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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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는 <심연을 본 사람>으로 불리는 판본이 가장 유명하다. 즉,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편역자 앤드류 조지는 바빌로니아 전공 교수로, 길가메시 설형문자 해독을 위해 여러 차례 이라크를 방문하며 바빌론과 고대 지역을 탐사했다고 한다.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생각은, 하나의 학문은 독립적인 분야일 수 없다는 것. 인문 치료를 공부하려는데, 정신분석을 공부해야 한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려면 대표적으로 프로이트와 융을 만나게 된다. 나는 이 중 융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데, 융과 꿈 분석에 대해 공부하면서부터 신화와 상징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신화를 공부하면 종교학도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이 혼란이 길가메시가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그 무언가에 대한 해답과도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주인공 길가메시는 서두에서 폭군으로 묘사된다. 백성들이 이를 견디지 못해 신에게 하소연하고 신들은 그에게 맞설 야생인간 엔키두를 창조하는데, 이렇게 탄생한 엔키두는 야생동물들과 함께 자라난다. 그러나 엔키두는 그와 친구가 되어 함께 삼나무 숲으로 원정을 떠난다. 이들은 두려움 속에 서로를 토닥이며 숲의 왕 훔바바를 처단한다. 이 과정에서 훔바바는 엔키두를 배신자라 비난하며 저주를 퍼붓는다.

인류 최초의 신화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다. 길가메시는 훔바바의 저주를 받아 급격히 쇠약해지는 엔키두를 결국 잃고 만다. 친구의 허망한 죽음에 공포를 느낀 길가메시의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그는 불멸을 얻기 위해 또다시 길을 나선다. 이후 그가 겪는 이야기들 중 상당수가 성경 속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세상을 물로 덮어 인류를 정리하려 했던 신의 계획 속에서도 살아남은 아타나피쉬티의 이야기는 노아의 방주와 흡사하다. 그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현자 혹은 상담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거칠 것이 없던 길가메시도 그의 앞에선 온순하고 겸손해진다.

영생을 얻는 법을 전수받진 못했지만, 바닷속 산호초에 대한 정보를 얻는 길가메시는 잠시 기뻐하지만, 이내 뱀들에게 그마저도 빼앗기고 망연자실한다. 그러나 거듭되는 도전과 실패 혹은 좌절 앞에서 길가메시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직접 분석해 보기를 추천한다.

길가메시 이야기는 영웅 서사시의 성격을 띠지만, 말투만 바꾸면 소설 같기도 하고, 그래서 신화인가 싶지만 친근한 어른의 조언 같기도 하다. 인간의 깨달음과 성장을 환상적이지만,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려낸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길가메시의 이야기에 매료된 것이 아닐까 싶다.

짧은 이야기라 쉽게 읽힐 것이라는 나의 교수님의 추천에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400페이지가 넘는다. 금방 읽을 것이라고 하셨으나 나는 3일에 나누어 읽었다. 교수님과 나의 깊이가 다름을 여실히 느끼게 되는 부분.

신화나 정신분석, 꿈 분석, 종교학,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꿈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길가메시가 서서히 변화하고 성장해나가는 부분을 한 권에서 모두 볼 수 있다. 현대 지성에서 나오는 책들은 클래식한 인문학 서적이 많은 느낌. 겨울에 바쁜 일정 마치고 다시 한번 더 읽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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