말한 것 처럼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가상의 이미지에 점철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수동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탈출구
우리가 이런 시뮬라크르라는 허위와 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이 허구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매트릭스 안에 살던 네오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모피어스가 이곳 세계가 허구임을 알려줘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피어스라는 존재는 어떻게 매트릭스의 틈을 찾아냈는지는 의문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가상의 것들이 점점 침투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허무적 가치를 올바르게 응시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그 길은 이 시뮬라크르의 시대에서 벗어나 진실을 찾아낼 탈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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