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흑역사 - 이토록 기묘하고 알수록 경이로운
마크 딩먼 지음, 이은정 옮김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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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뇌가 고장난다면? 뇌의 오작동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기이하고 이상한 실화들을 다룬 책. 단지 실화에만 초점을 둔 게 아니라 뇌의 기능적이고 진화론적인 측면에서의 다양한 설명들까지 너무 좋았다.

뇌의 각 영역의 역할이 중요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뇌 구역 간의 네트워크적인 측면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함을 이야기한다. 너무도 당연하게 일상 생활을 하고 평온함을 누리는 내 상황은 모든 신체와 정신의 기능적인 이상이 없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복잡다단한 현실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여러 증후군으로 이름 붙여진 듣도 보도 못한 사례들에 혀를 내두르며 푹 빠져 읽던 며칠이었다. 외상이나 종양, 감염 등으로 언제 어디서나 나에게도 생길 수 있을 이런 모호한 상황들을 상상하며 소름이 돋기도 했다. 여전히 연구 중이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뇌 속에 있을 것이다.

* 자신을 죽었다고 인지하는 코타르증후군
*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손(발)으로 고통받는 외계인손증후군
* 버리지 못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저장강박증
* 하루아침에 천재가 된 후천적서번트증후군
*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공유정신병적장애
* 쓸 수 있지만 읽을 수 없는 순수실독증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뇌의 손상을 입는 사고 이후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던 피아노를 유창하게 친다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를 누르지 못하고 천재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뇌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애초에 잠재되어 있던 능력인 건지 생각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후천적 서번트 증후군)

또 한 가지 "공유 망상"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적잖이 놀랐다. 엄마와 딸이 윗집 소음과 밤낮 울려대는 음악 소리로 불면에 시달리고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도움을 요청했던 사건에 사실 소음도, 음악도 없었다는 이야기에서 소름. 응? 엄마도 딸도 들었다면서요. "공유정신병적장애"는 우리가 얼마나 사회적인 영향력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뇌는 사실, 가끔, 진실을 왜곡하고 옳은 판단을 뒤집기도 한다. 사회성을 따르는 뇌는 그렇게 진화가 되어 왔던 합리적인 생존 방식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도 밑줄 좍좍. 새롭고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다 옮겨 쓰지도 못할 만큼 밑줄을 많이 그었다. 나에겐 너무 유익하고 즐거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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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우리는 예기치 못한 하나의 사건이 나의 정체성, 그리고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삶을 살아간다.

🔖129. 성도착증의 신경과학적 논의도 쉽지 않다. 소아성애와 같은 문제 있는 성적 행동을 신경생물학적 이상의 탓으로 돌린다면 충동을 실행으로 옮긴 사람에게 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소아성애자가 자신의 행동을 뇌종양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이들은 행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마크딩먼 #뇌의흑역사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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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오늘은 안전하십니까 - 재난안전을 넘어 삶의 자유를 꿈꾸는 이들에게
윤재철 지음 / 작가와비평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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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안전 전문가가 돌아보는 삶의 회고록. 재난안전 분야에서만 10년 몸담은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은 어떤 모습일까?

보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은 재난 사건들은 늘상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그 누구도 재난안전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과 구미 불산 누출 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와 세월호, 이태원 압사 사고, 그리고 코로나 19 사태까지. 저자 윤재철 박사님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재난 사고들과 그에 대한 설명, 그 뒷이야기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재난 사고는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만 보다가 안전 전문가의 입장과 상황에서 보는 사건 자체와 수습 후 책임자들의 시선 역시 뒷맛이 씁쓸했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 또한 명확히 밝히는 게 맞지만 그로 인해서 재난관리 부서에의 기피 현상이 생긴다는 점도 생각해볼 문제였다.

재난안전 사고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중한 업무를 맡으며 평생을 지낸 전문가가 깨닫고 느낀 삶의 이치를 들어보는 글들도 많아서 좋았다. 재난 이야기로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살짝 밝혀줬달까. 한 분야의 전문가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각각 다른 모습이듯이 그런 모습으로 살아보지 못한 내가 책을 통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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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은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징벌 조치가 공무원들의 재난안전 부서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업무량은 많고 재난 안전사고 발생 시 책임까지 물으니 견디기 힘든 것이다. 2023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재난안전 부서를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 있는 공무원이 맡아야함에도, 현실은 기피 부서가 되었고 초심 보직자들이 주로 근무하는 부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재난안전부서 근무를 기피하는 한, 전문성 있는 재난 대응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100. 나무숲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차기 전에 버리고 덜어내야 지혜로운 사람인데, 과도한 욕망을 추구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파멸에 이르는 것이 현대인이다. 만족하는 것이 세상의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자주 숲에 가서 산책 명상을 통해 마음에 달라붙은 욕심을 내려 놓자.

🔖142. 우리는 흔히 과거에는 낭만도 있었고 가난해도 행뵈했었는데 지금은 낭만도 없고 물질적 풍요 속에 오히려 불행하다고 한다. 반드시 그럴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지금도 낭만이 있고 세상 사는 재미가 과거처럼 다 있는데, 과거에는 그것을 느낄 시간이 있었고 지금은 바빠서 못 느낄 따름이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가 사람들을 바쁘게 살게 만든 것이다.

#윤재철 #당신의오늘은안전하십니까 #작가와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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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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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없이 접했다가 뒷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달콤한 이야기가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꾹꾹 눌러 읽을수록 더 어렵고 무거웠지만 그래서였는지 세 번은 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덮고 다시 맨앞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중학교 3학년의 나, 현수영. 나를 챙겨주고 돌봐준 유일한 친구이자 일종의 '주인'이었던 안혜리의 곁에서 나는 어떤 악의도 없이 악을 행한다. 벗어나기 힘든 안혜리의 그늘속에서 안혜리의 '개'가 되어 친구들을 폭행하며 안혜리의 비위를 맞춘 나는 피해자이기도, 동시에 누군가에겐 가해자이기도 하다.

어느 날 학교 앞에서 케이크를 만들던 기이한 남자와의 만남은 현수영을 새로운 세계, 혹은 희망으로의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계기를 만든다. 살아 있는 생물체에 손이 닿으면 그 생물체가 케이크가 되고, 케이크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고통 때문에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남자는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다. 나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생명체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케이크 손"을 가진 남자 역시 이 세상의 피해자며, 또 역시 가해자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

가해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슬픈 사연만으로 면죄부를 주었다가는 세상이 무너지겠지만 그 사연이 없었더라면 죄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정말 앞뒤가 맞지 않은 방식으로 질서정연하다.(p.161)"

이 책은 가해자(로 보여지는 이)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라고 책 첫머리에 적혀 있다. 더럽고 추한 것은 애써 외면하고, 애초에 그곳에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나도 그랬었던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고고한 척, 깨끗한 척, 내가 정답인 듯 남을 평가하기도 했다. 그게 오로지 나의 잘남과 나의 밝음이 아니라 그저 좋은 환경을 만났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간 내 비겁함까지 까발려진 기분.

안혜리의 세상이 전부였던 주인공 현수영이 "케이크 손"을 가진 남자를 만나며 현실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기로 결정한 듯해서 살짝 마음이 놓였지만 끝끝내 고통을 버티며 현수영을 맨손으로 만지지 않은 채 떠난 남자의 행방 역시 몹시도 궁금하다.

잘못된 편견과 아집에 빠지기란 얼마나 쉬운가. 누군가를 판단함에 있어 정확하고 논리적이기란 가능한 일일까? 속속들이 알지 못한 채, 혹은 알고자 하는 일말의 노력 없이 우리 모두는 늘 오해를 낳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그렇기에 더 거룩해 보이는 남자의 선택이 현수영의 마음에, 그리고 내 마음에도 작은 울림으로 피었다. 어쨌거나 다시 읽게 될 책. 단요 님의 책은 사실 처음 접했는데 [케이크 손]으로 단요 님의 다른 책을 모두 장바구니에 담았다구. 나에겐 굉장히 좋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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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그 선생 말대로 정신을 차리면 지금 어울리는 애들을 한심하게 여길 텐데, 숨 쉬고 느끼던 모든 것을 부끄럽거나 떨쳐내야만 하는 허물로 생각하게 될 텐데, 엄마를 원망할 것이며 안혜리의 빛마저도 이내 사라질 텐데, 나는 그러기 싫다. 나는 내게 고맙고 따뜻하고 찬란한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비록 그 따뜻함이 후회나 질병이나 죄 같은 것일지라도 말이다.

🔖92-93. 나는 때때로 무해하고 다정한 환대를 말하는 책들이 우리를 우아하게 모욕한다고 느꼈다. 우리를 매대에 올릴 만한 상품으로 소모시켜버린다고 느꼈다. 이 정도의 누추함은 감당할 누 있다는 오만을 판매하는 것이다. 어둡고 질척한 덩어리에서 슬픔과 연약함처럼 투명한 감정만 추출하고 기이함과 추함과 주먹질과 발작적인 웃음 따위는 모두 없는 척 내버리는 것이다. 쓰레기장에 핀 꽃을 보고 감동하지만 악취에는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 오로지 검댕을 이기고 핀 꽃을 보기 위해서만 쓰레기장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았다. 그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의 명세를 알려 하지 않았고, 해로운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도리어 치워 없애려 들었다. 그래서 비겁했다. 나는 종종 그 사람들을 제자리에서 끌어내서 내 집에, 혹은 쥐 사육장 곁에 던져 넣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단요 #케이크손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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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흐른다 (특별판 트레싱지 에디션) - 삶의 지표가 필요한 당신에게 바다가 건네는 말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FIKA(피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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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를 바라보면 가끔 내 자신이 자연 속에 일부이긴 하나 정말 미미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는다. 내 고민과 걱정거리조차 큰일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마음에 요동이 치거나 울적할 때, 기분을 좀 바꿔보고 싶을 땐 항상 바다가 떠오른다.

나는 섬에 사는 특별한 혜택으로 바다는 말그대로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늘 있다. 같은 것을 보아도 받아들이는 정도는 누구나 다르겠지만 나는 나의 혜택을 제대로 알고 있으며 바다가 주는 황홀함에 언제나 감사한다. 거제의 바다는 보고 또 봐도 새롭게 아름답거든.

나는 아름다움과 마음의 평안을 바다에서 얻었다면, 이 책의 작가 로랑스 드빌레르는 인생 전반의 통찰을 바다에서 얻었다. "인생을 제대로 배우려면 바다로 가라"고 말하는 프랑스 최고의 철학과 교수.

철학을 아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에 비해 훨씬 풍요롭다. 이 책은 이론적이고 원론적인 어려운 텍스트가 아닌 일상의 언어로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바다에 빗대어 표현한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 속 나 자신의 모습으로 꿋꿋하게 살아나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뻔한 내용일수도 있지만 매 챕터마다 바다에 관련된 주제와 인생을 연결하는 작가의 능력을 보는 재미까지 있다.

바다는 그저 그대로를 품는다. 우리의 인생도 바다와 비슷하게 흐른다. 바다가 주는 교훈을 이 책 한 권으로 품은 채 다시 바다를 보러 나가고픈 마음이 든다. 왠지 이전과는 다른 충만함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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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세상을 끝없는 말초적인 자극과 흥분으로 채우지 말자. 우리가 보내는 시간을 끝없는 분주함으로 채우지 말자. 혼자 있는 시간 자체를 소중히 하고, 고독이 찾아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진정한 고독을 즐기려면. 계속 무엇인가를 하면서 휴식 시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분명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우리는 이미 바빠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마치 무언가를 계속해서 한다는 것을 끝없이 증명해야 하는 세상에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삶에서 진정으로 가져야 할 태도는 그런 게 아니다.

🔖105. 타협하지도 모방하지도 말자. 다수에 속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지도 말자.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교류하고 나누되 무리하게 남에게 맞추지도, 남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지도, 무리에 휩쓸리지도 말자.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유일한 섬이 되자.

🔖129. 이미 가진 것은 더 이상 원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 것이다. 사물 본연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이 사물에 더 이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뿐이다.

🔖208. 실패해도 모험을 시도하는 건 나 자신에 대해 계속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234. 율리시스와 마찬가지로 세이렌의 노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배의 커다란 돛대에 우리 자신을 단단히 묶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자신의 중심을 지키고 담담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이렌 마녀들과 한패가 되어 유혹의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 차갑더라도 진실을 중시하는 태도를 늘 지켜야 한다.

#로랑스드빌레르 #모든삶은흐른다 #피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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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키
요헨 구치.막심 레오 지음, 전은경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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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조금 외로웠나? 책을 끝까지 읽고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물론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었는데도 그렇다. 내내 미소를 머금고 읽었는데 마지막에 이게 무슨 일인지.

소설 내내 고양이 프랭키가 화자다. 인간어를 할 줄 아는 고양이. 허나 인간의 삶 속속들이는 잘 모른다. 쓰레기 더미에서 살다가 어느 멋진 집을 찾은 고양이 프랭키는 실내에서 천장에 달린 멋진 끈을 가지고 노는 남성 골드를 발견한다. 물론 골드는 끈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게 아니다.

자살의 문턱에서 우연히 골드를 구해낸 프랭키는 그와 함께 지내게 된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보는 인간들의 희노애락이란. 고양이 프랭키의 시선으로 바라본 골드의 우울과 고통은 어쩐지 영원히 감당 못할 괴로움은 아닌 것도 같다. 아무리 끔찍한 일을 겪었더라도 자기 자신을 해치려는 건 고양이 프랭키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수고양이들보다는 오래 사니까 자신이 죽을 때까지만 자살을 유예하면 어떻겠냐고 묻는 프랭키. 둘의 대화가 따스하고 귀엽다. 결국 골드는 프랭키로 인해 웃는다. 그리고 나아지려고 한다. 작은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에. 고양이 프랭키도 흔들리는 골드를 지켜내야 하기에 다시 힘을 낸다. 소설에서 처음 만났던 고양이 프랭키는 소설 말미에 다가가서 엄청 어른(성묘?)이 된 느낌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준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책이 가지고 있는 감동을 파헤치려고 애쓰지 않아도 어느새 은은하게 이미 스며들게 되는 시간. 여전히 내 눈물의 의미는 딱 부러지게 찾지 못한 채 그저 아주 소소하면서도 몽글한 이 이야기의 울림을 마음에 담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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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이게 바로 증거야! 누군가 고양이에게 자기가 돌았는지 물어보고 고양이의 대답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돈 거지. 이게 증거라고!

🔖115. 내 생각에 인간들은 너무 많은 걸 필요로 해. 잔디 깎이, 화장실, 삶의 의미 등등. 결국은 풀밭에 주저앉아 욕설을 퍼부으며 기계나 두드릴 거면서.

🔖230. "네가 하필이면 나를 만나서 안타깝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바로 이게 문제다. 더 나은 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

🔖233. 린다를 생각할 때면 엄청나게 맛있던 그 소스를 함께 먹던 바로 그 장면이 가끔 떠올라. 참 우습지. 결국은 소소한 일들이 남아.

🔖263. 참 이상하다. 누군가 방금 떠났는데도 벌써 보고 싶어. 이상하지.

#요헨구치 #막심레오 #프랭키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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