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사건부
정지원 지음 / 가하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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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9일

제목: 경성사건부

지은이: 정지원

펴낸곳: 도서출판 가하

초판 1쇄 발행 2012년 6월 4일

 

책을 다 읽은 나의 감상은 조금 의외고 놀랍다는 것이다. 또 어찌 생각해보면 로맨스 외에도 여러 장르의 글을 쓰시는 작가님답다는 생각도 든다. 스릴러나 추리,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로맨스 소설도 꽤 많다. 하지만 많은 경우 스릴러나 추리, 판타지적인 요소들은 줄거리를 이끌어가고 흥미를 돋우긴 위해 더해지지만 그 중심에는 로맨스가 있다. 그런데 이글은 아니다. 로맨스보다도 추리적인 부분이 더 강하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일명 ‘조각난 처녀’ 사건이라는 엽기적인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동영포목의 고명딸인 소화와 5년 만에 미국에서 귀국한 그녀의 정혼자인 장준현이 우연히 이 사건에 말려들게 된다. 사건은 법의학을 공부한 장준현이 사건 담당인 다나카 경시정과 함께 해결해 나간다. 그 곁에서 소화는 조수 역할 비슷한 것을 하게 된다.

    

연쇄살인 사건 그 자체로만도 무척 흥미롭다. 의외의 범인에 반전도 있고 여운을 남기는 구석도 있다. 다만 조금 더 치밀하게 전개가 되었다면 훨씬 추리소설로써의 흥미가 더했을 것 같아 조금 아쉽기도 하다.

    

난 이 글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여주인 소화는 성공적인 상점의 딸로 한마디로 또랑또랑하다. 평범한 모습 뒤에 독특하고 강한 성품이 숨어 있다. 일찌감치 집안 장사를 거들어서 수완도 좋고 요령도 있다. 그리고 남주인 장준현은 느긋하고 유들유들한 룸펜의 겉모습 뒤로 예리한 머리와 냉정한 이성을 감추고 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참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이 글에서는 두 사람의 로맨스가 막 시작되면서 끝이 난다. 그리고 더해서 삼각관계의 시작도 보인다. 로맨스로만 보면 후기에서 작가님이 밝혔듯이 꼭 시리즈물의 첫 번째라는 느낌이 강하다.

    

호시노는 헛기침을 한 다음 낮게 말했다.

“네가 아까 전에 그랬디. 정혼자가 하는 일이 없다고.”

“네. 뭐, 원래는 의대생이었지만, 졸업을 못했거든요.”

“그럼 네가 돈을 대서 졸업을 시킬 생각이냐?”

“그래도 전 상관없지만, 지금은 딱히 의학공부가 하고 싶지 않은가 봐요. 주식투자를 하겠다기에 돈을 빌려주었어요.”

호시노는 소화의 태평한 얼굴을 보고서 입을 반쯤 벌렸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내가 여자에게 돈을 빌려서 노닥거리고 있다니. 멀끔하게 생긴 주제에.

“돈을 잃으면 어떻게 하려고?”

“저야 그 정도 돈은 잃어도 상관없지만, 잃을 사람 같았으면 애초에 빌려주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그 돈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 오빠도 잘 알고 있거든요.”

호시노가 빤히 쳐다보자 소화는 문 쪽을 힐끔 본 다음 그를 향해 몸을 구부리고 속삭였다.

“저랑 혼인해서 미국에 가서 하던 공부 마쳐야 되거든요. 저로서는 오빠가 돈을 확 잃는 편이 좋은데, 벌고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녀가 연극조로 한숨을 폭 내쉬고서 코트를 걸쳤다. 호시노는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유한 남자에게 시집가겠다는 마음은 없는 거냐?”

“저는요, 다른 여러 여학생들처럼 돈 때문에 몸을 팔 필요는 전혀 없어요. 저, 부자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룸펜을 만날 필요도 없지.”

“네, 그럴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요, 원한다면 해도 된답니다. 그게 다른 여자들과의 차이죠.”

(pg. 174-176 발췌)

    

다나카는 인상을 찌푸리고서 보고 있다가 준현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물었다.

“저 아가씨, 총독부의 호시노 상과 무슨 관계야?”

“관계 같은 건 없을 겁니다. 최소한 아직은.”

준현의 대답에 다나카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직은’이라는 건 앞으로는 생길 수 있다는 건가?”

“뭐 소화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저라고 해서 손 놓고 놀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준현이 싱긋 웃자 다나카는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로 저 조그만 여자아이한테 호시노 상이 뭔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건가? 도대체 왜? 호시노 상 정도라면 훨씬 예쁜 여자들을 고를 수 있을 텐데.”

“전들 알겠습니까. 이런 특이한 취향은 저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준현의 대답에 다나카는 마치 특이하다는 걸 알고는 있나 하는 눈으로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pg. 247-248 발췌)

    

개인적으로 이다음 글을 꼭 보고 싶다. 두 사람의 로맨스도 조금 더 보고 싶고, 또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두 사람의 활약도 꼭 보고 싶다. 머지않아 소화와 준현을 다른 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로맨스의, 로맨스에 의한, 로맨스를 위한 로맨스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좋아 하시거나 조금 색다른 글을 원하시는 분들께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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