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4주

내 맘대로 2011년 베스트 영화 추천!

 

 

  2011을 아래 5편의 영화로 정리하고 싶다. 좋은 영화들이 더 있어으나, 이 5편이 결국은 나의 2011년을 꽉꽉 채워주었다는 생각이다. 2011년의 막바지에 만나게 된 <기적>부터, 초반에 만나서 1년 내내 끙끙 알았던 <만추>까지. 참 고마운 영화들이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1

 

 

 

 

  영화는 시종일관 눈물과 불안이 아닌 웃음과 희망으로 말하고, 바라보며 다가간다. 그런데 그 웃음 끝에는 어느새 작은 눈물이 남게 된다. 하지만 이 눈물이 웃음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이 영화의 힘이고 매력이다. 터무니없이 엉뚱한데 허를 찌르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자지러지게 웃다보면 어딘지 모르고 애잔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 눈물이 결국 가 닿는 것은 희망이라는 사실이 또한 더욱 뭉클한 것이다.

 

 

 

  그 희망 자체가 어쩌면 말도 안 되는 기적일지 모른다. 상황은 언제 최악이 될지 모르고, 아이들은 천천히 차근차근 상처 받게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기적 같은 것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 희망한다. 가면 라이더가 되도록, 좋아하는 선생님과 결혼할 수 있도록, 강아지가 살아날 수 있도록, 배우가 될 수 있도록,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엄마, 아빠,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 화산이 폭발할 수 있도록. 아이들은 그것을 희망하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이러한 일들은 기적이며 일어 날 수 없다고 생각 하는 것은 어른들 뿐이다. 아이들로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믿을 수 없는 기적이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가족이 아닌 '세계'를 택하고야 마는 아이에게서 후회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삶의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그것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 그것이야 말로 기적이라는 생각이다. 어린 아이들의 작은 미신으로도 이렇게 삶 전체를 끌어올려 뒤흔들 수 있는 영화의 힘을 지켜본 것도 어쩌면 기적이다. 누군가는 끝끝내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 이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자전거 탄 소년>과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같은 날 보게 된 두 편의 영화는 똑 닮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태도는 굉장히 달랐다. (물론 여러모로 다른 상황이지만)<자전거 타는 소년>이 내내 위태롭고 날카로웠다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이런저런 애잔함을 삼켜버리는 따사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이 더욱 좋다, 라는 것보다는,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을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지 못하였던 듯하다. 돌아오던 길 의문과 자책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제야 다시 좋은 글을 읽으며 다시 골몰하고, 들여다보고 있는 이것도 나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이다. 12월의 문을 열어준 영화들이 좋아, 짧았던 우울도 금세 날아가버렸다.

 

 

 

<북촌방향> 홍상수, 2011

 

  평소보다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대중적이거나 친절한 영화는 또 아니다. 전작에 비해서는 깊이가 한 36배정도는 깊어진 느낌이니까. 허나, <하하하>보다도 즐겁게 보았다. 웃고 또 웃고. 어이없어서 웃고, 황당해서 웃교, 명쾌해서 웃고, 솔직해서 웃고. 그러게 웃다보니 어느순간 감독이 하고자 했던 묵직한 말이 온몸으로 와닿는 순간을 만날수도 있었다. 시간, 우연, 필연, 운명, 사람... 79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극히 제한된 장소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우주적이랄까, 굉장히 크고 깊어 평가하거나 말하기로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꼭 손안에 쥔 모래알이나, 비눗방울처럼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다. 입 밖으로 내비치는 순간, 그것은 마치 환상처럼 사라질 것도 같다. 그 느낌을 조금 더 오래 남기고 싶다면 속으로 곱씹고, 떠올리고, 생각하는 수밖에.

 

  그냥 정말이지, 올 겨울, 북촌의 술집 '소설'에 가서 우연과 필연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혜화,동> 민용근, 2011

 

  영화는 스물 셋의 혜화만큼이나 예민하고 섬세한 영화였다. 그래서 보는 내내 신경이 곤두선 체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중간 중간, 그 담담한 영화가 가슴으로 닿아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아무래도 여자들에게 더욱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열여덟, 자신과 한수의 아이를 갖게 된 혜화는 두려움보다는 설레는 표정으로 자신이 탄생시킬 새 생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을 달랐다. 혜화와 한수의 생명을 누구보다 두려워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 어른들, 도망을 가버린 한수, 자신 또한 두려워진 가운데 혜화는 아이를 잃게 된다. 하지만, 혜화가 작게 읇조렸던 대사처럼, '세상에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어?' 맞다. 누구나 무섭다. 다만 그 무섭고 두려운 상황을 어떻게 견뎌내는 가는 자기 자신이 하기 나름이다. 겁과 두려움과 위선으로 가득찬 '어른'이라는 존재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혜화를 힘들게 한다.하지만 또 그렇게 혜화를, 겨울에서 봄으로 이끌 듯, 어른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영화는 이렇게 유기견과 10대의 임신이라는 소재를 적절하고 조화롭게, 끈질기게 이어서 꾸려나간다. 컷 하나, 하나와 작은 소재 하나에도 굉장한 정성을 쏟은 것이 느껴지는 디테일하고 섬세한 연출은 역시 돋보인다. 또한 배우 유다인의 배우적 감수성은 매우 눈에 띄었다. 눈빛이 특히, 참 깊었다. 독립영화의 즐거운 발견이었다.

 

 

 

<파수꾼> 윤성현, 2011

 

  또래 친구들과 다름 없이 방과후 함께 야구를 하고, 여자 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을 치던, 누가봐도 친한 세명의 소년. 서로를 바라보며 짓던 그 말간 미소는 그들의 관계의 파국을 전혀 암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작은 오해는 관계의 균열을 만들어내고, 그 틈은 매워질 생각을 하기는 커녕 더 큰 오해들이 속속 파고든다.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이제는 처음을 찾기도 힘든 순간까지 와버렸기에 ‘미안하다’라는 사과는 그 의미도 가려진 체 부서져 내린다. 그리고 끝내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감독은 자신의 소년기를 추억하거나 회상하듯이가 아닌, 마 치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소년 자체가 된 듯 영화를 그려냈다. 이런 영화의 매력은 세밀하고 밀도 있는 연출과 시나리오에서 비롯된 듯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배우들의 몫이 가장 컸던 영화라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생각할 것이다. 시나리오 자체가 배우에게 내맡겨질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였고, 세 명의 굉장한 배우들은 몫을 그 이상으로 해낸 것 같다. 자칫 잘못했다면, 청소년들의 치기 어린 감정 싸움정도로만 보일 수도 있었을 영화였지만 배우들은 진지하고 사실적이고 신선한 호흡으로 연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쉽고 가볍게 넘겨버릴 수가 없게 된다. 특히 기태 역의 이제훈은, 많은 이들의 말처럼, 발견 중 발견이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로 존재했던 과거의 어떤 순간인지, 혹은 동윤의 바람이 담긴 상상인지 알 길이 없다. 동윤이 정말 기태에게 최고라 말해주었는지, 웃어주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것이 끝내 떠나버린 기태에 대한 동윤의 진심어린 사과였고, 후회와 고통으로 끝을 모르고 부서져내린 자기 자신에 대한 위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되돌릴 수 없을만큼 와버린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기태에게 쏟아냈던 날이 잔뜩 선 비수의 말들에 대한. 후회와 고통으로, 힘겹게 지어보이던 미소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우리 마음을 오랫동안 요동치게 만들었다.

 

 

 

<만추> 김태용, 2011

 

  영화를 보고 난 후 타이틀이 오르기 전의 첫 장면과 크레딧이 함께 흐르던 엔딩장면이 아주 오랜 시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볼 수 있었던 여운이었고, 감동이었다.

불안과 공포로 가득하던, 실제는 푸른 멍으로 가득하던 애나의 얼굴, 위태롭던 몸짓과 발걸음, 거리를 걸어 가까이 다가오다가 다시 어디론가 달려 들어가고, 쓰러져 있는 누군가의 옆에서 수많은 편지를 주워 정리하고, 사진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씹어먹고, 경찰차 소리는 가까워만 지고... 그 불안하고 위태롭던 첫 장면은 영화를 보는 내내 뇌리에 남아 내 마음을 움켜쥐었다 풀어주었다를 반복하였다.

  또 엔딩은, 2년이 지난 후 여전히 안개가 자욱한 밖이 내다보이는 카페에서 그를 기다리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는 자동으로 고개가 꺽이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찻잔을 잡고, 그를 어떻게 맞이할지 연습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 그 모습은 정말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 영화는 중간 중간의 장면들이 순서를 잊은 체 조각 조각 떠오르다가도, 결국은 첫장면과 끝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안개가 가득 낀 눅눅하고 음울한 분위기의 시애틀. 안개가 가시는 날이 드문 시애틀에서 빛을 잃은 그녀가 7년만에 세상과 마주한다. 그것도 특별 휴가를 얻은 72시간 짧은 시간동안.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 만큼이나 긴 사연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는 여주인공 애나는 다소 껄렁거리는 제비로 살고 있지만 순간 순간 깊이 있는 진심이 엿보이는 훈을 만나게 된다. 시애틀이라는 도시 속에 둘은 이방인이다. 또한 애나는 수감 생활 동안 도무지 생경해져버린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아물지도 못한 상처에 덧입혀진 시간이라는 비겁함을 시시각각 보여주고 있다. 그 짧은 시간조차도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던, 가장 따뜻할 가족에게조차도 큰 안정감을 얻지 못했던, 무표정에서도 읽을 수 있던 가슴 시린 상처를 가진 여자 애나. 그런 애나가 신기하게도 처음만난 한국인 남자에게서 마음을 풀어놓고, 또 진심어린 위로를 받게 된다. 나는 그것을 애나가 중국말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말하고, 훈이 하오(좋다)와 화이(안좋다)만으로 대화를 나누던 장면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애나가 얻은 특별 휴가 72시간동안 작은 도시 안에서 애나와 훈은 우연히 혹은 필연히,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함께 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고, 서로 다른 언어로도 가능했던 깊은 교감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은 그렇게, 안개가 자욱해 좀처럼 햇살을 찾을 수 없었던 시애틀에서 안개가 거치던 찰나의 순간 속에 빛을 만났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을 담아내는 영화가 그렇듯이 굉장히 강렬수 있도 있지만, 또 지루해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추>는 강렬하지는 않다. 그런데 지루지도 않다. 두 사람이 함께 시애틀의 거리를 천천히 걸어 나가듯, 무거운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그렇게 잔잔하게 스며온다. 그렇게 잔잔히 스며든 감정들은 가슴 속에 차곡 차곡 남아, 오래도록 지속된다. 천천히 스며오는 것이 한 순간에 빵, 터지는 무엇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김태용 감독이 이 영화의 장면 장면에 얼마나 세심하게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영화가 긴장감을 가지지 못하고 흘러가던 중반(애초부터 크게 긴장감이 필요하지도 않던 영화란 생각이지만), 지루함을 줄 수도 있을 법한 부분에서조차 나를 매료시켜버린 데에서 느낄 수 있다. 사실 영화는 유독 강렬했던 첫 장면 이후 매 장면 장면이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졌다. 애나가 길을 걷다 발견한 쇼윈도의 화려한 옷을 입어보는 장면도 그러했고, 애나가 훈과의 정사를 나누지 못하던 장면도 그러했고, 유원지에서의 판타지가 가미된 장면도 그러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애나의 어머니 장례식 후 식당 장면에서였다. 시종 답답하리만큼 절제되어있었기에 당연히 없을 줄 알았던 애나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남의 포크를 썼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에서 시작된 장면이 어떻게 그렇게 지독하게 슬플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웠다. 그 외에도 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 관객을 집중시키고 끌어들이는 힘이 상당했다. 김태용 감독이 얼마나 예민하고 감성적인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영화는 고스란히 김태용 감독을 닮아있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김태용 감독의 영화적 감수성이 참 좋다. 이 영화에서도 그것은 유감 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탕웨이라는 배우의 눈빛과 연기에 대해서는 첫장면에서부터 감탄을 해왔다. 그리고 완전히 절제 되어있으면서도 모두가 드러나던 그 눈빛과, 표정은 시종 나를 안타까움에 몸서리 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탕웨이가 연기하는 애나의 감정만을 따라가다 보면 자욱한 안개 속 아주 특별하지만 가슴 먹먹한 빛을 만나고 올 수 있다.(지루하다, 심심하다 느낄 틈이 없다. 그 복잡하고 오묘하고 먹먹한 감정에는) 현빈, 훈은 애나에 비해 무겁지 않아 좋았고, 그래서 애나의 그 무거운 사연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캐릭터여서 영화에 적절하게 녹아있었다. 그런데 나는 애나가 휴가를 마치고 다시 감옥으로 들어갈 때까지도 그녀가 훈에 대해 마음이 전부 열린 것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다. 사실은 알 지 못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2년이 흐른 마지막 장면에서 끝내도록 그를 기다릴 그녀의 모습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굉장한 안타까움이었다. 첫사랑에게도, 남편에게도, 세상에게도 버려졌던 그녀가 또 훈에게조차 버려졌다 생각해버릴까 끝끝내 아쉬웠다.

  그런데 이 영화, 멜로라고 하기에는 조금 아까운 구석이 있는 영화다. 장르가 멜로, 애정, 로맨스, 드라마라고 되어있던데, 나로서는 이 영화가 애나라는 한 여자가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또한 사람과 사람의 깊이 있는 교감을 보여주는, 서로 다른 언어로도 가능했던 진심어린 소통의 영화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 동안의 아주 긴 이야기를 정성스레 들려주는 여운이 참으로 긴 영화다.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좋은 영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