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영원히 돌아가는 수레바퀴
모든 인간은 제 마다의 삶을 산다. 제 마다 일 인칭의 시점에서 삶을 산다. 수 없이 쌓아지는 우연의 순간들은 한 사람의 고유한 인생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우리는 제 마다 삶이 고귀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비슷한 삶을 산다. 인간이기에 엇비슷한 박자속에서 삶을 살아낸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어른에서 노인으로. 탄생과 죽음의 길목은 누구나 거쳐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영원히 돌아가는 수레바퀴에 몸을 싣는다. 제 마다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 자의식을 가진 수많은 인간들. 우리는 그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은 한 수도승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돌아오는 명확한 구조로 영화가 진행되고 있다.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절에 동자승과 노 스님이 살고 있다. 그들은 그 조그만 절에서 참선을 드리고 있고 작은 나룻배를 통해 바깥 세상과 소통한다. 그곳은 하나의 세계이다.
어린 동자승은 재미삼아 물고기, 개구리, 뱀의 등에 돌멩이를 묶는 장난을 친다. 그 광경을 본 노스님은 동자승을 꾸짖고 돌멩이를 풀어주기 위해 길을 나서지만 개구리를 제외하고 죽어있는 물고기와 뱀의 모습을 보고 큰 아픔을 가지게 된다. 노스님은 동자승을 꾸짖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만약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 중에 어느 하나라도 죽었다면 너는 그 돌을 마음에 평생동안 지니고 살것이다"
소년이 된 승은 몸을 요양하기 위해 절에 머무른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관계를 나누다 노 스님에게 걸린 탓에 소녀는 절에서 쫓겨나게 되고, 청년 승은 사랑을 찾아 노 스님 몰래 절에서 빠져 나온다. 세월이 흘러 어느 해 가을, 사랑을 찾아 떠난 소년 승이 돌아온다. 살해를 하고 절로 도망친 것이었는데 노 스님은 속세에 쩌든 청년 승에게 바닥에 세긴 반야심경을 조각하라고 시킨다. 경찰은 청년 승을 체포해가고 노 스님은 분신 자살을 한다.
겨울이 되어 감옥에서 출소한 듯한 장년 승은 홀로 절에 들어온다. 그리고 홀로 수련한다. 몸을 닦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한 여인으로부터 아이를 받게 되는 장년 승은 아이를 키우게 된다. 다시 봄이 되어 물고기, 개구리, 뱀의 몸 속에 돌멩이를 집어넣는 아이의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삶의 무게
영화는 처음과 끝이 반복되는 수미 상관의 구조를 하고 있다. 단순히 대칭 되어 있다기 보다는 뫼비우스 띠와 같이 출발점과 도착점이 이어져 있는 상태라고 보는 게 맞을 성 싶다. 물고기, 개구리, 뱀의 몸에 돌멩이를 묶어 장난 쳤던 동자승은 영화의 끝자락엔 장년 승이 되어 노스님과 같은 위치에 있게 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나 제 삶이 독특하다고 믿지만 엇비슷한 인생을 살 수 밖에는 없다. 죄를 짓고, 사랑을 하고, 참회를 한다. 인간의 근원적 조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새로운 동자승 또한 사랑을 할 것이며, 죄를 짓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생기는 차이는 발생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밖에는 없는 조건은 일치한다.
자의식을 견뎌내라
자의식은 병이다. 스스로를 너무 의식하는 자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자의식은 근원적으로 나르시시즘을 장착하고 있다. 때문에 과잉 자의식은 세상의 중심을 지나치게 자신에게 두는 나르시시즘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 노스님, 장년승, 새로운 동자승. 이 모두는 영원히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구성하고 있는 삼각형이다.
신들을 기만했다는 이유로 영원히 바위를 산 꼭대기로 올려야만 했던 시지프. 그것은 모든 인간의 운명이다. 모든 인간이 산 꼭대기로 바위를 올려야만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자의식을 극복하고 견뎌내자. 모두가 제 삶에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생을 살아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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