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 - 재택근무의 한계부터 교실의 재발견까지 디지털이 만들지 못하는 미래를 이야기하다
데이비드 색스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인공지능,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등이 세상을 주도하는 혁명적인 시대. 온통 메타버스며 챗 GPT가 화두일 때도 나는 약간의 피로감과 거부감이 들었는데 이게 딱 꼬집어 원인을 모르겠더란 말이다. 쏟아지는 신간들에도 디지털 찬양이 8.90프로!! 나는 사실 일부러 피했다. 원인 모를 굶주림에 쩔어가던 중에 눈에 뜨인 신간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 !!! 그래, 나도 내 맘속의 거부감의 원인 좀 파악해볼까, 작가한테 숟가락 좀 얹어 볼까 하는 심정으로 책을 들었다.

작가 데이비드 색스는(성으로 늘 고통 받고 있다는) 이미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책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 자리를 차지한 이력이 있다. 이번 책도 전작과 같은 맥락으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날로그적인 것에 대한 찬양이 나열되어 있다. 회사, 학교, 쇼핑, 도시, 문화 생활, 대화, 마지막 휴식의 챕터까지 소제목으로 각각의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비교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의 일화와 그때의 감정들을 이야기하여 공감도를 높이고 유명 인사나 그들의 저서에서 쓰인 말들을 인용해 정확도도 잡았다. 일단 어렵지 않게 접근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누구나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 무엇일까? 디지털은 확실히 우리의 삶을 훨씬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나는 독서 어플을 통해 리뷰를 작성하는 중이고(^^;) 그 외 나열하자면 입 아플 수많은 편리함을 디지털을 통해서 얻고 있는 게 맞다. 그런데 그 디지털이 우리 미래의 전부는 아니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활동만이 최고인 세상이라면 우리 인간이 기계와 다를 건 뭐란 말인가.

디지털을 선택할 수는 있고, 따라야 할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에 의존하게 되면 인간성을 잃은 딱딱한 세상 아닐까.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무언가에 더 갈망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메타버스의 약속, 편리하고 간편한 세상에, 집안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고 화상으로 수업을 들으며 우리가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 화면을 보면서 지낼 수 있게 해준다는 약속은 비겁한 약속이고 상상력의 부재이며 섬뜩한 미래다. 편리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정말 편리하고 빠른 것만이 좋은 미래인가? 모두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을 물리치자, 쓰지말자, 오로지 아날로그로 회귀하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었고 디지털 시대가 만연에 퍼질수록 우리의 인간성을 잃지 않는 곳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는 시기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였고 백 번 공감했다. 작가의 말대로 인간은 항상 접촉하고 웃고 서로 눈을 보아야 한다. 디지털 기술의 장점은 취하면서 우리의 실재적인 경험과 경험이 가져올 장점을 최대로 끌어올릴 방법에 대해 골몰히 생각하게 된다. 분명 가치가 있는 고민이 될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45. "지난 20년간 우리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일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기술과 가정 및 직장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언 명령을 혼동했다는 겁니다." 일의 물리적 공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면 일이 모든 가능한 공간으로 퍼져나가서 전에는 '가정'으로 보이던 삶의 영역(여가, 가족, 자연, 사랑)에 투자할 시간을 빼앗는다.

116. 쿠마리는 전 세계 디지털 학교의 전반적인 경험이 "처참한 수준"이라고 단언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상황을 기회 삼아 미래를 위해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쿠마리는 여전히 디지털 기술의 잠재력을 믿지만 교육의 미래는 단순히 최신 발명품을 도입하거나 더 많은 아이에게 디지털 장비를 제공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교육의 미래는 정서와 관계가 학습에 더 깊이 스며들게 하고 이런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달려 있다.

390. 하지만 진정으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의미 있는 관계를 원한다면 낯선 사람들과의 가식적인 대화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진솔한 대화가 훨씬 값지다. 그리고 이런 게 혁신이다. 사회적 연결을 더 많이 원한다면 사람들이 집에 틀어박히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게 만드는 활동에 투자해야 한다. 각자의 화면보다는 함께 머무는 공간에 투자해야 한다.

#데이비드색스 #디지털이할수없는것들 #어크로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머니의 자리 별숲 동화 마을 50
박현정 지음, 김다정 그림 / 별숲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봄이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씩씩한 초등학생이다. 어느 날 하교 길에서 전동 킥보드에 부딪히는 사고가 날 뻔하는데 어떤 할머니가 해봄이를 구해준다. 빨간 손톱에 진주 목걸이, 선글라스로 잔뜩 멋을 낸 할머니! 분명 처음 보는 할머니인데 어떻게 해봄이 이름을 알고 생일을 알고 있는 것일까?

작고 가벼운 책 안에는 미혼모, 독거 노인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묵직한 내용이 있다. 해봄이 엄마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해봄이를 가지지만 결혼에는 이르지 못 하고 해봄이를 혼자 낳아 키울 결심을 하면서 친정 엄마와 크게 다투게 된다. 연을 끊고 산 지 오래되어 해봄이는 그동안 외할머니를 한 번도 못 보고 살았던 것.

넓은 집에서 추억들로 둘러싸인 가구와 잡동사니를 버리지 못한 채 혼자 많이 외로웠을 할머니. 남편은 없지만 멋지게 자신의 일을 하며 외동딸을 기죽지 않게 키운 엄마. 아빠와 할머니가 궁금했지만 철든 아이로 항상 밝고 씩씩하게 자란 해봄이.

딸이 미혼모가 되는 걸 한사코 막기 위해서 지금의 해봄이가 태어나기 직전 해봄이의 출생 자체를 막으려 했던 할머니와 해봄이는 서로를 오롯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할머니의 자리"가 여전히 있음을 이야기 하는 해봄이의 말끝에서 따뜻한 희망과 사랑이 묻어 난다. 자세히는 모를 수도 있다. 엄마가, 할머니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모른다고 해서 사랑이 안 된다는 법은 없듯이 서로 모르기 때문에 다독이고 이해하는 과정과 시간을 녹여 온전한 가족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각박한 요즘 사회에서 가족으로서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고 지켜주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

🔖29. 터닝 포인트가 뭐냐면요, 맨날 우유만 빨던 아기가 드디어 밥을 씹어 먹게 된 순간 같은 거래요.


#박현정 #할머니의자리 #별숲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함잌병원 돈두댓
IHQ <함잌병원 돈두댓> 제작진.함익병 지음 / 너와숲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단 재미있다. 누적 조회수 757만을 기록한 찐 의학 정보에 소신을 가지고 진료하는 함익병 의사의 필수 의학 상식, 말그대로 "상식"을 엮은 책이다. [함잌병원 돈두댓]은 "하지마, 먹지마, 오지마]를 모토로 손문선 아나운서와 함께 동명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 채널을 바탕으로 함익병 의사와 손문선 아나운서가 주고 받은 문답들을 정리한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중간중간 정확한 의학 상식이나 뜻 풀이를 칸을 만들어 따로 설명해 준 부분도 좋았다. 세심해👍)

주제별로 챕터가 나뉘어 있어서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무방하며, 관심있는 주제부터 콕콕 집어 챙겨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 관심 분야가 아닌 것들을 그냥 넘길 수도 있었지만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 형식으로 옆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상식을 배울 수 있어 한 챕터도 놓치지 않았다.

의사가 맞나, 할 정도로 일반인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을 상식들을 사이다처럼 깨부순다. 피곤할 때 수액 자주 맞는 사람에 수액 맞지 마라 하고, 영양제도 챙겨 먹지 마라시고, 백신이나 유전에 대한 의견에도 소신 발언을 하신다.

의학 상식은 관심 분야기도 하고, 전업주부 전 의료인으로의 경험이 있기에 사실 전반적으로는 대부분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고 많은 공감도 했지만 함익병 의사의 화법이나 의견에여전히 수긍하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속시원하고 구구절절 지지부진한 설명이 아니라 확고한 신념을 갖고 계신 것 같아서 더 마음에 들었지만.

제일 와닿는 말은, 건강에 대해 여기저기 기웃대고 기본 루트가 아닌 편법은 쓰지 말자는 것이다. 나도 같은 의견. 평소 제대로 관리 안 하는 사람이 건강검진과 영양제가 건강 관리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나도 용납(?)할 수 없다. 삼시세끼 잘 챙겨 먹고 하루 한 시간, 일주일에 5일이라도 나를 위해 운동하고 채소 잘 챙겨 먹으면 기본적으로 쓸데없이 병원 올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주변에 영양제에 올인하며 엄청난 양의 ✔️영양제를 몸에 마구 때려 넣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거 간에게도 엄청 부담될 것 같은데요? 그리고 다이어트를 위해 요새 많이들 먹는 ✔️효소! 잔뜩 먹고 소화 효소 한 포 먹었더니 신기하게 부대끼는 느낌 없이 빨리 소화가 되는 기분을 나도 느껴본 터였다! 딱히 몸에 나쁠 건 없겠지만 계속 외부에서 효소를 들이붓게 된다면 언젠가 내몸에서 더이상 효소를 생성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에서 소름. 뭐든 내 것만큼 좋은 건 없거든. 있을 때 지키자. 외부의 효소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그냥 애초에 적당히 먹기를 실천해 봐야겠다. 그리고 ✔️수액요법에 대한 것도 같은 의견이었다. 건강 증진, 피로 회복, 미용 효과 모두 근거가 없는 거로 알려졌다고 한다. 못 먹고 못 마시는 상황 아닌 이상 누워서 푹 쉬거나 밥을 챙겨 먹는 게 몸에는 더 도움된다는 점! 게다가 ✔️탈모약에 대해 만연에 퍼진 무서운 부작용인 발기부전도 모두 터무니 없이 과하게 잘못 알려진 속설이라고 하니까 소중한 당신의 머리카락을 지키세요!

리뷰를 쓰다보니 책이 더 재미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나에겐 꽤 재미있고 흥미로운데 유익한 책이었다. 유튜브 채널도 구독하고 챙겨 봐야겠다.

➰️➰️➰️➰️➰️➰️➰️

72. 백신을 맞아서 병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을 통해 예방 가능한 것을 꼭 백신에 의존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 어떤 백신도 부작용이 없다고 말할 수 없거든요. 저는 기본적으로 백신은 조심해서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병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는 게 먼저이지요. [자궁경부암 백신]

183. 타고난 성향이 강하게 작용해요. 어떤 고난을 겪어도 까짓것 다시 하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리스크 테이킹도 잘하지요. 약하다, 강하다 이런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 말이 우열로 들리죠? 그래서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뿐이지, 뇌의 그릇이 큰 항아리 같은 사람이 있고 간장 종지 같은 사람이 있어요. 이들은 각각 쓰임새가 다를 뿐이에요. 간장 종지 같은 그릇을 가지면 뭐에 쓸 거냐고 생각하는데, 간장 종지로 쓰면 되지요. 크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우울증]

186. 우울증 예방법이 아니라 우울감 예방법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울한 마음이 자꾸 든다. 그러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게 뭐냐 하면, 규칙적으로 살아야 돼요. 해 지면 자고 해 뜨면 눈 뜬다. 이게 기본이에요. [우울증]

213. 멀쩡할 때 그냥 찌르면 붉은 피가 나오는 거고요, 체했을 때 따려면 실을 감잖아요. 그렇게 하고 찌르면 피가 안 통하기 때문에 정맥 피가 나오니까 검게 보이는 것뿐이에요. 손을 땄다고 소화가 되는 건 아니에요. [소화불량]

219. 바이러스는 세균처럼 세포가 없어서 대개 항생제가 소용없어요. 항바이러스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바이러스가 변이하면 소용없고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어요. 면역계가 자체적으로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게 되길 기다리는 게 낫지요. 우리가 백신을 맞는 것은 고치는 약을 투입하려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는 면역 체계를 미리 몸에 만들어놓기 위한 거예요. [바이러스]

230. 모든 병은 나 개인의 면역력 문제이지 백신 갖고는 해결 안 된다. 내가 나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라. 이게 기본이에요.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하루에 한 시간 운동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요. 너무나 당연한 얘긴데 늦게까지 술 마시고, 잠 안 자고, 끼니는 건너뛰고, 영양이 불균형하다? 백신이든 뭐든 그런 걸로 내 몸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은신할 데가 하나도 없어요. [바이러스]

303.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 미용 효과, 피로 개선 효과, 건강 증진 효과 모두 근거가 없으며, 심지어 안전성에도 부작용 사례가 다수 보고됐습니다. [수액주사]

320. 친구랑 만나서 수다로 푼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럼 기억이 또 새로 생겨요. 그 순간만 풀리지 기억은 더 오래 가요. [화병]


#함익병 #함잌병원돈두댓 #함잌병원 #의학상식 #팩트폭격 #소신진료 #너와숲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겐 낯선 이름이었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찬사를 받는 루스 오제키의 네 번째 소설이다. 루스 오제키는 소설가이면서 영화 제작자, 문예창작과 교수, 선불교 승려였던 다양한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이번 소설 [우주를 듣는 소년]은 비극적인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상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회복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 줄로 요약되는 전체적인 내용이지만 책은 무려 700페이지에 이르는, 한 손에 들기도 어려운 벽돌책이다. 와! 내가 읽어냈다구!😊

소설 속 베니는 아빠를 잃고 나서 사물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우주의 소리를 듣는 가벼운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던 내 착각을 제대로 깨주는 책이었다. 소설 속 베니와 그의 엄마 애너벨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입고 함께 있어도 나눌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채 방황하는 매일의 상황이 눈에 보일 듯 선명하게 묘사된다. 베니의 시선과, 베니가 듣기 시작한 베니만의 '책'의 시선이 번갈아 묘사되며 다른 소설들과는 다른 독특한 읽는 재미도 주었다.

계속 언급되는 발터 벤야민과 선불교 사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어우러져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베니와 애너벨에게 닥친 상황들에 절묘히 섞여 버무려지며 이야기를 끌어가기에 또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맴도는 생각 한 가지. 저장강박증을 앓는 애너벨의 모습은 역시 그녀의 병적인 상태를 이야기해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넘쳐나는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이, 더 큰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채울 수 없는 끝없는 욕구를 대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 이 많은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지, 이런 소유에 대한 집착은 나를 얼마나 파괴시킬 수 있는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여러 번 되묻게 했다. "진짜"란 과연 무엇일까? 책 속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주제지만 "진짜"를 찾는 건 결국 오롯이 나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야기는 중요하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겠다. 나의 이야기는 내 안에서 소중하고 빛을 발하며 어딘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야기는 나의 전부라는 철학적인 메시지!! 세상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책이다(p.93).

책의 무게 만큼이나 묵직하고 깊은 이야기였다. 아마 며칠 동안 베니가 생각날 것 같다.

➰️➰️➰️➰️➰️➰️➰️
45. 원래 이야기는 결코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아, 베니.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삶과 다르지.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는 거야 처음부터 알 수 없는 미래까지 말이야. 하지만 이야기는 나중에 말하는 거야. 말하자면 이야기는 거꾸로 사는 삶이지.

93. 세상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책이다.

102. 당신들의 채울 수 없는 욕망, 애초에 우리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그 욕망의 불꽃이 이제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 새로움을 향한 끝없는 욕구는 당신들로 하여금 우리 몸에 계획적 진부화를 설계해 넣도록 이끌었고, 그래서 우리의 수가 증가할 때도 우리의 수명은 줄어들고 있다. 참 잔인한 계산이다! 우리는 만들어지자마자 버려져서, 다시 만들어지지 않은 존재, 구현되지 않은 존재로 돌아간다.

200.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도 베니와 그의 가족이 따돌려야 할 타자이며 그들의 이상함과 비교하여 자신들의 집단적 정상성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225.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토록 많은 것을 원하게 하는 걸까? 무엇이 물건들에게 인간을 매혹시키는 힘을 주는 것이며,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에 한계라는 게 있을까?

328. 내게 필요한 건 그저 나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그것을 이용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뿐이라고 했지.

391. 중요한 건 과제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행동' 자체임을

525. 일단 어떤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해본 적 없는 때로 돌아갈 수 없어. 한번 까진 신뢰는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쉬운 답은 없어.

578. 다른 사람들은 간신히 대피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가진 것을 모두 잃게 되었다. 집과 자동차, 옷과 패물, 전자제품과 가재도구,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일해서 얻은 모든 것들, 사진첩과 편지, 선물, 추억거리, 그리고 여러 세대에 걸쳐 소중하게 전해져 내려온 가보 같은 소중한 기념품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가치관과 물질적 소유에 대한 집착에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 ㅡ내 소유물, 내 가족과 내 인생ㅡ이 한순간 휩쓸려 가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다. '진짜란 무엇인가?' 해일은 우리에게 무상함이 진짜임을 일깨워주었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게 하고 있다.

582.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특별한 망상의 풍선 속에 갇혀 있고, 거기서 탈출하는 게 모든 사람의 인생 과제야.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우린 과거를 현재로 만들 수 있고, 너를 과거로 돌아가게 하고, 네가 기억하도록 도울 수 있어. 그리고 우린 너에게 이것저것 보여주고 시간을 경험하는 순서를 바꾸고 너의 세계를 넓혀줄 수 있지. 하지만 깨어나는 건 오롯이 너에게 달려 있어. 준비됐니?

611. 당신의 인생은 자기계발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냥 이대로 완벽해요!

618. 모든 독자는 고유하기 때문에, 지면에 뭐라고 쓰여 있건 당신들은 각자 우리가 다른 의미를 갖도록 만든다. 그래서 똑같은 책도 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읽힐 때 전혀 다른 책이 되고, 파도처럼 인간의 의식을 관통해 흐르는, 끊임없이 변하는 책들의 집합체가 된다. 'Pro captu lectoris habent sua fata libelli.' 읽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모든 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

682.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기계들인데. 인터넷 세상에서는 더이상 말을 묶어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난 동의하지 않아. 말은 종이에 귀속되는 걸 좋아하지. 경계를 필요로 해. 어떤 규율과 제약이 없으면, 말은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다닐 거야. 하지만 내가 좀 구식인가 싶기도 해.

#루스오제키 #우주를듣는소년 #여성문학상 #소설 #인플루엔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벌루션 No.3
가네시로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네시로 가즈키 !! 그의 소설 [Go]는 여전히 소장하고 있고 그 한 권으로도 충분히 매력 넘쳤던 작가의 1998년 소설 [레벌루션 No.3]이 문예출판사에서 재출간됐다🖤 낯익은 작가의 좀비 시리즈라기에 사실 다른 정보 없이 좀비물인줄 알았던 나.

소설에서의 좀비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의 별명이다. 유명하고 명문인 고등학교들만 모여 있는 사이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꼴통 삼류 남자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뇌사 판정에 버금가는 혈압 수준밖에 안되는 평균 학력에 '살아 있는 시체'에 가까운 존재라는 의미에서 주변 명문고 똘똘이들이 그들을 '좀비'라 칭하게 된 것.

3가지 연작 소설로 '더 좀비스'의 모험담들을 풀어놓았다. 발랄하고 유머러스하게! 가네시로 가즈키의 재치있고 날카로운 문체가 마음에 든다. 소소한 모험담 이야기, 그리고 변화의 이야기, 혁명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독자들을 꼼짝없이 빨아들이는데 30분만 읽고 자야지 했던 시작이 새벽 3시가 되어 완독으로 끝을 맺었지 뭐냐고요. 크고 대단한 혁명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 힘을 합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행위에서 존재 자체의 반짝임이 보인다. 그 시기만의 건강하고 순수한 아름다움.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교포 3세이며, 재일교포로서는 처음으로 나오키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아버지 영향으로 조총련계 초중학교를 다니다가 한국 국적을 바꾼 후에는 일본의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전 친구들에게는 매국노라는 소리를 듣고, 고등학교 시절 동안은 일본인들의 차별 대우에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유독 그의 글에는 국적, 정체성, 차별 등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 자신을 정의하는 건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스스로인 것!

'더 좀비스' 시리즈는 이 책 [레벌루션 No.3]을 시작으로 [플라이 대디, 플라이], [스피드]로 이어진다고 하니 나는 또 쟁여놓고 볼 책들이 생겼다.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글을 쓰며 완벽히 극복해낸 듯한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와 대번역가 김난주 님의 조합은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이 이모는 '더 좀비스'를 열렬히 응원하게 될 것 같다. 재미있고 통쾌하다!

➰️➰️➰️➰️➰️➰️➰️

17. 힘과 지식이 없으면 다른 인간들에게 짓밟히니까 말이지.

54. 나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실은 우등생이었던 과거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몰래 입시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려는 꿍꿍이를 숨긴 놈이었다. <시험에 나오는 영단어>니 하는 책에서 본 '오미트'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오는 놈이었다. 아무 묘안도 없으면서 남들보다 한 단 높은 곳에서 생각한다고 우쭐해서는 다른 친구들이 심각하게 짜낸 안을 바보라서 바보 같은 생각밖에 못한다고 무시하는 그런 놈이었다. 나 같은 놈은 어른이 되어서도 뜻도 모르는 영어 단어를 슬쩍 대화에 흘리면서 자기만족에나 빠질 인간이다. 제길.

107. 재일이라는 핸디캡만 갖고는 사람을 죽일 수 없어. 네다섯가지는 더 있어야지. 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서 아무 불편 없이 컷어. 그래서 어렸을 때는 내가 왜 차별을 받는지 몰랐지. 화가 나니까 걸리는 놈들은 모조리 두들겨 패주기로 했어. 그런데 말이야, 요즘 들어 알겠더라. 싸움에서 아무리 이겨본들,결국 니는 패배자라는 것을. 무슨 말인지 알겠냐? 승부는 언제나 다수 쪽이 이기게끔 되어 있어.

238. "어제 밤새 생각하다가, 인간을 볼신하게 될 것 같아서 그만 뒀어. 게다가 자기를 원망할 만한 사람을 어떻게 알겠어. 원망이란 아주 개인적인 감정이잖아. 타인이 나를 무슨 이유 때문에 원망하는지는 상상할 수 없고."
옳은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원한이나 원망에는 집착하지만 타인의 원한에는 둔감한 법이다.

#가네시로가즈키 #레벌루션no3 #문예춘추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