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청소년 이야기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3
김종광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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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청소년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단편 모음집이라 한 편의 길이도 짧고 글씨도 큼지막했다. 무엇보다 표지가 엄청 엄청 예쁘다.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느낌으로 책과 개다리소반, 향로와 연필 등 조선시대를 연상시키는 사물로 가득 차 있다. 튼튼한 양장본에 황금색 가름끈도 있다. 그런데 가름끈을 쓸 필요 없다는 게 함정이다. 후후룩 빨리 읽혀서 책을 접어 둘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16~19세기 조선시대 쓰인 한문소설을 사실적이게, 개연성 있게, 핍진성 있게, 진실성이 느껴지도록 각색한 단편 소설집이다. 김종광 소설가가 오로지 재미로만 각색하여 ‘교훈은 개나 줘’라는 마음으로 썼다니 그저 읽고 즐기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 된다. 모두 12편이 실려 있고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매 단편 앞에는 간략한 출처와 소개 글이 실려 있다.








12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주제를 생각해 본다면 '기존의 틀을 벗어난 변화'라고 생각한다.

인재상의 변화, 여성 인권의 변화, 신분제의 변화 등이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가치가 글에 담겨 있다. 부유한 서민의 등장으로 신분제가 흔들리고, 기술과 상업의 발달을 인정하고, 고른 인재 등용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노래가 좋다>가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 '석개'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술자 최천약>의 '최천약'과는 다르게 '석개'는 타고난 재능이 없다. 노래가 좋다는 그 이유 한 가지를 붙자고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포기하지 않고 끈기를 갖고 노래하는 '열정'을 알아주는 이는 '명창' 단 한 사람이다. 석개의 노래를 들은 모든 사람이 석개를 비웃는 힘든 순간을 맞이하지만 '명창의 지지'는 석개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주는 계기가 된다.





"혼을 다 바쳐 노래하기를 석 달이나 계속해온 끈기와 노력이 재능입니다." (중략) 그리고 저 아이는 그때까지 줄기차게 노래할 것이고 명창이 돼서도 더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피를 몇 번이고 더 쏟을 아이입니다. 노력을 타고난 아이죠. 노력보다 더한 재능이 어디 있겠습니다?" P. 95 <노래가 좋다>






나는 석개처럼 타고난 재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지 한참 후에 책이 읽고 싶어졌다. 단지 그 마음 하나로 남들은 하루 만에 읽을 책을 몇 날 며칠을 붙잡고 읽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어설픈 글을 끙끙대며 적어 포스팅했다. 소유 필력 있는 글을 보면 나의 보잘것없는 글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하며 정신승리(?)를 감행했다. 이 '열정'을 믿어주신 분들 덕분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6년 가까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독서하며 차곡차곡 글을 쌓아온 나에게도 애정이 듬뿍 담긴 칭찬을 해주고 싶다.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끈기와 노력이라는 희망을 알려준 '석개'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이러저러한 일로 미련하고 고약한 아이에서, 똑똑하고 착한 아이로 탈바꿈했다. 내가 바뀐 것이 아닐 것이다. 몇 살 더 먹은 것뿐이다. 진짜로 바뀐 것은 어른들의 눈이다. 어른들에게 도움 되고 돈도 되는 신기한 손재주와 영민한 지혜를 보여주자, 어른들이 나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P.173 <기술자 최천약>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주인공도 꽤 여러 번 나온다. 결혼이라는 삶의 기로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려는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 많은 독자들도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특히 <내 인생은 내가 되찾겠다>의 유낭자는 적절한 명분을 대며 대차게 행동했다. 최근 협상에 관해서 배우고 있는데 상대방의 '면을 세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윤감 판서 대감과 그의 아들들의 면을 세우면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유낭자가 현대에 태어났으면 협상의 천재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라 상상해 보았다.






정말이지 첩이 되기 싫었다. 멀쩡하고 인물 좋은 총각의 첩이 되라고 해도 싫다고 할 판인데, 예순 살 홀아비의 첩이 되라니. P. 36 <내 인생은 내가 되찾겠다>



대감과 혼례를 치른 지 일 년이 지났다. 이대로 소박데기로 살 수는 없다. 집에서는 구박받고 밖에서는 온갖 놈의 손가락질 받으며 살 수는 없다. 내 인생은 내가 되찾아야겠다. 모든 것을 걸고 떠나기로 했다. P.45 <내 인생은 내가 되찾겠다>



"저들은 가짜입니다. 저들이 내 진짜 신랑을 광에 가두고 죽일 뻔했습니다. 내 진짜 신랑은 무사합니다. 어서 저자들을 붙잡아야 합니다." P. 222 <신부, 신랑을 구하다>








부조리가 판치는 것은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존재하지만 조선시대에는 특히나 심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양반은 과거를 통해 벼슬을 얹는 것을 목표로 매우 한정된 삶을 살았고, 양반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은 입에 풀칠할 농지조차 갖기 버거웠다. 사람은 늘어나고 재화는 부족한 상황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정된 공직을 차지하기 위해 부조리가 판치는 과거제도를 보면 현대 사회에도 크게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 생각나면서 출중한 능력을 지녀도 관직에 나갈 수 없는 당시 현실도 매우 안타까웠다. <박문수의 변명>을 읽으면서도 정직을 위한 권모술수가 옳은 것인가 계속 생각해 봤다.





"과거야말로 권모술수 판입니다. 진짜 제대로 된 선비는 단 한 명도 시험에 합격할 수 없어요. 형님이 세 번이나 낙방한 게 실력이 모자라서였습니까? 형님은 정직하셨기 때문에 낙방한 것입니다." P.58 <박문수의 변명>



"대체 뭐가 억울하냐? 양반이라고 사는 게 편안하냐? 과거 급제 못 하면 바보 신세고, 관리가 돼서도 툭하면 역모다 뭐다 걸려서 모가지가 달아날 걱정에 잠이나 편히 자겠느냐?" P.191 <나무꾼 시인>



"돈만 있으면 양반 신분을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이네. 부가 모든 것을 말하네. 부유한 상민은 가난한 양반을 집 없는 개처럼 하찮게 보네. 어떤 상민이 나 같은 걸 사위로 들이겠나? 양반이 조약돌처럼 널린 세상에." P. 207 <신부, 신랑을 구하다>













어떻게 옛날 청소년을 제대로 그릴 수 있겠어요. '타산지석 이야기'로 꾸미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만 교훈이 부족할 수 있어요. "교훈은 강아지에게나 갖다 줘!"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중략)저는 그런 억지스러운 교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교훈보다는 그 인물의 사람다움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중략) 판타지가 넘치는 세상입니다만, 이런 사개핍진한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 259 <작가의 말>




열두 편의 이야기마다 각각의 사람다움이 심겨 있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어서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시리즈로 채택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녀가 있다면 함께 읽고 이야기해 보면 참 좋을 것 같다. 나에게는 즐거운 일탈(?)이었던 『조선 청소년 이야기』를 꼭 한 번쯤은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교유서가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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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다 바쳐 노래하기를 석 달이나 계속해온 끈기와 노력이 재능입니다." (중략) 그리고 저 아이는 그때까지 줄기차게 노래할 것이고 명창이 돼서도 더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피를 몇 번이고 더 쏟을 아이입니다. 노력을 타고난 아이죠. 노력보다 더한 재능이 어디 있겠습니다?" P. 95 <노래가 좋다> - P95

이러저러한 일로 미련하고 고약한 아이에서, 똑똑하고 착한 아이로 탈바꿈했다. 내가 바뀐 것이 아닐 것이다. 몇 살 더 먹은 것뿐이다. 진짜로 바뀐 것은 어른들의 눈이다. 어른들에게 도움 되고 돈도 되는 신기한 손재주와 영민한 지혜를 보여주자, 어른들이 나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P.173 <기술자 최천약> - P173

정말이지 첩이 되기 싫었다. 멀쩡하고 인물 좋은 총각의 첩이 되라고 해도 싫다고 할 판인데, 예순 살 홀아비의 첩이 되라니. P. 36 <내 인생은 내가 되찾겠다> - P36

대감과 혼례를 치른 지 일 년이 지났다. 이대로 소박데기로 살 수는 없다. 집에서는 구박받고 밖에서는 온갖 놈의 손가락질 받으며 살 수는 없다. 내 인생은 내가 되찾아야겠다. 모든 것을 걸고 떠나기로 했다. P.45 <내 인생은 내가 되찾겠다> - P45

"저들은 가짜입니다. 저들이 내 진짜 신랑을 광에 가두고 죽일 뻔했습니다. 내 진짜 신랑은 무사합니다. 어서 저자들을 붙잡아야 합니다." P. 222 <신부, 신랑을 구하다> - P222

"과거야말로 권모술수 판입니다. 진짜 제대로 된 선비는 단 한 명도 시험에 합격할 수 없어요. 형님이 세 번이나 낙방한 게 실력이 모자라서였습니까? 형님은 정직하셨기 때문에 낙방한 것입니다." P.58 <박문수의 변명> - P58

"대체 뭐가 억울하냐? 양반이라고 사는 게 편안하냐? 과거 급제 못 하면 바보 신세고, 관리가 돼서도 툭하면 역모다 뭐다 걸려서 모가지가 달아날 걱정에 잠이나 편히 자겠느냐?" P.191 <나무꾼 시인> - P191

"돈만 있으면 양반 신분을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이네. 부가 모든 것을 말하네. 부유한 상민은 가난한 양반을 집 없는 개처럼 하찮게 보네. 어떤 상민이 나 같은 걸 사위로 들이겠나? 양반이 조약돌처럼 널린 세상에." P. 207 <신부, 신랑을 구하다> - P207

어떻게 옛날 청소년을 제대로 그릴 수 있겠어요. ‘타산지석 이야기‘로 꾸미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만 교훈이 부족할 수 있어요. "교훈은 강아지에게나 갖다 줘!"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중략)저는 그런 억지스러운 교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교훈보다는 그 인물의 사람다움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중략) 판타지가 넘치는 세상입니다만, 이런 사개핍진한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 259 <작가의 말>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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