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농담
김준녕 지음 / 채륜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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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여기 적힌 글들은 소설이 되지 못한 작가의 파편이라고 한다.

작가의 일기는 책이 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생각의 파편 혹은 단상이라는 말을 사용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하다. 생각의 파편들을 떠올리고 글을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신없이 사느라 나는 내 글을 쓰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이 책은 작가의 단상 혹은 에세이 혹은 농담 같은 것들, 말 그대로 단상집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며,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꾸미면 꾸밀수록 덜 아름다워지며,
빼면 뺄수록 거대해진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p. 32-33)


생각이든 말이든, 감추려 하면 할수록 진심이 드러나는 일들을 보곤 한다. 에둘러 표현한다고 여러 겹 감싸봤자, 사실은 간절히 감추고 싶었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꼴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말의 힘이자 글의 잔인함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나를 감추었다고 착각했으나 나의 전부인 나의 글들처럼.

불행한 사람일수록 과거를 헤맨다.
술에 취해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다고 으스대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p. 121)

불행한 또는 현실에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은 현실을 감추려 한다.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감추는 것이 무슨 문제이겠냐만, 과거의 자신을 부풀리거나 현실의 빛나는 조각 하나만을 전체인 양 바라보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결코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사실 무해한 행동이긴 하나, 무해하면서도 무익한 행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소중한 자신의 오늘을 열심히 살지 않고 그저 남에게는 어떤 흉이 있는지, 남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은 없는지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고 싶지는 않다.

바람 한 점에도 언제든지 멀어질 수 있는 것. 설령 그것이 끊어질 수 없는 관계라 지금 느껴진다고 해도. (p. 199)

‘관계’의 의미를 규정지어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에게 관계는 가깝고도 먼,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진중한, 변화무쌍한 그 무언가라고 대답하게 될 것 같다. 가장 소중했던 관계가 아침 안개처럼 한낮에 눈앞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꽤 단단해 보였던 철옹성이 무너지기도 하며, 절대 이어지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와 뒤섞여 있기도 한 것이 관계이자 인연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므로.

가볍게, 가끔은 차분히. 호흡은 길게, 가끔은 물방울처럼 끊어가며 함께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농담이라지만 장난스럽지는 않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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