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 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문보영 지음 / 웨일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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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목표가 아득할 땐, 눈앞의 작은 목표를 만들고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도달해 있을 거라고 믿는다. 목표를 까먹는 방식으로 얼렁뚱땅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노리는 인생 전략으로 불안도 어둠도 할부하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손글씨로 쓴 일기를 우편 봉투에 넣어 독자들에게 배송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문보영 작가는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을 느끼기에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선택한 것이 버리는 일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스트레스와 공허함이 극에 달했을 시절에 이미 경험했던 감정이라 어떤 고통인지, 얼마나 안 끝나는지 잘 알기도 하고.
나도 언젠가부터 버리는 일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기에 동질감도 들었던 것 같다.


이따금 열심히 마감한 원고에 대한 수정 요청이 들어올 때, 스스로를 희망 꼴통이라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에 잠시 작년에 만났던 분을 생각했다.
원고를 넘기고 잠깐이나마 복잡한 마음을 쓸어내리려는 찰나에 원고 수정을 부탁도 아니고, 통보받으면 어떤 기분인지는 굳이 표현하고 싶지 않다.

작가는 낭독회에서 ‘시를 쓸 때 대중은 고려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고, 무례하게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잠시 침묵했다고 한다. 나도 작년에 북토크에서 결이 비슷한 질문들을 받았다.

우연히 읽게 된 내 글로 인해 책도 사고, 나라는 사람이 궁금해져서 북토크까지 오셨다는 감사한 분. 내 글에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느낌이 느껴져서 궁금하기도 하고, 어딘가 어두운 느낌도 드는데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묻고 싶었다며 길게 돌려 질문하셨다. 앞으로도 나만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글을 쓸 것인지,
잘 팔릴 만한 글을 쓰며 스타 작가가 되고 싶은지.

나는 듣자마자 대답했다.
쓰고 싶은 대로 쓰면서 대중의 마음도 읽고 싶다고. 책도 많이 팔려서 글만 쓰면서 살게 되길 바라지만, 나만의 스타일은 아직 나조차도 찾지 못했고, 난 버려지는 글보다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여건이 되면 찬찬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도 알기 힘든 게 요즘이다. 여건만 되면 그냥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든다.


사람들은 결론과 주제를 좋아한다.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칠 때, 작품의 주제를 요약하고 파악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자습서에는 네모난 지문 아래에 결론과 주제가 한 문장으로 요약되어 있다. (p. 34)


문득 신경림 시인이 떠올랐다. 비 오는 저녁, 교과서에서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혼자 강연을 들으러 갔다. 일단 예쁜 성함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이셔서 놀랐고, 국어문제집에 나온 본인의 시가 반가워 문제를 풀었는데 틀리셨다는 말에 뭔가 씁쓸했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재해석되는 순간이 진짜 문학으로 생명력을 인정받는 순간이라 생각했는데, 정답이라는 조건이 붙으면 모든 것이 애매해진다.



낡은 곰 베개를 결국 버리는 작가의 마음을 읽는 동안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얼마 전, 큰 정리를 해야 했다. 작년에도 대대적으로 버리긴 했지만, 올해도 그 만큼 내다버렸다. 더러는 사용하지 않은지 1년이 넘은 것도 있었지만, 더러는 새것도 있었고, 더러는 절대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실은 그래서 버렸다.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버린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나와 함께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작별 인사였다. 작가도 다양한 마음을 담아서 버렸으리라.



자신만의 방법으로 불안을 비롯한 마음의 짐들을 청소해나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라 모처럼 긴장하지 않고 편안히 읽었다. 요즘 기형도 시인에 관한 책들을 쌓아두고 읽는 중인데, 그것을 다 읽으면 문보영 시인의 시도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더불어 어머니와 그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평온하길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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