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덕질 - 일상을 틈틈이 행복하게 하는 나만의 취향
이윤리 외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 한 해 동안 당신이 좋아한 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흔적을 남겼나요? 

P. 64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2022년에 이어 두 번째 맞는 덕질 에세이 『오늘의 덕질』이 출간했다.

이 책은 제2회 미래엔 단편 에세이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 7편을 묶어 낸 수상작품집이다.




첫 번째 <이웃 덕후 1호>에 비해 참가자 글의 수준이 높아지고 덕질을 더 자유롭게 표현한 점이 맘에 든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애정을 담뿍 담아 영업하는 글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지만 그 수준이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닌데 하는 느낌이다. 특히, 첫 페이지를 여는 대상작 <SF와 나의 이야기>는 별 가루를 품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장중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시놉시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최우수작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은 첫 문장부터 너무 웃겼다. 도서관에서 읽다가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참느라 주변에서 눈총을 받을 뻔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글도 잘 쓰나 싶은 감탄과 질투 그 미묘한 감정으로 문장 문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늘의 덕질』에 담긴 모든 작품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각자의 애정이 아주 가득 담겨 있었다. 자신만의 애정을 신비롭게 혹은 웃기게 혹은 결연하게 표현했다. 흰 종이 위에 박힌 검은 활자에서 그 애정이 느껴질 정도면 실제 이 덕후의 사랑은 얼마나 넘치는 것일까.



<화분 위의 사냥꾼, 식충식물>과 <워킹맘 발레리나의 덕후 권하는 사회>는 이전 호에서 접할 수 있는 새로움이 있었다. 나에게 생소한 분야야 굉장히 흥미로웠다. 운동하고 심히 거리가 먼 나에게 발레는 예쁜 투투(발레리나가 입는 짧고 넓게 퍼진 망사 치마) 정도가 다였고, 우리에게 늦은 건 키즈모델과 고등학생 래퍼뿐이라는 말을 반은 농담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서 '늦은 건 없네!' 생각하고 있었다. 워킹맘 강유주님이 경험한 행복한 덕질에 응원과 권유가 가득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미뤄 두었거나 꼭꼭 숨겨 두기만 했던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당장 꺼내서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덕후'가 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삶에 희망을 안겨주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때문에 자신을 성장시킨다. 삶에 대한 벅찬 감정이 넘치는 에너지가 되어 개인의 성장은 물론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다.

P.139 l 워킹맘 발레리나의 덕후 권하는 사회




덕후가 별거랴. 좋아하는 일에 빠져 몰두하고 사랑하다가 삶의 의미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면 그게 바로 덕후다. 

P.139 l 워킹맘 발레리나의 덕후 권하는 사회



그 과정이 정말 소중하고 행복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중략) 깨닫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다. 

P.139 l 워킹맘 발레리나의 덕후 권하는 사회








이 작은 책안에 담고 싶은 문장이 참 많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해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문장이기 때문일까. 아름답기고, 웃기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용기를 내게 하는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영업을 위한 친절과 배려도 느껴진다. 조심스레 글로 꺼내 놓은 마음이 만져진다고 해야할까. 한 편 한 편 읽으면서 같이 행복해진다.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심지어 좋아해도 되나?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쓰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말하라고 멍석도 깔아줬으니 당당하게 표현하며 살자. 그 와중에 영업당할 나같은 독자도 있을 것이고, 몰랐던 자신의 덕후 기질을 발견할 잠재적 더후도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덕후를 만날지 정말 기대된다. 내년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그 조그맣고 따뜻했던 외계 물질은 외증조할머니의 위를 지나고 장을 지나 산소와 수소와 탄소와 질소가 섞인 물과 유기물 화합체에 높은 비율의 무기물 함량을 더하며 자연으로 방출되었고 영원히 지구의 어느 곳에서 고요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외고조할아버지와 외증조할머니와 그 딸인 외할머니가 지구와 우주의 일부가 된 것처럼.

SF는 나에게 이 이야기와도 같은 존재이다. 차가운 세계의 법칙에 관한 이야기면서 그를 통해 삶과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신비의 외피를 둘러싼, 사실은 매우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

나는 그래서 SF 마니아이다. P. 12 l SF와 나의 이야기




그 애를 좋아하면서 처음으로 인간의 껍질과 영혼의 불일치함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P. 25 l SF와 나의 이야기



그 애는 그대로인데 나는 그만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P.25 l SF와 나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어떤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감정을 느끼며 공감해야 하는지, 세상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끊임없이 조정하고 정렬했다. (중략) 그리고 나는 영혼이 이미 껍질과 분리할 수 없는, 껍질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27 l SF와 나의 이야기




미래는 정해져 있다. (중략) 정해진 미래는 사람을 쉽게 절망케 한다. (중략) 나는 과정을 신나게 살아가려고 한다. (중략) 나를 포함한 세상의 이야기와 내 인생의 이야기는 유려하지는 않지만 괜찮은 모습으로 나를 통해 계속 기록될 것이다. 삶과 시간이 계속하는 한. P. 37 l SF와 나의 이야기





책 중독자들은 책의 세계에 집착하다가 사회성을 상실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성을 잃었기에 책의 세상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P. 40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사교성 시험에 합격해야 입성 할 수 있는 즐거움의 전당이라니, 정말 괘씸하지 않습니까. (중략) 저는 지금도 가장 마지막 것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른의 권능을 손에 넣고도 이 모양이니 어릴 때는 오죽했겠습니까? P. 41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학교 밖에서도 저는 책을 찾아다녔습니다. 도서관에서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주는 건 어쩌면 저와 같은 인간들을 구제해주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P. 45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어른이 되고 난 후 온라인 도서 구매 사이트에서 보는 성인소설이 뭐가 이상하겠습니까? 오히려 좋습니다. 성인 인증을 매년 꼬박꼬박 하는 수고를 왜 감수하겠습니까. 다 합법적으로 야한 것을 보기 위해서 그런 거지요. P. 48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결국, 책의 몰락이 아니라 '종이책'의 위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마구 다룰 수 있는 종이 뭉치에서 귀하게 모셔질 몸으로의 신분 체인지랄까요. P. 62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어짜피 우리 모두 행복하자고 좋아하는 거고, 기쁘자고 덕질하는 거니까요. P.64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나에게 아이돌 덕질이란 함께 성장하는 것이고, 또한 함께 성장하는 힘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서로 의지하며 이겨 내고, 즐겁고 좋은 일은 나누며 더욱 오래 에너지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P.89 l 아줌마인데요, 여성 아이돌 덕후입니다





멋진 언니들의 등장은 우리 지구의 축복이니까. P. 89 l 아줌마인데요, 여성 아이돌 덕후입니다





식물 화분을 기르면서 알게 되는 것은, 분 하나하나가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중략) 화분 속 식물은 각자에게 주어진 동그라미 안에서 오늘도 애쓰고 있다. P. 90 l 화분 위의 사냥꾼, 식충식물




'덕후'라는 종족은 꼭 스스로 좋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가 경험한 놀라움을 다른 이들에게도 맛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P. 112 l 화분 위의 사냥꾼, 식충식물






북폴리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북폴리오 #오늘의덕질 #에세이 #수상작품집 #공모전 #단편에세이 #덕후 #덕질 #여성에세이 #앤솔러지 #취미 #책추천 #이윤리 #조소영 #김창경 #이예린 #강유주 #한지민 #최서현

올 한 해 동안 당신이 좋아한 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흔적을 남겼나요?

P. 64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 P64

그래서 사람들에게 미뤄 두었거나 꼭꼭 숨겨 두기만 했던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당장 꺼내서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덕후‘가 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삶에 희망을 안겨주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때문에 자신을 성장시킨다. 삶에 대한 벅찬 감정이 넘치는 에너지가 되어 개인의 성장은 물론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다. 

P.139 l 워킹맘 발레리나의 덕후 권하는 사회 - P139

덕후가 별거랴. 좋아하는 일에 빠져 몰두하고 사랑하다가 삶의 의미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면 그게 바로 덕후다.

P.139 l 워킹맘 발레리나의 덕후 권하는 사회 - P139

그 과정이 정말 소중하고 행복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중략) 깨닫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다.

P.139 l 워킹맘 발레리나의 덕후 권하는 사회 - P139

그 조그맣고 따뜻했던 외계 물질은 외증조할머니의 위를 지나고 장을 지나 산소와 수소와 탄소와 질소가 섞인 물과 유기물 화합체에 높은 비율의 무기물 함량을 더하며 자연으로 방출되었고 영원히 지구의 어느 곳에서 고요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외고조할아버지와 외증조할머니와 그 딸인 외할머니가 지구와 우주의 일부가 된 것처럼.
SF는 나에게 이 이야기와도 같은 존재이다. 차가운 세계의 법칙에 관한 이야기면서 그를 통해 삶과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신비의 외피를 둘러싼, 사실은 매우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
나는 그래서 SF 마니아이다. P. 12 l SF와 나의 이야기 - P12

그 애를 좋아하면서 처음으로 인간의 껍질과 영혼의 불일치함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P. 25 l SF와 나의 이야기 - P25

그 애는 그대로인데 나는 그만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P.25 l SF와 나의 이야기 - P25

그래서 나는 어떤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감정을 느끼며 공감해야 하는지, 세상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끊임없이 조정하고 정렬했다. (중략) 그리고 나는 영혼이 이미 껍질과 분리할 수 없는, 껍질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27 l SF와 나의 이야기 - P27

미래는 정해져 있다. (중략) 정해진 미래는 사람을 쉽게 절망케 한다. (중략) 나는 과정을 신나게 살아가려고 한다. (중략) 나를 포함한 세상의 이야기와 내 인생의 이야기는 유려하지는 않지만 괜찮은 모습으로 나를 통해 계속 기록될 것이다. 삶과 시간이 계속하는 한. P. 37 l SF와 나의 이야기 - P37

책 중독자들은 책의 세계에 집착하다가 사회성을 상실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성을 잃었기에 책의 세상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P. 40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 P40

사교성 시험에 합격해야 입성 할 수 있는 즐거움의 전당이라니, 정말 괘씸하지 않습니까. (중략) 저는 지금도 가장 마지막 것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른의 권능을 손에 넣고도 이 모양이니 어릴 때는 오죽했겠습니까? P. 41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 P41

학교 밖에서도 저는 책을 찾아다녔습니다. 도서관에서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주는 건 어쩌면 저와 같은 인간들을 구제해주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P. 45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 P45

어른이 되고 난 후 온라인 도서 구매 사이트에서 보는 성인소설이 뭐가 이상하겠습니까? 오히려 좋습니다. 성인 인증을 매년 꼬박꼬박 하는 수고를 왜 감수하겠습니까. 다 합법적으로 야한 것을 보기 위해서 그런 거지요. P. 48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 P48

결국, 책의 몰락이 아니라 ‘종이책‘의 위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마구 다룰 수 있는 종이 뭉치에서 귀하게 모셔질 몸으로의 신분 체인지랄까요. P. 62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 P62

어짜피 우리 모두 행복하자고 좋아하는 거고, 기쁘자고 덕질하는 거니까요. P.64 l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 - P64

나에게 아이돌 덕질이란 함께 성장하는 것이고, 또한 함께 성장하는 힘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서로 의지하며 이겨 내고, 즐겁고 좋은 일은 나누며 더욱 오래 에너지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P.89 l 아줌마인데요, 여성 아이돌 덕후입니다 - P89

멋진 언니들의 등장은 우리 지구의 축복이니까. P. 89 l 아줌마인데요, 여성 아이돌 덕후입니다 - P89

식물 화분을 기르면서 알게 되는 것은, 분 하나하나가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중략) 화분 속 식물은 각자에게 주어진 동그라미 안에서 오늘도 애쓰고 있다. P. 90 l 화분 위의 사냥꾼, 식충식물 - P90

‘덕후‘라는 종족은 꼭 스스로 좋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가 경험한 놀라움을 다른 이들에게도 맛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P. 112 l 화분 위의 사냥꾼, 식충식물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바다를 닮아서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읽으면서 반수연 작가님의 삶이 파도에 깎이는 유리 조각 같다고 느껴졌다.


세상이라는 파도에 치이고 닳은 유리 조각. 햇볕에 반짝거리는 모습이 참 예쁜 맑은 유리 조각. 세월에 닳아 알록달록 예쁜 모래가 되고 있다고.







이 산문집은 읽다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힘겨운 이민생활과 녹록지 않은 삶을 담아서 그런가. 글 저변에 슬픔과 외로움이 깔려있다. 좋은 모습만 상상했던 이민 생활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싶다.








나도 막연히 외국 살이를 꿈꿨던 적이 있다.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진 못했지만,, 그땐 그냥 가서 부딪히면 뭐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바다를 닮아서』에서 작가님은 참 많은 고생을 한다. 결혼해서 남편과 어린 자녀와 함께 가는 것이 든든할 줄 알았는데 쉽지 않았다. 영어도 부족하고, 돌봐야 할 가족도 있고, 전업주부라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고 읽다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그 시절 나는, 우리는,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너무 자주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게 쉬웠고 간단했으니까. 자존심이나 자존감마저 종종 사치로 여겨졌으니까. 그러니 미안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보자. 그런 의미가 더 컸으리라. P42 l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좋아하는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Don't say sorry. You don't need to do that. You don't need to apologize.


예전의 나도 영어를 꽤나(?) 못했을 때는 쏘리를 연발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 영어도 영어지만 원체 마음이 착하고 여린 사람들이란 게 바로 느껴졌다.








참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게 글의 마지막에는 항상 상대방을 이해하고 걱정하며 끝맺는다.


낯선 땅에서 만난 다른 이민자를 걱정하고, 수영장에서 만난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딸이 해준 말을 반추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따듯함이 가득한 글이다. 그래서 바다를 닮은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품어주는 바다라서.




『나는 바다를 닮아서』 작가님의 어려웠던 시절과 수술한 이야기 등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독자인 난 참 감사하다. 이 글로 위로받는다. 때론 속절없이 웃기도 하고, 음식 이야기에 침을 꼴깍 삼키기도 한다.





그러니 회복 가능한 것에 너무 괴로워하지 마.



사라질 것보다 내가 매달릴 수 있는 것에 얼마나 집착했나. 사소한 것에 슬퍼하고 분노하였는가.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지 오래고, 삶이 팍팍하다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는가.





엄마, 나는 내가 뭘 못하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아. 그래서 못해도 재밌어. 그런데 못하는 걸 잘 못 견디는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잘해도 시도하고 싶어하지 않더라.



한동안 괴로워했다. 직장에서 실패는 가상의 단어다.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나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이유가 된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안 했다. 나중엔 무엇이 목적인지도 잊고 실패만 피하면 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작가님도 그랬다고. 이제는 나만의 실패의 정의를 다르게 바꿔 버렸다. 그래서 이 말이 더 좋다. 그래서 못해도 재밌어.







고사리 괴담과 매년 사는 맛없는 쑥, 복국 이야기는 읽으면서 코끝에 음식향이 스쳤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그리 맛있게 글로 쓰시면 읽는 독자 배고파요.




하지만 복국의 핵심은 생선 살이 아니라 국물에 있다. 콩나물과 미나리 몇 가닥이 전부인 맑은 국물에 식초를 몇 방울 떨어트리면 그 청량하고도 깊은 맛이 순식간에 몸의 말단까지 번진다. 곧이어 국물에 닿은 모든 곳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P.62 l 서호시장







내겐 일상에서 멀리 떠날 때에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있었다. 환기가 필요했다. 멀리 떠날 것. 그리고 돌아올 것. 힘껏 돌아올 것. P.162 l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중간중간 가슴이 먹먹하고 아리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서 이 책이 참 좋다. 바다 곁에서 태어나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바다 때문에 이민지도 정한 작가님. 삶이 순탄치만은 않지만 글이 위로가 되고, 이 글로 독자는 작가님과 이어질 수 있어 참 좋다.




책 뒤표지에 적힌 한지혜 소설가님의 추천사가 내 마음을 이렇게 잘 대변해 준다.


농담과 슬픔을 이렇게 잘 버무리는 걸 보니 엉뚱하게도 먼 나라에서 식당을 차린 적인 있다는 작가의 음식이 궁금해졌다.








친구들이 모여도 종종 고사리 괴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략) 그렇게 의문이 수시로 고개를 들고 내게 고사리를 따도 된다며 유혹한다. P.19 l 번뇌의 숲




그 남자는 내게 왜 그랬을까. 나의 논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선의와 여태도 터무니없이 선명한 나의 두려움이 떠오른다.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쩜 논리가 아니라 용기일지도 몰라. 선의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니 가슴으로 느끼는 게 맞을지도 몰라. P32. l 가슴이 하는 일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도 했으니까 그냥저냥 살아졌다. 나의 무지에 얼마간 뻔뻔스러워지고, 어중간한 이해와 오해의 상태에 차츰 익숙해지는 것이 영어에 능숙해지는 것보다는 쉬웠으니까. P.40 l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노트북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건 일해서 돈 벌고 또 사면 되지. 우리가 잃을 뻔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내 노트북이 그렇게 된 거야. 나는 내가 생에게 했던 말을 내게도 했어. 그 말이 내게 정말 위안이 됐어. 나 정말 괜찮아. 엄마가 속상해하지만 않는다면 완전히 더 괜찮을 것 같아. P.155 l 우리가 했던 말이 우리의 위안이 된다




거칠어진 파도가 끝없이 밀려들어 내 발아래서 하얀 거품을 남기며 순하게 사라지는 것을 오래 들여다본다. 아무리 큰 파도라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생성과 소멸을 바라보며 마찰과 해찰을 겪다 보면 가슴의 가장 아랫단에 쌓아놓은 박리된 생이 스르륵스르륵 거품으로 녹아난다. P. 170 l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교유서가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나는바다를닮아서 #반수연 #교유서가 #산문 #에세이 #교유당 #책추천 #메모리얼가든 #혜선의집 #통영 #반수연소설가

하지만 복국의 핵심은 생선 살이 아니라 국물에 있다. 콩나물과 미나리 몇 가닥이 전부인 맑은 국물에 식초를 몇 방울 떨어트리면 그 청량하고도 깊은 맛이 순식간에 몸의 말단까지 번진다. 곧이어 국물에 닿은 모든 곳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P.62 l 서호시장 - P62

내겐 일상에서 멀리 떠날 때에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있었다. 환기가 필요했다. 멀리 떠날 것. 그리고 돌아올 것. 힘껏 돌아올 것. P.162 l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 P162

친구들이 모여도 종종 고사리 괴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략) 그렇게 의문이 수시로 고개를 들고 내게 고사리를 따도 된다며 유혹한다. P.19 l 번뇌의 숲 - P19

그 남자는 내게 왜 그랬을까. 나의 논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선의와 여태도 터무니없이 선명한 나의 두려움이 떠오른다.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쩜 논리가 아니라 용기일지도 몰라. 선의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니 가슴으로 느끼는 게 맞을지도 몰라. P32. l 가슴이 하는 일들 - P32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도 했으니까 그냥저냥 살아졌다. 나의 무지에 얼마간 뻔뻔스러워지고, 어중간한 이해와 오해의 상태에 차츰 익숙해지는 것이 영어에 능숙해지는 것보다는 쉬웠으니까. P.40 l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 P40

노트북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건 일해서 돈 벌고 또 사면 되지. 우리가 잃을 뻔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내 노트북이 그렇게 된 거야. 나는 내가 생에게 했던 말을 내게도 했어. 그 말이 내게 정말 위안이 됐어. 나 정말 괜찮아. 엄마가 속상해하지만 않는다면 완전히 더 괜찮을 것 같아. P.155 l 우리가 했던 말이 우리의 위안이 된다 - P155

거칠어진 파도가 끝없이 밀려들어 내 발아래서 하얀 거품을 남기며 순하게 사라지는 것을 오래 들여다본다. 아무리 큰 파도라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생성과 소멸을 바라보며 마찰과 해찰을 겪다 보면 가슴의 가장 아랫단에 쌓아놓은 박리된 생이 스르륵스르륵 거품으로 녹아난다. P. 170 l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 P1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들의 흑역사 -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
권성욱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사 속에 숨어 있는 아둔한 장군들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성공한 이야기는 많이 접할 수 있으나 실패 사례는 듣기 어렵다. 다들 실패를 숨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의 실패를 엮은 책이 나왔다. 일명 똥별의 이야기 『별들의 흑역사』이다.




권성욱 저자는 전쟁사 연구가로 블로그에 각종 전쟁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세계 1, 2차 대전에 특히 관심이 많다. 다수의 전쟁 관련 책을 출간했고, <덩케르크>를 비롯한 전쟁 관련 번역서를 감수한 전쟁 덕후, 전쟁 전문가이다.











대중은 실패한 이야기보다 남의 성공담을 선호하는 법이다. (중략) 그러나 흔히 간과하는 사실은 성공한 소수의 뒤에는 실패한 다수가 있다는 점이다. 정말로 눈여겨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은 어떻게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왜 실패했느냐가 아닐까. P.6 서문









『별들의 흑역사』는 총 12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에 등장하는 장군들은 신기할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리고 행동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자신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눈앞에 이익만 바라보고 있으며 편협함의 끝을 보여준다.




수많은 똥별에게 감사한 마음도 든다. 어쨌든 이들의 어리석은 결정 덕분에 현재가 있으니까. 인류의 기나긴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만을 내리진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래서 인간사가 참 재밌는 부분도 있다.






이탈리아는 내가 좋아하는 국가이다. 여행을 가기도 했고 음식을 비롯해서 하나씩 열거하면 끝도 없이 이유를 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별들의 흑역사』를 읽으면서 약간의(?) 배신감을 느낀 곳도 이탈리아다. 많이 좋아하기에 실망감이 큰 것일까.




독일에 가려져 이탈리아가 전범국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로마시대의 영광을 간직한 국가형태의 보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지를 어찌 그리 잘 만들었는지. (물론 일부 전쟁은 일부 윗사람들이 일으킨 것이다. 국민은 죄가 없지)






로마 시대의 영광을 좇아 아프리카 대륙을 침략하고 비인간적인 독가스 살포는 나치만큼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군인은 물론이고 일반인과 살포시 환경도 말살시킨 독가스 살포는 글로만 봐도 참혹하기 그지없다. 똥별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부상자와 사망자도 셀 수 없이 많아졌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타국에 전쟁 인질로 잡혀 평생 노예 노역을 하며 살아간 사람들이다.




100년도 안된 전쟁사의 참혹한 사실을 우리는 그리 쉽게 잊을까.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전쟁 중이다. 지구촌이라며 전 세계가 이웃사촌처럼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 막상 전쟁이 발발하니 매듭지을 방법이 없다. 전지 국가의 민간인들만 피해를 받고 있다.







가장 마음에 남은 건 마지막 12장에의 한국 전쟁 이야기다. 미국의 무책임함도 화나고 친일파가 아직도 큰소리치고 부유하게 살게 된 경위를 알게 되니 마음이 답답했다. 최근에 본 영화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바꾸고 싶었다. (시간의 흐름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정의 실현이 불가능한 곳에서 우리는 무엇이 가장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삶의 방향이 무엇이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






진실 여부를 떠나서 어느 나라이건 승전은 강조하고 수치스러운 패배의 역사는 숨기거나 축소하기 마련이다. P. 518 l 제12장







인간이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 삶이 너무 짧기 때문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에 다음, 다다음 세대가 기억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상기해야 한다. 윤동주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전쟁 속 어리석은 똥별들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별들의 흑역사』를 권하고 싶다.













믿기 어렵게도 이탈리아군 또한 일본군처럼 방어보다 공격을 중시했고 정신력을 강조했다. (중략)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이탈리아군에게는 일본군과 같은 광신적인 면이 없었다. 그렇다고 물질적인 우위를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군대는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는 대신 열병식에만 열을 올렸다. 장군들의 무관심과 자금 부족으로 신무기의 개발은 지연되었다. 병사들이 지급받은 무기는 제1차 세계대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P.23 ㅣ 제1장




문제는 무솔리니의 전쟁 지휘가 주먹구구식이라는 점이었다. (중략) 나중에 새로운 전차들이 도착하면서 전력이 보강되었지만 여전히 여단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P. 48 l 제1장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 못지않게 잔혹한 식민통치를 했던 영국 입장에서는 유색 인종을 상대로 저지른 만행은 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들을 상대로 전범재판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전범재판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정의며 누가 정의의 이름 아래 처벌될지는 오직 서구 열강에게 달렸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 정치였다. 배상하는 일도 없었다.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에게 공식적으로 사죄한 것은 반세기도 더 지난 1997년이었다. P. 58 l 제1장





제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자국민들조차 부끄러워하는 군대를 꼽는다면 이탈리아군과 일본군이 있다. 전후 일본인들이 쓴 책에서도 일본군은 혹평 일색이다. P. 64 l 제2장




무다구치 렌야의 모습은 하도 뻔뻔하여 주변 사람들이 얼굴을 들지 못할 판이었다. 일흔일곱 살의 나이로 눈을 감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졸렬한 지휘로 개죽음했던 수많은 병사에게 사죄하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임종할 때 임팔작전의 실패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팸플릿을 만들어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쯤 되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도 구제 불능의 불치병이 아닐까 싶다. P. 90 l 제2장




가믈랭은 20년 전과 같은 참혹한 싸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중략) 프랑스의 모순은 실제로는 강대국이 아니면서도 여전히 철 지난 영광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강대국이라고 굳게 믿고 유럽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한다는 사실이었다. P. 106 l 제3장




이탈리아 폭격기들은 베두인족 마을에 독가스 폭탄을 떨어트리고 달아나는 민간인들에게 기관총을 퍼부었다. (중략) 가스실만 없을 뿐 열악함은 나치의 악명 높은 유태인 수용소에 비견할 만했다. P. 206 l 제6장




12월 23일 에티오피아군은 에리트레아 국경으로 진군하던 중 이탈리아 폭격기를 발견했다.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대공사격을 시작했지만 이탈리아 폭격기가 떨어뜨린 폭탄은 폭발하는 대신 대량의 액체를 쏟아냈다. (중략) 액체를 뒤집어쓴 병사들은 순식간에 손과 발, 얼굴에 물집이 잡히고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P.211 l 제6장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중략)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전제 군주였지만 그에 걸맞은 도덕심이나 책임감은 없었다. 무솔리니는 삼류 선동가를 권좌에 앉힌 자도 국왕이었고, 무솔리니가 20년 동안 나라를 망치는 것을 방관한 자도 국왕이었으며,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다며 연합군과의 협상 재물로 삼으려다가 히틀러의 분노를 초래하자 겁에 질려 나라를 버리고 달아난 자도 국왕이었다. P. 242 l 제6장




혼란의 가장 큰 책임은 미국에게 있었다. 트루먼 행정부는 처음에는 한반도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일본 패망 직전에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로 했다. 지극히 정치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P.523 l 제12장



미군정 통치는 3년에 불과했지만 그 짧은 시간은 일제나 소련 군정 이상의 혼란과 부작용, 상처를 남겼다. 미국의 의무를 강조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것이 미국 엘리트들의 모순이자 도덕적 위선이었다. P. 524 l 제12장









교유서가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별들의흑역사 #권성욱 #교유서가 #전쟁사 #한국전쟁 #세계1차대전 #세계2차대전 #교유당 #책추천 #팬더아빠의전쟁사

대중은 실패한 이야기보다 남의 성공담을 선호하는 법이다. (중략) 그러나 흔히 간과하는 사실은 성공한 소수의 뒤에는 실패한 다수가 있다는 점이다. 정말로 눈여겨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은 어떻게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왜 실패했느냐가 아닐까. P.6 서문 - P6

진실 여부를 떠나서 어느 나라이건 승전은 강조하고 수치스러운 패배의 역사는 숨기거나 축소하기 마련이다. P. 518 l 제12장 - P518

믿기 어렵게도 이탈리아군 또한 일본군처럼 방어보다 공격을 중시했고 정신력을 강조했다. (중략)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이탈리아군에게는 일본군과 같은 광신적인 면이 없었다. 그렇다고 물질적인 우위를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군대는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는 대신 열병식에만 열을 올렸다. 장군들의 무관심과 자금 부족으로 신무기의 개발은 지연되었다. 병사들이 지급받은 무기는 제1차 세계대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P.23 ㅣ 제1장 - P23

문제는 무솔리니의 전쟁 지휘가 주먹구구식이라는 점이었다. (중략) 나중에 새로운 전차들이 도착하면서 전력이 보강되었지만 여전히 여단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P. 48 l 제1장 - P48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 못지않게 잔혹한 식민통치를 했던 영국 입장에서는 유색 인종을 상대로 저지른 만행은 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들을 상대로 전범재판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전범재판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정의며 누가 정의의 이름 아래 처벌될지는 오직 서구 열강에게 달렸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 정치였다. 배상하는 일도 없었다.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에게 공식적으로 사죄한 것은 반세기도 더 지난 1997년이었다. P. 58 l 제1장

- P58

제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자국민들조차 부끄러워하는 군대를 꼽는다면 이탈리아군과 일본군이 있다. 전후 일본인들이 쓴 책에서도 일본군은 혹평 일색이다. P. 64 l 제2장

- P64

무다구치 렌야의 모습은 하도 뻔뻔하여 주변 사람들이 얼굴을 들지 못할 판이었다. 일흔일곱 살의 나이로 눈을 감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졸렬한 지휘로 개죽음했던 수많은 병사에게 사죄하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임종할 때 임팔작전의 실패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팸플릿을 만들어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쯤 되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도 구제 불능의 불치병이 아닐까 싶다. P. 90 l 제2장 - P90

가믈랭은 20년 전과 같은 참혹한 싸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중략) 프랑스의 모순은 실제로는 강대국이 아니면서도 여전히 철 지난 영광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강대국이라고 굳게 믿고 유럽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한다는 사실이었다. P. 106 l 제3장 - P106

이탈리아 폭격기들은 베두인족 마을에 독가스 폭탄을 떨어트리고 달아나는 민간인들에게 기관총을 퍼부었다. (중략) 가스실만 없을 뿐 열악함은 나치의 악명 높은 유태인 수용소에 비견할 만했다. P. 206 l 제6장 - P206

12월 23일 에티오피아군은 에리트레아 국경으로 진군하던 중 이탈리아 폭격기를 발견했다.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대공사격을 시작했지만 이탈리아 폭격기가 떨어뜨린 폭탄은 폭발하는 대신 대량의 액체를 쏟아냈다. (중략) 액체를 뒤집어쓴 병사들은 순식간에 손과 발, 얼굴에 물집이 잡히고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P.211 l 제6장 - P211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중략)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전제 군주였지만 그에 걸맞은 도덕심이나 책임감은 없었다. 무솔리니는 삼류 선동가를 권좌에 앉힌 자도 국왕이었고, 무솔리니가 20년 동안 나라를 망치는 것을 방관한 자도 국왕이었으며,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다며 연합군과의 협상 재물로 삼으려다가 히틀러의 분노를 초래하자 겁에 질려 나라를 버리고 달아난 자도 국왕이었다. P. 242 l 제6장 - P242

혼란의 가장 큰 책임은 미국에게 있었다. 트루먼 행정부는 처음에는 한반도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일본 패망 직전에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로 했다. 지극히 정치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P.523 l 제12장 - P523

미군정 통치는 3년에 불과했지만 그 짧은 시간은 일제나 소련 군정 이상의 혼란과 부작용, 상처를 남겼다. 미국의 의무를 강조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것이 미국 엘리트들의 모순이자 도덕적 위선이었다. P. 524 l 제12장 - P5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인이 이어준 우리
레이첼 시그너 지음, 신혜원 옮김 / 엔프레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와인 없이 읽을 수 없는 책!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와인샵으로 가서 한 병 사들고 오게 하는 마법의 책! 레이첼의 삶도 흥미로운데 와인과 와이너리가 나오면 코 끝에 와인향이 스칩니다. 와인 러버라면 꼭 읽어봐야하는 책이예요. 열자마자 사랑에 빠져요S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 청소년 이야기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3
김종광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 청소년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단편 모음집이라 한 편의 길이도 짧고 글씨도 큼지막했다. 무엇보다 표지가 엄청 엄청 예쁘다.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느낌으로 책과 개다리소반, 향로와 연필 등 조선시대를 연상시키는 사물로 가득 차 있다. 튼튼한 양장본에 황금색 가름끈도 있다. 그런데 가름끈을 쓸 필요 없다는 게 함정이다. 후후룩 빨리 읽혀서 책을 접어 둘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16~19세기 조선시대 쓰인 한문소설을 사실적이게, 개연성 있게, 핍진성 있게, 진실성이 느껴지도록 각색한 단편 소설집이다. 김종광 소설가가 오로지 재미로만 각색하여 ‘교훈은 개나 줘’라는 마음으로 썼다니 그저 읽고 즐기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 된다. 모두 12편이 실려 있고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매 단편 앞에는 간략한 출처와 소개 글이 실려 있다.








12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주제를 생각해 본다면 '기존의 틀을 벗어난 변화'라고 생각한다.

인재상의 변화, 여성 인권의 변화, 신분제의 변화 등이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가치가 글에 담겨 있다. 부유한 서민의 등장으로 신분제가 흔들리고, 기술과 상업의 발달을 인정하고, 고른 인재 등용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노래가 좋다>가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 '석개'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술자 최천약>의 '최천약'과는 다르게 '석개'는 타고난 재능이 없다. 노래가 좋다는 그 이유 한 가지를 붙자고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포기하지 않고 끈기를 갖고 노래하는 '열정'을 알아주는 이는 '명창' 단 한 사람이다. 석개의 노래를 들은 모든 사람이 석개를 비웃는 힘든 순간을 맞이하지만 '명창의 지지'는 석개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주는 계기가 된다.





"혼을 다 바쳐 노래하기를 석 달이나 계속해온 끈기와 노력이 재능입니다." (중략) 그리고 저 아이는 그때까지 줄기차게 노래할 것이고 명창이 돼서도 더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피를 몇 번이고 더 쏟을 아이입니다. 노력을 타고난 아이죠. 노력보다 더한 재능이 어디 있겠습니다?" P. 95 <노래가 좋다>






나는 석개처럼 타고난 재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지 한참 후에 책이 읽고 싶어졌다. 단지 그 마음 하나로 남들은 하루 만에 읽을 책을 몇 날 며칠을 붙잡고 읽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어설픈 글을 끙끙대며 적어 포스팅했다. 소유 필력 있는 글을 보면 나의 보잘것없는 글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하며 정신승리(?)를 감행했다. 이 '열정'을 믿어주신 분들 덕분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6년 가까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독서하며 차곡차곡 글을 쌓아온 나에게도 애정이 듬뿍 담긴 칭찬을 해주고 싶다.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끈기와 노력이라는 희망을 알려준 '석개'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이러저러한 일로 미련하고 고약한 아이에서, 똑똑하고 착한 아이로 탈바꿈했다. 내가 바뀐 것이 아닐 것이다. 몇 살 더 먹은 것뿐이다. 진짜로 바뀐 것은 어른들의 눈이다. 어른들에게 도움 되고 돈도 되는 신기한 손재주와 영민한 지혜를 보여주자, 어른들이 나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P.173 <기술자 최천약>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주인공도 꽤 여러 번 나온다. 결혼이라는 삶의 기로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려는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 많은 독자들도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특히 <내 인생은 내가 되찾겠다>의 유낭자는 적절한 명분을 대며 대차게 행동했다. 최근 협상에 관해서 배우고 있는데 상대방의 '면을 세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윤감 판서 대감과 그의 아들들의 면을 세우면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유낭자가 현대에 태어났으면 협상의 천재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라 상상해 보았다.






정말이지 첩이 되기 싫었다. 멀쩡하고 인물 좋은 총각의 첩이 되라고 해도 싫다고 할 판인데, 예순 살 홀아비의 첩이 되라니. P. 36 <내 인생은 내가 되찾겠다>



대감과 혼례를 치른 지 일 년이 지났다. 이대로 소박데기로 살 수는 없다. 집에서는 구박받고 밖에서는 온갖 놈의 손가락질 받으며 살 수는 없다. 내 인생은 내가 되찾아야겠다. 모든 것을 걸고 떠나기로 했다. P.45 <내 인생은 내가 되찾겠다>



"저들은 가짜입니다. 저들이 내 진짜 신랑을 광에 가두고 죽일 뻔했습니다. 내 진짜 신랑은 무사합니다. 어서 저자들을 붙잡아야 합니다." P. 222 <신부, 신랑을 구하다>








부조리가 판치는 것은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존재하지만 조선시대에는 특히나 심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양반은 과거를 통해 벼슬을 얹는 것을 목표로 매우 한정된 삶을 살았고, 양반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은 입에 풀칠할 농지조차 갖기 버거웠다. 사람은 늘어나고 재화는 부족한 상황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정된 공직을 차지하기 위해 부조리가 판치는 과거제도를 보면 현대 사회에도 크게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 생각나면서 출중한 능력을 지녀도 관직에 나갈 수 없는 당시 현실도 매우 안타까웠다. <박문수의 변명>을 읽으면서도 정직을 위한 권모술수가 옳은 것인가 계속 생각해 봤다.





"과거야말로 권모술수 판입니다. 진짜 제대로 된 선비는 단 한 명도 시험에 합격할 수 없어요. 형님이 세 번이나 낙방한 게 실력이 모자라서였습니까? 형님은 정직하셨기 때문에 낙방한 것입니다." P.58 <박문수의 변명>



"대체 뭐가 억울하냐? 양반이라고 사는 게 편안하냐? 과거 급제 못 하면 바보 신세고, 관리가 돼서도 툭하면 역모다 뭐다 걸려서 모가지가 달아날 걱정에 잠이나 편히 자겠느냐?" P.191 <나무꾼 시인>



"돈만 있으면 양반 신분을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이네. 부가 모든 것을 말하네. 부유한 상민은 가난한 양반을 집 없는 개처럼 하찮게 보네. 어떤 상민이 나 같은 걸 사위로 들이겠나? 양반이 조약돌처럼 널린 세상에." P. 207 <신부, 신랑을 구하다>













어떻게 옛날 청소년을 제대로 그릴 수 있겠어요. '타산지석 이야기'로 꾸미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만 교훈이 부족할 수 있어요. "교훈은 강아지에게나 갖다 줘!"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중략)저는 그런 억지스러운 교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교훈보다는 그 인물의 사람다움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중략) 판타지가 넘치는 세상입니다만, 이런 사개핍진한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 259 <작가의 말>




열두 편의 이야기마다 각각의 사람다움이 심겨 있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어서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시리즈로 채택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녀가 있다면 함께 읽고 이야기해 보면 참 좋을 것 같다. 나에게는 즐거운 일탈(?)이었던 『조선 청소년 이야기』를 꼭 한 번쯤은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교유서가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조선청소년이야기 #김종광 #교유서가 #각색소설 #청소년소설 #교유당 #책추천 #온가족이함께읽는이야기



"혼을 다 바쳐 노래하기를 석 달이나 계속해온 끈기와 노력이 재능입니다." (중략) 그리고 저 아이는 그때까지 줄기차게 노래할 것이고 명창이 돼서도 더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피를 몇 번이고 더 쏟을 아이입니다. 노력을 타고난 아이죠. 노력보다 더한 재능이 어디 있겠습니다?" P. 95 <노래가 좋다> - P95

이러저러한 일로 미련하고 고약한 아이에서, 똑똑하고 착한 아이로 탈바꿈했다. 내가 바뀐 것이 아닐 것이다. 몇 살 더 먹은 것뿐이다. 진짜로 바뀐 것은 어른들의 눈이다. 어른들에게 도움 되고 돈도 되는 신기한 손재주와 영민한 지혜를 보여주자, 어른들이 나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P.173 <기술자 최천약> - P173

정말이지 첩이 되기 싫었다. 멀쩡하고 인물 좋은 총각의 첩이 되라고 해도 싫다고 할 판인데, 예순 살 홀아비의 첩이 되라니. P. 36 <내 인생은 내가 되찾겠다> - P36

대감과 혼례를 치른 지 일 년이 지났다. 이대로 소박데기로 살 수는 없다. 집에서는 구박받고 밖에서는 온갖 놈의 손가락질 받으며 살 수는 없다. 내 인생은 내가 되찾아야겠다. 모든 것을 걸고 떠나기로 했다. P.45 <내 인생은 내가 되찾겠다> - P45

"저들은 가짜입니다. 저들이 내 진짜 신랑을 광에 가두고 죽일 뻔했습니다. 내 진짜 신랑은 무사합니다. 어서 저자들을 붙잡아야 합니다." P. 222 <신부, 신랑을 구하다> - P222

"과거야말로 권모술수 판입니다. 진짜 제대로 된 선비는 단 한 명도 시험에 합격할 수 없어요. 형님이 세 번이나 낙방한 게 실력이 모자라서였습니까? 형님은 정직하셨기 때문에 낙방한 것입니다." P.58 <박문수의 변명> - P58

"대체 뭐가 억울하냐? 양반이라고 사는 게 편안하냐? 과거 급제 못 하면 바보 신세고, 관리가 돼서도 툭하면 역모다 뭐다 걸려서 모가지가 달아날 걱정에 잠이나 편히 자겠느냐?" P.191 <나무꾼 시인> - P191

"돈만 있으면 양반 신분을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이네. 부가 모든 것을 말하네. 부유한 상민은 가난한 양반을 집 없는 개처럼 하찮게 보네. 어떤 상민이 나 같은 걸 사위로 들이겠나? 양반이 조약돌처럼 널린 세상에." P. 207 <신부, 신랑을 구하다> - P207

어떻게 옛날 청소년을 제대로 그릴 수 있겠어요. ‘타산지석 이야기‘로 꾸미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만 교훈이 부족할 수 있어요. "교훈은 강아지에게나 갖다 줘!"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중략)저는 그런 억지스러운 교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교훈보다는 그 인물의 사람다움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중략) 판타지가 넘치는 세상입니다만, 이런 사개핍진한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 259 <작가의 말> - P2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