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
표재명 지음, 박정원 엮음 / 드림디자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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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앞에 선 단독자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윤리 시간에 들어봤을 이름 키에르케고르가 남긴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엉뚱하게 그의 정확한 이름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나는 키에르케고르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키르케고르라고 쓰기에 현대 문법에 맞는 표기법인가 했더니 이 책에서는 줄곧 키에르케고어라고 지칭한다. 덴마크사람이라서 표기체계가 분명하지 않아 생긴 문제인가 보다.

이 책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40대 중반 아버지가 1970년대를 살던 덴마크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에서 비롯된다. 평생 키에르케고어 철학을 연구했던 으뜸 권위자인 표재명 박사가 돌아가신 후, 그가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 꾸러미를 발견한 아들 내외의 약속에서 시작된다. 5년 후 이 엽서들로 책을 내자고. 그러나 그로부터 3년 뒤에 아들도 세상을 떠나며 그 충격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요양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책은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아내의 마음과 시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표재명 박사가 1년간 덴마크에서 유학하면서 자신이 평생을 연구하며 존경했던 키에르케고어와 관련된 곳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의 삶의 흔적들을 되짚어가는 1장 뒤에는 그가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남긴 실제 엽서 내용, 생전에 번역하거나 기고했던 그의 생각이 담긴 글 그리고 가족들이 보내는 편지라는 이름의 추모글 성격의 전기 형식의 글들이 실려 있다.

키에르케고어는 인간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다고 표현했다. 학생 시절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더러 있었는데, 아마도 인간은 모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이로 인한 불안을 안고 사는 존재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던 누군가의 말과 같은 맥락인 듯하다. 태어났기에 탄생과 죽음의 사이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인간이고, 그 끝이 죽음인 것은 모두 동일하니까.

이 보편적인 사실에 대한 해석이자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철학이라는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인간이 왜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존재인지, 사실 자신도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던 어린 벗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차피 나도 모르고 다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대화 내용이 수많은 철학자들의 평생의 의문이자 간절히 풀고 싶은 숙제였다는 것은 확실히 안다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나는 일단 죽고 싶지 않다. 살아 있는 지금이 소중하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많으며 한 번 사는 인생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 보고 싶다. 공부하고 싶은 분야도 명확해졌고,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길을 잃고 혼자 성질을 내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에르케고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정도는 견뎌 보고 싶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것들이 언젠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다시 살아 볼 이유가 되어준다면 너무나 기쁠 것이다.

이름은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지만, 따스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책인 것에 비해 이 책을 구성한 사람들은 평범하진 않다. 표재명 박사의 덴마크에서의 1년은 코펜하겐 대학 연구교수 시절이고, 이 책을 엮은 며느리는 현재 이화여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가족 구성원들도 비슷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나는 그 구성이 특이하고 요즘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 책을 읽고 싶었지만, 따스한 엽서만 생각했던 사람들은 이 책 구성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엽서의 외적인 부분이 궁금했던 터라 흥미롭게 읽었다.

키에르케고어라고 지칭된 그 철학자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으로 보아 표재명 박사가 보낸 엽서에는 아주 많은 것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엽서와 한 아버지의 따뜻함을 기대했다면, 그것도 담겨 있지만, 그 사람의 생각과 철학도 함께 읽을 수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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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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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는 <심연을 본 사람>으로 불리는 판본이 가장 유명하다. 즉,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편역자 앤드류 조지는 바빌로니아 전공 교수로, 길가메시 설형문자 해독을 위해 여러 차례 이라크를 방문하며 바빌론과 고대 지역을 탐사했다고 한다.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생각은, 하나의 학문은 독립적인 분야일 수 없다는 것. 인문 치료를 공부하려는데, 정신분석을 공부해야 한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려면 대표적으로 프로이트와 융을 만나게 된다. 나는 이 중 융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데, 융과 꿈 분석에 대해 공부하면서부터 신화와 상징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신화를 공부하면 종교학도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이 혼란이 길가메시가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그 무언가에 대한 해답과도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주인공 길가메시는 서두에서 폭군으로 묘사된다. 백성들이 이를 견디지 못해 신에게 하소연하고 신들은 그에게 맞설 야생인간 엔키두를 창조하는데, 이렇게 탄생한 엔키두는 야생동물들과 함께 자라난다. 그러나 엔키두는 그와 친구가 되어 함께 삼나무 숲으로 원정을 떠난다. 이들은 두려움 속에 서로를 토닥이며 숲의 왕 훔바바를 처단한다. 이 과정에서 훔바바는 엔키두를 배신자라 비난하며 저주를 퍼붓는다.

인류 최초의 신화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다. 길가메시는 훔바바의 저주를 받아 급격히 쇠약해지는 엔키두를 결국 잃고 만다. 친구의 허망한 죽음에 공포를 느낀 길가메시의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그는 불멸을 얻기 위해 또다시 길을 나선다. 이후 그가 겪는 이야기들 중 상당수가 성경 속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세상을 물로 덮어 인류를 정리하려 했던 신의 계획 속에서도 살아남은 아타나피쉬티의 이야기는 노아의 방주와 흡사하다. 그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현자 혹은 상담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거칠 것이 없던 길가메시도 그의 앞에선 온순하고 겸손해진다.

영생을 얻는 법을 전수받진 못했지만, 바닷속 산호초에 대한 정보를 얻는 길가메시는 잠시 기뻐하지만, 이내 뱀들에게 그마저도 빼앗기고 망연자실한다. 그러나 거듭되는 도전과 실패 혹은 좌절 앞에서 길가메시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직접 분석해 보기를 추천한다.

길가메시 이야기는 영웅 서사시의 성격을 띠지만, 말투만 바꾸면 소설 같기도 하고, 그래서 신화인가 싶지만 친근한 어른의 조언 같기도 하다. 인간의 깨달음과 성장을 환상적이지만,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려낸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길가메시의 이야기에 매료된 것이 아닐까 싶다.

짧은 이야기라 쉽게 읽힐 것이라는 나의 교수님의 추천에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400페이지가 넘는다. 금방 읽을 것이라고 하셨으나 나는 3일에 나누어 읽었다. 교수님과 나의 깊이가 다름을 여실히 느끼게 되는 부분.

신화나 정신분석, 꿈 분석, 종교학,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꿈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길가메시가 서서히 변화하고 성장해나가는 부분을 한 권에서 모두 볼 수 있다. 현대 지성에서 나오는 책들은 클래식한 인문학 서적이 많은 느낌. 겨울에 바쁜 일정 마치고 다시 한번 더 읽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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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문 - 단 한 번의 삶, 단 하나의 질문
최태성 지음 / 생각정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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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
사인 문구에서 그분의 마음이 느껴진다.
큰별쌤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역사 강사 최태성의 새 책.
좋은 문장이 많아서 오랜만에 형광펜을 들고 읽은 책이기도 하다.

책머리에서 저자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답이 없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만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또한 이 책에는 사건과 인물을 바라보는 저자만의 ‘시선’이 존재한다고. 바꿔 말하면 관점은 시선이고 또한 한 인간의, 다른 인간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역사의 본질이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는 사실을 도외시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역사를 향한 시선은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귀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참으로 근사한 어른이시다. 자신의 전공에 대한 애정도 느껴지지만,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과 후속 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언(遺言)을 다룬 부분이 인상적이다.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에 바쳤던 우당 이회영 선생의 일화가 특히 가슴에 남는데, 우당 선생은 평생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대답은 “내 일생으로 답했다”였다.

한 줄의 명언으로만 봐도 깊은 여운이 남는 말씀이지만, 일제 강점기 시대에 전 재산을 처분하고 평생을 독립운동으로 보낸 사람의 ‘일생’은 감히 상상하기도 조심스럽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나는 마지막 순간에 나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게 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힘을 가진 말이다. 나는 나의 일생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광종과 매미의 이야기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매미는 2년에서 길게는 7년을 기다려야 우리가 알고 있는 성충으로서의 매미의 모습이 된다. 그리고 한 달 이내에 짧은 생을 마친다고 한다. 우리가 여름에 듣는 과하게 시끄러운 그 매미 울음 소리는 어쩌면 내가 지금, 이곳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아니었을지.

광종은 왕보다도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호족들의 의심의 눈초리로부터 자유로워지기까지 7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경계가 느슨해지기를 기다려 조금씩 그간 준비해 온 일격을 가한다.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여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양민으로 회복시켜주어 국고를 안정화시키면서 동시에 호족들의 세력을 조금씩 빼앗는다. 그리고 과거제를 시행함으로써 능력이 인정받은 자들을 등용하며 외국인에게도 기회의 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진정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충성을 다하는 인재들을 얻기에 이른다. 이미 호족들은 명분도 세력도 잃은 후라 감히 임금의 결정에 크게 항의할 수 없다.

저자는 광종의 인내의 세월, 차분한 준비는 본받을 만하지만 이후의 공포정치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음을 언급한다. 이 부분이 특히 저자가 참 좋은 어른이라 느껴졌다.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한 인간의 업적을 업적으로만 평가해주고, 비판할 부분은 객관적으로 비판해주는 어른이 늘어나면 좋겠다. 비판적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면서, 비난이 아닌 비판적인 시각,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가르쳐 줄 스승이 많아지면 좋겠다.

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책을 좋아한다.
그동안 내게 가장 좋은 책은 유강하, <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이었지만, 앞으로는 두 번째로 좋은 책이 생겼다고 말할 것 같다. 역사를 좋아하지 않아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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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농담
김준녕 지음 / 채륜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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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여기 적힌 글들은 소설이 되지 못한 작가의 파편이라고 한다.

작가의 일기는 책이 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생각의 파편 혹은 단상이라는 말을 사용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하다. 생각의 파편들을 떠올리고 글을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신없이 사느라 나는 내 글을 쓰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이 책은 작가의 단상 혹은 에세이 혹은 농담 같은 것들, 말 그대로 단상집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며,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꾸미면 꾸밀수록 덜 아름다워지며,
빼면 뺄수록 거대해진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p. 32-33)


생각이든 말이든, 감추려 하면 할수록 진심이 드러나는 일들을 보곤 한다. 에둘러 표현한다고 여러 겹 감싸봤자, 사실은 간절히 감추고 싶었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꼴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말의 힘이자 글의 잔인함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나를 감추었다고 착각했으나 나의 전부인 나의 글들처럼.

불행한 사람일수록 과거를 헤맨다.
술에 취해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다고 으스대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p. 121)

불행한 또는 현실에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은 현실을 감추려 한다.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감추는 것이 무슨 문제이겠냐만, 과거의 자신을 부풀리거나 현실의 빛나는 조각 하나만을 전체인 양 바라보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결코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사실 무해한 행동이긴 하나, 무해하면서도 무익한 행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소중한 자신의 오늘을 열심히 살지 않고 그저 남에게는 어떤 흉이 있는지, 남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은 없는지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고 싶지는 않다.

바람 한 점에도 언제든지 멀어질 수 있는 것. 설령 그것이 끊어질 수 없는 관계라 지금 느껴진다고 해도. (p. 199)

‘관계’의 의미를 규정지어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에게 관계는 가깝고도 먼,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진중한, 변화무쌍한 그 무언가라고 대답하게 될 것 같다. 가장 소중했던 관계가 아침 안개처럼 한낮에 눈앞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꽤 단단해 보였던 철옹성이 무너지기도 하며, 절대 이어지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와 뒤섞여 있기도 한 것이 관계이자 인연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므로.

가볍게, 가끔은 차분히. 호흡은 길게, 가끔은 물방울처럼 끊어가며 함께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농담이라지만 장난스럽지는 않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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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 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속 명언 320가지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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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이야기들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 <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 (유강하) 에서 본 이야기가 생각난다. 실제로 그림 형제의 동화 속 이야기들은 지금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들이 아니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하얀 눈처럼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진, 여린 소녀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시 그림 형제가 수집해서 출간한 그림 형제 동화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라는 거냐는 비난에 직면한 그림 형제는 과감히 이야기를 수정한다. 끔찍하고 잔혹한 부분을 수정하고, 냉혹한 비웃음으로 어머니의 고통을 바라보던 백설공주는 선하고 약한 소녀로 변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자신이 사람들 사이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이 들면 안심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속 명언을 320개로 정리해 두었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동화 모음집 같은 느낌인데 번호를 따라가며 읽는 재미도 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위험 앞에서 두려움을 느껴.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맞서는 것인데, 너는 이미 그런 용기를 충분히 갖고 있어 (p. 112)

오즈의 마법사 속 문장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여행을 떠나는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사자와 도로시의 여행을 함께 하는 기분으로 읽었다면 이제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용기를 내는 동화 속 인물들에 나를 투사하고 있다. 내가 이 친구들의 상황이라면 과연 용기를 낼 수 있을지, 패기 넘치게 떠난 길에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지. 무엇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동화의 매력이 아닐까.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두 읽을 수 있는 동화는, 그 모습은 그대로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이야기와 세상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에 가장 친근했던 캐릭터가 성인이 된 나에게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 악당같이 느껴졌던 캐릭터가 이제는 안쓰럽게 보이기도 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정말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의 나는 ‘행복’으로 할래 (p. 126)
이미 유명한 문장이 아닐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문장이다.
내 감정을 주체적으로 정하는 것부터가 행복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남의 눈치를 보는 동안은 온전히 행복할 수 없고, 내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한 나는 스스로에게 근사한 사람일 수 없다. 그날그날 나의 감정을 스스로 정하거나 정리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의 소중한 감정이 누군가를 찌르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어른은 가끔 동화를 그리워한다.
동화책이 그리운 것인지, 동화를 읽던 시절이 그리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가끔은 동화를 꺼내어 읽는다. 나는 변해도 동화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화를 보는 눈이 변하면서 이야기도 함께 변한다. 이것이 동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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