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큰사전4//(엣말과 이두)
어문각 / 1992년 1월
평점 :


일제시대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국어 지키기 운동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말 큰 사전의 중세국어편입니다.
지금은 절판되어서 중고로 밖에 구할 수 없는데요.
남광우 교수의 고어사전에 비해 큰 글씨체와 풍부한
예문이 담겨 있어서 가독성이 좋습니다.
다만 최현배 선생의 문법체계를 따르고 있다보니
지금의 문법용어와는 조금 달라서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학교문법의 보조어간과
파생접사 류를 도움뿌리로 처리하는데 그점을 참고하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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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배경과 출발점
-헤겔의 정신 개념의 출처는 무엇인가?

헤겔의 학문적 출발점 내지 뿌리는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헤겔 당시의 철학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헤겔은 당시 독일 철학계를 대표하는 두 사람, 곧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과의 
연관 속에서 절대적 관념론이라는 자신의 학문 체계를 
세운다. 먼저 피히테와 셸링의 중심 사상을 간단히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1. 피히테는 대상 세계의 현실과 인간 주체의 근원적 통일을 ‘자아‘를 절대화시켜서 만들어냈다(이진경 2008, 174).
그는 사유하는 인간 주체, 곧 인간의 자유로운 "자아 (Ich)로부터 출발하여 자연의 세계를 파악한다. "절대적 자아는 
오직 무조건적으로 그 어떤 더 높은 것을 통해서도 규정될 수 없이 세워진다는 데 철학의 본질이 있다" (Weischedel 
1971,230에서 인용). 

절대적 자아는 자기 자신을 자기에게 모순되는 것, 
곧 비자아로 세우고,이를 극복해나가는 순수하고 무한한 
활동성이다. 그것은 절대적 자유다. 자아가 자기 자신을 
자기의 비자아로 자기에게 세운다. 이로써 자아와 비자아의 정과 반(These Antithese)이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자아와 비자아, 곧 정과 반은 서로를 배제하는 대립 속에 머물 수 없다. 그것들은 대립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자아와 비자아는 자기 자신을 제한함으로써 
더 이상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 합(Synthese)에 이르고자 
한다. 자연의 세계는 자아의 이와같은 자기활동의 산물이다. 본래 자아 밖에는 아무것도 없고, 대상 세계의현실은 자아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자아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자체" (Ding an sich)는 거부된다. 칸트가 말하는
 "사물 자체는 인간의 주체적 의식, 오직 자기 자신을 통해 
결정된 자유로운 기능의 산물에 불과하다. 인간의 주체적 
의식을 모든 경험과 인식의 근거와 출발점으로 보는 관념론은 "자유와 행동의 체계다"(Windelband 1957,499).

2. 자아에서 출발하는 피히테에 반해, 셀링은 자연에서 
출발한다. 피히테와 달리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아를 근거로 자연을 도출할 수는 없는 일"이고, 
"오히려 객체-주체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주체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진경 2008, 175). 그래서 셀링은 자기의 철학을 자연철학이라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을 신적인것으로 보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낭만주의적 자연관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스피노자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인과론에 기초한 
기계론적인 자연과학의 자연관에 반대하여 자연을
 "신적 본질이 그 속에 충만히 나타나는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 내지 유기체적 생명으로 본다. 괴테를 위시한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스피노자의 자연관을 수용한다. 
낭만주의자들의 자연관이 셀링의 철학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셸링은 당시 낭만주의 대표자 슐레겔(AW. Schlegel)의 딸로서 자기보다 나이가 12살 더 많고, 결혼했다가 
이혼한 카롤리네(Caroline)와 결혼했다. 이것은 그가 
낭만주의의 자연관에 심취했음을보여준다. 
이리하여 그는 "독일 낭만주의의 철학자"라 불리게 된다.

셀링은 낭만주의의 자연관에 근거하여 피히테의 자아와 
자연의 관계를 정반대로 되돌려버린다. 자연이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정신이 자연의 산물이다. 자연 그 자체는 
본래 살아 있는 정신이며 "형성 과정 속에 있는 자아다
(das werdende Ich, Windelband 1957,514). 
자연과 정신, 현실적인 것과 관넘적인 것은 그 깊은 데에 
있어 동일하다. 그래서 셸링의 철학은 "동일성의철학" 
(Identitatsphilosophie)이라 불린다.

3. 헤겔은 피히테의 철학을 가리켜 "주관적 관념론"이라 
부른다. 피히테는인간의 주체, 곧 자아로부터 출발하여 
세계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자아 속에서 자연을 
인식하고, 자연 속에서 정신을 인식하는 셀링의 철학을 
"객관적 관념론"이라 부른다.

헤겔은 피히테와 셸링의 두 가지 관념론을 넘어서는 
관념론을 세우게 된다. 그는 피히테의 주관적 자아와 
셀링의 객관적 자연을 넘어서는 절대자, 곧 절대정신에서 
출발한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의 관념론을 "절대적관념론"이라 부른다. 절대자, 곧 신적 정신이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의 출발점이 된다. 세계의 모든 것이 절대자, 곧 신적 정신으로 설명된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이 셀링보다 피히테의 편으로 기울어짐을 볼 수 있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정신을 설명하지 않고 
정신으로부터 자연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헤겔 철학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피히테라고말한다. 특히 그는 피히테의 정반합의 공식을 
헤겔의 변증법의 모체라고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 철학의 출발점이 정신의 개념에 있다는 사실을 볼수 있다. 그럼 헤겔이 말하는 정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헤겔의 정신 개념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4.헤겔의 청년기부터 시작하여 그의 모든 문헌을 읽어볼 때, 
헤겔이 말하는 "정신"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정신이다" (Gott ist Geist)라는 헤겔의 
말이 이를 명백하게 증명한다(19666, 51,1966d, 69.95 등). "정신으로서의 하나님" (Gott als Geist)이란 개념이 그의 문헌도처에 나타난다. 이에 대한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헤겔은 20대의 청년 시대 (1793-1800)부터 하나님을 
"정신"으로 이해한다. "신적인 것의 작용은 정신들의 결합일 뿐이다. 정신만이 정신을 파악하며, 정신을 그 자신 속에 
포괄한다" (1971,372). 곧 신적인 것이 작용할 때, 하나님의 정신과 인간의 정신이 결합된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만이 
하나님의 정신을 자신 속에 포괄하며, 하나님의 정신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의 정신과
결합되는 신적 정신으로 파악된다.

뉘른베르크 시대의 "종교론" 강의록에서 신적 본질의 
"현실적 형태"는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이다"(1970b, 283,
13).

하이델베르크 시대의 《철학적 학문의 백과전서》에서
 "하나님은 절대정신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1969d, § 50 주해). 
"그 자신으로서 자기자신 속에서 (als sich in sich selbst) 그 자신과 중재하는 것으로 알려지는점에서, 정신은 하나님이라 불릴 수 있다.... 이로써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 자신과의 중재를 포괄한다" (874),
 "정신이란말과 표상은 일찍 발견되었다. 기독교 종교의 
내용은 하나님을 정신으로 인식하는 데 있다"§394),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이 무엇인가를사유로써 파악하기 위해... (8564 주해).

《하나님 존재 증명 강의》에서 "하나님은 정신이다"
(1966e, 28), 하나님은 돌이나 식물이나 짐승에게 자기를 
계시할 수 없다. "하나님은 정신이기 때문에 사유하는 
정신인 인간에게만 자기를 계시할 수있다"(48-49)


5.여기서 우리는 헤겔의 정신 개념이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분명히 볼수 있다. 한국의 일부 철학자들은 헤겔이 말하는 "Gott"를 "신"(神)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헤겔은 루터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견신례까지 받은기독교 신자였다. 

세례와 견신례까지 받았기 때문에, 그는 튀빙겐슈티프트들어가서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을 수 있었고, 
신학을 주전공과목으로 공부했다. 생애 마지막인 베를린 
시대에도 헤겔은 자기는 루터교회 신자라고 말했다.

따라서 헤겔이 말하는 "Gott"는 종교학적 의미의 "신"이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님을 말한다. 그러므로 헤겔이 말하는 "Gott"는 "신"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물론 종교사적 맥락에서는 "신"으로 번역되어야 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하나님으로 번역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Gott als Geist"는 "정신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헤겔은 청년 
시대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생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무신론 계열의 철학자들, 특히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은 혜겔의 정신 개념이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무시하고 그것을 단지 세속적인 정신, 세속적인 민족정신이나 세계정신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이것은 헤겔 자신의 
생각을 훼손하는 행동이다. 수많은 권위 있는 학자들이 
헤겔의 정신 개념은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인정한다. 

빌헬름 바이셰델에 의하면,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본질적 표현이며, 헤겔의 철학적 신학 
일반의 중심 개념"이다(Weischedel 1971, 302), 
헤겔 문헌 편집자 라손에 의하면,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은 
헤겔 철학의 "가장 높은 원리"다(Lasson 1920, 23), 
그것은 "성서의 고백에 대한 적절한 개념적 파악이다(Schmidt 1974, 20).

하나님은 오직 정신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정신으로서 우리에게 공허한 말이 되지 
않으려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는 자기를 그 자신의 대상으로, 성자로 만들고, 이 대상
 안에 머물며,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구별성 속에서 
이 구별(Unterschied)을 지양하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이 사랑 안에서 그 자신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이렇게파악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정신으로서의 하나님(Gott als Geist)이다. 
삼위일체만이 정신으로서 하나님의 규정이다(1966b, 
41-42).

헤겔의 문헌 중 가장 중요한 문헌은《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이다. 정신현상학은 정신, 곧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의 현상(나타남)을 기술한 책이다. 그것은 세계와 
관계된 경륜적 삼위일체 하나님의 외적 자기활동을
기술한 책이요, 그의 《논리학》은 내재적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자기활동을 논리적 개념으로 기술한 책이다.

 "순수 사유의 왕국인 논리학은 "자연과 유한한 정신의 
창조 이전에 그의 영원한 본질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타냄(Darstellung Gottes)"이라는 논리학 서론의 
말은 내재적 삼위일체를 가리킨다.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를 알지 못할 때, 이문장의 뜻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은 헤겔의 신학적 뿌리를 덮어버리고 그의 철학을 
단지 고대 그리스 철학에 뿌리를 가진 세속적 철학으로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헤겔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신학적 
내용들을 무시하는정직하지 못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세계사의 통치자 및 섭리자로 파악하고, 
세계사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것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헤겔 자신의 의도에도 어긋난다.



마르크스주의 계열 학자들의 중요한 결점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헤겔철학의 신학적 뿌리 내지 전제를 덮어버리고 
사회 변혁과 혁명에 대한 정치철학적 관심에서 헤겔 철학을 해석한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인간의 사회 변혁과 혁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지금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블로흐는 예외적이다. 그는 좌파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헤겔 철학의 신학적 뿌리 및 전제를 정직하게 인정한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은 삼위일체론에서 유래하며, 헤겔은 
하나님의 대상적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자신의 헤겔 연구서에서 인정한다(Bloch 1962, 328-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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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들은 미학에 헌정된 것이다; 그 대상은 드넓은 
미의 왕국이며, 더 자세히는 기술, 그것도 미적 기술이 
그 영역이다.

물론 이러한 대상에 대해 미학Asthetik 이란 이름이 정녕 
꼭 적합한 것은 아닐 터이니, 까닭인즉 ‘미학‘은 더 자세히는 감각과 감응Empfindung의 학을 가리키며 또한 
이 의미에서라면 하나의 새로운 학문으로서 혹은 차라리 
이제야 하나의 철학 교과가 될 법한 그 어떤 것으로서 
볼프에 기원을 두었기 때문인데, 당시 독일에서는 
예술작품의 고찰을 그것이 환기하기 마련인 감웅들, 
가령 즐거움, 경이, 공포, 연민 등의 관점에서 행하였다. 

그리하여이 이름의 부적합성, 좀 더짚어 말해 그 피상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예컨대 미론Kallistik 등 다른 이름을 
지으려고도 시도했지만, 우리가 뜻하는 바의 학문은 
미 일반이 아닌, 순전히 예술의 미만을 고찰하는 까닭에 
이 이름 역시 불충분해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학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두고자 하는
바, 까닭인즉 단순한 명칭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든 
별 차이가 없으며 게다가 어언간 상용어가 되어 명칭으로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우리의 학문을 위한 적절한 표현은 ‘기술의 
철학‘, 더 정확히는 ‘미적 기술의 철학‘[예술철학]일 것이다.

정신과 그 예술미가 자연에 대해갖는 우월성은 상대적 
우월성에 그치지 않는다. 참된 것은 모름지기 정신이며 
또한 정신은 모든 것을 자신 속에 포괄하는 것이기에, 
일체의 아름다운 것은 오로지 이러한 우월성을 나누어 갖고 또 이를 통해 산출됨으로써만 참되게 아름답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미는 다만 정신에 속한 미의
반사로서,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양태로서 나타나니, 
이 양태의 실체는 정신자체에 들어 있다.
- 그 밖에도 고찰의 대상을 예술로 제한함은 우리에게 
매우 자연스럽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미에 대해 
제아무리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고 해도 -우리보다는 고대인들의 경우가 덜하지만, 아마 아직 어느 
누구도 자연물의 미에 대한 관점을 부각하고 또 이러한 
미의 학문을, 즉 그 체계적인 서술을 하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유용성의 관점을 채택하여, 가령 병에 효험이 
있는 자연물들관한 학문, 즉 치료에 유용한 광물이나 
화학물질, 식물, 동물 등에 관한 서술인 약학과 같은 것을 
정립하긴 했으나, 미의 관점에서 자연의 영역을 분류하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자연미의 경우 우리는 판단기준이 
없다는 모호성을 너무도 절감하는 까닭에 그런 식의 
분류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미, 예술미, 양자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본격적 대상 
영역에서 자연미를 제외시키는 것에 대한 이 같은 예비적 
언급들은 학에 대한 경계설정이단지 자의와 임의에서
 비롯된 것인 양 여기는 우리의 생각을 불식할 것이다.
이 관계의 고찰은 우리의 학문 자체의 내부에 속하며 
따라서 나중에야 비로소 상세히 논구 · 입증될 것이기에, 
여기서는 아직 그 증명이 없을 것이다.

예술의 사명은 대단히 풍부한, 다채로운 가상을 갖는 
자연형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 상상력은 이를 
능가하여 자신만의 생산 활동에 무한정 몰입할 능력이 있다. 판타지와 그 자유로운 산물들이 지니는 이렇듯 가늠할 수 
없는 충일함 앞에서, 사상은 이것들을 완벽하게 자신 
앞으로 가져오고, 판단하고, 또 자신의 보편적 정식하에
 편입시키려는 용기를 잃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학문은, 보통 인정되거니와, 그 형식상 수많은 
개체성들을 사상하는 사유와 관계하며 이로써 한편으로 
상상력과 그 우연 및 자의는즉 예술 활동과 예술 향유의 
기관은 학문으로부터 제외된다고들 한다. 

다른 한편 개념이 갖는 무색의 메마른 건조함에 밝은 생기를 부여하고 그 추상과 이분화를 현실과 화해시키며 개념을 
현실에 의거해 보완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면, 다만 
사유적일 뿐인 고찰은 이러한 보완 수단 자체를 다시금 
지양·폐기하며, 개념을 현실성이 결여된 단순함과 어두운 
추상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라고들 한다. 나아가 학문은
 내용의 면에서 보면 내면 그 자체로서 필연적인 것과 관계한다고들 한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이제 미학이 자연미를 제외한다면, 
일견 우리가 얻는 것은 전무할뿐더러, 오히려 필연성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는 듯도 하다. 왜냐하면 자연이라는 
표현은이미 우리에게 필연성과 법칙성을, 그러니까 
학적 고찰에 한층 가까이 있는, 그리고 이 고찰에서 
드러날 법한 사태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정신 속에는, 특히 상상력 속에는 본래 자연과 비교하여 여하한학적 설명으로부터도 분명히 벗어나는 
무법칙성과 자의가 터 잡고 있는 듯보인다.

따라서 이 모든 측면에 비추어 볼 때, 예술은 근원의 면에서나 효과와 범위의 면에서나 학적 노고에 적합한 것으로 
보이기보다 오히려 독립적으로 사유의 규제에 저항하는 
것이자 또한 본연의 학적 논구에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술을 진정 학적으로 취급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이 같은,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의구심들은 일군의 통상적인 생각, 
관점, 고찰에서 유래하는데, 이런 것을 담은 다소 장황한 
상론들을 우리는 미와 예술에 관한 조금 앞선 시대의
 (특히 프랑스의)저술들에서 신물 나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부분적으로는 그 안에 나름대로 올바른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 부분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추론들도 그로부터 도출되어 있다. 그리하여 예컨대 미의 현상이 
편재하는 만큼이나 미의 형상은 다양하다는 사실을 들어서, 이로부터 인간 본성의 보편적 미충동이란 것이 멋대로 
추론될 수도 있고, 또한 미의 표상들은 무한히 다양하며 
이로써 일단은 뭔가 특징적인 것 Partikulies 인 까닭에 
미와 취미의 보편적 법칙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더 
나아간 결론이 내려지기도 한다.

첫째, 예술이 학적으로 고찰될 만한가 하는 가치문제에 
관해 보자. 물론예술은 오락과 여흥에 봉사하고 우리의 
환경을 치장하며 생활환경의 외면에 쾌적함을 부여하고 
장식을 통해 그 밖의 대상들을 부각하는 그러한 일시적 
유희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런 식의 예술은 기실 독립적이거나 자유로운 예술이 아니라 봉사적인 예술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찰하고자 하는 것은 그 목적이나 수단에 있어 자유로운 
예술이다. 더욱이 예술 일반이 다른 목적에도 봉사하며 
이 경우에는 한갓 부수적 유희일 수 있다는 이러한 사정을 
예술은 사상과 공유한다. 왜냐하면 학문은 유한한 목적과 
우연적 수단을 위한 봉사적 오성으로서 사용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자신의 규정을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여타의 대상들 및 관계들을 통해 얻게 됨이 사실이기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학문은 이러한 봉사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독자성 속에서 진리로 고양되기도 하니, 이 속에서 학문은 
독립적으로 오직 그 자신의 본연의 목적으로만 채워진다.

이제 예술은 이러한 자유 속에서 비로소 참된 예술로 
존재하니, 예술이종교 및 철학과 공통의 권역에 자신을 
위치시켜 신적인 것, 인간의 가장심오한 관심, 정신의 
가장 포괄적 진리들을 의식게 하고 표명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존재할 경우, 그때야 비로소 예술은 자신의 
지상과제를 해결한다. 제 민족들은 그들의 가장 알찬 내적 
직관과 표상을 예술작품에 맺히도록 했으며, 예술은 종종 
그리고 많은 민족에게는 예술만이 유일하게 지혜와 종교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 왔다. 예술은 이러한 규정을 종교 및 철학과 공유하지만, 지고의 것조차도 감각적으로 표현하여 자연의 현상방식, 감각, 감응에 가까이 가져가는 특유의 
방식으로 그 규정을 지닌다. 사상은 초감성적 세계의 
심연으로 뚫고 들어가 우선은 이 세계를 직접적 의식과 
현재적 감용에 대응하는 하나의 저편으로서 정립한다. 
감각적 현실과 유한성이라고 불리는 이편으로부터의
이탈이 바로 사유적 인식의 자유인 것이다.

그러나 정신은 자신이 향해 가는 이러한 단절을 또한 
치유할줄도 안다;정신은 스스로 예술작품을 산출하니, 
이것은 단순히 외적 감각적 · 일시적인 것과 순수한 사상 
사이의, 자연 및 유한한 현실과 개념적 사유가 갖는 
무한한 자유 사이의 최초의 화해적 중개자인 것이다.

이제 예술적 요소 일반의 가치성, 즉 가상과 기만의 몰가치성이란 것에 관해 보자. 이러한 항변은 만일 가상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물론 정당성을 지닐 게다. 그러나 가상 자체는 본질에 본질적이니, 진리가 만일 가상하거나 현상하지 않는다면, 진리가 만일 일자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정신 일반에 대해서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면, 진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난의 대상이 될수있는 것은 가상작용 전반이 아니라, 다만 예술이 내적으로 참된 것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하나의 특수한 방식의 가상이다. 이런 관계에서 [22] 예술이그 구상들을 현존재하는 가상을 기만으로 규정하려 든다면, 이러한 비난은 일단 현상과 그 직접적 질료성이라는 외적 세계와의 비교하에서, 그리고 우리 고유의 감응세계, 즉 내감적 세계와의 관계하에서 그 의미를 지니겠는데, 우리는 경험적 삶과 우리의 현상 자체의 삶 속에서 이 두 세계 모두에 현실성, 실제성, 진리라는 가치와 이름을 그러한 실제성과 진리가 결여되어 있다고들 하는 예술과 대립시켜, 부여하곤 한다. 그러나 경험적인 내적, 외적 세계의 이러한 모든 영역이야말로 참된 현실성의 세계가 아니라오히려 예술보다 더욱 엄밀한 의미에서의 한갓된 가상으로, 더욱 심한 기만으로 불릴 수 있다. 참된 현실성은 감응과 외적 대상들의 직접성 너머에서 비로소 발견된다. 왜냐하면 오로지 즉자대자적 존재자와 자연과 정신의실체만이 참으로 현실적이기 때문인바, 이 실체는 자신에게 현재와 현존재를 부여하되 이 현존재 속에서 자대자적 존재자로 머물며 그리하여 비로소 참으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소 참으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예술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 힘들의 주재를 부각하고 현상시킨다. 일상적인 외적, 내적 세계에서도 본질성이 현상하긴 하나, 그것은 우연성들의 혼돈이라는 형태 속에서 현상하며또한 감각적인 것의 직접성에 의해, 또 상황, 사건, 성격 등의 자의를 통해훼손된다. 예술은 이러한 저열하고 덧없는 세계의 가상과 기만을 현상들의저 참된 내용에서 제거하여 그것에 정신으로부터 태어난 한층 높은 현실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예술이 단순한 가상이라는 것은 얼토당토않으며, 예술의 현상들에는 일상적인 현실과 대립하여 더 높은 실제성과 더 참된 현존재가 속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 편찬을 더욱 참된 서술이라고 부르고 
이에 대해 예술의서술을 기만적 가상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역사 서술 역시 직접적 현존재가 아닌 그 정신적 
가상을 서술의 요소로 삼되, 그 내용은 일상적 현실과 
그 사건들, 분규들, 개별성들이라는 전적인 우연성에 매여 
있는 반면, 예술작품은 감각적인 현재와 그 덧없는 
가상이란 부속물을 뺀 채로역사 속에 주재하는 영원한 
힘들을 직접 우리와 조우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술형상들의 현상방식이 철학적 사유나 종교적, 
인륜적 명제들과 비교해서 하나의 기반으로 불릴진대, 
한 내용이 사유의 영역에서 얻는현상형식이 가장 참된 
실재성인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감각적인 직접적
실존의 가상이나 역사 편찬의 가상과 비교하면 예술의 
가상은 철저하게 자신을 통해 자신을 해명하며 그를
통해 표상되어야 할 정신성을 자신으로부터 적시하는 
장점을 갖는 데 반해, 직접적 현상은, 참된 것이 직접적 
감각성을 통해서는 불순해지고 은폐되는 것임에도, 
기만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이고 참된 것인 체한다. 
이념을 향해 매진함에 있어 정신에게 더욱 어려움을 주는 
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자연과 일상세계의 단단한 
겉껍질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한편 예술에 이렇듯 높은 지위를 
부여하지만, 다른한편 예술은 그럼에도 내용상으로나 
형식상으로나 정신에게 그의 참된 관심사를 의식하게 
만드는 최고의 절대적 방식이 아님을 그만큼 더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바로 그 형식으로 인해 또한 특정 
내용에 제한되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의 요소들 속에 표현될 수 있는 것은 다만 특정 범위와 단계의 진리일 뿐이다: 
예술을 위한 진정한 내용일 수 있으려면, 가령 그리스 신들의 경우가 그러하듯, 감각성으로 나아가 그 속에서 적절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진리 본래의 규정에 여전히 들어 
있어야만 한다. 

재할 수 있다는 점이 진리 본래의 규정에 여전히 들어 있어야만 한다. 이에반해 진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있으니, 1241 여기서는 진리가 이러한 질료에 의해 적절히 수용, 표현될 수 있을 정도로 더 이상 그렇게 감각성과 비슷하지도 또 친근하지도 않다. 이런 종류로는 기독교적 진리 이해가 있으며, 또한 무엇보다 금일의 세계정신은, 더 자세히 말해 우리의 종교정신과이성문화의 정신은 예술이 최고의 방식을 이루는 단계를 넘어서 절대자를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생산과 그 작품의 특유한 방식은 더 이상 우리의 최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신적으로 공경하고 숭배하는 단계 너머에 존재한다; 예술작품이 주는 인상은 한층 더 사려 깊은 종류의 것으로 변했으며, 또한 그것을 통해 우리 안에 자극되는 것은 한층 고차적인 시금석과 다른 관점의 검증을 필요로 한다. 사상과 반성이 예술 위로 날아올랐다. 불평과 비난을 즐기는 자라면 이런 현상을 타락으로 간주하고, 이를 예술의 진지성과 명랑성을 몰아내는 열정 및 사리사욕의 과잉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혹자는 사소한 관심에 매인 심정이 예술이라는 한층 높은 목적을 향해 해방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현재의 궁핍과 시민적·정치적 삶의 복잡다단한 상태를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까닭인즉 지성 자체가 이러한 궁핍과 이해관계에 봉사하며, 오로지 그런 부류의 목적들에만 효과적인 학문을 행하며, 또한 이러한 메마름 속에 자신을 가두어 두려는 유혹을 용납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제 이런 저간의 사정이야 어쨌든 간에, 확실히 예술은 이전의 시대와민족들이 그 속에서 추구하고 발견했던 정신적 요구에 대한 만족, 즉 적어도 종교적 측면에서 예술과 매우 내밀하게 결부되었던 만족을 더 이상 보장할 수 없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 예술의 아름다운 시절과 중세 후기의 황금시대는 지나갔다. [25] 오늘날 삶의 반성문화는 의지에 대해서뿐만아니라 판단에 대한 관계에서도 보편적 관점을 견지하고 이에 따라 특수자를 규제하여 보편적 형식, 법칙, 의무, 권리, 격률들이 규정 근거로서 통용될 것을, 그리고 그것들이 주된 지배자로 존재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있다. 그러나 예술적 관심 및 예술생산에 더욱 요구되는 것은 생명성인바,
여기서는 마치 상상력 속에 보편성과 합리성이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현상과 통일되어 있듯, 보편자가 법칙과 격률로서 현전하는 대신 심정 및 감과 하나가 되어 작용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재는 일반적 상황의 면에서예술에 호의적이지 않다. 영향력 있는 예술가조차도 주위에서 목청을 높여가는 반성 따위나 예술에 관한 통상적 행태의 사념과 판단을 통해 자신의 작업 자체에 더 많은 사상을 투입하도록 오도·감염될 뿐만 아니라, 전반적 정신문화의 유형을 볼진대 그는 자청하여 그러한 반성적 세계와 그 관계들 내부에 서 있으니, 의지와 결단 같은 것을 통해 그로부터 멀어질 법하지도 않고, 특수한 교육을 통해서나 혹은 삶의 관계들로부터의 거리 두기를 통해서 그가 상실한 것을 되돌리려는 특수한 고독을 피하거나 실행할 법하지도 않다.

이러한 제반 관계들로 인해 예술은 그 최상의 규정이란 면에서 보면 우리에게 과거의 것으로 존재하며 또 그렇게 남아 있다. 이로써 예술은 우리에 대해 진정한 진리와 생명성도 역시 상실했으며, 현실에서 예전의 필연성을 주장하여 한층 높은 지위를 점하기보다는 외려 우리의 표상 속으로 그 자리를 옮겼다.

우리가 예술작품의 내용과 표현 수단 및 그 양자의 
적합성과 부적합성을 사유적 고찰의 하위에 두는 까닭에, 
이제 예술작품을 통해 우리에게는 직접적 향유 이외에도 
동시에 우리의 판단이 자극된다. 그러므로 예술에 대한 
학은 예술이 독립적으로 예술로서 이미 충분한 만족을 
보장해 주었던 시대보다 우리 시대에 훨씬 더 필요하게 
되었다. 예술은 우리를 사유적 고찰로 초대하거니와, 
그것도 예술을 다시 소생시키려는목적에서가 아니라, 
예술이 무엇인가를 학적으로 인식하려는 목적에서 
초대하는 것이다.

비록 예술작품이 사상과 개념이 아니라 개념의 
자기자신으로부터의 전개, 감각적인 것을 향한 
외화라고 할지라도, 정신은 외화된 것을 사상으로 
변환하고 또한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로 환원시키는 
것이기에, 사유하는 정신의 힘은 비단 스스로를 
사유로서의 자신의 고유한 형식 속에서 파악한다는 
점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못지않게 감응과 
감성에로의 자신의 외화 속에서 스스로를 
재인식한다는 점, 다시 말해 자신의타자 속에서 
스스로를 개념화한다는 점에도 있는 것이다. 

또 사유하는 점신은 이렇게 타자에 몰두하는 속에서 혹 
스스로에게 불성실하여 그 결과그 속에서 스스로를 망각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또한 자신과 구별되는 것을포착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지도 않으며, 도리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대럽자를 개념화한다. 

왜냐하면 개념은 보편자이며, 이는 자신의 특수들 속에서 
자신을 보존하고, 자신과 자신의 타자를 넘어 번져 가며, 
그리하여 개념이 향해 가는 외화를 마찬가지로 다시금 
지양하는 힘이자 활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상이 
외화된 예술작품도 역시 개념파악적 사유의 영역에속하며 또한 정신은 예술작품을 학적 고찰하에 둠으로써 그 속에서 자신의가장 고유한 본성의 욕구를 만족시킬 따름이다. 

왜냐하면 사유가 정신의본질이자 개념인 까닭에, 정신은 
그 활동의 모든 산물에 사상이 또한 관류케 하고 그리하여 
비로소 그 산물을 진정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경우에만 
궁극적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은 더 분명히 
보게 되겠지만, 정신의 최고 형식에는 멀리 못 미치기에 
학문에서 비로소 진정으로 추인된다.

이제 학적 고찰방법에 대해 물어본다면, 우리는 여기서도 또한 각기 서로를 배척하는, 그리고 어느 하나도 참된 결론에 도달할 수 없을 듯 보이는두 가지의 대립된 취급방식과 마주친다.
한편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예술학이니, 이것은 말하자면 실제 예술작품들의 바깥만을 맴돌며, 그것들을 예술사가 되게끔 나열하며, 현전하는 예술작품들을 관찰하며, 혹은 평가 및 예술적 생산을 위한 일반적 관점을 줄 만한 이론들을 기획한다.
다른 한편 우리가 보는 것은 학이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미에 대한 사상을 위임받는다는 점, 그리고 단지 보편적인 것, 예술작품의 특이성과 상관없는 것, 추상적 미의 철학을 산출할 뿐이라는 점이다.

경험적인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 첫 번째 취급방식에 관해 
보자면, 이 방식은 예술의 식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길이다. 오늘날에는 누구든 스스로가 물리학에 
전념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주본질적인 물리학적 
지식으로 무장해 있고자 하듯이, 일정한 예술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다소간 교양인의 요건이 되었으며 또한 
자신을 호사가나 예술감정가로 보이려는 허세가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정말로 학식으로서 인정받으려면, 
그것은 다종의 광범위한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금의 
개별 예술작품들의 무한정한 영역에 대한 정확한 숙지, 
즉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이미 몰락한 나라,
먼 나라 혹은 먼 대륙에 속하는 예술작품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운한 운명에 의해 응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예술작품들에 대한 정확한 숙지가 첫 번째 요구사항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각 예술작품은 자신의 시대, 자신의 민족, 자신의 
환경에 속하고, 또한 특수한 역사적 내지 기타 생각들이나 
목적들에 의존하며 이 때문에 예술적 학식도 마찬가지로 
넓고 풍부한 역사적인, 그것도 동시에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니, 까닭인즉 예술작품의 개체적 본성은 개별 사항과 연관되어 있고 또한 그 이해와 설명을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학식은 예술형상화의 이미지들을 온갖 
그 특징에 따라 그 자체로서 견지하고 또한그것들을 
무엇보다 다른 예술작품들과의 비교에 활용하기 위해 
기타 모든학식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기억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상상력을 필요로한다.

모든 학문의 대상에서는 우선 두 가지 점, 즉 첫째, 그러한
대상이 존재한다는 점과 둘째, 그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고려된다.

보통의 학문에서는 첫 번째 점에 관해 거의 어려움이 
제기되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그렇다. 만약 천문학과 
물리학에서 태양, 성좌, 자기현상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요구가 제기되었더라면, 그것은 일단 
우습게까지 보였을 것이다. 감각적으로 현전하는 것과 
관계하는 이러한 학문들에서는 대상이 외적 경험에서 
얻어지며, 또한 그것을 증명하는 대신 가리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대상의 존재에 관한 의심은 
비철학적 교과들에서도 떠오를 수 있다. 예컨대 심리학, 
즉 정신에 관한 학설에서는 영혼, 정신이 있는지, 다시 말해서 물질적인 것과는 다른 그 자체로 독립적인 주관적 대상이 있는지에 관한 의심이, 혹은 신학에서는 신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의심이 떠오를 수 있다. 나아가 대상이 주관적 종류로서 현전한다면, 즉 오직 정신 속에서만 현전할 뿐 외적, 감각적 객체로서는 현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신이 자신의 
활동을 통해 산출한 것은 오직 정신 속에서만 존재함을 
인지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이러한 내적 표상이나 직관을 자신 속에서 산출했는가, 혹은 아닌가 하는 우연성, 그리고 실제로 전자의 경우라고 해도, 그들이 그러한 표상을 재차 
망실하지는 않았는가, 혹은 적어도 그것을 그 내용에 여하한 존재도 즉자대자적으로 귀속하지 않는, 단순히 주관적일 
뿐인 표상으로 격하시키지나 않았는가 하는우연성이 즉시 문제시된다. 예컨대 미가 종종 표상 속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즉자대자적인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고 단순히 
주관적인 쾌로서, 다만 우연적일 뿐인 감각으로서 
간주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미 우리의 외적직관, 관찰과 지각이 종종 기만적이며 
오류투성이지만, 그러나 내적 표상들은, 아무리 그것들이 
대단히 큰 생동성을 내포하고 또 우리를 저항할 수 없을 
만치 열정으로 휘몰아 간다고 해도, 훨씬 더 오류투성이이다.

우리의 대상인 예술미의 필연성이 밝혀지려면, 예술이나 
미가 한 선행과정의 결과임을, 그리고 이 과정은 그 참된 
개념의 면에서 볼 때 학적 필연성에 의해 예술의 개념으로 
이행한 것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예술에서 출발하여 예술의 개념과 그 실제성을 다루고
자하는 것이지 고유한 개념의 면에서 예술에 선행하는 것의 본질을 다루고자하는 것은 아니므로, 지금 우리에게 특수한 학문적 대상으로서의 예술은하나의 전제, 즉 우리 고찰의 
바깥에 놓여 있는, 그리고 학적으로 다른 내용으로서 
다루어지며 다른 철학적 교과에 속하는 전제를 갖는다. 


따라서 우리는 예술의 개념을 이른바 전제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사정은 여하한 특수한 철학적 
학문들의 경우에도 그것들이 별개로 고찰될 경우라면 
마찬가지이다. 이유인즉 우주는 종합적 철학에 의해 
비로소 내적으로 하나인 유기적 총체성으로 인식되기 
때문인바, 이 총체성은 스스로를 자신의 고유한 
개념으로부터 전개하며, 또한 자기연관적 필연성 속에서 
전체를 향해 내면으로 회귀하는 가운데 자신을 하나의 
진리세계로서의 자신과 융합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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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이 폐기되고 붕괴된 지 2천여 년이 되었다. 크게 보면 
멀다 할 수없겠으나 이미 계고할 곳이 모두 없어져버렸다. 
얼른 크나큰 인물이 나와서 모조리 한 번 정리해야 할 텐데, 그것이 언제일지 알 수가 없다. 오늘날 세상은 변하고 
시대는 타락하였으니 아마도 필시 ‘큰 열매는먹지 않는‘ 
이치가 있으리라.

위 글에서 주자가 희망한 ‘크나큰 인물‘이란 곧 ‘성인‘이다. 
2천여 년 동안이나 폐기되고 붕괴되어 도저히 계고할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예를 새롭게 정리할 인물로 주자는 
성인을 희망했던 것이다. 

이때 ‘정리한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이른바 고례의 
형식과 절차들을계고할 수 있도록 해명해낸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현실에 적합한 새로운 형식과 절차들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도통은 성리학적 관점에서 정리한 "유학의 참 정신이 
전해 내려온 큰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정• 주계열의 성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유학적 학문경향을 ‘도학‘이라 명명하고, 이의 사상적 계보를 도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립한 것이다. 이때 ‘도학‘이라는 말은 다른 
학파와 사상에 비해 자신들의 학문이 ‘도덕적 우월성‘과
 ‘참된 진리‘를 담보하고 있다는 절대주의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으며, 따라서이를 계보화한 ‘도통‘이라는 
표현에도 역시 그러한 절대주의적 태도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절대주의적 태도에는 필연적으로 
정통ㆍ비정통의 시비를 야기할 수 있는 소지가 내재해 있다. 
따라서 ‘도통‘은 노. 불과 같은 유학 이외의 사상에 대해
 ‘이단‘이라는 이름으로배척하는 논리로 작용하였고, 
같은 유학 내에서도 한·당의 유학은 ‘기송사장‘이라는 
이름으로 평가절하하는 논거로 활용되었으며,
송대의 신유학 내에서도 상산 육구연 (1139-1192)이나 
용천 진량(1143-1194) 등이 추구했던 사상경향에 대한 
배격의 이유가 되었다.

禮 인식의 철학적 정립

1) 16세기 조선의 예 인식 동향

예의 형식보다 본질을 중시하고 주례의 정신을 ‘기인‘의 
틀에 담아 이를 유학적 이상으로 실현코자 한 공자의 
義중심 예관을 통해유학의 근본적 문제의식이 무엇이고 
본질적 좌표는 어디에 설정되어야하는지를 제시한 예학의 시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주자가 공자의 이러한 예관을 토대로 하되 도통론에 
입각하여 예 주체의 전환을 시도함으로써 학문의 권위자가 곧 예의 주체임을 확인하는 한편, 당위로서의 예를 존재의 
실현이라는 철학적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리‘ 중심의
성리학적 예관을 확립하였음도 검토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공자와 주자의 예관이 퇴계 
예학사상에 내원으로서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바꿔 말하면, 퇴계가 공자와 주자의관을 
연원으로 삼아 자신의 예학사상을 어떻게 형성 · 전개해 
갔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퇴계 예학사상의 성격을 구명하기 위해 그의 
문제의식에 대한 검토부터 진행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학문과 사상은 반드시 학자 자신이살다 간 시대의 
자장 안에서 그 시대가 양산한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동력으로 삼아 형성 · 발전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또는 윤리적 성격이 강한 유학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 없으며, 특히 예학이 갖는 
사회철학적 또는 윤리철학적 특성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퇴계의 예학사상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의 철학적 문제의식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논의의 맥락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의 문제의식을 조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는 퇴계가 16세기 조선의 예 인식을 의리 
중심으로 변화시킨 것과 관련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학문적 ·사상적 이론들, 즉 ‘學‘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관한 실천적인 문제의식이다.

16세기 조선은 예학사의 시각에서 볼 때 중대한 전환기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이 시기를 변곡점으로 하여 
조선에서는 예에 대한 근본적인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첫째, 16세기 조선에서는 예의 주체와 관련한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즉, 16세기 이전 조선에서는 
국가가 주체가 되어 예를 국가질서 확립을 위한 교화의 
수단으로 활용했었다면, 16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성리학에 대한 이해의 심화로 말미암아 예는 존재의 
실현과학의 구현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수용되었다. 
이때 예의 주체는 당연히 학자들이 된다.

둘째, 이러한 예 주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예의 근거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진행되었다. 즉,학자들 스스로 예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예 연구를 심화시켜 나감으로써, 
국조오례의로 대표되는 조종성헌로뿐만 아니라 
주자가례와삼례서(의례ㆍ예기ㆍ주례)등 이른바 古禮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예의 근거들을 모색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결과적으로 예의 권위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즉, 조종성헌과 
성현고례가 충돌을 빚을 경우 점차 성현고례에 더욱 큰 
권위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인식이 변화되어 갔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주자의 도통론에 관한 검토에서 확인했던 바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예란 국가가 제정함으로써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의리에 부합함으로써만 권위를 갖게 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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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예학사상 한국연구총서 98
한재훈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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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당시 상황을 무도한 세상이라고 진단하고 이러한 
당시의 흐름을 바꾸어보고자 노력했다. 공자가 천하의 
유도와 무도를 판단하는 지표는 예악과 형벌을 운용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의한 것이었다.

천하가 유도하면 예약과 정벌이 천자에게서 나오고, 
천하가 무도하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에게서 나온다.

여기에서 말하는 ‘예약‘과 ‘정벌‘은 정상 혹은 비상 상황에서 
취하게 되는 정치적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주례에 
제정된 내용을 대표하는 개념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운용하는 주체가 천자라는 것은 곧 주례가 
실현되고 있다는 뜻이고, 그 주체가 제후라는 것은 
곧 주례가 붕괴되었다는 뜻이다.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곧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뜻이다. 특히 최고권력자의 ‘힘‘은 누군가에 
의해 제재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제어하지 않으면 
‘무소불위‘가 될 수 있다. 주례가 추구한 질서는 각각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위치에 따른 한계를 자각하고 그 한계를넘어서지 않을 것을 전제로 보장된다. 그런 의미에서 
수많은 예의 조문들은 각각의 한계에 대한 규정들이며, 
이러한 규정들은 ‘힘‘의 오용 내지 남용을 방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예란 힘의 논리보다 높은 차원에서 힘을 제어할 
수 있는 합의된 ‘권위‘라고 할 수 있다. ‘예괴악붕‘의 시대는
 ‘힘‘의 이동과 함께 도래하였다. 천자에서 제후로 다시 
제후에서 대부로 ‘힘‘이 이동하면서, 예는 자신의 본래적 
‘권위‘를 잃고 ‘힘‘의 논리에 의해 조작되고 농락되었다. 

원칙이 결여된 권형짐작은 상황논리에 매몰되고, 
권형짐작이 작동하지 않는 원칙은 완고한 교조가 된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는 천하에서꼭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꼭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없으며,
의와 함께할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꼭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없고, 꼭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없다"고 한 것은 모든 상황에 항상 권형짐작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뜻이고, "의와 함께 한다"는 말은
그 모든 권형짐작은 반드시 ‘원칙‘에 따를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렇게 의리는 개념은 첫째, 사사로움을 극복하고 공공성을지향한다는 점과 둘째, 원칙에 근거하여 권형짐작을 수행함으로써 적절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예의 본질이 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중에 전자가 더욱 본질적인 것으로, 
후자에서 말하는 원칙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예가 현실에 구현될 때 합당함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행례의 주체가 사사로움이 아닌 공공성을 
지향하는 방향에서 권형짐작을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공공성에 대한 지향이 곧 원칙의 기조 위에서 권형짐작을 작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안연이 인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를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인하다 할 것이다. 
어느 날 자기를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을 하는 것이 자기에게 말미암지 남에게 
말미암겠느냐?" 안연이 말했다. "그 세목을 여쭙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

‘도통론‘을 통한 예 주체의 전환

퇴계의 예학사상에 가장 직접적이고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단연 주자이다. 퇴계가 주자로부터 이기론과 심성론은
물론 수양론에 이르기까지 학문사상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예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는 퇴계 예학의기본자료로 평가받는 
[퇴계상제례답문]에서 주자를 가장 많이 고거하고 있다는 
사실이 단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주자는 형식보다 본질을 중시했던 공자의 예관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당위로서의 예의 근거를 
천리와 연계시킴으로써 존재와 당위를 일치시키는 
철학적 차원의 예관을 제시했다. 
이는 성리학적 사상체계와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 독특한 
예관으로, 퇴계 예학사상의 본원적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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