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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평점 :
2011년 초판인 것을 감안하면 시기적으로 10여 년전을 포함한 시기에 청년들이 품었을 생각이 그려진다. 한국 사회를 들끓었던 민주화 운동, 경제 성장은 식상해진 주제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를 거론하고 분배, 인권 등을 현실적으로 접근하려는 현재를 생각하면 공백 같은 시기였을지 모르겠다. 사실 식상해진 적도, 완성된 적도 없는 이야기를 거대 담론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일상적 민주화에 대한 낯설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한국 사회의 변화 시점에서 청년 혹은 대학생 등으로 불렸던 주체자들의 역할이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교육 기관에서 키워 온 생각을 사회에 내딛는 순간, 영향은 이전과 달리 미비하고 역할은 축소되었으며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위치는 열악해졌다. 그 열악함에도 사명을 띠고 담론을 이끄는 주류에서 밀려났다. 이제 사명은 취업 전선에서 한 자리를 꿰차고 자기 보존에 성공한 이들이 주류가 된 듯 하다. 지향점을 잃은 세상 속 이들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저항은 '자살'이다. 실패하고 좌절된 시기의 자살이 아닌 현 사회가 추구하는 것을 성취했지만 무의미함을 보여주기 위한 '버림'. 그 버리는 선택이 '자살'인 것이다.
자살 예찬론처럼 비추고 등장인물 마다 재키의 능수능란한 지휘에 따라 인생이 좌우되는 듯한 이상하고도 오묘한 이야기다. 하지만 문장 사이에 흐르는 냉소적이고 제한적 경험과 사고에 대한 시각은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 사이의 갈등으로 표면화된다. 지난 과거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구나 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에게도 기성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적인 기준을 거부하는 다양한 형태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MZ 세대'로 특징되는 것이 #표백 이야기를 통해 청년들의 가치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주요 인물인 재키가 사회를 일컫는 '그레이트 빅 화이트' 는 완성되어 무결한 흰색에 가까운 세상을 지칭한다. 등장인물 재키 혹은 제리는 세상이 완성했다는 가치가 천박하며 그들 기준으로 불완전함을 제기한다. 기성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방법이 될 수 없고, 이 모순을 고발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알리는 좋은 수단을 '자살'로 규정한다. 사회의 돌연변이적 요소만 가져다가 키워낸 종교적 이단처럼 인물들 사이를 파고든다. 20대를 지나고, 그 시간만큼 삶의 궤적을 따라가보니 이 세상은 완성된 적도 없고, 무결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 깨닫는 듯 하다. 매일을 사는 인간이 쌓아올린 변화무쌍한 세상은 옳고 그름이 바뀌기도 하고 견고할 것 같은 거대 담론도 깨어지고 수정될 뿐 아니라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담론이 더 중요해지기 했다. 청년의 고민 내용,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방식 등이 변화했지만 기존 세상과 다른 세상을 그들이 만들어 가야 한다는 '깨뜨림' 만큼은 변하지 않는 듯 하다.
■ "그러니까 이 모든 계획은 너 자신을 위해서인 거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건 아니지?"
"어떤 일이 위대해지려면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어야 해.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이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건 내가 시대정신을 꿰뚫어봤다는 뜻이 되는 거야.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선을 할 때 그 동기가 그저 순수하기만 했을까, 아무런 정치적 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도스토옙스키가 도박 빚을 갚으려고 《죄와 벌》을 썼다고 해서 그 책의 가치가 달라져?" (144-145쪽)
■ '낙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이상향은 있을 수 없기에, 표백 세대는 혁명과 변혁에 관한 한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이들은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199쪽)
■ 자살 선언자들의 목표는 완성된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사회의 천박함과 불완전성을 고발하고 자신들이 품고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데 있으며, 그 방법은 오로지 죽음이라는 완전한 거부뿐이다.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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