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들 : 우리는 매일 다시 만난다
앤디 필드 지음, 임승현 옮김 / 필로우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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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 넘치는 책이다. 덕분에 뾰족했던 내 마음도 잠시간 말캉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이자 큐레이터인 앤디 필드는 일상의 모든 "만남"에 주목한다. 나는 그동안 "만남"이라는 개념을 아주 협소하게만 생각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대부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앤디 필드의 드넓은 시선에 새삼 놀랐다. 미용실에서, 영화관에서, 공원에서의 찰나일 수도 있는 이 모든 것을 나와 연결되어 있는 만남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너무나 익숙해져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쉽게 볼 수 없어지는 일상 속 숱한 만남들을 새로운 감각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나이가 들수록 여러 이유로 멀어지게 되는 관계가 많아진다. 예전엔 열정 넘치게 만나고 부딪히고 겪어내며 다양한 색으로 나의 '만남'을 물들이기도 했었는데.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만남들의 제동이 걸렸던 것 같다. 과연 그럴까. 가성비만 따지는 관계라면 그래, 부질없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나는 실속만 따지다가 나무 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가진 않을까?

작가 앤디 필드는 말한다. "만남은 기회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빛이 쏟아져 들어올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어떻게든 연결될 방법을 찾으려는 어설픈 시도에는 연민과 희망이 공존한다.(p.135) 작가의 이 "만남" 프로젝트를 열과 성을 다해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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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공동체와 소속감을 다지는 장소. 다정한 공간. 종종 거칠어지는 세상에서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장소. 끊임없이 거세게 변화하는 시대에도 그 성격을 올곧게 지켜가는 장소. 세상에 이런 장소는 많지 않다.

87. 그는 세상 일에 관심이 많고, 특히 요즘 우리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많이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모든 사물과 사람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모르는 것의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240.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산소는 수천 명의 군중이 집단적 환희를 만들어 내는 만남부터 사적인 의견 충돌로 껄끄러운 기류를 낳는 만남까지 다양한 층위의 만남에서 나온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자신이 놓인 위치와 주변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거대한 녹색 허파는 분열된 대도시에 다시 공감과 연대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앤디필드 #만남들 #필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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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상 세계로 간다 - 피라미드부터 마인크래프트까지 인류가 만든 사회
허먼 나룰라 지음, 정수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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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인간은 늘 가상 세계를 창조해왔다. 미래 사회에 초석이 될 "메타버스"를 설명하기 전에 고대 피라미드와 사후 세계 역시도 인간이 창조한 가상의 현실임을 예로 들며 좀더 쉽게 개념 이해에 다가간다.

개인적으로 메타버스에 대한 이미지가 밝지만은 않았었는데 무작정 피할 수도 없는 주제임에는 틀림없어서 읽기 시작했던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알게 되고, 또 더 복잡해진 기분도 들었다.

일단, 그간 내가 협소하게 메타버스를 인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작가 역시 메타버스의 명확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느슨한 정의는 제대로된 사고를 방해하고 불안감만 조성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뭐가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데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았던 것. 거기에 더해서 모두에게 이로운 메타버스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메타버스의 필요성과 지속적이고 꾸준한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에 깊이 공감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물건이라도 사용하는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가 없다면 무용지물 아닐까. 현재의 기술력만으로는 당장 완벽한 메타버스 세계를 구현해내기 어렵다. 여러 세대를 통과해야 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이뤄내기 위해선 구성원의 굳건한 믿음이 필요하다. 백 년이 걸리더라도 꼭 해내야 한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가상의 세계를 향해 한 발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이 가상 현실, 메타버스 미래에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품고 있던 사람 역시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 사람들을 완벽히 설득하는 게 우선적인 임무여야 할 것 같다. 근거 없는 그저 밝고 긍정적인 미래상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도 않으며 설득 되지도 않는다. 이 책은 메타버스가 왜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는지, 앞으로 모두 행복한 가상 현실의 미래에 다가서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지침 등에 대해 알려주는 건 맞지만 이 한 권으로 갑자기 열렬한 메타버스의 지지자가 되지는 않을 것도 같다.

쉬운 책은 아니었고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음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내 짧은 소견이라... 메타버스 관련 서적을 좀 더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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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무엇이든 메타버스가 될 수 있지만 정작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모르는 넓고 얄팍한 개념 정의 탓에 우리는 미래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만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개척하려면 미래를 인식하는 틀이 건전해야 한다. 기업 이익만이 아닌 사회 가치를 생각한 포괄적인 메타버스 개념을 정의해야 한다. 맹목적으로 만들지 말고 왜 만드는지, 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84. 인간은 무엇을 하든 점점 잘하고 싶어 한다. 어떤 일에 통달할수록 새로운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다. 뭔가를 잘하고 실력이 쌓일수록 만족감이 커진다. 사람들은 스스로 의식하든 아니든 계속 성공하고 싶어 하며, 좌절만 거듭할 만큼 어렵지도 않고 지루할 만큼 너무 쉽지도 않은 적당히 어려운 장애물이 놓여 있고 이를 극복하기를 바란다.

🔖299. 메타버스의 시대가 열리면 인간을 하나로 묶어주던 현실 맥락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우리 역시 여러 갈래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각자 원하는 대로 현실을 선택할 수 있는데 과거에 공유해 온 맥락이라고 해서 미래에도 통하기는 어렵다. 득실을 종합하면 이런 종의 분화가 인류에게 큰 이득이다. 개인이 가장 행복할 때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래가 오면 오늘날 만연한 탐욕도 수그러들지 않을까?


#허먼나룰라 #우리는가상세계로간다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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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리즘 - 비교의 긍정과 부정, 그 사이 존재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
COSMO 지음 / 채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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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를 당하다라는 문장은 왠지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비교"의 입장에서 "비교"를 대변한다. 비교라는 단어 자체에는 문제가 없음을 조용하고도 강력하게 이야기한다. 그렇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안은 "비교"는 억울하다.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서로 간의 유사점, 차이점을 고찰하는 일》이것이 비교다. 뜻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치우친 '비난'까지 곁들여 비교를 사용할 때 우리에게 상처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비교의 문제가 아니라 비교를 비난의 도구로 잘못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인 것!

여러 관점에서 사물을 관찰하게 하고 사유를 확장시킬 수 있는 "비교"를 나쁜 이미지만으로 치부해서 오용되는 걸 볼 수 없었던 작가는 서로 관계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 여러 가지를 비교하는 글을 펼쳐 보인다.

초반부에 있는 '사랑과 머리카락'의 비교글을 읽고 놀랐던 기억이 책을 덮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대접이 달라지는 부분으로 봤을 때 사랑과 머리카락도 서로 닮은점이 있는 듯했다. 작가의 글을 읽으니 묘하게 설득된다. 고여 있던 생각의 틀이 깨어지고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사랑도 머리카락도 있을 때 소중히 잘 지켜야 되는 법이지.

이렇게 여러 사물, 관념, 가치관, 인물, 음식, 감정 등 여러 가지를 비교하며 확장된 사유를 보여준다. 작가의 글을 끝까지 읽어 보니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비교가 아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관점에서의 비교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선택'이 아닌 '조화'다(p.196).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혐오할 수 있는 세상에서 열린 비교, 가치중립적인 비교를 통해 연대로 나아갈 수 있는 시선을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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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다양성의 인정은 곧 생존과 연결된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경쟁과 비교는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아니면 경쟁을 위한 수단으로 비교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과 비교는 분명히 다르다. 앞서 말한 대로 가치중릭적으로 비교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25. 만약 누군가 사랑과 머리카락의 비교가 무슨 쓸모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우선 간단하게 '아무 쓸모 없다.'라는 대답을 내놓겠다. 애초에 유용함을 위해 둘을 비교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길가에 핀 민들레처럼 흔하다고 하찮은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70.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섣부른 판단은 사고의 폭을 좁힐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건강한 수용을 하는 데 판단만큼 위험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103.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인도한 길로 가는 것보다 결국에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힘겨운 과정을 거치는 여정 자체가 이미 성공이다.

145. 삶을 과제처럼 사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취미처럼 삶을 대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과정 자체를 즐기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며 마음먹기에 따라 과제도 취미가 될수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212. 비교의 목적은 깨달음이다.

#cosmo #비교리즘 #인문학책 #생각의힘 #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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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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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몇 페이지 들춰 보려던 게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혁명과 반란이라는 이름 아래에 살인, 납치, 테러 등 악행을 저지르는 사내는 유배지로 떠나기 전 어머니께 들른다. 사내의 유배지가 투루한스크라는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자신의 어릴 적, 투루한스크에서의 잊을 수 없는 악몽을 떠올리고 아들에게 전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획득 형질 유전"이라는 과학적 가설을 광적으로 믿은 리센코 후작은 러시아 황제의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고 추위를 느끼지 않는 '한랭 내성' 유전자를 만들어 강력한 군대를 바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20년간 이어지는 생생한 생체 실험에 입을 틀어막은 순간이 여러 번! 수용소에 갇힌 500명의 아이들은 다른 세상의 존재 자체를 모르며 지낸다. 그것이 원래의 세상인 줄 알면서.

부모 대의 노력으로 획득된 형질은 후대에 유전이 된다는 믿음은 그럴싸하기도 했지만 분명 헛점도 많다. 극심한 추위에 노출되어 강제 결혼과 출산을 겪게 되는 수용소 아이들의 노력에도 실험의 진척은 없고 리센코 후작은 점점 미쳐가는데...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기적의 케케"가 바로 유배를 떠나게 되는 사내의 어머니.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과 19세기와 20세기 핫하게 논의 되었던 "우생학" 또는 "획득 형질 유전설"을 덧붙여 이렇게나 매력적인 이야기가 탄생했다. 절대 어렵지 않게 한 페이지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속도감과 몰입감이 있다. 있었을 법도 한 이야기들이라 여러 번 검색을 하며 역사적 팩트를 확인해가는 재미도 있었다.

어긋난 과학적 신념이 정치에 이용되는 모습을 보니 누구 하나 제정신일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 속 '한랭 내성' 유전자를 만드는 실험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악은 유전될 수 있음을 섬뜩하게 이야기하는 듯한데... 리센코의 생체 실험은 어찌 보면 성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은 소설로 즐겁게 읽고 싶다. 강한 악이 유전되고 또 유전된다면 지금 이 세상엔 악마밖에 없을 텐데. 획득 형질의 유전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 대에서만 겪게 되는 여러 환경들의 변수가 많으니 확답은 어렵겠다. 아무튼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양쪽 모두 빠지는 거 없이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흥미롭게 읽히지만 뒷끝이 무거운, 생각할거리와 더 많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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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사내는 그런 남자였다. 그가 걸어왔던 길, 지금 가는 길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 위에 추위와 죽음 따위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사내는 거만한 도망자였다.

🔖35. 제대로 된 세상과 정상적인 가정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홀로드나야의 폐쇄된 집단생활과 저수지 입수는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일상이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했다. 이곳 아이들에게 세상은 원래 추운 곳이었고, 오두막은 그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었으며, 저수지 입수는 그저 괴롭고 지루한 미사였다.

🔖86. 그의 눈에는 어느 때보다 커다란 눈물이 박혀 있었는데, 그것은 소냐보다 훨씬 컸다. 케케는 후작이 소냐를 위해 흘린 짧고 투명한 눈물 뒤에 이어지는 먹물 같은 눈물을 보았다. 미세하게 떨고 있는 검은 눈물은 투루한스크의 모든 밤을 합친 것보다 무서웠다.

🔖175. '획득 형질의 유전'. 리센코는 자신이 맹신하는 라마르크주의가 틀렸다는 걸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모자랄 뿐이라고 생각했다.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긴 시간 믿게 되면, 그것은 바꿀 수 없는 신념이 된다. 그는 초조해졌고 초조해질수록 포악해졌다. 불안은 광기로, 실망은 폭력으로 폭발했다.

#임야비 #악의유전학 #소설추천 #SF소설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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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포크 아일랜드 - 누구나 마음속에 꿈의 섬 하나쯤은 있다
존 번스 지음, 송예슬 옮김 / 윌북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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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속에 꿈의 섬 하나쯤은 있다"
섬 여행이라고 하면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온통 맑은 바다로 둘러싸인 인적이 드문 곳. 왠지 흐르는 시간도 정확히 알 수 없을 것만 같고 조용하고 한적한, 고립된 듯한 느낌을 주는 곳. 오히려 그래서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곳!

책 자체만으로도 소장가치 넘치는 《킨포크 아일랜드》를 읽으며 미지의 세계 속 많은 섬들을 탐험했다. 정말 듣도 보도 못했던 많은 곳들을 따라 나서며 내 존재의 작디 작음을 느꼈다. 전세계 18곳의 섬들을 사진과 글로 소개하며 가는 방법, 볼거리와 명소, 숙박할 곳과 알아두면 좋을 정보들까지 알려주는 친절한 여행 서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여행 서적이라는 말만으로는 전체를 묶을 수 없는 울림이 있었다. 사진 덕분인가, 친절하고 다정한 글 솜씨 덕분인가 한 챕터 한 챕터인 각각의 섬에 한참을 머물게 된다.

기다림이 불편한 일이 아니게 되는 것, 기다림의 시간은 느긋하게 앉아 구름을, 흔들리는 야자수를, 황금빛 모래사장에 찰싹이는 청록색 바닷물을 구경할 기회가 되는 것(p.246). 그게 바로 섬여행의 묘미인 것이다. 언제나 정신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미지의 섬을 향한 꿈을 꾸게 해준다. 언젠가는 책 속의 곳곳을 향해 떠나는 꿈을 꿔 보기도 하지만, 사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친 마음과 피로가 풀어진다.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을 꿈꾸는 인생이 아닌, 일상을 좀더 유유자적한 마음으로 여행하듯 지낼 수 있는 시선과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게다가 나는 이미... 섬에 살고 있는 걸? 아닌 말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섬들을 보여주는 사진에서 내가 사는 곳과 비슷한 이미지들도 간혹 보였다. 삶을 여행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를 온전히 곱씹어 맛볼 수 있는 여유와 풍류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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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모래사장 위 텐트에 누워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밤새 듣는 것은 최고의 캠핑 경험일 것이다. 바다 저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대도시의 불빛이 깜빡이고 있지만, 적어도 이 섬에 있는 동안은 꼭 우주에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87. 작고 평범한 종이 위에도 모든 가능성은 존재한다. 고향과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질 머나먼 바닷가의 흔적이 거기 실려 있기 때문이다.

🔖245. 오늘날의 여행자들은 섬의 느긋한 리듬을 익히기 위해 굳이 수십 년씩이나 섬에 있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섬다움'의 감각을 키우는 것이다. 미국 메인주에 있는 아일랜드 인스티튜트 설립자 필립 콘클링은 섬다움을 '시간 감각을 흐리는 공간과 특별하게 연결된 듯한 감정'으로 정의한다. 콘클링이 《지오그래피컬 리뷰》에서 쓴 표현을 빌리자면, "무엇을 할지 안 할지는 그날그날의 파도와 바람과 태풍의 리듬이 결정한다." 잠시 왔다 가는 방문객들에게는 이러한 패턴이 낯설 테지만, 섬다움의 감정은 섬 생활의 가치와 관점을 수용하며 비로소 체득할 수 있다.

🔖246. 섬에서 삶의 속도는 시간이 좌우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행자들도 애초의 일정일랑 잊는 게 속편하다. 정해진 시간이 없는데 서두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부유하는 열대 구름, 또는 저물지 않는 햇빛의 미묘한 변화, 무엇에 속도를 맞추건 간에, 섬의 시간은 느긋하게 하루의 맛을 만끽하라며 여행자들을 초대한다.

#킨포크아일랜드 #킨포크 #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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