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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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10 

 


  <남아있는 나날>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스티븐스의 고민과 상념은 그 답을 찾지 못하고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는 시종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했으며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을 합리화시키기도 하고, ‘위대한 집사’에 대해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에 여념이 없어보였다. 35년을 꽤 괜찮은 집사로 몸바쳐온 한 남자가 떠나는 최초의, 6일간의 여행이라는 이야기에 비해 책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은 6일이라는 여행을 떠나는 시간동안 자신이 지나온 35년이라는 삶을, 그리고 남아있는 시간을 걱정과 고민, 나름대로의 자부심, 혹은 어렴풋하게 깃든 후회로 되돌아보는 주인공의 긴 푸념들이 쭉 늘어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븐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단순한 푸념으로 흘러 넘기고 말 수는 없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두가, 우리를 향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6일이라는, 다소 짧은 시간의 여행에도 많은 조바심과 걱정을 갖고 떠나게 되는 스티븐스의 모습에는 어딘지, 안쓰러웠다. 그리고 여행 중에도 그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기 버거울 만큼 ‘위대한 집사’에 대한 강박관념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자연스러워보였다. 완벽한 집사가 되는 것만이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인 양 구는 그의 모습은 사실 많이 답답하지만, 어쩌면 또 당연한 모습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위대한 집사에 대한 가르침만 받아왔으며, 그가 처음 하게 된 일 또한 집사 일이다. 다른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느껴진다. 그런 그에게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런 모습이 나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다. 왜 저렇게 ‘집사’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그의 고단하고 무거운 삶이(심적, 정신적으로) 나는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그런 그가 안쓰럽게 느껴진 것은 비단 그의 답답한 모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스티븐스를 보며 그의 모습을 통해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20년을 조금 넘게 살아오면서, 매 순간의 지나친 기우와 조금은 부질없는 걱정들, 완벽한 상황들을 만들고자 하는 강박으로 가득했던 나의 모습들과 그는 매우 닮아있었다. 그것은 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버거움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것을 떨치지는 못한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그것을 떨쳐버릴 수 있는, 그리고 인생을 조금 더 여유롭게,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 나는 그것을 용기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그 용기가 필요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인생이니 말이다.

 

  <녹턴>에서도 느꼈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별 것인 이야기를 해줌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참 많이도 주고 있다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스티븐스의 ‘위대한 집사’로서의 삶을 역설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결국에는 우리에게 희망을 볼 기회를 준다. 제목 그대로다. ‘남아있는 나날’에 대한 기회인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나날은 길다. 그 나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려있다. 그 나날이 지금까지 걸어온 나날보다 한결 수월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다. 책은 이토록, 읽고 난 후 그 정의와 답을 내 스스로가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하는 대에 그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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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다이어리 - 철학자와 영화의 만남 시네필 다이어리 1
정여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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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필 다이어리』, 정여울, 자음과 모음, 2010  

- 영화와 철학이 삶을 만나는 순간

 

 

  영화는 그 어떤 것과의 만남도 흥미롭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심리학과 만나도, 과학과 만나도, 미술과 만나도 매번 잘 어울릴 뿐 아니라 더욱 재미있어 진다. 독자적으로 놓고 보면 어렵게 느껴져, 선뜻 다가가기 힘든 학문일지라도 영화를 만나는 순간 특유의 친근함과 편안함으로 금방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이다. 즐겁게 본 영화의 기억을 떠올려 심리학을, 과학을, 또는 미술을 그려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철학이라면 말이 좀 달라진다. 철학, 그 어떤 학문보다 지겹고 따분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고정관념일까? 아니라고 본다. 철학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역시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한 번 읽어버린다고 해서 그 의미가 쉽게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였다. 하지만 조금은 느슨해진 마음으로 영화의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 차근히 읽어본 이 책은, 우리가 순간의 즐거움으로 놓쳐 버렸던 아주 커다란 진실들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실들을 알아가는 것은 과연, 재미있는 일이었다.

  총 8편의 영화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책의 내용 중 가장 주목하고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관한 글이었다. 지금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처음 보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확실한 충격이었다. 미적 감각으로서의 충격, 상상력으로서의 충격, 나의 17년 문화생활로서도 최대의 충격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17살에 만난 하야오가 만든 세상은 환상 그 자체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다 본 후에도 그 여운이 참 오래 갔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신이 본 영화를 기억해내기 마련이다. 영상 그자체로 기억할 수도, 음악으로 혹은 배우의 헤어스타일로 기억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본 시기에 나에게 벌어진 일이나 사건들과 맞물려 기억하곤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았을 시기에 나는 커다란 불행을 겪었었다. 아직 사춘기도 떨쳐내지 못한 때였으며, 무기력과 우울이 함께 찾아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래서 그 시절, 나는 온종일 영화를 보는 일에 빠져들었다. 유일한 도피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는 내내 센의 모험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센이 아닌 치히로로, 모험을 완성하고 부모님을 구하려는 모습에서 나는 큰 카타르시스를 얻었던 것 같다. 그래서 펑펑 울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씨네필 다이어리』 속에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 시절, 내가 영화를 통해 받았던 마음의 울림과 여운을 철학과 맞물려 고개를 끄덕이도록 설명해놓았다. 그리고 그것이 다가 아닌, 그때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 또한 발견할 수 있게도 해주었다. 어쩌면, 내가 그 때보다 나만의 철학이 더욱 많이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다시 한 번 영화를 떠올리며, 나만의 철학에 대해 골몰하며 책을 읽으며 시종 진지해졌던 것 같다.

  이 외에도 깊고, 명쾌하게 정리해 놓은 8편의 영화 모두 인상 깊었다.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아무래도 영화가 우리의 삶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많은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철학은 항상 존재하니까. 어떤 존재와 어떤 순간, 또 어떤 사건들에 대해 의미 없고 이유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에는 그만의 철학을 안고 있다. 영화를 이용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의 삶 자체에 존재하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묵직한 흥미로움을 던져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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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눈물 (어린이를 위한) - MBC 창사 4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이미애 글, 최정인 그림, MBC 스페셜 제작팀 원작 / 밝은미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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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존의 눈물(어린이를 위한)> - 이미애 글, 최정인 그림, 밝은미래, 2010  

- 순수한 눈망울에 담아낼 원초의 '순수'

 

 

  올해 초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다큐멘터리가 있다. 바로 <아마존의 눈물>이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그 원초적인 모습에 자연스럽게 매료되어 빠져들어 버리곤 했다. 결국은 오래 기억에 남을 다큐멘터리였다. 그 다큐멘터리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책으로 출간되었다. 바로 <어린이를 위한 아마존의 눈물>이다. 이는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자연이 흘리는 눈물에 대해 잘 이해 할 수 없는 어린이들을 위해 쉽고 교훈적으로 풀어낸 동화이다. 순수한 그 눈망울에 담아낼, 원초의 '순수', 그리고 그 순수한 대자연이 흘릴 투명한 눈물에 대해서 쉽고 따뜻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쉽게도 여러 장면 눈살을 찌푸렸던 나에게도 이 책은 새로운 즐거움과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공간이 떠오르기도, 그안에서 살아가던 그들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아마존에 살고 있는 그들, 그들은 말 그래도 '원초의 인간' 의 모습 그 자체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마알간 인간들이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대자연과 어우러져, 함께 숨쉬고 있었다.  현대 문명이 닿지 않은 가장 맑고, 티 없이 순수한 그곳에서 서른 여명 넘짓한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룰로 살아가는 모습은 생경하지만, 또한 친근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와 다름 없이 책 속 등장하는 사진 속에는 별다른 여과없이 그들의 세상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럴수록 나는 세상 그 무엇도 따라올 수 없는 본연의 '순수'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아주 친한 사람이었던 듯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운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함께 새로이 등장한 또 다른 이야기, 또 다른 그림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릴리가 되어 그들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숨쉬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들만의 전통과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들과 매우 다르기 때문에 새롭고도 신기할 수 있었지만,  깊숙히 들여다본 근원의 모습은 매우 닯아있었기 때문에 친근할 수 있었다. 인간 그들은 정말이지  바라는 것이 없어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지극히 원초적이고 일차적인 본능과 감정에만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배가 고프면 짐승을 사냥해 잡아먹고, 또 배가 고프지 않다면 언제까지고 사냥을 하지 않고 지낸다 해도 무방한 삶이다. 먹는 것과 자는 것 외에 특별한 일과나 생활은 없으며, 시간도 없고 시계도 없고, 고로 특별한 계획이나 약속도 없는 그런 삶이다. 하루종일 해를 보고 앉아있어도, 말 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지낸다해도, 내킨다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방한, 그토록 마음을 따라, 몸물 따라, 물 흐르듯 잔잔하게 흐르는 삶이다. 
 

  그런데 이토록 순수하고 꺠끗한 대자연에도 조금씩 검은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오로지 자연과 서로 밖에 몰랐던, 그들은 조금씩 욕심을 알아가고 허영을 알아간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서서히 눈물을 흘리게 된다. 순수성을 잃은 채 조금씩 속세의 우리와 다름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은 이제 더이상 행복해보이지 않는 것이다. 원초의 '순수'를 지녔던 그들을 변화시킨 것은 무엇일까? 과연, 이것은 아주 먼 곳의,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일까? 우리의 잘못은 정말 없는걸까?    

  우리는 <아마존의 눈물>이는 수작 다큐멘터리를 릴리라는 소녀와 함께 새롭게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서 순수한 눈망울의 아이들은 원초의 '순수'가 변화하고 퇴색되어가는 것을 마음안에서 깊숙히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을 본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차오를지, 그런 아이들 앞에서 우리 어른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아이들을 봐야할지 고민이 된다. 여러모로, 어린이를 위하고는 있지만 어른이 더많이 배워갈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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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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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10 

- 잔잔한 파동에서 시작되는 삶 

 

 

  나는 추억의 대부분이 음악과 함께 다시금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상 할 만큼 기이한 능력을 가진 음악은, 그때 그 시간의 감정, 냄새, 피부의 느낌까지도 모조리 기억해내게 만든다. 마치 음악이 그 시절 그 순간 자체가 되어 나의 몸속에서 활개를 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음악은 누구에게나 추억과 함께 공존하게 마련이다. 녹턴, 클래식은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이 음악의 따뜻한 추억을 안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결국은 낯선 이국의 거리에 울려 퍼졌을 <대부>의 테마 곡이라든가, 아코디언과 기타, 클라리넷의 음율, 늙은 가수의 세레나데들이 오래도록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책 표지의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다섯 가지의 이야기로 묶여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음악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오묘하게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다.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너무나도 닮아있는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짧은 이야기들 속에는 연륜이 묻어나는 사랑도 있고, (다소 이해할 수 없지만) 가슴 시린 이별도 있고, 어떤 젊은이의 잔뜩 흐릿해 보이지만 언제나 빛나고 있는 꿈도 있다. 대부분의 글이 유럽의 거리, 음악과 연주, 사람에 대한 묘사들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책은 큰 이야기 없이 물처럼 잔잔하게 흘러간다. 언뜻, 밋밋하거나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잔잔함이 나를 매료시키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 분위기와 낭만에 취해버렸고,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특별히 고민하거나 상념하지 않고 말이다. 인생의 진리는 어쩌면 그 작은 순간들의 만남, 여러 잡다한 추억과 그 시간들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섯 편 중 인상 깊었던 글은 「말번힐스」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야기 모두에 특별할만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특별할 것 없는 것이 오히려 굉장히 특별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특히「말번힐스」속 음악을 하는 젊은이인 주인공이 나의 신경을 자극시켰다. 음악을 하며 유유자적 살아가는 주인공은 대학 동창들을 만나는 것에 약간의 피해망상을 가지고 지낸다. 동창들은 대부분의 동창들의 현재를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미래보다는 현재의 안락함에 부러워하거나 혹은 질투한다. 과연 그 애가 ‘성공적’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하지만 주인공과 그 동창들에게의 ‘성공적’ 삶에는 약간의 괴리가 있다. 그 부분이 나에게 몹시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주인공은 이렇다 할 목표를 이루지도, 뚜렷한 꿈을 이루진 못한 채 누나의 카페를 도우며, 남들이 보기에 다소 성공적이지 못해 보이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늘 그는 음악과 함께하였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들으며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틸로와 소냐 부부를 보며, 누군가의 ‘성공’ 혹은 ‘행복’은 감히 타인이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매우 성공적이어 보였으니까.

  음악의 잔잔한 파동, 그 파동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 매우 닮아있다. 삶은 사실 굉장한 굴곡이 아닌 이처럼 잔잔한 파동에서부터 시작되며 그 파동이 결국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야상곡(夜想曲)>이라고도 불리는, 물 흐르듯 잔잔한 <녹턴>을 듣게 된다면, 가보지 않았지만 가즈오의 글로 탄생한 나의 상상 속 그 곳, 그 거리의 그들을 떠오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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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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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박민규, 창비, 2010 
 

- 박민규의 우주 만나기
 
 

 

  단편은 주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쓴다는 그는, 『카스테라』 이후 5년 만에 두 번째 선물세트를 들고 찾아왔다. 그것도 두 배의 양, 두 배의 감동을 가진 총 18편의 단편으로 모인 이야기로. 제목도 ‘더블’이다.

  18편의 단편들 중에서 첫 번째로 주목한 소설은 2007 이효석 문학상 대상 작품인「누런 강 배한 척」이었다. 이 소설은 하늘에 계신 자신의 아버지에게 선물하는 소설이라는 글을 수상 소감과 더불어 보게 되었다. 그리고서는 '자신 따위'를 키우기 위해 몇 십 년을 회사에 다니신 아버지에게 고작 소설 밖에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굉장히 미안하고 미안해했다. 부모는 누구에게나 이토록 애틋한 존재, 미안한 존재로 다가온다. 하지만 언제나 조금씩 늦게.

  이 단편은 여러모로 느낄 것이 많은 소설이었다. 박민규의 글 치고는 특별한 상상력이랄지, 특별한 스토리랄지가 없이 굉장히 잔잔하고 일상적이게 흘러간다. 물론 그의 어법도, 그의 세계관도 그래도 담겨있긴 하지만 말이다. 회사를 정년퇴직한 주인공 남자에게는 치매에 걸린 아내가 있다. 뭐, 아들도 있고 며느리도 있고 딸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이 든 부모의 마음은, 자식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배신감과 소외감, 사회적 박탈감 같은 것들로 힘들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그 무엇보다 ‘이제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데, 소소하고 뻔한,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를 똑같은 속도로 더디게 견뎌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육 개월 전부터 모은 수면제를 가지고 아내와 마지막 한 달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소설은 그 여행에서 어떤 안마사를 만나고, 안마를 받게 되는 이야기에서 막을 내린다. 결국 그들이 정말 삶을 마감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쓴 글이라 그런지 어느 때보다 소설의 깊이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주지 말아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자꾸만 주게 되는 부모의 마음을, 큰 걸 해주는데도 도통 당연한 듯 받아내는 자식의 안일함을, 박민규는 짐짓 자신을 꾸짖듯이 덤덤하게 나무라고 있다. 이 시대의 어머니 아버지라면 비슷비슷하게 할 만한 생각을 글로 읽어버리니, 무서워졌다. 훗날, 아버지 어머니가 저런 의미의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신다면, 온 몸으로 막아 보아야 할 것 같다. 아니 그전에 그런 여행은 없을 수 있도록 막아보아야겠지.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소설은 「루디」였다. 제목에 걸맞게 배경은 알래스카, 등장인물도 모두 외국인인 이 소설은 처음부터 이질적이었다. 게다가 주인공의 여행 아닌 여행으로 인해 차를 타고 이어지는 소설의 전개는 로드무비적인 낭만을 주기도 전에 길에서 한 사내를 만나면서 잔혹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총을 든 그 사내는 이유도 알 수 없는 가운데 주인공의 귀를 없애버리고, 잔혹한 폭력을 행사하며 주인공과 동행한다. 정말, 무엇을 위해 이토록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도 사내의 악마스러운 행동은 계속된다.    

  주인공은 뉴욕의 증권회사에서 부사장으로 얼마 전 이혼을 했지만, 돈은 잘 벌고,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세금도 꼬박꼬박 잘 냈고, 지극히 양심적이고, 아무튼 평범한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을 수 있게 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말이다. 하지만 굉장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인공은 사내와 같은 의미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도, 또한 우리도 쉽게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어낸 후에는 우리 또한 서서히 그 이유를 납득하고, 이해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아무 잘못 없는 편의점의 가족들을, 모자라 어린아이까지 살인한 사내는 이유를 묻자 ‘약하니까’라고 답한다. 약한 것이란, 반대로 강한 것이란 무엇일까? 사내는 무엇으로 인해 그토록 고통 받았으며, 그것을 폭력으로 행사했던 것일까? 
  강한 임팩트만큼이나 여운도 길고, 생각할 것도 많은 소설이었다. 박민규의 가장 최근의 글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여기 저기 박민규식 어법이 그래도 살아있지만, 소설의 깊이가 한 층 깊어진 느낌이라서 읽는 내내 나로서도 더 진중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극히 ‘박민규’스러웠던 단편 중 하나였던 「굿바이, 제플린」은 가진 것 없이 평범한 이벤트 회사의 한 청년의 꿈에 관한 이야기다. 우선 돈을 좀 벌어서, 사랑하는 미려에게 청혼을 하고, 아파트 같은데서 즐거운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평수의 개념은 모르겠고 남향으로), 후에 자신의 공부를 위해 홀연 유학을 떠나는 그런...... 그가 늘어놓는 꿈에 대한 이야기는 비교적 구체적이고, 그리 터무니없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작은 꿈조차 쉽게 이루어 줄 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벤트 회사의 직원인 주인공은 대형 마트의 오픈 홍보를 위해 비행선을 띄우게 된다. 일본에서 어렵게 입수한 비행선의 이름은 제플린. 하지만 미리 띄어본 제플린은 멀리,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 때부터 박민규는 그의 꿈을 비행선 제플린에 비유하여 보여주고 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제플린처럼 주인공에게 '꿈'은 늘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 꿈이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꿈은 왜 늘 멀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늘, 박민규의 일인칭 시점은 박민규의 소설에 정말 탁월하게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시종 주인공이 내뱉던 혼잣말은 웃기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꿈이라는 말이 마냥 들뜨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닿을 수 없는, 만질 수 없는 바람처럼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꿈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또다시 종합선물세트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쓰여 졌다는 소설들이 모여, 우리에게 또 다른 세계의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마음껏 들려주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매우 즐거웠다. 하지만, 5년의 시간과 ‘더블’이라는 제목이 가진 무게 때문인지, 한 층 더 깊어진 깊이를 느끼며, 『카스테라』 때와는 또 다르게 진중해지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의 글에 깔려있는 즐거움을 깊숙이 파고들다 보면 언제나 그 끝에는 박민규의 우주가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그 커다란 박민규의 우주를 만나는 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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