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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안인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평점 :
와요와요 섬 사람들에게 바다는 곧 삶의 전부였다.
그들은 카방이라는 신과 바다, 흙만을 믿으며 살았다.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나이가 들면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고 죽음을 맞이하며, 둘째 아들은 열흘 치 물을 가지고 돌아올 수 없는 항해에 나서야 했다. 아트리에는 바로 그 둘째 아들로 태어나 바다로 나아갔고, 결국 배는 가라앉았지만 해류에 밀려 떠다니는 섬에 도착한다. 그는 바다 위를 떠도는 것들로 생존 도구를 만들며 살아갔다.
이 장면을 읽으며, 인간이 얼마나 자연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덧없고 불안정한 토대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바다는 그들에게 신이자 삶의 터전이었지만 동시에 죽음을 불러오는 두려움의 공간이기도 했다.
한편, 앨리스의 이야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바다와 얽혀 있었다. 남편 야콥센과 아들 토토와 함께 바닷가에 집을 지었으나, 수면 상승과 태풍으로 집은 점점 위태로워졌다. 남편과 아들이 암벽 등반 중 실종되었을 때, 앨리스는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 그러나 파도에 집이 잠기려는 순간,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본 앨리스는 그 순간만큼은 살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이 장면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존재인지, 동시에 아주 작은 계기로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쓰레기 섬이 몰려오고, 바닷집을 덮치는 파도와 우박 속에서 아트리에와 앨리스는 운명처럼 만난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표정과 몸짓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서로의 용기가 된다. 아트리에는 다시 바다로 향하고, 앨리스는 현실로 돌아가지만, 두 인물의 만남은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통해 살아갈 힘을 찾는지 보여주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개인의 서사에 그치지 않고 곧장 우리의 현실로 이어진다. 앨리스가 매혹되었던 도시도 결국 건물과 도로로 잠식되며 예전의 모습을 잃어갔고, 하파이와 다허 같은 이들은 자연의 변화로 인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나는 그 장면에서 곧장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를 잃어가는 투발루를 떠올렸다. 책 속 “쓰레기 섬”은 태평양을 떠도는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섬과 겹쳐져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P198 하파이는 때로 사람이 산다는 건 일종의 교환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것을 네가 가진 것과 바꾸고, 내 미래를 지금 내게 없는 것과 바꾸는 것. 바꾸고 바꾸다 보면 원래 자기 것이 되돌아오기도 했다.”
자연을 이용하는 우리의 방식도 결국 이런 끝없는 ‘교환’이 아닐까. 편리를 위해 버린 쓰레기와 오염이 결국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P229 과거 우리는 경제 발전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회피하고 다른 빈곤 지역에 떠넘겼다. 지금 그 비용에 대한 이자 청구서가 바다에 실려 온 것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는, 우리가 감춰왔던 문제들이 결국 바다라는 무대 위에서 청구서처럼 되돌아오고 있다는 강한 경고를 받는 듯했다.
“P270 산을 관통해 반대편까지 빠르게 가는 것도 하나의 생활 방식이지만, 산을 돌아서 가는 것도 하나의 생활 방식이에요. 우린 스스로 과학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냥 생활 방식을 선택하는 겁니다.”
우리가 ‘진보’라 믿고 있는 과학적 선택 역시 사실은 단순한 방식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무심코 버린 빨대 하나가 거북이의 코에 박히고, 비닐봉지가 고래의 뱃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생각만으로도 인간의 편리를 위해 무분별하게 쓰레기를 소비해도 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복안인』은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소설이다. 신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자연을 파괴해온 인류의 모습을 보게 되고, 동시에 다시 살아가려는 인간의 의지 또한 발견한다. 바다 위의 아트리에와 앨리스처럼,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와 용기를 통해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다.
이 책은 결국 묻는다. 우리가 바다에 떠넘긴 모든 것, 그것이 되돌아올 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복안 : 홑눈이 벌집 모양으로 여러개 모여 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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