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지전 - The Front Lin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지전] 이제 드디어, 그 모든 눈물들을 떠나보내다.
생각조차 하기 싫어,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쓰는 리뷰.
원체 눈물이 많은 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일이 아닌 경우에 더 많이 운다.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면 꼭 운다. 그런 나이기에, <전쟁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은 마치 사형 선고와도 같아. 그래, 울 준비 단단히 하고 와라. 뭐 그런?
어차피 보기 전부터 ‘내가 또 눈물 범벅이 되겠구나’ 하는 건 예상하는 바였다. 오히려 어찌 보면 식상하기 짝이 없는 그 “한국 전쟁”이라는 소재를. 이 영화의 제작진이 과연 어떻게 풀어낼까 기대감이 더 컸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선덕여왕>이라는,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한 획을 그은 작가, 박상연. 그 작가에 대한 기대는 곧 영화 스토리 전반과 시나리오에 대한 기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기대는 일치하더라.
37개월간의 내전
그 중 2년 2개월간 전선 교착 하에 휴전협정 진행
한국전쟁 총 사망자 400만 명
1951년 1월 1.4후퇴 이전 사망자수 100만
1951년 6월 후방 협상, 3.8 선 중심의 중부전선에서
남북한 고지쟁탈전으로 전군사력 집중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숨겨왔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이 진실. 한국 전쟁 사망자 총 400만 명 중 300만 명은 모두 1.4 후퇴 이후, 그 고지 쟁탈전에서 수많은 피와 청춘들이 죽어나갔다. 어느 정도 이 영화의 설정은 다른 전쟁 영화와는 다른 것을 포착하리라 마음 먹은 듯 하다. 한국 전쟁의 ‘시작’이 아닌, ‘끝’에 주목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과 북, 전쟁의 목적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피비린내 나는 지옥의 땅, 애록고지에서. 제 정신이 될 리도 없고, 제 정신 이길 포기한 그 모든 사람들. ‘악어부대’를 그 지옥 같던 포항 전투에서 살려내기 위해 자신의 편을 쏘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어린 대위 신일영. 상관, 그리고 군법보다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형제와 같은 자신의 부대가 소중한 김수혁.
전쟁 속에서,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군법’이며, ‘상관’의 명령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한 치 눈앞도 모르는 상황에. 그 잘난 ‘권위의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나하나 주옥 같은 수혁과 일영의 대사 앞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지고. 그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죽어나갔을 그 애록고지 앞에서. 나 혼자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던. 절절히 하나하나 모든 것이 공감되어 차마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던. 그 슬픔들이었다.
마지막 고수의 대사는 정말 탄복할 만하더라. 어찌 그런 주옥 같은 대사들이던지.
“내가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지옥에 가야 하는데 말이야.. 이 전쟁터보다 지옥 같은 곳이 없어서. 그래서 내가 여기서 죽나봐.”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질 않지만, 이런 대사였던 것 같다. 그렇다. 전쟁터보다 지옥 같은 곳이 어디 있으랴.
자신이 자처한 일도, 왜 죽여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그 곳에선, 그 젊은 그 슬픈 생명들을 모두 사람 죽이는 기계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처절하리만큼 전형적인 전쟁 영화가 아닐까 싶지만, 그래도 근래 들어 이렇게 가슴 와닿는 대사들이 오래간만이었다. 생각하면 또 눈물 날까 두려워 참으로 오랫동안 삭혀 왔던 그 영화 <고지전>. 이제 나도 한 시름 신일영 대위와 그 모든 눈물들을 떠나 보낼 때가 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