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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합체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평점 :
『합체』박지리, 사계절, 2010
- 삶의 진정한 비기 (祕器)
현대 판, 그리고 청소년 판 <난,쏘,공>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 작품은 많은 독자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조세희의 <난,쏘,공>을 새롭게 재탄생 시킨 소설이다. 17살, 예민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난쟁이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특히 제목의 의미가 압권인데, 난쟁이 쌍둥이 형제의 이름이 바로 '합'과 '체'이다. 둘이 함께여야만 일반 평균 신장을 만들어 낸다는, 합체 해야만 비로소 행복해지는 기구한 운명을 의미 있게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아, '혁명'에 대한 작가의 세계관도 인상 깊었다.
소설은 "아버지는 난장이 였다"가 작은 이야기의 도입부에 반복적으로 놓여져 시작된다. 서커스를 하는, 공을 아주 잘 다루는 난장이 아버지와 예쁜 엄마 밑에서 태어난 쌍둥이, 난장이 형제 합과 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와 살고 있는 둘은 17살의 사춘기를 맞으면서 자신들의 키에 대한 시련에 자꾸만 부딪힌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도사리고 있는 악질 중 악질이었는데, 예민한 그 시기의 둘에게 있어 가장 큰 벽은 친구들의 놀림이었다. 특히, 농구경기가 있을 때는 자신의 한계를 온 몸으로 느끼며, 늘 좌절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놀리는 친구들 앞에 체는 매번 울그락불그락해져 싸움을 하고 성질을 내고, 또 자신의 처지를 비관 한다. 그런 체와 다르게 합은 아주 조용히, 아주 열심히 공부를 하는 학생인데, 그것 또한 다 자신의 부족한 키 때문인 것이다.
어느 날 체는 공원에서 만난 도사 아닌 도사 할아버지의 사탕발림으로 자신의 키를 키울 수 있는 비기(祕器)를 전수 받게 된다. 그래서 여름방학을 맞이하자마자 엄마에게 편지 한 장 남겨두고 아주 깊은 산 속으로 떠난다. 합과 함께. 합은 절대 싫다고 하지만 체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한달간의 수련이 시작된다. 하루 세번 정도 체조를 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합도, 체도 날이 갈수록 수련이 즐거워진다. 그러다 한달이 채 되지 못한 어느 날, 그 할아버지가 단순한 치매 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럼 그렇지 하는 합과는 달리 체는 커다란 울음을 터뜨리며, 정말 키가 클 줄 알았다고 말한다. (물론, 책 후반에는 반전 아닌 반전도 있다.)
하지만 체는 깊은 산골에서 체조를 하는 것이 고작인 한 달간의 수련이 자신의 키를 키워줄 것이라고 정말 믿었을까? 아무리 절실했다지만 그것을 믿기에는 17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많다. 그러니까, 말그대로 체는 믿고 싶었던 거다. 난장이로 살아온 삶이, 또 살아갈 앞으로의 삶이 그 작은 아이에게는 너무 큰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뭐라도 해 보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겠지. 그래서 더욱 안쓰러웠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키가 크냐 안 크냐가 아니다. 그 시간을 통해 둘이 한 층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름 방학을 마치고 다시 등교를 시작한 합과 체의 마음에 아주 커다란 것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두 소년을 성장시키고, 또한 독자도 성장시킨다.
체의 시점으로 소설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은 두 명 모두가 오롯하게 소설 속 주인공이다. 책을 읽는 동안 합에게 체가 있어, 체에게 합이 있어 얼마나 고맙고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아주 힘든 순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힘든 순간에 자신의 분신이 옆에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므로. 중간 중간, 약간의 끊기는 느낌이 있었고 스토리 전개상 아쉬운 부분도 꽤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이 맛에 청소년 소설 읽는다,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든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