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섯 개 부탁드려요! - 21세기 신인류, 플랫폼 노동자들의‘별점인생’이야기
유경현.유수진 지음 / 애플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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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에 목숨이 달려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뒷 이야기. 소비자로 누릴 수 있었던 편리한 세상은 어쩌면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 덕분일 수도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만 일하며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구조는 언뜻 들으면 신세계 같기도 하다. 자율성! 그 뒷면에는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고 보장해 주지 않는 그늘이 많았다.

플랫폼 시장의 발전이 해를 거듭할 수록 빨라지고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동시에 플랫폼을 통해 노동하는 많은 사람들의 현실도 찬란할까? 정답은 아니었다.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자를 직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로 간주하여 높은 수수료를 떼고, 사업이 성장할수록 일을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 들어 노동에 대한 금액 가치는 갈수록 낮아지는 것. 더 많이 일을 해도 수익은 제자리인 현실... 씁쓸했다.

물론 플랫폼의 활성화로 (우버, 펫시터, 도그워커, 가사도우미 등)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게 된 건 확실하지만 무한 경쟁의 정글에서 노동자에 대한 보호는 어디에서도 이뤄지지 않는다. 말그대로 각자도생. 플랫폼 기업들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에 대해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꼭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이긴 하다. 기업도 잘 살고 노동자도 잘 살며 소비자까지 함께 좋을 세상은 도무지 힘든 것일까?

일자리의 형태는 계속 변해갈 것이고 그에 대해 기업, 노동자, 소비자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좋은 변화에 발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적인 제재도 꼭 필요할 것 같다. 잘 사용하면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는 플랫폼 일자리들, 그리고 피 말리는 정글이 된 상황의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 두 가지 상황이 잘 드러나 있어서 읽기에 더 좋았다.

쩝. 그나저나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하는 게 마땅한 일인 게 맞기는 하나... 개인사업자로 등록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나 자영업자들은 누가 보호해 주나... 복잡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주 52시간 근무제, 유급 휴가, 산재 등 많은 보장제도들이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씁쓸한 현실은... 사실 자영업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니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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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람들의 '언택트 라이프'를 원활하게 만들어 준 '재택근무', '원격 수업', '온라인 쇼핑'의 이면에는 더 많은 위험과 불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있다. 우리의 안전이 다른 누군가의 위험을 통해 보장되는 구조로 말이다.

🔖174. 플랫폼에서는 각자도생이 숙명이다 보니 한 건 한 건 일을 치열하게 찾아야 한다. 그러면서 모두를 경쟁자로 느껴야 하는 현실이 조금 슬프고 씁쓸하다. 같은 일하는 사람들이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인식되는 순간, 불안과 압박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192. 우버 기사는 우버 회사에 소속된 '노동자'가 아닌 우버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하는 '소비자'로서 사용료를 28%씩이나 지불하는 것이다.

🔖196. 플랫폼이 만들어 놓은 무한 경쟁의 정글에서 소비자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투자하는 주체는 기업이 아닌 플랫폼 노동자다. 기업이 내세운 '자율성'이라는 슬로건은 달콤하지만, 실상은 위험 요소와 경쟁 요소를 모두 개인에게 떠맡기는 격이다.

🔖201. 우버 기업의 광고처럼 차량과 핸드폰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말해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커리어'와 같다는 말이다.

🔖207. 플랫폼 기업은 당연히 돈을 많이 벌만 해요. 아이디어를 내고 밑바닥에서 시작해 회사를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했으니까요. 하지만 우버와 리프트 같은 플랫폼 기업이 수십억 달러를 벌면서 기사들을 굶주리게 하고 노숙자 신세로 만드는 건 옳지 않아요.

#유경현 #유수진 #별다섯개부탁드려요 #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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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하 인간 - 노력하고 성장해서 성공해도 불행한
제이미 배런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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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봐도 끝난 책! 책 내용은 세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나 쉴 새 없이 달리고만 있을까?

항상 무언가를 증명해야 되고, 시간을 쪼개 노력해야만 하고, 나를 갈아넣어서 얻어지는 그 무언가가 정말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하는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갈아 쓰는 사람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 그런 행복의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얻어진 모든 것에서는 결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 성공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요즘이다. 사실 여러모로 많이 피곤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팔로워로 평가 당하고, 숫자를 위해 계속 보여줘야만 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현실이 버겁고 피로해 보인다. 뭘 위해서 무엇을 누리려고 하는지 모르는 채 반복되는 노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되묻고 싶다.

"그래,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걷는다. 나의 산책을 돈벌이로 삼거나, 상업화하거나, 내가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행동에서 벗어난 다른 무엇으로도 바꿀 생각 없다. 오로지 즐거움을 위한 만족." (p.275) 별 문장이 아닌 듯한 이 문장을 읽고 가슴이 철렁했다. 보여줄 필요 없이 비교할 필요도 없이 내 즐거움을 위한 만족. 그 만족감은 이미 자기안에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은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유유자적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을 영원히 쟁취하기로 마음 먹으면 후순위로 밀리기 쉬운 내 인생의 즐거운 순간들을 애써 미루지 말자는 것. 즐거움과 기쁨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지금, 여기에서 잠시라도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온전히 느끼는 것. 그게 진짜 인생이다.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인생에서 놓치기 쉬운 제일 중요한 순간들. 보여주고 증명하고 쟁취하는 것, 조금씩 놓아보려 한다. 그렇다고 내 존재가치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일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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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근본적 만족은 당신만의 소박한 삶을 꾸려나가며 행복해지는 것이다. 잔인하고 엉망인 세상의 기준에 빗대어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고, 고군분투하고, 증명하고, 밥값을 해내려 아등바등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17. 야망도 일단 내려놓기로 했다. 그 야망의 추동력은 나를 갉아먹는 지속적인 불안이었으므로.

🔖47. 구독자와 '좋아요' 수가 나라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초조하게 숫자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130. 세상의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완전히 좋거나 나쁘기만 한 건 없다. 결국 이건 우리가 어느 쪽에 집중하는지의 문제다.

🔖195. 사회가 가치를 두라고 말하는 모든 욕망을 '따라가느라' 바쁜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것을 놓치고 만다.

🔖230. 과거에 나는 계획을 세우고, 어떤 수를 써서든 이를 악물고 계획을 지키면 내가 가장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일이 풀리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엔 함정이 있다. 모든 게 반드시 내가 기대한 대로 풀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실망하게 된다. 당연히 불안해진다. 그래서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우리는 핑계를 만들곤 한다. 우리가 못나서, 부족해서, 또는 과거에 어떤 불안하버나 상처가 되는 경험을 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은 건, 애초에 그렇게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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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리는 개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유진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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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좋다고 무한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몇 줄의 문장으로, 짧은 글로도 마음을 후벼파는 감각을 느끼게 하는 책이 있다. 사강은 [패배의 신호]로 잠깐 접했는데 그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좋았다. 내용은 전혀 달라보이지만 결국에 사랑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한다는 건 동일하려나. 사강, 사강 하는 이유를 좀더 확고히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늘 치이고 굴욕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한 남자인 "게레"는 어느 날 광재더미 앞에서 보석 꾸러미를 줍게 된다. 조용히 집어 들었던 이 보석은 살인 사건이 연루되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게레의 인생은 그전과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하숙집 주인이자 한때 마피아의 정부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마리아는 게레의 보석을 보고 그를 용의자로 짐작한다. 자신을 용의자로 짐작하는 마리아의 눈빛에서 그전과 다른 경외감 혹은 진정한 남자로 바라보는 느낌을 받은 게레는 그녀를 속이게 되고... 마리아의 사랑을 계속 갈구하며 그녀와의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어떠한 상황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서서히 변해가는 생활 태도나 성격에 대한 묘사가 놀라웠다. 나도 잘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유려하고 정확하게 풀어놓은 글을 보면 가끔 너무나 놀라서 빠져드는데 이 소설 내내 그런 느낌이었다. 읽고 보니 나도 분명 느낀 적 있었던 이 감정, 말로 표현 못했던 그때의 기분과 표정이 새삼 떠오르는 것이다.

마리아는 게레를 사랑하긴 했던 걸까? 너무 평범하게 살아온 게레는 소용돌이 쳤던 과거를 가진 마리아에게 끌린 걸까? 아니면 정말 그 순종적이고 복종하려는 그 마음이 사랑인가? 나는 게레를, 마리아를 정말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고.. 한편으론 아예 낯설어서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도 같다. 둘을 다시 떠올려보니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마음이 뭔가 휑하니 서글퍼졌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자꾸 손이 가. 책을 덮자마자 다시 읽고 싶어졌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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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특히 영광의 하루를 보내고 난 지금, 그는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보다 그녀가 더 이상 그를 용의자로 믿지 않는 게 더 두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무자비한 범죄자로 바라보던, 그래서 온종일 진정한 남자로 살게 했던 그녀의 사자같이 형형한 시선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두려웠다.

🔖157. 게레는 어디선가 두려움에는 냄새가 있다는 걸 읽은 적이 있었다. 아마 그건 진실일 거였다. 그리고 어쩌면 개가 그에게서 그런 냄새를 맡은 게 아닐까? 밤에, 홀로 침울한 방에서 옷을 벗으며 게레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팔과 어깨에 코를 갖다 대보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피부에서 식별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치의 냄새였다.

🔖177. 그것들은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갑자기 이 누추한 집에 걸맞지 않아 보였다. 그 위풍당당한 보석들에서 핏자국이 지워지자, 부정할 수 없는 진품임에도 모조품처럼 밋밋하게 느껴진 것이다.

🔖179.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수수께끼 같은 표정에서 벗어난 그녀는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기도 했고, 눈물이 떨어질 것 같기도, 혹은 그를 물어 뜯어버릴 것 같기도 했다. 그를 향해, 너무도 흉폭한 동시에 애원하는 표정을 지으며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었기에, 게레는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랑수아즈사강 #엎드리는개 #안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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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행성 1 - 영원의 숲
스가 히로에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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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편협한 시각으로만 sf를 생각했었나 보다. sf라 하면 왠지 막연하게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만이 우선 떠오른다구.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읽은 [박물관 행성]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무척 따뜻하고 다정하다. 동화를 보는 듯 마음이 쿵, 동요되기도 했고 몽글몽글했다.

우주의 온갖 예술품을 수집하는 행성 "아프로디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학예사인 다카히로의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예술품들을 다루며 얽혀있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의 심리 묘사도 정교하면서 따뜻해서 마음이 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배경은 분명히 미래지만 일어나는 일들과,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감정, 작품과 교감하는 순간의 찰나는 가상의 세계에서도, 현실에서도, 과거에서도 그 울림이 주는 감동은 변함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원작은 2000년도에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어색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국내에는 2편까지 나와있고 현재 3편도 열심히 번역 중이라고 하는데 무척 기대가 되는 바이다. 따뜻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 2편도 후딱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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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이름은 개체 식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기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언어를 가진 지적 생명체가 부여하는 이름에는 그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이런저런 바람이 담겨 있어요. 이름은 개인을 개인으로서 인정하고 사랑하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죠.

🔖492. 분석은 필요 없다. 그저 느낄 뿐이다. 궁극의 미학, 천계의 음악, 지상의 행복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스가히로에 #박물관행성 #한스미디어
#힐링 #김초엽 #SF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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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지 않는 세계
김아직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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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세계. 로봇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정용 안드로이드로 소유주를 도우며 학습을 해나가던 안드로이드 '루시'가 죽음과 사후세계에 의문을 가지며 천국을 꿈꾼다. 은퇴한 노신부인 레미지오의 적적함을 알았던 로봇 루시는 본인의 정체를 숨기고 병자성사를 받게 되는데.

이 일을 알게 된 반안드로이드주의 종교인 "호르투스데이"의 총책임자 유안석은 자신들의 입지에 진흙을 묻히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사건을 비밀에 부치고 성사 받은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려고 한다.

그들은 인간을 모방한 기계 따위가 인간이 하던 일을 받아 움직이고 되려 인간이 로봇처럼 퇴화되는 지금을 암흑기로 여기고 인간의 가치를 넘보는 안드로이들 막기 위해 마녀 사냥을 시작한다. 마녀 사냥에 대한 의미도, 그리고 로봇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 준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녹슬지 않을 가치란 무엇일까.

'미등록 인간 하나, 폐기 선고를 받은 안드로이드 하나, 그 둘을 자매라 여기는 치매 노인 하나. 그렇게도 살아졌다(p.291)' 결국은 함께 하는 다정함일까. 보고 싶지 않은 미래의 모습들만 나열된 것 같은 소설이었지만 이 문장을 보고 있으니 그렇게 암흑만은 아닌 것도 같다.

도망친 안드로이드를 추적하는 김제이의 시선에서 범죄물 같기도, 스산하고 음산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스릴러 같기도, 어딘가 다치고 찢어진 것들이 서로 쓰다듬는 다정한 가족물 같기도 하면서 적절하게 가미된 액션까지. 흥미로운 진행 상황에 흡입력이 좋고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묵직하게 던져지는 철학적인 고민까지. 처음 접한 김아직 작가의 다음 작품도 이미 기대된다.

덧. 안도로이드를 마녀로 규정하고 파괴하려는 유안석이 네 이놈은 안드로이드 잡자고 인간에게 칩을 심어 강화 인간을 만드는데 그거 너무 어불성설, 내로남불 아니냐? ㅁ친놈..🤨 어긋난 신념을 가진 종교는 그 자체로 사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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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늑하고 하릴없는 그 시간이 영혼에 얼마나 깊은 내상을 입혀왔는지는 오직 레미지오만 아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쓸모가 없다는 자각은 지나온 삶의 마디마디에 골절상을 남기는 병증이었다. 하여 레미지오에게 빗속의 통증은 차라리 아름다웠다. 절망과 자기 환멸로 점철된 시간의 늪을 뚫고 나온 핏빚 꽃이었다.

🔖29. 효용이 만능의 가치로 자리 잡은 지금 여기야말로 암흑의 시대라 확신했다.

🔖85. 어떤 재앙은 기회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법이거든요.

🔖201. 소유주를 간병하다가,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두다가, 자동차 공장에서 충돌 실험에 동원되다가 돌연 명령어-실행 메커니즘 너머의 것들이 궁금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구는 루시처럼 사후 세계로 눈길을 돌리고, 또 누구는 로봇의 기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자아정체감을 붙들고 늘어질 수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요? 거리의 안드로이드들이 한꺼번에 그 질문을 외쳐대는 장면을 상상하자 제이는 온몸이 오싹해졌다.

🔖298. 녹슬지 않게 너 자신을 잘 돌봐. 세상이 끝에 다다를 때까지 너도 살아. 죽지 않으면 천국도 필요 없어. 전부터 얘기해주고 싶었어. 나는 이 목소리로, 너의 데이터로, 네 안에 살아 있을게. 이 세계를 무한히 지켜봐. 그리고 무한히 나를 기억해줘.

#김아직 #녹슬지않는세계 #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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