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이야기 2 사하라 이야기 2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지나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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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좋아하는 중국의 작가, 싼마오의 산문집.

중국에서 태어나 대만으로 이주하여 사막에서 살다 간 유랑인 싼마오. 젊은 나이에 바람처럼 세상을 등졌지만 여전히 대만과 중국에서 사랑받는 작가다. 나도 여행가서 싼마오가 쓴 산문집을 원서로 사고 싶었는데, 양이 많아 한 권만 들고 오게 했던.


사하라 이야기는 워낙 인기가 많아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 제목 중 하나인 ‘흐느끼는 산타’는 또 다른 책으로 출간되었다. 나도 그 책으로 싼마오를 알았고.
이 책에는 사막에서 그녀가 겪은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평온하고 유쾌하면서도 꽤 묵직해서 그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중국의 독자들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그녀의 남편 호세는 비교적 현실적인 성격이지만 싼마오는 사막에 부는, 정말 바람 같은 가끔은 공 같은 사람이다. 아프리카 사막에서 겁도 없이 모르는 사람을 차에 태우고, 호세는 그런 그녀를 만류하며 걱정한다.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은 사람이 많지만, 순진한 얼굴을 한 주민들에게 소소한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요즘 표현으로 호구가 되기도 하나 굴하지 않고 유쾌하게 넘긴다. 수십 년 전이지만 그때도 위험했을 텐데, 아마도 사람들이 싼마오를 사랑하고 여전히 그리워하는 것은 이런 모습이 부럽고, 사랑스러워서가 아닐까.

여기서는 모래 한 알, 돌멩이 한 개도 귀하고 사랑스럽다.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광경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생생한 얼굴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겠는가 (p.151)


사하라 사막 생활 중 남편 호세가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사막에서 그녀의 친구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다. 그들의 이야기가 흐느끼는 낙타.


깨어날 때마다 기억들이 카메라 렌즈에서 어지럽게 쏟아져 나오듯 나를 괴롭혔다. 미친 듯이 울부짖던 그때의 참극이 자꾸만 자꾸만 새롭게 나타난다. (p. 225)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사막의 생활들이 담긴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같은 이유로 그녀의 책들을 좋아하고.
그러나 단순 여행이나 일상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당시 사하라지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던 정치적인 충돌과 격변의 모습들이 투명하게 담겨 있다. 힘없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버리는 싼마오의 모습을 보며 반성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사람과 친구가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흘러넘치는 정의로운 마음으로 인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었다면 심장이 철렁할 정도로 용감하게 나서서 걱정스럽긴 하지만, 주변에 사는 사막의 이웃들이 싼마오를 친구라 여겼던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벙어리 노예에게 샤헤이피(친구라는 뜻)라 부르고, 그를 응원하며 그의 아픔에 눈물 흘려줄 줄 아는 모습도 싼마오의 매력이고.


차가 움직이자 사람들이 길을 내주었다. 벙어리 노예의 그림자는 석양 속으로 점점 멀어져 갔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울지 않았다. (p. 223)


오랜 세월 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탄탄한 문장력과 여운이 남는 글 스타일이 가장 기본일 것이다. 편안하면서도 자꾸만 읽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그녀의 글들이 가진 강력한 힘이다. 어떤 날씨에 읽어도 깊이 빠져드는. 유쾌하지만 깊은 싼마오의 사하라 이야기.

그녀의 영혼은 사막을 거닐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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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경찰
이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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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간 형사로 재직하면서 1천 명이 넘는 범인을 검거했다는 이대우 형사의 책. 다시 태어나도 지금 직업을 선택하겠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건을 수사하면서 작성하던 비망록에 범인을 생각하며 적었다는형사의 말이 믿음직하다.

기다려라 (중략) 곧, 만나게 될 것이다. (p. 32)

나의 친한 친구도 경찰이다.
사람들은 여경이라 부르지만, 내가 보기엔 참 멋진 경찰이다. 피해자들의 사연에 마음으로 공감해주기도 하고, 죄를 지은 사람들을 객관적인 마음으로 수사하려고 노력하는. 세상이 아무리 본분을 잊은 경찰들을 견찰이라는 말로 손가락질하고 비웃어도 실제로는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진짜 경찰들이 더 많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치안이 좋은 나라에 속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설명해 놓은 부분들이 눈에 띈다. 나도 얼마 전까지 헷갈렸던 것 중 하나인 경찰과 형사. 이대우 형사는 모든 형사는 경찰이며, 경찰 중에서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사람이 형사라고 정의한다. 경찰복을 입으면 신분이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형사들은 주로 사복을 입는 것이라고. 아마도 우리가 형사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가죽 잠바나 등산복 같은 옷을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일 듯하다.


독직폭행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었다. 직권을 남용해 사람을 체포해 감금하거나 가혹한 폭행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수사과정 특히 범죄 피의자가 일단 수갑을 찬 상태에서는 절대로 그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한다.
미란다 원칙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피의자라해도 기본적인 인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다만 과하게 보호되는 피의자들만의 인권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경찰들도 좋아하는 듯하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시켜줘도 못할 것 같은 직업을 말하자면 의사나 경찰, 검찰이 아닐까. 몸이 아픈 사람이나 범죄자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일반인의 정신으로는 쉽지 않을 듯하다. 객관적인 마음을 유지하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적절하게 활용해야하며, 사람의 인생이 내 손에 달렸다는 것은 내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속설이자 정설처럼 전해지는 말에 대한 해명도 흥미로웠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지만, 일반적으로 범인이 현장에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예외도 있는데 방화 사건의 경우는 불이 활활 타오르거나 자신이 불을 지른 현장이 얼마나 복구됐는지 살펴보며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형사 생활의 가성비에 대한 솔직한 의견도 신뢰가 가는 부분이다. 냉정하게 가성비만 따지고 보면 형사는 기피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더 중요한 가치를 따져야 한다는 말. 경찰인 내 친구도 분명 쉬는 날이지만 나와 함께 있다가 급히 헤어지고 업무에 복귀하는 일이 꽤 있었다. 상황을 알기에 이해하지만, 경찰이라는 직업은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잡고 싶은 범인을 잡아 구속해 최고형을 받게 할 때는 성취감이 크지만, 정말 나쁜 사기범들을 잡아서 입증해도 빽과 돈으로 풀려날 때는 적지 않은 상실감이 밀려듭니다. (p. 256)


이런 마음을 가진 경찰들이 많아진다면 더욱 신뢰받는 경찰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는 부정부패와 관련된 일이 발생하면 공무원들은 예외 없이 엄벌에 처하되, 경찰의 공권력부분은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들에게 이미 감사한 마음이 더 크지만,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는 부분은 도려내는 일부터 이루어져야 그 귀한 손에 더 많은 신뢰와 힘을 실어줄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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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 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문보영 지음 / 웨일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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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목표가 아득할 땐, 눈앞의 작은 목표를 만들고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도달해 있을 거라고 믿는다. 목표를 까먹는 방식으로 얼렁뚱땅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노리는 인생 전략으로 불안도 어둠도 할부하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손글씨로 쓴 일기를 우편 봉투에 넣어 독자들에게 배송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문보영 작가는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을 느끼기에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선택한 것이 버리는 일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스트레스와 공허함이 극에 달했을 시절에 이미 경험했던 감정이라 어떤 고통인지, 얼마나 안 끝나는지 잘 알기도 하고.
나도 언젠가부터 버리는 일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기에 동질감도 들었던 것 같다.


이따금 열심히 마감한 원고에 대한 수정 요청이 들어올 때, 스스로를 희망 꼴통이라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에 잠시 작년에 만났던 분을 생각했다.
원고를 넘기고 잠깐이나마 복잡한 마음을 쓸어내리려는 찰나에 원고 수정을 부탁도 아니고, 통보받으면 어떤 기분인지는 굳이 표현하고 싶지 않다.

작가는 낭독회에서 ‘시를 쓸 때 대중은 고려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고, 무례하게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잠시 침묵했다고 한다. 나도 작년에 북토크에서 결이 비슷한 질문들을 받았다.

우연히 읽게 된 내 글로 인해 책도 사고, 나라는 사람이 궁금해져서 북토크까지 오셨다는 감사한 분. 내 글에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느낌이 느껴져서 궁금하기도 하고, 어딘가 어두운 느낌도 드는데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묻고 싶었다며 길게 돌려 질문하셨다. 앞으로도 나만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글을 쓸 것인지,
잘 팔릴 만한 글을 쓰며 스타 작가가 되고 싶은지.

나는 듣자마자 대답했다.
쓰고 싶은 대로 쓰면서 대중의 마음도 읽고 싶다고. 책도 많이 팔려서 글만 쓰면서 살게 되길 바라지만, 나만의 스타일은 아직 나조차도 찾지 못했고, 난 버려지는 글보다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여건이 되면 찬찬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도 알기 힘든 게 요즘이다. 여건만 되면 그냥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든다.


사람들은 결론과 주제를 좋아한다.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칠 때, 작품의 주제를 요약하고 파악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자습서에는 네모난 지문 아래에 결론과 주제가 한 문장으로 요약되어 있다. (p. 34)


문득 신경림 시인이 떠올랐다. 비 오는 저녁, 교과서에서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혼자 강연을 들으러 갔다. 일단 예쁜 성함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이셔서 놀랐고, 국어문제집에 나온 본인의 시가 반가워 문제를 풀었는데 틀리셨다는 말에 뭔가 씁쓸했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재해석되는 순간이 진짜 문학으로 생명력을 인정받는 순간이라 생각했는데, 정답이라는 조건이 붙으면 모든 것이 애매해진다.



낡은 곰 베개를 결국 버리는 작가의 마음을 읽는 동안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얼마 전, 큰 정리를 해야 했다. 작년에도 대대적으로 버리긴 했지만, 올해도 그 만큼 내다버렸다. 더러는 사용하지 않은지 1년이 넘은 것도 있었지만, 더러는 새것도 있었고, 더러는 절대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실은 그래서 버렸다.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버린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나와 함께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작별 인사였다. 작가도 다양한 마음을 담아서 버렸으리라.



자신만의 방법으로 불안을 비롯한 마음의 짐들을 청소해나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라 모처럼 긴장하지 않고 편안히 읽었다. 요즘 기형도 시인에 관한 책들을 쌓아두고 읽는 중인데, 그것을 다 읽으면 문보영 시인의 시도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더불어 어머니와 그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평온하길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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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를 바꿨더니 관계가 찾아왔습니다 - 품위 있고 간결하게, 내 편으로!
김범준 지음 / 생각의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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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평점 5점

저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중,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대부분이 커뮤니케이션의 오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솔루션을 찾아내고자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언어의 흐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집중력 높은 사람이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결국 직업이 바뀌거나,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일을 종종 보곤 한다.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되어 말투로 완성된다며, 살면서 느낀 것들을 이렇게 정리한다.

1장 애쓰지 않아도 잘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한다
2장 입만 열면 손해 보는 사람의 무시당하기 쉬운 말실수
3장 나는 일보다 말투를 먼저 배우기로 했다
4장 말투를 바꿨더니 관계가 찾아왔다


저자를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깊이 생각하며 사는 분 같다.유명한 작가도 아닌 상황에서 운 좋게 책을 냈고, 모교에서 후배이자 풋풋한 학생들 앞에 섰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나부터 반성해본다. 책을 쓰고 여기저기에 글을 쓰기도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강연 요청도 받게 된다. 수없이 많은 강연을 해왔지만 끝난 후 뭔가 찝찝한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대부분 강연과 상관없이 내 자랑 같은 말이 많았던 날이다. (중략) 고백한다. 그럴수록 말은 많아졌고 강연은 삐걱거렸다. (p. 24)


대학 시절, 유명인이나 시인들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으면 혼자서도 잘 갔다. 그때마다 그 분들을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분들은 자랑이나 거만함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쓴 시를 직접 읽고, 그 시를 쓰게 된 사연만 담백하게 소개해 주셨던 정호승 시인도 그랬고, 처음으로 당신의 글이 교과서에 실렸을 때 모두가 축하해 주었지만, 오직 조카 한명만은 삼촌은 이제 망했다며 교과서에 나오는 시는 다들 싫어한다고 했다는 일화를 들려준 신경림 시인도 그랬다. 그저 노래에 대한 사연만 들려주고, 예술에 가까운 라이브를 들려준 이은미 가수도 그랬다.

불필요한 대화와 에너지 소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닫는 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일까. 그런 내용을 다룬 부분들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의 마음을 존중하는 것이 성숙한 대화의 태도겠지만, 내가 희생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게 요즘 나의 생각이다.

토를 다는 것은 자기합리화를 위한 방어적 대화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은 쓸데없는 대답을 최소화하고 할 말만 하여 대화를 종결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누군가의 호기심을 일일이 충족시키려고 하다 보면 결국 말실수를 하게 되기도 한다. (p. 72)

인간관계에서 틀어지게 되는 경우는 보통 인간적으로 실망하게 되었을 때였다. 도저히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을 때, 혹은 대화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싶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말을 많이 하려드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말을 들어주는 게 먼저다. (p. 207)

호칭에 대한 부분도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름과 존칭을 사용하는 사람과 다짜고짜 당신이라고 지칭하며 아랫사람으로 간주하고 깔아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같아지려면 아직 나의 성숙은 한참 멀었으므로.

불만을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한 번 더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지만, 천년 묵은 분노까지 토해내는 사람은 한 걸음 물러서고 싶게 만든다.문제는 내가 아니라 본인에게 있는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그 후에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내키지는 않아도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버럭 화부터 토하는 사람 중에 사과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게 사과인지 사과의 옷을 입은 강요인지 구분하기는 너무나 쉬웠고.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한다는 일은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 어느 일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사람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말투에 대해 찬찬히 돌아보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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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다고 불안해하지 말아요
야나다 키요유키 지음, 김은선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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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야나가 히데아키는 정신과 간호사였고, 지금은 18년 동안 1만 명에 달하는 내담자를 상담했으며 증상 개선율 98 퍼센트를 달성한 카리스마 심리상담사라고 한다. 읽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속 책을 쓴다는 소개가 근사하다. 나는 읽은 이의 행복까지는 자신 없고, 적어도 나의 글이 칼이 되지 않기를 늘 기도한다.


이 책은 공황장애에 관한 책이자, 극복을 위한 전문가의 조언이다. 저자 자신도 공황장애를 극복했다고 하고.


1장 (약도 듣지 않고 인지행동치료도 효과가 없다) 공황장애,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2장 (잠재의식에 접근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3장 (발작은 가라앉히는 것이 최선) 스스로 증상을 다스리는 길을 익히자
4장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회복의 단계) 좋아지는 과정에는 부침이 있다
5장 (마음, 몸, 유전자에 접근하는 치료법)자기 암시로 불안을 덜어낸다
6장 (혼자서도 쉽게 할 수 있다. 요동치는 심장을 지금 당장 가라앉힐 수 있다)


의료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이 건강한 사람 같다. 당시엔 보기 드문 남자 간호사로 시작하여 언제나 자신의 환자들을 진심으로 대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한 구석에는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며 선을 긋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의사와 간호사는 자신이 병에 걸렸을 때 비로소 의료인으로서 완성된다고 한다. 자신이 아파봐야 환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이 말을 절실히 통감하고 있다. (p. 15)

그리고 본인도 공황발작을 겪게 된다.

야간 근무를 하던 간호사가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며 숨이 쉬어지지 않아 쓰러지고, 응급실 침대에서 깨어난다. 공황장애가 유행어처럼 사용되는 현실이 씁쓸한 이유는 정말 겪어본 사람들은 절대로 이것을 농담처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그 상황 자체가 두렵고 슬퍼서 처음 그 증상을 겪은 날 만났던 지인들 외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리고자 애를 쓰면서 이제는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현재진행형일 증상을 가볍게 이야기하는 일은 사실 무거운 일이어야 한다.

어느 연예인이 TV에 출연해 공황장애 경험을 마치 산 채로 땅에 묻히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는데, 나는 서 있는 채로 몸에서 피만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비가 내리는 건 줄 알았는데, 뚝뚝 떨어지는 땀이었고.

야나가는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서는 순차적으로 증상을 제어하는 힘, 자신감 형성, 안도감 획득, 유전자는 켜는 생활 방식, 행동(예기불안과 광장공포 극복), 그리고 6단계에 이르러 공황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불안은 수조라는 마음에 스트레스나 불안, 트라우마 같은 것이 물처럼 쌓이는 것이라 비유하는데 물이 수조 밖으로 넘치면 공황발작을 겪는 것이며, 물은 스스로 조금씩 덜어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저자 본인이 공황장애를 겪고, 그것을 이겨냈으며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을 지켜봤기 때문인지 정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솔루션만을 담은 책이다. 처음부터 끝장까지.
18년 간 그 많은 사람들을 상담했다면 재미나 감동을 담은 이야기도 무수히 많이 겪었을 텐데, 담백하게 증상 개선을 위한 방법만 담은 책이라 작가 얼굴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좋은 사람일 것 같아서.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의사의 진심이 담긴 응급처치 같은 책이었다. 좋은 심리상담사가 썼을 것 같은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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