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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평점 :
정보 없이 접했다가 뒷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달콤한 이야기가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꾹꾹 눌러 읽을수록 더 어렵고 무거웠지만 그래서였는지 세 번은 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덮고 다시 맨앞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중학교 3학년의 나, 현수영. 나를 챙겨주고 돌봐준 유일한 친구이자 일종의 '주인'이었던 안혜리의 곁에서 나는 어떤 악의도 없이 악을 행한다. 벗어나기 힘든 안혜리의 그늘속에서 안혜리의 '개'가 되어 친구들을 폭행하며 안혜리의 비위를 맞춘 나는 피해자이기도, 동시에 누군가에겐 가해자이기도 하다.
어느 날 학교 앞에서 케이크를 만들던 기이한 남자와의 만남은 현수영을 새로운 세계, 혹은 희망으로의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계기를 만든다. 살아 있는 생물체에 손이 닿으면 그 생물체가 케이크가 되고, 케이크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고통 때문에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남자는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다. 나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생명체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케이크 손"을 가진 남자 역시 이 세상의 피해자며, 또 역시 가해자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
가해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슬픈 사연만으로 면죄부를 주었다가는 세상이 무너지겠지만 그 사연이 없었더라면 죄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정말 앞뒤가 맞지 않은 방식으로 질서정연하다.(p.161)"
이 책은 가해자(로 보여지는 이)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라고 책 첫머리에 적혀 있다. 더럽고 추한 것은 애써 외면하고, 애초에 그곳에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나도 그랬었던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고고한 척, 깨끗한 척, 내가 정답인 듯 남을 평가하기도 했다. 그게 오로지 나의 잘남과 나의 밝음이 아니라 그저 좋은 환경을 만났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간 내 비겁함까지 까발려진 기분.
안혜리의 세상이 전부였던 주인공 현수영이 "케이크 손"을 가진 남자를 만나며 현실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기로 결정한 듯해서 살짝 마음이 놓였지만 끝끝내 고통을 버티며 현수영을 맨손으로 만지지 않은 채 떠난 남자의 행방 역시 몹시도 궁금하다.
잘못된 편견과 아집에 빠지기란 얼마나 쉬운가. 누군가를 판단함에 있어 정확하고 논리적이기란 가능한 일일까? 속속들이 알지 못한 채, 혹은 알고자 하는 일말의 노력 없이 우리 모두는 늘 오해를 낳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그렇기에 더 거룩해 보이는 남자의 선택이 현수영의 마음에, 그리고 내 마음에도 작은 울림으로 피었다. 어쨌거나 다시 읽게 될 책. 단요 님의 책은 사실 처음 접했는데 [케이크 손]으로 단요 님의 다른 책을 모두 장바구니에 담았다구. 나에겐 굉장히 좋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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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그 선생 말대로 정신을 차리면 지금 어울리는 애들을 한심하게 여길 텐데, 숨 쉬고 느끼던 모든 것을 부끄럽거나 떨쳐내야만 하는 허물로 생각하게 될 텐데, 엄마를 원망할 것이며 안혜리의 빛마저도 이내 사라질 텐데, 나는 그러기 싫다. 나는 내게 고맙고 따뜻하고 찬란한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비록 그 따뜻함이 후회나 질병이나 죄 같은 것일지라도 말이다.
🔖92-93. 나는 때때로 무해하고 다정한 환대를 말하는 책들이 우리를 우아하게 모욕한다고 느꼈다. 우리를 매대에 올릴 만한 상품으로 소모시켜버린다고 느꼈다. 이 정도의 누추함은 감당할 누 있다는 오만을 판매하는 것이다. 어둡고 질척한 덩어리에서 슬픔과 연약함처럼 투명한 감정만 추출하고 기이함과 추함과 주먹질과 발작적인 웃음 따위는 모두 없는 척 내버리는 것이다. 쓰레기장에 핀 꽃을 보고 감동하지만 악취에는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 오로지 검댕을 이기고 핀 꽃을 보기 위해서만 쓰레기장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았다. 그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의 명세를 알려 하지 않았고, 해로운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도리어 치워 없애려 들었다. 그래서 비겁했다. 나는 종종 그 사람들을 제자리에서 끌어내서 내 집에, 혹은 쥐 사육장 곁에 던져 넣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단요 #케이크손 #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