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은 블루다 - 느릿느릿, 걸음마다 블루가 일렁일렁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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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치 않은 대형 판형에 푸른 아치 프레임 안 아줄레주로 장식된 성당 사진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560여 쪽에 달하는 『포르투갈은 블루다』를 읽으면서 저자 조용준 작가의 진심이 느껴졌다. 가장 유명한 리스본, 포르투를 비롯해 작은 어촌마을인 코스타 노바와 한국인에겐 생소한 프론테이라 궁전까지 소개한다. 방대한 포르투갈의 역사와 주요 인물들 그리고 포르투갈의 대중문화를 이끈 스타와 다양한 와인까지. 그야말로 포르투갈 인문학을 이 책 『포르투갈은 블루다』에 꾹꾹 눌러 담았다.






포르투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재밌게도 마카오에 방문했을 때다. 이국적인 포르투갈어가 반짝거리는 버스 전광판을 보고, 바닥에 정교하게 깔린 모자이크와 푸른 타일로 장식했지만 무심한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정표, 냄새부터 맛있는 에그타르트까지 모두 포르투갈에서 온 것이라 했다.


이후 조용준 저자의 『유럽 도자기 여행 북유럽 편』를 읽었다. 금보다 비싸고 귀한 청금석이 포르투갈에서 아줄레주로 자리 잡아 포르투갈의 일부가 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다른 포르투갈 관련 책과는 달리 『포르투갈은 블루다』는 리스본이 아닌 포르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이름이 유래했으며 가장 아름다운 아줄레주로 장식된 기차역이 있는 곳이다. 포트와인의 생산지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외세의 침략을 받은 요충지였고 포르투갈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엔히크(헨리) 왕자가 태어난 곳이다.



흔히 찾으면 알 수 있는 포트와인의 역사 외에도 나라에서 포도밭은 관리하는 방법과 구획을 나누어 놓은 것, 포도밭 철길, 와이너리 역사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규모 있는 와이너리가 된 과정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프랑스 보르도보다 100년 앞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와인 생산지 표기 제도를 도입한 포르투 와인인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올 것 같다. 게다가 아줄레주 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아제이탕에 있는 바칼로아 와이너리와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인 마리아 다 폰세카 편을 읽으면서는 너무나도 와이너리 투어를 가고 싶었다. 포르투갈 와인 이야기만 모아서 따로 책을 내주셨으면 할 정도로 와인 책보다 더 넓고 깊이 있는 포르투갈 와인 이야기가 무척 재밌었다. 








이 같은 역사에서 보듯 오늘날 포르투갈의 출발점은 포르투다. 868년 '포르투갈 자치령'에서 출발해 테레사 공주의 결혼과 함께 '포르투갈 백작령'이 되었고, 이 당에서 무슬림을 몰아내는 데 전력을 다한 아폰수 1세의 레콩키스타로 점점 넓어진 것이 바로 오늘날의 포르투갈인 것이다.

P. 20






2개 면이 바다를 향하고 반대편으로는 유럽 대륙에 맞닿은 지리적 특징으로 지중해, 대서양 그리고 유럽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수백 가지의 포도 품종들이 서로 다른 토양과 다양한 기후의 영향 아래서 자라기 때문에 포르투갈에서는 그 어느 곳보다도 다양하고 고유의 개성이 넘치는 많은 종류의 와인이 생산된다.

P. 317








역설적이게도 푸른 아줄레주가 가득한 포르투갈에서 아랍 양식이 가미되고 알록달록 채색된 스페인식과 이탈리아식 아줄레주가 눈길을 끈다.



거대한 꽃상여라 표현한 발레가 성당은 현대에 와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20세기의 아줄레주로 장식된 성당은 아무것도 모르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아름다운 외관을 갖춘 곳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느낀 마음이 어떤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위상을 잃어버린 부질없는 과시. 그러나 아줄레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포르투갈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신성한 곳을 오랜 역사와 전통이 담긴 것으로 치장하고픈 그 마음이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졌다.



발레가 주 성모 마리아 성당 앞에서 '로드리고의 허울'을 생각한다.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허울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이 성당의 아줄레주는 참 역설적인 기능을 한다. 허울을 극대화해서 보여줌으로써 자기 자신의 허울을 들여다보게 만들어 준다.

P. 123





관광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유지 프론테리아 궁전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곳의 아줄레주는 서민의 역사를 담고 있다. 세월을 머금은 역사적 사료로 남아 지금의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대지진에도 운 좋게 살아남는 궁전엔 아직도 주인이 거주한다고 한다. 자신의 거처가 가진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아는 것일까? 가진 자의 사회적 기여가 이렇게도 빛을 발하는 게 참 멋있었다.




우리나라에 대비하자면 농부의 열두 달 생활을 묘사한 일종의 농가월령가를 이렇게 타일로 장식한 것이므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귀족이 이렇게 일반 서민들의 삶을 아줄레주로 묘사해 장식할 만큼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P. 545





상벤투역의 아줄레주를 비롯해 고화질로 큼지막하게 실려있는 작품 사진에 얼굴을 바짝 대고 감상했다. 현장에서 감상하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도 현장에선 너무 높아 목만 아프다고 하던데. 이렇게 고화질로 보고 포르투갈에 가서 현장의 공기와 바람과 습도를 느끼며 감상하면 감동이 배가 될 거 같다.







포르투갈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내가 그토록 매력을 느낀 포르투갈에 대해 생각해 봤다.

화려한 아줄레주로 장식된 성당도, 100년이 훌쩍 넘은 맥줏집도, 아름다운 노을이 어울리는 테주 강변도 무엇 하나 이유가 아닌 게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이유를 짚어주는 저자의 글이 마음에 닿았다.




포르투갈 식민지였고, 한때는 포르투갈 왕이 직접 통치하기도 했던 브라질은 남미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나라여서 브라질의 오브제들을 비스타의 제품 모티브로 훌륭하게 차용될 수 있었다. 문화는 역시 이종교배, 혼혈이 최대의 강점이 된다.

P. 150





그러니 문화의 혼혈은 예술 행위에서 너무 소중한 자산이다. 소위 '영감의 지평'이 달라진다. 그가 동남아나 남미 여행지 어디에서 보았을 바나나 꽃은 이렇게 포르투갈 그의 저택에서 매우 색다른 장식으로 거듭났다. 비단 장식 문화뿐만 아니라 리스본이 가지는 고유의 색깔은 이렇듯 다양한 혼혈에서 발현된다.

P. 480




포르투갈은 외세에 침입당하고 대항해시대에는 식민지를 거느리면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자연스레 섞였다. 지역과 인종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다양함을 인정하고 장점을 받아들여 발전시킬 때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난다. 로마가 그랬고, 포르투갈이 그랬고, 미국이 그랬다. 지금의 그 물길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을까?



대항해시대를 열었으나 영광을 지속하지 못한 안타까운 포르투갈을 보면서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우리나라의 몇십 년 후가 궁금해져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포르투갈은 블루다』엔 저자 조용준 작가의 11년의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단순히 이국적인 관광지로써 포르투갈이 아니라 그곳의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주고 쉽게 알 수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내어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도 언젠간 이렇게 애정이 가득한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양에서는 블루(Blue 파란색)를 우울하고 슬픈 색으로 여긴다고 한다. 아마 생계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푸른 바다로 나가야 했던 삶을 반영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쾌청한 하늘을 닮아 파란색은 경쾌하고 맑다. 『포르투갈은 블루다』에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름답고 즐거운 관광지인 포르투갈과 과거의 영광을 품고 살아가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우울함을 담은 포르투갈.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떠올릴 때마다 나를 설레게 하는 푸른색의 포르투갈. 양면의 매력을 가진 포르투갈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포르투갈은블루다 #조용준 #포르투갈 #도도 #퍼시픽도도 #아줄레주 #책추천 #여행책 #인문학



이 같은 역사에서 보듯 오늘날 포르투갈의 출발점은 포르투다. 868년 ‘포르투갈 자치령‘에서 출발해 테레사 공주의 결혼과 함께 ‘포르투갈 백작령‘이 되었고, 이 당에서 무슬림을 몰아내는 데 전력을 다한 아폰수 1세의 레콩키스타로 점점 넓어진 것이 바로 오늘날의 포르투갈인 것이다. - P20

2개 면이 바다를 향하고 반대편으로는 유럽 대륙에 맞닿은 지리적 특징으로 지중해, 대서양 그리고 유럽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수백 가지의 포도 품종들이 서로 다른 토양과 다양한 기후의 영향 아래서 자라기 때문에 포르투갈에서는 그 어느 곳보다도 다양하고 고유의 개성이 넘치는 많은 종류의 와인이 생산된다. - P317

발레가 주 성모 마리아 성당 앞에서 ‘로드리고의 허울‘을 생각한다.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허울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이 성당의 아줄레주는 참 역설적인 기능을 한다. 허울을 극대화해서 보여줌으로써 자기 자신의 허울을 들여다보게 만들어 준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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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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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실에 굴하지 않고 변화를 주도하는 롤 모델을 『레슨 인 캐미스트리』에서 만났다.



『레슨 인 캐미스트리』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는 화학자이다. 또한 결혼을 거부한 비혼모이다. 동시에 TV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이고 조정을 한다. 그것도 1950-60대 미국에서.





『레슨 인 캐미스트리』는 총 두 권으로 번역돼서 출간됐다.


저자인 보니 가머스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 등단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화학자 이야기를 써 나가기 위한 전문성을 갖춘 것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출간하자마자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책을 읽어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레슨 인 캐미스트리』 1권은 엘리자베스가 화학자이며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인 현재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매들린을 낳고 TV에 출연하게 된 엘리자베스의 삶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는 영웅이다.


저자 보니 가머스는 극사실주의 묘사로 독자의 감정에 불을 지핀다.


여성이 가정만을 지키고 남성의 부수적인 역할을 강요받던 시대에 엘리자베스는 화학자로 일한다. 모욕과 차별을 겪어도 실낱같은 희망과 굳은 의지를 갖고 자신의 길을 간다. 엘리자베스를 흉보거나 무시하는 사람의 속내는 거침없이 글로 표현된다. 우리는 굳이 알고 싶지 않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던 차별을 자행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읽으며 엘리자베스의 입장에서 그가 느꼈을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가감 없는 표현에 억누를 수 없는 화가 계속해서 올라와 몇 번이고 책을 덮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과학자 다운 논리정연함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상대의 비논리적인 부분을 지적한다. 이 부분이 굉장히 사이다이다. 비록 자신이 밟아야 할 박사학위와 직장이 위태로울지라도 기꺼이 용기 내어 옳은 선택을 한다. 가만히 앉아 다른 사람과 사회를 탓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고 또 해낸다. 화학자로 집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비혼모로 아이를 키우면서,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포기하지 않는 엘리자베스를 열정적으로 응원하게 된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여성들이 엘리자베스처럼 싸웠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구급차가 마이어스 교수를 실어 간 뒤 학교 담당 경찰관이 물었다.

"당신 정말 이 학교 학생이 맞습니까? 학생증 좀 보여주시죠."

엘리자베스는 찢어진 옷차림에 이마에 커다란 멍 자국을 단 채 손을 덜덜 떨다가 그 질문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경찰관은 재차 말했다.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지문인데요. 여자가 이런 야밤에 연구실에 뭐 하러 왔답니까?"

"나는 대, 대학원생입니다. 화학과 대학원생이라고요."

그녀는 더듬대며 말했다. 토할 것 같았다.

P.42



"저 여자를 정말 이해 못 하겠어. 에번스가 자기 건데, 대체 왜 아직도 여길 다녀?"

이렇게 말한 지질학자가 잠깐 말을 멈추고 온갖 가능성을 가늠해 보다가 덧붙였다.

"혹시 에번스가 쟤랑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건가?"

"공짜로 우유를 주는 데가 있는데 뭐 하러 젖소를 사겠어?"

P.82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결혼하지 않고 임신했다는 이유로 해고하다니요. 그렇다면 남자도 이렇습니까?"

"무슨 남자? 에번스 말인가?"

도나티가 물었다.

"아뇨, 전체 남자 말입니다. 여자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임신해서 해고당하면, 그 여자를 임신하게 만든 남자도 같이 해고됩니까?"

"뭐?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예를 들어 지금 상황에서 에번스 씨를 해고할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아니지!"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저를 해고하실 근거가 없습니다."

도나티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는 더듬더듬 말했다.


"아니, 당연히 해고할 수 있어.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넌 여자잖아! 임신한 건 너란 말이야!"

P.194





과학 이야기, 화학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과학적 배경지식이 별로 없어도 『레슨 인 캐미스트리』를 재밌게 읽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화학 공식을 알면 더 재밌을 거 같다. 캘빈 묘비에 새겨진 화학 공식도 궁금하다. 카피라이터인 보니 가머스가 어떻게 첫 소설로 과학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썼는지도 매우 궁금하다.



엘리자베스와 캘빈의 과학 지식이 곁들여진 대화도 참 재밌다. 전문 지식이라 그렇지 덕후의 대화라고 생각하면 좋아하는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 얼마나 행복할까.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이란!



엘리자베스 주방에 만든 실험실에서 내린 커피도 맛보고 싶었다. 정확하게 계산해서 내린 커피는 얼마나 맛있을지 그 커피를 마신 해리엇이 부러웠다.




슬로운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스테인리스강 실험대로 비틀비틀 걸어가서 증류수 한 병을 플라스크에 부은 다음 코르크 마개로 막았다. 그리고 플라스크를 분젠 버너 두 개 사이에 있는 스탠드에 끼운 다음, 이상하게 생긴 금속 기구를 쳐서 부싯돌에 부딪치는 것처럼 불씨를 만들었다. 이윽고 불꽃이 일더니 물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는 선반에서 C8H10N4O2(카페인의 분자식)라는 이름표가 붙은 자루를 가져다가 내용물을 작은 사발에 붓더니 막자로 빻았다.

P.241







운동하는 여성은 멋지다.


저자 보니 가머스가 조정이라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운동을 『레슨 인 캐미스트리』에서 소개한다. 유명한 예능 프로 덕분에 조정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다. 조정을 삶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부분이 참 좋았다. 운동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요소로 활용했다는 점. 생활체육이 덜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부분이다. 작가인 보니 가머스가 자신이 사랑하는 조정을 작품 속에 녹여서 잘 표현했다.




그녀는 계속 책을 읽으면서 더욱 많은 공식을 적었다. 그러자 복잡한 알고리즘 속에서 조정이란 게 무엇인지 서서히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는 의자에 털썩 몸을 기대며 말했다.


"오, 세상에나. 조정은 별로 어려운 게 아니네."

P.123




그러자 메이슨 박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조트 양. 에번스 때문만이 아니에요. 배를 잘 타려면 여덟 명 모두 노를 잘 저어야 하거든요. 전부 다요. 어쨌든 하던 말을 계속하자면, 저는 당신의 상황에 대해서 좀 낙관하게 되었어요."

P. 224










⭐스포 있어요⭐






엘리자베스와 캘빈의 가정사가 나오는 부분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게 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둘 다 공부로 두각을 나타낸 게 신기하다. 영미문학에서 나오는 '뛰어난 개인'이기도 하다. 셜록 홈즈도 사회성 없고 불친절하나 뛰어난 추리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성을 기르라고 주변에서 간섭해서 이런 뛰어난 능력자들이 성잘할 틈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책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 참 좋다. 엘리자베스가 반려견 여섯시 삼십분에게 책을 읽어 주는 부분도 좋고,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한 딸 메들린에게 책을 읽어 주는 부분도 좋다. 또래보다 수준 높은 글을 읽는 매들린을 비정상적인 아이로 보는 학교 담임 선생님은 선생님 자질이 의심되지만, 독서는 똑똑한 엄마에 똑똑한 딸이 자랄 수 있는 이유라 생각한다.



글 쓰는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소설에는 어떤 식으로든 책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작가가 어떤 책을 어떤 이유로 언급했는지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신기한 건 대부분 고전을 많이 언급하는데, 『레슨 인 캐미스트리1』에선 노먼 메일러의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와 제인 그레이의 작품을 언급했다. 물론 모비딕도 나온다.




스포 끝







샘플 책만 보면 뒷이야기가 너무너무 궁금할 것이다. 『레슨 인 캐미스트리1』의 딱 절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책장이 끝나기 때문이다. 역시 마케터 분들은 대단해!



『레슨 인 캐미스트리』는 애플 티비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 예정이고 캡틴 마블의 브리 라슨이 주인공이다.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책으로 미리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드라마도 빨리 보고 싶고 『레슨 인 캐미스트리』 2편도 기대된다. 빨리 다음권을 읽고 포스팅해야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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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결혼하지 않고 임신했다는 이유로 해고하다니요. 그렇다면 남자도 이렇습니까?"

"무슨 남자? 에번스 말인가?"

도나티가 물었다.

"아뇨, 전체 남자 말입니다. 여자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임신해서 해고당하면, 그 여자를 임신하게 만든 남자도 같이 해고됩니까?"

"뭐?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예를 들어 지금 상황에서 에번스 씨를 해고할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아니지!"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저를 해고하실 근거가 없습니다."

도나티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는 더듬더듬 말했다.



"아니, 당연히 해고할 수 있어.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넌 여자잖아! 임신한 건 너란 말이야!" - P194

슬로운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스테인리스강 실험대로 비틀비틀 걸어가서 증류수 한 병을 플라스크에 부은 다음 코르크 마개로 막았다. 그리고 플라스크를 분젠 버너 두 개 사이에 있는 스탠드에 끼운 다음, 이상하게 생긴 금속 기구를 쳐서 부싯돌에 부딪치는 것처럼 불씨를 만들었다. 이윽고 불꽃이 일더니 물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는 선반에서 C8H10N4O2(카페인의 분자식)라는 이름표가 붙은 자루를 가져다가 내용물을 작은 사발에 붓더니 막자로 빻았다. - P241

그녀는 계속 책을 읽으면서 더욱 많은 공식을 적었다. 그러자 복잡한 알고리즘 속에서 조정이란 게 무엇인지 서서히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는 의자에 털썩 몸을 기대며 말했다.



"오, 세상에나. 조정은 별로 어려운 게 아니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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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디테일 - 비슷비슷 헷갈리는 것들의 한 끗 차이
브렛 워쇼 지음, 제효영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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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못하는 똥손이지만 맛있는 건 먹고 싶어.



긴긴 코로나 시대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세계 음식점을 탐방하며 여행을 추억하고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느낌을 가져보는 것이다. 다양한 재료 여러 가지 조리법이 나 같은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 에겐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먹으면 미묘하게 맛이 다 달라! (미미! 美味!)




맛있는 걸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을까?


어떤 게 다른지 알고 먹는 것이다. 알아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바로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저자 브렛 워쇼는 『미식가의 디테일』에서 흥미롭고 재밌는 맛의 한 끗 차이를 쉽고 간결하게 알려준다. 푸드 칼럼니스트인 브렛 워쇼는 What's the difference?라는 뉴스레터를 통해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게 『미식가의 디테일』이다.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목차만 봐도 흥미로운 주제가 잔뜩 들어 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주제만 골라서 쏙쏙 보다 보면 어느새 책을 다 읽은 나를 발견한다.






맛있는 이탈리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탈리아 음식 관련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지금도 새로운 파스타 종류를 만들고 있다는 이탈리아는 파스타 천국이다. 이름은 모르지만 모양만 보면 아는 파스타 면이 다들 있지 않은가? (아웃백에는 넓적한 면으로 만든 투움바 파스타가 있다.) 제일 많이 쓰는 파스타 면을 추려서 알려주니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저녁식사 전 간단한 술과 안주로 허기를 달라고 퇴근 후 저녁시간을 즐긴다고 한다. 오렌지색 칵테일로 아페롤과 캄파리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책에서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케이크와 푸딩 그 어디쯤 되는 것 같은 판나코타 설명도 좋았다. 디저트류를 좋아해서 이것저것 먹어보는데 판나코타는 그저 신기한 케이크였다. 이제 그 차이점을 알았으니 조금 차게 해서 더 맛있게 먹어야겠다.






저자의 맛깔나는 표현


『미식가의 디테일』을 보는 재미를 더하는 것은 저자의 맛깔나는 표현이다. 특히.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설명하는 부분을 읽을 때엔 내가 먹었을 때도 그런 맛을 느꼈나 곰곰이 떠올려 봤다. 진공팩에 담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분명 맛있었지만 브렛 워쇼의 감동은 못 느낀 것 같다 ㅋㅋ 현지가 가서 좋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맛보고 이 표현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저자의 자학적인 개그도 한몫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입맛이 고급이 되는 경험을 했기에 어떤 느낌으로 글을 썼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자본주의 사회에 엮은 표현도 참 재밌었다.






영어 표현 배우기


『미식가의 디테일』의 원작은 영어로 쓰였다. 실제로 쓰는 요리와 음식 관련 용어를 배울 수 있다.






외국에 나갔을 때 유용한 표현 "고수 빼주세요."를 말하려고 사전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리고 몇몇 강의에서도 고수를 '코리앤더' 혹은 '실란트로'라고 혼용해서 말한다. 의사소통하는 덴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분야별로 더 많이 쓰는 용어가 있을 텐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미식가의 디테일』에서 아주 명확하게 짚어 준다.



또한 조리법에서 사용한 용어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요런 디테일 참 좋다!






조금만 시간 내서 움직이면 전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다. 생소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입으로 맛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만들었는지 요리 이름은 무엇인지 알고 먹으면 더 맛있고 식사를 나누는 사람과 이야깃거리도 풍성해질 것이다.


그리고 내가 먹었던 음식도 다시 떠올려보자. 여행 가서 먹었던 음식의 분위기와 행복한 추억도 중요하지만 현지 사람들이 즐기게 된 역사적 배경이나 지역, 기후 등을 알면 소중한 추억의 가치가 배가 된다.



친구들이 또 나댄다고 놀리면서 귀를 쫑긋하고 들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린다.


『미식가의 디테일』은 식탁 옆에 두고 틈날 때마다 꺼내봐도 좋겠다.


나 같은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맛알못(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해 주고 싶다.






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미식가의디테일 #브렛워쇼 #윌북 #미식가시리즈 #음식책추천 #미식가 #책추천 #whatsthe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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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첫 영어 필사 : 빨간 머리 앤 + 셜록 홈즈 + 작은 아씨들 - 전3권 나의 첫 영어 필사
아서 코난 도일 지음 / 다락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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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원서 좋은거 다들 알고 있는데 어떤거 해야할지 모르잖아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고전으로 읽으면서 필사하면 매일 매일 책 보는 시간이 기다려질거 같아요 강의도 있어서 원어민 발음도 듣고 문장 해석까지 그리고 진도 고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네요 :) 세 권 모두 사서 시리즈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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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
민이안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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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풀벌레'와 파란 장미를 찾는 '달'이라는 안드로이드 로봇의 여정을 그린 SF 소설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안드로이드 로봇 '풀벌레' 시점으로 서술한다.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는 전문적인 과학 용어와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SF 소설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굉장히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자연스러운 전개에 쉽게 몰입해서 금세 읽었다.






자기소개부터 범상치 않은 작가다.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가 등단작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제 1회 SF 공모전 대상작인 것을 감안해도 글의 완성도가 높고 문장 표현력이 좋았다. 민이안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소설에 몰입할 수 있었다.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는 읽으면서 바로바로 내용이 이해되고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진다. 단락의 이야기가 바뀔 때마다 장면의 구조가 바로 떠올라서 마치 한편의 애니메이션 혹은 실사판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를 읽다 보면 어릴 적 본 에반게리온 혹은 라젠카 같은 로봇 만화가 떠올랐다. 그리 과격하지 않은 표현과 서술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의 과장된 장면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져 신기했다. 달과 풀벌레의 만남 그리고 여정에서 들리는 마을을 묘사할 때는 중세 판타지 소설 같았다. 벽난로가 있는 집도 나오고 성채에 해자의 다리도 나온다.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는 우리말 표현이다. 주요 인물의 이름이 달, 풀벌레, 깨물이 등 우리말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우리말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칫 촌스럽게 보일 수 있는 유행어를 잘 풀어서 넣었고, 사람이 하는 표현을 로봇의 관점에서 표현한다. 그래서 읽으면서 안드로이드 로봇 풀벌레 관점에서 이야기를 따라가고 달과 같은 로봇들의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방운규 심사 위원장의 심사평처럼 SF 적인 요소를 이질적이지 않게 잘 녹여낸 것이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의 매력이다. 전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소설을 쓰는 것과 독자의 수준 사이에서 적절한 지점을 잡았다고나 할까. 주석 없이, 다시 돌아가 읽는 것 없이 한 번에 내용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민이안 작가만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이야기를 차용해서 표현한 부분도 좋았다. 대중적인 이야기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로봇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인간적인 요소이기도 해서 이야기 결말의 일종의 복선이 되었다고 본다.






빠른 전개와 함축적 표현으로 짧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탄탄한 구성과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읽다가 남은 페이지를 보고 이 안에 결말이 다 들어간다고?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ㅋㅋ


이것도 민이안 작가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무게감 있는 주제를 적당히 가볍게 표현하고 적당히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 독자가 생각하게 만든다. 짧은 분량 안에 다 넣으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과 안드로이드 로봇의 차이, AI와 로봇을 대하는 윤리적인 태도, 환경문제와 동물윤리 등 찾아보면 경계가 모호하고 우리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소설 안에 많이 숨어있다.



그래서 민이안 작가님께 하고픈 질문이 있다.


1. 풀벌레와 깨물이는 홍채 색이 변하는데 책에서는 이유가 안 나오네요. 작가님은 어떤 이유에서 홍채 색이 변한다고 표현하셨고, 소설 속에 따로 설정한 조건 있나요?


2. 소설을 통해 AI 로봇의 윤리 문제를 다루려고 이런 설정을 하신 건지요? 그 외에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를 집필하실 때 독자들이 어떤 부분을 좀 더 생각하고 읽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나요?







**약간의 스포 있음**



기억을 우리의 과거이자 우리를 정의한다. 달이 주인과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일부 지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풀벌레가 과거의 기억을 찾기 위한 것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과 달리 안드로이드 로봇은 모든 기억을 다 갖고 살아갈 수가 없기에 선택의 기로에 선다.


풀벌레가 달에게 건네는 제안은 달에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고 이는 다른 형태의 사랑 고백이라고 느껴졌다. 함께하는 동료를 위해 새로운 출발을 제안하는 것.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달과 이르모스는 안드로이드 로봇이기만 인간이 갖는 사랑의 감정을 다른 형태로 표현한다. 달은 주인의 명령어를 수행하면서 함께 했던 추억을 하드웨어에 담고 소중히 여겨 지우길 망설인다. 언젠간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품고 있다. 이르모스는 인류가 생존할 방법을 연구하고 안드로이드 로봇의 안위를 걱정하고 죽을 권리를 위해 모든 일을 꾸민다.




풀벌레의 예측할 수 없는 모습이 인간의 모습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달의 주인이 새긴 편지의 내용을 바로 달에게 전달해 주지 못하는 연민이 있다. 파란 장미가 없는 것을 알지만 달이 갖는 희망을 조금 더 오래 지속하기 위해 풀벌레는 달의 끝이 있는 여행을 동행한다. 자신의 과거 기억을 다운로드할 수 있지만 미래를 위해 받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이르모스에게 자살의 권리 대신 이르모스와 모든 안드로이드에게 명령어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준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선택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많은 안드로이드화 된 인간이 죽었으나 그중에 풀벌레가 적응하고 살아날 수 있던 것처럼.



**여기까지**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반드시 AI와 로봇이 발전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고민하고 정의 내리고 해결하려 시도해야 한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로봇의 수리율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대화를 통한 교류로 인해 사람이 로봇에게 갖는 애정이 더 높은 것을 보여준다. 인간과 닮게 만들었기 때문에 상실의 슬픔과 고통도 느낄 수 있고 애정과 충성심도 가질 수 있다. 달의 질문처럼 같은 기억을 갖고 새로운 몸체로 바뀌면 같은 존재일까? 로봇에게 죽을 권리를 주어야 할까? 인간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진화한 AI는 어떤 기준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일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SF 소설을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도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재밌었다. 독자가 상상할 수 있게 한 표현이 많았고, 위트 있는 표현이 좋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게끔 이야기가 전개됐다. 짧은 시간 안에 몰입해서 읽게 하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마지막 즈음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걸 애써 참았다.


SF 소설을 도전해 보는 독자들에게 입문서로 권하고 싶다.


따뜻한 소설『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가 애니메이션이나 장면 시리즈로 나오면 좋겠다. 풀벌레와 달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민이안 작가님이 써 나갈 작품이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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