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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가 들려주는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정지아 지음, 박정은 그림 / 마이디어북스 / 2024년 5월
평점 :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강아지똥>은 그저 똥이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좋아해서 그저 재미있게 읽고 지나쳤다
고학년이 된 아이에게 <몽실언니>를 추천하며 저 어릴 적 티브이에서 방영하던 드라마를 이야기하고 똑 단발의 머리 모양을 '몽실이 머리'라고 놀렸던 추억의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와 저에게 그렇게 읽힌 책의 작가님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가며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 가난을 당연히 여길 만큼 가난했고, 형제를 잃었고, 공부를 잘했지만 배움으로 나가지 못했고, 희망을 보았으나 좌절로 답을 얻었고, 결핵이라는 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이런 삶을 살아낸 작가님.
어린 시절부터 사람에 대한 귀함을 생각했고 타인의 마음을 자기 일처럼 공감하던 시선은 늘 이해하고 사랑으로 보듬어주시던 어머니의 사랑이 바탕을 이루어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하였고 보상받았다고 생각하며 누릴 수 있었을 시간들을 병마와 싸우며 그저 욕심 없이 소박하게 꾸려간 선생님의 삶에 그저 존경의 마음이 든다.
P80 가난이 고달프다것을,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 것인가를, 정생은 그 누구보다 뼈저린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난해도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자기 몸을 떼어 가난한 사람을 도운 저 행복한 왕자처럼.
나의 가난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은 동화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P154 한 줄 쓰고 한 시간 쉬고, 정생은 그렇게 이야기를 써 나갔다. 정생의 이야기는 서러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서러운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는지 알고 있다고 위로하고 토닥이는 글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그것이 또 선생님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P142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볼품없는 것들이 죄 정생의 차지였다. 정생은 과일도 그런 것을 좋아했다. 아무도 먹지 않으니 자기라도 먹어줘야 그것들이 열심히 산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
P171 정생이 바란 것은 세상의 인정이나 돈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슬픔을 도닥여 주고, 못난 것들 속에 숨어 있는 거룩함을 발견하고, 그리하여 길바닥의 나뒹구는 개똥마저도 살아갈 의미가 있음을 알리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작고 보잘것없는 삶이라 생각한 자신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한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아프지 않으셨으면 또 다른 모습의 <강아지똥>, <몽실언니>를 쓰셨을 것 같기도 하다.
고통의 산물이라 생각되는 작품들이 선생님의 걸어온 길과 함께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고 사랑받아 바라시던 따스한 세상이 되어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