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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이제창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12월
평점 :
인간의 삶은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마주한다. 자의적인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종종 원하지 않은 고난과 시련에 처한다. 삶은 왜? 라는 질문의 연속이다. 답을 찾는 과정 같지만, 문제에 대한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과연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한다. 옳고 그름의 사회적 기준이 정해진 문제라면 오히려 쉬울 것이다. 개별적인 삶이 처해야 하는 수 많은 질문과 상황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뇌하고 방황하게 만든다. 방향성을 잃고 헤매이는 듯한 방황은 불행 자체이기보다 삶의 모습일 것이다. 완성된 작품으로서 삶이 아닌 미완의 그림처럼, 아직 그려지는 중인 삶에 대한 이야기. #방황하는소설_이다.
기억을 상실한 한 사람.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현재 앉은 카페에서 자신 앞에 놓여진 커피를 보며, 몸으로 기억하는 취향으로 자신을 더듬어본다. 카페라는 공간을 선택한 자신의 취향, 커피를 고르는 안목 등을 종합하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였을지 되뇌인다. 끝까지 자신에 대한 기억은 돌아오지 않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신의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만든다. '나란 사람은?'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은 무엇인가.
■ 사람의 품격이 취향을 결정한다. 아니, 전제와 결론이 바뀌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취향이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 취향이 곧 사람의 본질인 것이다. 기억은 사라져도 취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그게 그였다. 이토고 소파가 잠을 불렀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혼란스럽고 고단한 하루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 집의 공간을 채운 것들이 곧 그였다. (37쪽, 존재의 증명 중에서)
학교를 졸업하고나면, 사회에 나아가는 자격을 얻는다.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사회에 내던져진 한 사람은 이제 그 자격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배분된 역할을 충실하게 완성해야 한다. 사회의 일부로 녹아들기 위해서 영혼과 뼈를 갈아 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체가 없는 사회는 이 구성원을 도대체 받아들이지 못한다. 겉돈다. 실체가 있는 존재로부터 부정당하며 사회생활 초반을 채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격이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인간은 다시금 방황의 늪에 빠진다. 늪을 빠져나오는 속도는 존재마다 다르다. 오늘 그대는 안녕한가, 되묻는 #박상영 작가의 #요즘애들_편이다.
■ 너 오늘따라 말이 길다? 내가 오늘 일만 갖고 그러겠니? 넌 언제나 이런 식이잖아. 하는 일이 뭐 얼마나 된다고, 그거 하나 똑바로 못하니. 내가 팔만대장경을 필사하라고 했니? 아니면 하루에 열 번씩 기사를 올리라고 했니? 트위터 관리 똑바로 하라는 게 그렇게 어렵니? 인터뷰 기사 하나 맡으니까 이제 니가 아주 대단한 기자라도 된 것 같니? 그래서 트위터는 하찮게 느껴지니? 분위기 파악 못하고 조증 걸린 애처럼 실실 웃을 줄이나 알지, 똑바로 하는 일이 있긴 하니? (77쪽, 요즘 애들 중에서)
존재의 증명은 관계의 증명이기도 하다. 관계 속 자신만큼 잘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들여다보기 어려운 마음으로 엮인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어긋나고 엇갈리면서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배워간다.
■ 원래 여행과 사랑은 함께라며 레이철은 농담했지만 옥주는 잔잔한 불안을 느꼈다. 그런 관계들에 승자는 없고 언제나 패자들만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147쪽, 월계동 옥주 중에서)
보고 들은 세상을 전부로 알고 지낼 때와 달리, 사람은 더 넓고 복잡한 사회로 자꾸 나아간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얇고 넓은 관계는 얽히고섥힌 상황과 함께 존재를 압박한다. 상황마다 현명한 선택과 지혜로운 판단을 하기란 어렵다. 결국 다른 존재의 선택과 상황을 비교하며 자신을 자책한다. 자책과 방황 속에서 미래 어느 시점에서는 덜 후회하고 덜 힘들어하길 기대하며 오늘을 인내한다.
■ 나는 왜 한 번도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았을까, 주희는 생각했다. (209쪽, 세실, 주희 중에서)
고민하며 방황하는 삶이 불행과 동일시되지 않길 바란다. 헤매이는 상황에 처했더라도 상황에 대한 마침표를 찍는 선택은 자신이 할 수 있다. 그 결론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과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삶은 그 다음을 기약한다. 생이 끝날 때까지.
◆ 창비 서포터즈로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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