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배경과 출발점
-헤겔의 정신 개념의 출처는 무엇인가?

헤겔의 학문적 출발점 내지 뿌리는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헤겔 당시의 철학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헤겔은 당시 독일 철학계를 대표하는 두 사람, 곧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과의 
연관 속에서 절대적 관념론이라는 자신의 학문 체계를 
세운다. 먼저 피히테와 셸링의 중심 사상을 간단히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1. 피히테는 대상 세계의 현실과 인간 주체의 근원적 통일을 ‘자아‘를 절대화시켜서 만들어냈다(이진경 2008, 174).
그는 사유하는 인간 주체, 곧 인간의 자유로운 "자아 (Ich)로부터 출발하여 자연의 세계를 파악한다. "절대적 자아는 
오직 무조건적으로 그 어떤 더 높은 것을 통해서도 규정될 수 없이 세워진다는 데 철학의 본질이 있다" (Weischedel 
1971,230에서 인용). 

절대적 자아는 자기 자신을 자기에게 모순되는 것, 
곧 비자아로 세우고,이를 극복해나가는 순수하고 무한한 
활동성이다. 그것은 절대적 자유다. 자아가 자기 자신을 
자기의 비자아로 자기에게 세운다. 이로써 자아와 비자아의 정과 반(These Antithese)이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자아와 비자아, 곧 정과 반은 서로를 배제하는 대립 속에 머물 수 없다. 그것들은 대립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자아와 비자아는 자기 자신을 제한함으로써 
더 이상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 합(Synthese)에 이르고자 
한다. 자연의 세계는 자아의 이와같은 자기활동의 산물이다. 본래 자아 밖에는 아무것도 없고, 대상 세계의현실은 자아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자아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자체" (Ding an sich)는 거부된다. 칸트가 말하는
 "사물 자체는 인간의 주체적 의식, 오직 자기 자신을 통해 
결정된 자유로운 기능의 산물에 불과하다. 인간의 주체적 
의식을 모든 경험과 인식의 근거와 출발점으로 보는 관념론은 "자유와 행동의 체계다"(Windelband 1957,499).

2. 자아에서 출발하는 피히테에 반해, 셀링은 자연에서 
출발한다. 피히테와 달리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아를 근거로 자연을 도출할 수는 없는 일"이고, 
"오히려 객체-주체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주체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진경 2008, 175). 그래서 셀링은 자기의 철학을 자연철학이라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을 신적인것으로 보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낭만주의적 자연관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스피노자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인과론에 기초한 
기계론적인 자연과학의 자연관에 반대하여 자연을
 "신적 본질이 그 속에 충만히 나타나는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 내지 유기체적 생명으로 본다. 괴테를 위시한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스피노자의 자연관을 수용한다. 
낭만주의자들의 자연관이 셀링의 철학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셸링은 당시 낭만주의 대표자 슐레겔(AW. Schlegel)의 딸로서 자기보다 나이가 12살 더 많고, 결혼했다가 
이혼한 카롤리네(Caroline)와 결혼했다. 이것은 그가 
낭만주의의 자연관에 심취했음을보여준다. 
이리하여 그는 "독일 낭만주의의 철학자"라 불리게 된다.

셀링은 낭만주의의 자연관에 근거하여 피히테의 자아와 
자연의 관계를 정반대로 되돌려버린다. 자연이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정신이 자연의 산물이다. 자연 그 자체는 
본래 살아 있는 정신이며 "형성 과정 속에 있는 자아다
(das werdende Ich, Windelband 1957,514). 
자연과 정신, 현실적인 것과 관넘적인 것은 그 깊은 데에 
있어 동일하다. 그래서 셸링의 철학은 "동일성의철학" 
(Identitatsphilosophie)이라 불린다.

3. 헤겔은 피히테의 철학을 가리켜 "주관적 관념론"이라 
부른다. 피히테는인간의 주체, 곧 자아로부터 출발하여 
세계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자아 속에서 자연을 
인식하고, 자연 속에서 정신을 인식하는 셀링의 철학을 
"객관적 관념론"이라 부른다.

헤겔은 피히테와 셸링의 두 가지 관념론을 넘어서는 
관념론을 세우게 된다. 그는 피히테의 주관적 자아와 
셀링의 객관적 자연을 넘어서는 절대자, 곧 절대정신에서 
출발한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의 관념론을 "절대적관념론"이라 부른다. 절대자, 곧 신적 정신이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의 출발점이 된다. 세계의 모든 것이 절대자, 곧 신적 정신으로 설명된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이 셀링보다 피히테의 편으로 기울어짐을 볼 수 있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정신을 설명하지 않고 
정신으로부터 자연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헤겔 철학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피히테라고말한다. 특히 그는 피히테의 정반합의 공식을 
헤겔의 변증법의 모체라고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 철학의 출발점이 정신의 개념에 있다는 사실을 볼수 있다. 그럼 헤겔이 말하는 정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헤겔의 정신 개념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4.헤겔의 청년기부터 시작하여 그의 모든 문헌을 읽어볼 때, 
헤겔이 말하는 "정신"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정신이다" (Gott ist Geist)라는 헤겔의 
말이 이를 명백하게 증명한다(19666, 51,1966d, 69.95 등). "정신으로서의 하나님" (Gott als Geist)이란 개념이 그의 문헌도처에 나타난다. 이에 대한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헤겔은 20대의 청년 시대 (1793-1800)부터 하나님을 
"정신"으로 이해한다. "신적인 것의 작용은 정신들의 결합일 뿐이다. 정신만이 정신을 파악하며, 정신을 그 자신 속에 
포괄한다" (1971,372). 곧 신적인 것이 작용할 때, 하나님의 정신과 인간의 정신이 결합된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만이 
하나님의 정신을 자신 속에 포괄하며, 하나님의 정신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의 정신과
결합되는 신적 정신으로 파악된다.

뉘른베르크 시대의 "종교론" 강의록에서 신적 본질의 
"현실적 형태"는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이다"(1970b, 283,
13).

하이델베르크 시대의 《철학적 학문의 백과전서》에서
 "하나님은 절대정신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1969d, § 50 주해). 
"그 자신으로서 자기자신 속에서 (als sich in sich selbst) 그 자신과 중재하는 것으로 알려지는점에서, 정신은 하나님이라 불릴 수 있다.... 이로써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 자신과의 중재를 포괄한다" (874),
 "정신이란말과 표상은 일찍 발견되었다. 기독교 종교의 
내용은 하나님을 정신으로 인식하는 데 있다"§394),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이 무엇인가를사유로써 파악하기 위해... (8564 주해).

《하나님 존재 증명 강의》에서 "하나님은 정신이다"
(1966e, 28), 하나님은 돌이나 식물이나 짐승에게 자기를 
계시할 수 없다. "하나님은 정신이기 때문에 사유하는 
정신인 인간에게만 자기를 계시할 수있다"(48-49)


5.여기서 우리는 헤겔의 정신 개념이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분명히 볼수 있다. 한국의 일부 철학자들은 헤겔이 말하는 "Gott"를 "신"(神)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헤겔은 루터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견신례까지 받은기독교 신자였다. 

세례와 견신례까지 받았기 때문에, 그는 튀빙겐슈티프트들어가서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을 수 있었고, 
신학을 주전공과목으로 공부했다. 생애 마지막인 베를린 
시대에도 헤겔은 자기는 루터교회 신자라고 말했다.

따라서 헤겔이 말하는 "Gott"는 종교학적 의미의 "신"이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님을 말한다. 그러므로 헤겔이 말하는 "Gott"는 "신"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물론 종교사적 맥락에서는 "신"으로 번역되어야 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하나님으로 번역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Gott als Geist"는 "정신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헤겔은 청년 
시대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생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무신론 계열의 철학자들, 특히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은 혜겔의 정신 개념이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무시하고 그것을 단지 세속적인 정신, 세속적인 민족정신이나 세계정신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이것은 헤겔 자신의 
생각을 훼손하는 행동이다. 수많은 권위 있는 학자들이 
헤겔의 정신 개념은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인정한다. 

빌헬름 바이셰델에 의하면,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본질적 표현이며, 헤겔의 철학적 신학 
일반의 중심 개념"이다(Weischedel 1971, 302), 
헤겔 문헌 편집자 라손에 의하면,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은 
헤겔 철학의 "가장 높은 원리"다(Lasson 1920, 23), 
그것은 "성서의 고백에 대한 적절한 개념적 파악이다(Schmidt 1974, 20).

하나님은 오직 정신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정신으로서 우리에게 공허한 말이 되지 
않으려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는 자기를 그 자신의 대상으로, 성자로 만들고, 이 대상
 안에 머물며,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구별성 속에서 
이 구별(Unterschied)을 지양하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이 사랑 안에서 그 자신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이렇게파악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정신으로서의 하나님(Gott als Geist)이다. 
삼위일체만이 정신으로서 하나님의 규정이다(1966b, 
41-42).

헤겔의 문헌 중 가장 중요한 문헌은《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이다. 정신현상학은 정신, 곧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의 현상(나타남)을 기술한 책이다. 그것은 세계와 
관계된 경륜적 삼위일체 하나님의 외적 자기활동을
기술한 책이요, 그의 《논리학》은 내재적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자기활동을 논리적 개념으로 기술한 책이다.

 "순수 사유의 왕국인 논리학은 "자연과 유한한 정신의 
창조 이전에 그의 영원한 본질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타냄(Darstellung Gottes)"이라는 논리학 서론의 
말은 내재적 삼위일체를 가리킨다.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를 알지 못할 때, 이문장의 뜻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은 헤겔의 신학적 뿌리를 덮어버리고 그의 철학을 
단지 고대 그리스 철학에 뿌리를 가진 세속적 철학으로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헤겔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신학적 
내용들을 무시하는정직하지 못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세계사의 통치자 및 섭리자로 파악하고, 
세계사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것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헤겔 자신의 의도에도 어긋난다.



마르크스주의 계열 학자들의 중요한 결점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헤겔철학의 신학적 뿌리 내지 전제를 덮어버리고 
사회 변혁과 혁명에 대한 정치철학적 관심에서 헤겔 철학을 해석한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인간의 사회 변혁과 혁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지금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블로흐는 예외적이다. 그는 좌파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헤겔 철학의 신학적 뿌리 및 전제를 정직하게 인정한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은 삼위일체론에서 유래하며, 헤겔은 
하나님의 대상적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자신의 헤겔 연구서에서 인정한다(Bloch 1962, 328-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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