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차인의 입장에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
주의할 점

주택임차인의 입장에서 주택을 빌릴 때 주의할 점은 
크게 봐서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직거래 사이트를 통한 계약보다는 개업공인중개사
(중개사)를 통한 계약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전문적인 지식 없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당 부동산에 복잡한 권리관제가 존재하는 
경우 임대인과 임차인이 중개사의 도움 없이 직거래 
사이트 등을 통해 계약서를 작성할경우에 임차인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중개사를 통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경우, 법률적 문제즉 손해가 발생하면, 상황에 
따라 중개사의 책임을물을 여지가 있고, 중개사가 가입한 
공제협회를 통해 일정 정도의 손해전보도 가능하다.

둘째, 중개사를 통해 해당 부동산의 권리관계에 대해 
꼼꼼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
은행에 융자가 없는 주택을 빌리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사실상 융자가 없는 주택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빌릴 
주택에 융자가 있어도, 내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집을담보로 한 은행 융자는 
근저당권으로 등기부(등기사항증명서)에 표시되고, 
그 등기부에 채권최고액이 적혀 있다. 대체적으로 실제 
채무는 채권최고액보다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 은행의 관행은 실채무보다 20% 내지 30% 정도 
높게 채권최고액을 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다면, 그 1억원을 담보하기 위해 은행이 근저당권을 
설정받으면서 채권최고액을 1억 2천만원 내지 
1억 3천만원으로 잡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별다른 문제가 
없는 집을 빌린다면, 이와 같은 개념에 근거하여 실채무를 
판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매매가격이 3억원인 
집에 근저당권채권최고액이 1억 3천만원으로 등기부에 
기재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의 보증금을주고 임차할 경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임차한 집이 경매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상황을 전제한 것인데, 
대체로 매매가격의 60% 내지 70%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3억원의 60%는 1억 8천만원이 될 것이고, 
채권최고액이 1억 3천만원이라면 실채무는 1억원 정도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억 8천만원에서 실채무 1억원을 뺀 돈인 8천만원 이하가 적정 보증금이라고 볼 수 있다. 
집의 매매가격을 기준으로 60% 내지 70%를 보증금확보를 위한 안전 기준으로 하는 이유는 집행비용은 물론이고
 유찰이 될 경우 대체로 10%(경우에 따라 20%)씩 
경매가격이 떨어지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기준도 경제상황에 따라 변동될수 있음을 기억하자. 
참고로 경매에 부쳐진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는 실제 
가격보다 약간 높게 산정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셋째, 주택임대차 계약의 경우에 계약금과 잔금지급일이 
다른 것이 일반적이기때문에 그 사이에 집에 대한 가압류, 
가처분 등이 발생할 경우 즉시 계약해지가가능하다는 
특약을 기재해 두는 것이 좋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체결일에 등기부를 확인하고 잔금까지 모두 치른 후에 인도 및 전입신고를 완료하고 
입주까지 마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임대차계약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계약일과 중도금 또는 
잔금지급일이 1개월 내지 2개월 정도의 기간을 두고 
임대차계약이 체결되기 때문에, 계약일과 잔금지급일 
사이에 변수가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은 계약일과 잔금지급일 사이에 해당 부동산에 
가압류가 이루어진 경우 원칙적으로 계약해제사유가 되지 
않고, 잔금지급을 거절할 사유 정도로 해석하기 때문에
(대법원 92다28518 판결, 대법원 2000다71715 판결 등),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계약을 하면서, 잔금지급일 이전에 가압류, 가처분, 근저당권 설정 등 해당 부동산의 
권리를 제한하는 사유가 발생할 경우 임차인이 즉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취지의 특약을 넣는다면, 
임대차로 인한 위험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

여기에 추가로 위와 같은 권리제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지급한 계약금의 배액을상환청구할 수 있다는 문구까지 
넣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위론의 의의


범죄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위법하고 유한 행위‘를 
의미한다. 범죄는 행위이며, 형벌 역시 행위를 매개로 
하여 인간행위자에게 부과된다. 따라서 범죄가 성립되기 
위하여는 인간의 행동의 행위성(Handlungsqualitat)이 
존재하여야 한다.

범죄성립의 제 단계, 즉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은 
이 행위의 술어 내지 속성인 것이다. 그래서 행위는
범죄성립요건론(=범죄론) 체계의 최상위의 개념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행위론은 인간 행위의 일반적 인식을 토대로 하여 
그행위이해와 범죄론 체계와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분야로서, 일정한 방법론 위에서 범죄의 모든 발생형태를 
포괄하는 행위개념을 모색한다. 

과실범, 작위행위론이 다루는 행위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성요건해당성 · 위법성 ·책임을 술어로 하는 
주어로서의 실체인 행위로서, 이는 구성요건해당성의 
이전단계에서의 행위이다(전(前)구성요건적 행위‘). 

행위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간의 행동거지는 
행위가 아니며, 이 비행위를 행위에서 배제하는 기준의 
제시 역시 행위론의 문제가 된다. 행위의 개념을 둘러싸고 
자연과학)주의적 행위론(인과적 행위론), 목적론적 행위론
(목적적 행위론), 그리고 다양한 단서에서 출발하는 사회적 행위론이 모색되었다.

인과적 행위론은 행위를 ‘의사에 기하여 외부세계에 
야기된 인과과정‘으로 본다. 이는 ① Kant적 인식, 
즉 인과법칙이 지배하는 자연계와 자유의 법칙이 지배하는 인간의 예지계를 구분하고, 자연인과의법칙에 따라 
운행되는 자연계와는 달리 인간의 예지계에서는 인간의 
의사에 기한 행위에 의하여 자연에 없던 인과연쇄를 
새로이 야기함으로써 외부세계에 변화를 가져 온다는 
인식과, ② 이와 같이 인간에 의하여 야기된 인과과정이야말로 자연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에 터잡고 있다. 이로써 인과적행위론은 "인간의 의사에 의하여 
비롯되고 외부세계에 변화를 초래한 인간의 움직임"을 
‘행위‘로서 파악한다. 인과적 행위론의 대표자인 Liszt는 
행위를 유의적 거동에 의한 외계의 변화"라고 하였다. 

인과적 행위론은 행위를 ‘유의성을 갖는 일정한 거동‘으로 
보는 데 특징이있다. 이로써 그것이 ‘인간‘ 행위임을(유의성), 그리고 인간의 ‘행위‘임을(거동성) 확인한다. 여기서 
행위는 일정한 목적표상(예컨대 결과)을 실현하는 인간의 
움직임으로 파악되지 않고, 목적 표상을 실현하는 제 조건을 설정하는 인간의 움직임으로 파악된다. 

예컨대 갑이 A를 칼로 찔러서 살해하는 행위를, 갑의 A에 
대한유의적인 출혈야기(=사망의 조건설정)로 본다. 
갑의 행위가 인간의 인과과정의야기로 환원되고 있으며, 
그 의미를 결정하는 요소인 의사의 내용(살인의 의도)은
행위의 차원에서는 고려되지 않고, 후에 범죄성립을 
검토하는 ‘책임‘의 단계에서고려된다(고의책임을 지울 
것인가 과실책임을 지을 것인가).

인과적 행위론에 대한 비판

인과적 행위론은 유의성과 거동성을 행위요소로 보고 
의사를 행위에 대한 인과과정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제기된다.

(i) 인과적 행위론은 유의성에 입각한 거동을 행위로 
보기 때문에 행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인간 행위의 의미는 유의성에 기한 인과적 조건의 설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의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 즉 행위자의 목적표상과의 관련에서 나온다. 갑이 A를 
마구 때려 많은 피를 흘리게 한행위가 살인미수행위인가 
상해행위인가, 폭행(치상)행위인가는 행위자의 의사방향을 도외시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 미수에서 의사의 내용이 
필수적 요소라면 결과가 발생한 기수에서도 그것은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ⅱ) 인과적 행위론은 행위의 요소로서 거동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거동성이없는 부작위를 행위로 볼 수 없게 된다. 
부작위의 본질은 기대되는 의사형성을하지 않아서 
기대되는 인과과정을 야기하지 않은 데 있다. 
따라서 작위는 갖추고있으나 부작위는 갖추고 있지 않은 
거동성은 양자에 공통되는 상위개념의 요소가 될 수 없다. 

(ⅲ) 인과적 행위론은 행위와 의미있는 연관이 없는 
결과에 연결되는 거동까지도 행위에 포함된다고 보게 
되어 한계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인과적 행위론은 후술할 목적적 행위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간행위에 관한자연적 이해로 여겨져서 별다른 명칭도 
없이 통용되어 왔다. 목적적 행위론이 자신의 이론과 구별할 목적으로 이전의 행위관에 대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 ‘인과적행위론‘이다. 인과적 행위론자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나름의 대응을 하였으나 설득력 있는 옹호론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목적적 행위론은 인간의 행위를 목적론적으로 파악한다. 
즉 행위는 행위자가 목적을 선취하고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인과과정을 지배조종하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Aristoteles의 목적론적 사유방식, 사고심리학
(Denkpsychologie), 현상학 특히 Nicolai Hartmann의 
윤리학에 토대를 두고 Hans Welzel이 구상한 이론이다.

(i) 목적적 행위론은 행위를 인간의 ‘목적실현 활동의 수행‘ 이라고 본다. 인간은 인과적 지식을 기초로 하여 자신의 활동이 가져올 결과를 일정 범위에서 예견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인과과정을 지배 조종한다. 1목적적 행위론은 행위가 야기하는 인과성을 전제하고, 맹목적으로 전개되는 인과과정의 눈을 뜨게 하여 목적한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고 본다. 목적적 행위조종은 두 단계로 실행된다. 제1단계에서는 행위자가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단을 선택하며 목표달성과 결합된 부수적 효과를 고려하고, 제2단계로 행위자는 그의 행위를 현실세계에 실현시킨다. 이와 같이 목적적 조종에 의하여 실현된 결과만이 목적적으로 초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행위의 목적성은 행위자가 설정한 목적의 실현의사라고 할 수 있다.

(ii) 목적적 행위론에서 고의는 구성요건의 실현의사를 
의미하므로 ‘목적성‘과 ‘고의‘는 동일시된다. 
고의는 구성요건 실현을 위한 목적적 행위의사(finalerHandlungswille)로서 행위의 목적적 요소가 되며, 행위는 
이 고의의 목적적 실현이다. 이 객관적 요소와 주관적
(=목적적) 요소를 갖는 행위를 구성요건에 포섭함에 
있어서 양자를 공히 고려하지 않고 고의를 구성요건요소가 아니라 책임요소로 보는 것은 구성요건의 온전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목적적 행위론에서 고의는 책임요소가 
아니라 구성요건요소(‘주관적‘ 구성요건요소)가 된다.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불법‘이라고 한다면 
그 행위의 핵심적 내용을 이루고있는 고의는 마땅히 
주관적 불법요소가 된다. 

(iii) 목적적 행위론은 과실행위도 행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이론구성에서는 변화가 있었다. Welzel은 
처음에는 과실범에서의 결과는 목적적으로 실현된 것이 
아니라 맹목적 · 인과적으로 발생한 것이지만, 이는 
목적적 행위를 통하여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이므로 
고의범과 과실범은 이 점에서 행위로서의 공통요소를 
갖는다고 보았다. 이에 대하여 Niese는 이 목적성은 
현실적으로 존재한 목적성이 아니라 잠재적인 상태에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이 과실행위를 목적적 행
위로 만들 수는 없다고 비판하고, 과실행위에는 목적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승인되지 않는 일정한 
결과의 야기가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이 비판에 대하여 
Welzel은 과실행위에서 본질적인 요소는 결과가 아니라 
‘행위 수행의 태양‘, 즉 주의의무 위반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과실범의 구성요건은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주의를 위반한 행위수행을 대상으로 한다. 목적적 행위론은 과실행위도 
목적적 행위이지만 그것은 형법상 의미있는 결과에 대한 
목적적 조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목적적 행위론이 행위론으로서의 기능을 
충족하는가에 대하여는 많은 비판이 제기된다.

(i) 목적적 행위론은 행위의 존재론적 구조를 해명함으로써 인과적 행위론의 자연주의적 행위개념을 극복하려는 데 
의의가 있었다. 행위의 존재론적 구조로서의 행위의 
목적성은 행위의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로서, 입법자 자신도 제약하는 행위의 ‘사물논리구조‘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의존재론적 구조 요소로서의 ‘목적성‘이 어느 순간 행위자의 심리적 의사(고의)로둔갑하였다. 
이리하여 목적적 행위론은, 인과적 행위론의 ‘인과성‘과 
마찬가지로,그 자신이 피하려고 했던 자연주의적 요소
(‘심리적 의사‘)를 행위개념 속에 온존시킴으로써, 
이른바 자연주의적 목적독단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iⅱ) 목적적 행위론에 의하면 행위의사는 인과적 과정을 
지배조종하는 인자이다. 그러나 인간의 일상적 삶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따라 인과과정을 의식적으로 
지배 조종하는 경우는 오히려 적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 
이해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이념형적 이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목적적 행위론의 난점은 과실행위의 
이해에서도 나타난다. 목적적 행위론자들이 과실을 목적적 행위로 보리는 시도를 하였지만 설득력은 없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결과범인 과실범의 경우 그 결과의 발생이 
행위자의 과실행위의 인과적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결과 ‘목적‘ 지배조종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목적적 조종은 행위목표와의 관계에서만 목적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Welzel이 지적하는 행위조종의
 ‘부주의‘는 행위의 목적성의 요소가 될 수 없다. 
결국 목적적 행위론은 고의범과 과실범의 공통적인 행위개념을 얻는 데 실패하였다.

(iⅲ) 목적적 행위론은 부작위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Welzel은 잠재적 목적성의 개념으로 부작위의 행위성을 
설명한다. 즉 구체적으로 가능한 잠재적 · 목적적 행위지배가 무위( Nichtstun)를 부작위로 만들며, 부작위의 구성적 
요소는 잠재적 • 목적적 행위지배이므로 부작위에는 
현실적 의사활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의사활동
(möglicher Willensakt)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부작위에는 목적성의 실현을 위한 ‘인과과정의 지배조종‘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인과적 지식을 통한 예견과 그에 
입각한, 기왕에 진행되는 인과과정에대한 방치가 있을 
뿐이며, 나아가 망각범과 같은 경우에는 고의 또는 
인과과정의 지배로 볼 만한 아무런 심적·물적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행위기대의 위배를목적적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목적적 행위론은 부작위범을 포섭할 수있는 상위개념으로서의 행위개념을 정립하지 못하였다.

사회적 행위론은 종래의 행위론이 행위개념이 가져야 
할 형법학상의 기능에부응하는 행위개념을 얻는 데 
실패하였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가능케 하는 행위개념을 
모색하였다.

사회적 행위론은 하나의 통일된 행위론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자에 따라그 내용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 행위론은 객관적 행위경향에 중점을 두는 
견해(Eb, Schmidt, K. Engisch, Maihofer)와 주관적 목표설정을 중시하는 견해(Jescheck, Wessels) 및 행위의 
인격적 구조를 중요시하는 견해 (Arthur Kaufmann,
E.A. Wolff)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론은 
모두 행위개념의 공통된 기준으로 사회성 또는 사회적 
중요성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Maihofer의 사회적 행위론에서도 사회성의 개념에는 
목적적 요소가 중요한역할을 한다. 그러나 Maihofer가 
말하는 목적성의 의미는 Welzel의 그것과 구별하여야 한다.

Welzel에 있어서 목적성은 주관적 목적성을 의미하지만 
Maihofer의 목적성은 객관적 목적성을 말한다. 
행위의 사회적 의미는 행위자의 주관을 파악함으로써가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 섬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은 타인의 관점에 설 수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며, 
이로써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행위를 
사회적 의미체로 지배형성할 수 있다. 

한편 Welzel이 목적성을 현실적 목적성으로 본 데 비하여 
Maihofer는 이를 잠재적 목적성으로 보았다. 행위의 
결과는 현실적으로 목적한 범위 외에서도 발생한다. 
따라서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란 현재 적목적성의 범위 
내가 아니라 ‘잠재적 목적성‘의 범위 내에 있다. 이 잠재적 
목적성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 ‘사회적으로 잘못된 
성취물‘ (soziale Fehlleistung)로서 행위자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Maihofer는 행위란 "객관적으로 예견가능한 사회적 
결과에 대한 객관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일체의 행태"라고 
정의하고, 행위개념이 지적으로는 행위결과에 대한 
객관적 예견가능성에 의하여, 의지적으로는 인간에 의한 
행위의 객관적 지배가능성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Maihofer는 이러한 착상을 토대로 일반귀속론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① 행위에는 ‘인간으로서 가능한 것‘이 
귀속되며, ② 위법성은 ‘일반인으로서 가능한 것에 대한 
귀속판단이며, ③ 책임은 ‘행위자‘로서 가능한 것에 대한 
귀속판단이다. 범죄성립의 각 단계를 이렇게 귀속의 
시각에서 재구성함으로써 범죄성립의 제 평가단계의 
성격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시각에서 
볼때 행위에는 무릇 인간으로서 행할 수 있는 행동과 
그 결과가 귀속된다. 그리고 이러한 귀속은 행위자의 
주관은 고려하지 않는 객관적 판단으로 이루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형법총론 (이재상) - 제9판
이재상.장영민.강동범 지음 / 박영사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론 형법학의 표준 교과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론적인 것부터 말하자면 형법각론은 형법 제 2편 
형법각칙을 탐구하는 분야이다. 따라서 형법각론은 형법 
제 1편 형법총칙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형법총론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형법총칙은 모든 범죄와 형벌의 
공통요소를 뽑아서 규정하는 반면, 형법각칙은 개별적 
범죄유형과 그것에 귀속되는 형벌을 규정한다.

총칙과 각칙의 이와 같은 특징은 그대로 총론과 각론으로 
이어져서, 총론의 서술형태는 일반적 · 추상적 방법,
각론은 개별적 · 구체적 방법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총론연구에 중점을 두어 왔고, 이에 반해 각론을 
등한히 생각한 것은 일반적 추상적 사고에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일반적 · 추상적인 것은 
높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개별적·구체적인 것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한 결과이다. 그러나 양자의 서술형식의 차이가 양자의 중요성을 결정해 주는 요소가 될 수는 없다.

형법총론과 각론의 중요성은 동일하다. 총론이 각론에 
비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그것은 일반적 
추상적인 것이 마치 더 가치가 있고 중요한 것으로 잘못 
생각한 데에 원인이 있을 뿐이다. 내용적으로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일반성이 개별성을 포섭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일반성, 추상성은 개별성 · 구체성을 
전제로 했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형법총론의 고의·과실·
미수· 공범 등의 논의는 형법각론의 개별적 범죄유형과 
결합하지 않으면 맹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후자는 전자가 활동할 수 있는장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총론이 각론의 필수적 전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문제를총론 없이 각론적인 방법만으로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틀린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할 경우 불편하고 번거로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예컨대 모든 범죄유형에 총론의 문제점을 
반복해서 논의해야 하는 번거로움) 공통되는 요소를
뽑아서 따로 취급할 뿐이다.

형법각칙은 어떤 행위가 ‘범죄‘로 ‘형벌‘을 받게 되는지를 
구체적 · 개별적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각칙은 범죄구성요건과 형벌구성요건의 양자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금지하는 범죄행위는 어떤 것이고, 그런 범죄행위를 하였을 경우에 받게 되는 형벌은 또한 어떤 종류이며 어느 정도가 
되는지, 이것에 관한 구체적 정보는 각칙이 제공한다. 
그러므로 각칙은 범죄의 구체적기준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범자 시민이 위법행위를 피하고 적법행위를
하기 위하여 주목해야 할 일차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면 국민의 일반적 행위준칙이 되는 형법각칙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만들까? 형법각론은 ‘형법학‘, 즉 학문의 
한 분야이다. 따라서 이 물음은 형법각론이 학문으로 
인정받기 위한 가장 본질적 문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진리탐구를 이념으로 하는 학문은 전제에 대한 구속이 
없어야 한다. 각칙의 해석 · 적용‘은 그 다음 문제에 속한다.

법률을 만든 사람(제정주체)과 만든 기준제정기준)이 
정당성을가질 수 없는 데도 이것을 문제삼지 않고 해석 · 
적용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학문활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 학문을 두고 사이비학문이라고 한다.

매우 사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형법칙은 사람이 만들며, 
이 ‘사람‘을 일컬어 ‘입법자‘라고한다. 우리나라 국가조직에 의하면 입법권은 국회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에(헌법 제40조) 국회의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이 형법각칙을 만드는 
입법자인 셈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좋은 입법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다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국회 스스로 법률안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작업하여 넘겨주는 정부안을 약간 
손질하여 통과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형법과 관련된 
법률안은 법무부가 만들고, 그곳에서 실무작업을 하는 
사람은 검사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일본의 유사한
법률을 모델로 하여 법률안을 만든다. 이런 입법현실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형식적 입법권은 국회에 있지만 실질적 입법권은 정부에 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우리나라의 형법내용은 정부의 
정치적 방향설정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론의 해석 · 적용대상인 법률의 정법성에 대한 심사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법률의 정법성심사는 헌법재판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법률 자체에 대한 비판적 7성찰은 헌법재판을 호소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실제로 해당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이제기되면 그것에 관한 논거를 제시할 수 있고, 나아가서 
입법자에게 형법개정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의미도 갖는다. 이런 중요한 동기를 유발시켜야 하는 분야가 바로 학문 
영역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법전은 불법이 아닌 법으로 
메워질 수 있고, 법하의 궁극목표인 정의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학문영역에서 문제가 제기되지 
않으면 시민 · 입법자 ㆍ실무가들은 그들이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한다.

둘째, 법률의 정법성심사를 통해서 법관은 정당성이 
의심스러운 법률을 ‘제한적용‘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법개념의 불명확성, 어의 범주법관에게 일정한 
심판재량을 열어주며, 법관을 완벽하게 구속시킬 수 있는 
법률의 제정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에 속한다. 
모든 법개념이 ‘해석‘을 필요로 하고, 그렇게 해석된 내용이 이른바 ‘학설대립‘, ‘견해대립‘을통하여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다는 사실이 이것을 반증한다. 이런 다양한 견해 가운데에서 어느것을 취사선택할 것인가는 법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며, 이 판단이 가벌성과 양형심사에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형사소송법 제308조가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는 자유심증주의를 
선언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재량의 절차법적 확인이라고 할수 있다. 이에 따라서 법관은 아직 개정·폐지되지 않은 
‘의심스러운 법률‘에 대해서는 제한적용의 여지를 가질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법관은 미처 개폐되지 못한 불법적 
법률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따라서 "부당한 처벌인 것은 나도 인정하지만, 현행 법률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어쩔 수 없다"는 법관의 변명이 완전한 면책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원칙은 전후 ‘나치스‘에봉사한 법률가들에 대한 
재판에 적용됨으로써 법률의 기계적 해석 · 적용에 앞서서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었다.

그러면 입법자는 어떤 기준에 따라서 범죄가 되는 행위를 
결정할까? 만일 입법자가 자의적으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학문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범죄화와 비범죄화의 객관적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국민은 규범을 규범으로 승인하고 따르게 된다.
입법의 형식적 절차(형식적 법치국가성)에 하자가 없으면 
정법이라고 믿는 것을 법실증주의라고한다. 
어떤 행위를 범죄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두 가지 
기준이 대립하고 있다.

법익보호

범죄화의 정당성을 법익보호‘에서 찾는 것은 체계초월적 
법익에 의한 정당화방법에속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법익을 침해한 행위만이 형법적 불법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입법자는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지 않은 행위를 
형법의 범죄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즉 법익보호가 형법각칙의 제정기준이 되는 셈이다. 
법의 개념은 계몽주의철학에서 연유한다. 포이어바흐는 
19세기 말 형법을 도덕화하는 것에 대한 무기로 법익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어떤 행위가 범죄로 되기 위해서는 종교규범이나 윤리규범에 대한 위반으로는 부족하고 타인의 구체적이익, 즉 법익을 침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형법은 경험지향적인 것으로 전환하게 된다. 종교규범 
윤리규범에 대한 위반은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입법자는 금지선언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경험적인 입증부담이 없다. 하지만 
법익침해를기준으로 하게 되면 경험적 존재로서 법익의 
담당주체인 피해자가 전면에 부상하게 된다. 

이제 입법자는 일정한 인간행위를 범죄로 금지하려면, 
① 그 행위로 피해를 받는 피해자와 ② 그가 침해당하는 
구체적 이익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경우의 
범죄화는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특별형법을 
포함한 각칙의 범죄규정에서 법익침해의 내용인 피해자와 그의 구체적 이익을 확인하지 못하면 그 규정은 불법적 
문제가 있는 법률로 보더라도 무방하다.

사회유해성

사회유해성은 사회체계를 중심으로 하는 범죄화 또는 
비범죄화의 기준이다. 이러한 것을 표방하는 견해는 
다음과 같은 특징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 

① 사회유해성이론은 형법의 이론·실무를 사회과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왜냐하면 사회유해성은 
형법을 뛰어넘어 사회체계의일정한 이익 · 필요를 
대변하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② 사회유해성이론에 
의하면 인간이익(즉 법익에 대한 모든 침해가 범죄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사회유해적 성격을 갖는 
것만이 범죄로 된다. 이것은 범죄자와 피해자 사이의 
분쟁관계, 즉 피해자의 개별적 범죄피해 단계를 뛰어넘는다. ③ 사회유해성이론은 형사입법자에게 경험적 지식을 
요구한다. 그리고 가벌성의 규정과 형법적 행위결과의 
확정에 이 지식을 투입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일정한 
인간행위를 사회유해적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이에 대한 장기적 대처방법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도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으며 그저 
범죄자 · 피해자에 대한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형사입법자에 대한 경험지식의 요구는 판결과 집행에도 
이어진다. 형사법관이 양형에서 피고인에 대한 형벌효과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형벌집행이 재사회화 목적을추구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되면 형법체계는 규범실현체계에서 행위의 사회적조종체계로 전환하게 된다. 이것은 형사사법현실이 현실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선다.

형법체계를 경험지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전환이 어느 정도까지계속되고 관찰될 수 
있을지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형법체계의 현실적 문제해결능력에 대한 회의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에 속한다. 경험지향의 형법체계가 갖는 
역사적 한계(예컨대 예방이론의 실패)를 직시한다면, 
형법의 현실에 대한 관계는 평가대상이 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형법의 문제점

범죄와 형벌을 규정하는 형벌법규에는 형법각뿐만 아니라 특별형법도 있어서, 전자에 의한 범죄를 형법범 후자에 
의한 것을 ‘특별법범‘이라고 한다. 양자 사이에는 어떤
질적 차이도 없고, 형법적 중요성 또한 동일하다.

 2017년 법원의 제1심 형사공판사건에 적용된 죄명은 
형법각칙이 적용된 형법범이 7종이다. 이에 반해 형벌을 
법적 효과로 갖는 특별형법은 그 법률의 종류만 해도 
2017년 기준 325 더하기 알파이다. 왜냐하면 ‘기타‘의 
항목에서 처리된 사람이 172명으로 그 중 유기징역을 
받은 사람만 1명, 집행유예 4명, 재산형을 받은 사람이 
60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법률이 
적용되었는지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특별형법이 적용된 범죄의 종류는 300을 훨씬 
상회한다.

우리나라 형사사법에서 특별형법의 현실적 중요성은 
그것에 해당되는 범죄인의 숫자에서도여실히 드러난다. 
2017년 기준으로 형법범의 수는 958,865명, 특별법법은 
866,011명으로 특별법법의 숫자는 형법범과 큰 차이가 
없다. 이것도 최근에 역전된 숫자이고, 불과 몇 년 전만 
하여도 특별법범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법학전문대학원 체제가 출범하기 전까지 
특별형법은 철저하게 강의와 국가시험에서 배제되었다. 
하지만 이론과 실무의 통합을 이념으로 삼는 법전원 
체제에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특별형법론에 대한 
강의가 개설될 뿐만 아니라 변시에 출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형사사법에서는 여전히 형법각칙이 
기본이 아니고 특별형법이 기본이다. 형법각칙은 약간 
강조하여 말하자면, 특별형법의 장식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의 대부분은 특별형법에 
들어 있다. 

‘일반론‘(형법각칙)이 해결되면 특별한 문제들(특별형법)은 어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은 관념적 희망사항일 뿐이다. 
범죄구성요건(범죄유형과 형벌구성요건(법정형)의 양면에 걸쳐서 특별형법은 모법인 형법각칙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문화키거나 대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형법 제 2편 각칙은 좋게 말하면 범죄유형의 
‘원론적인 것‘이 들어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껍데기‘만 
남아 있다. 이것은 ‘특별형법의 난무 · 비대화‘, 그 결과로 
인한 ‘형법각칙의 공동화현상‘으로 대변된다. 

법치국가적 자유주의형법 

형법각칙과 특별형법의 주객전도는 우리 입법자들이 
추구하는 이른바 ‘근대적 의미의 형사정책‘에도 그 원인이 
있다. 형법의 효율성, 즉 범죄대책의 효과를 우선적으로 
지향하는 형사정책을 ‘근대적 의미의 형사정책‘이라고 한다. 이것은 법치국가적 자유주의형법에 상반되는 개념으로서 
법치국가형법이 걱증하는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으므로 이제는 형법이 범죄저지와 예방의 효과적 
수단으로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형법을 기능화하게 되면 형법은 이제 더 이상 
"형사정책의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 (Franz v. List)가 
되지 않고, 오히려 형사정책의 연장, 형사정책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손상을 입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형법의 법치국가이다. 가장 흔한 예로 범죄와 전쟁을 
벌이는 형법은 근대적 의미의 형사정책을 기초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근대적‘이라는 말은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론·실무를 막론하고 형법은 
효과적 범죄대책의 기능적 수단의로 이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형법의식도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근대적 의미의 형사정책‘에 기초하여 범죄와 전쟁을 
벌이기 위한 형법은 필연적으로 강한 형법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가능한 한 금지범위가 넓어야 하고 법정형도 
높을수록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다다익선의 논리가 
지배한다. 그런데 우리 입법자들은 강한 형법을 만드는 
방법으로 형법각칙을 개정하는 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각칙은 그대로 둔 채 그 내용을 보강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편법을 사용한다. 그것도 이중·삼중으로 고치는 
편법의 편법을 쓴다.

특별법의 특별법 

여기에서 일반법에 대한 특별법뿐만 아니라 특별법에 
대해서 다시특별법이 생기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일반법인 형법각칙의 내란 • 외환죄(제87~
104조)에 관한 특별법이다. 그리고 일정한 사안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배제하는 남북교류협력에관한 
법률은 국가보안법의 특별법이다. 따라서 이 법률은 
일반법인 형법의 입장에서 보면 특별법의 특별법인 셈이다. 즉 일반법 특별법 특별법의 특별법이라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일반법은 원칙이고 특별법은 이 원칙에 대한 예외이다. 따라서 특별법의 특별법은 예외의 예외라는의미가 된다. 예외가 이처럼 많아지게 되면 원칙과 예외의 의미는 뒤바뀌지 않을 수 없다. 예외가원칙이 되고 
원칙은 오히려 예외가 되는 비정상이 초래된다. 특정범죄가중법과 폭력행위처벌법을다시 수정·보완하는 특정강력범죄법도 같은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과 나타나는 것이 바로 특별형법의 만연이고 형벌 
인플레이트 현상이다. 형법각칙의 형벌체계는 특별법에 
의하여 완전히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법정형의 상한선 
또한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강화되었다. 이제 더 이상 
형법각칙이 형벌구성요건의 원칙 · 전형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으며, 중요한 내용은 대부분 빼앗기고 뼈만 
앙상히 남은 모양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지나치게 높은 법정형의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보통 일반범죄 가운데(일부 국가적 법익에 대한
죄는 제외) 살인죄를 가장 중한 범죄로 알고 있다. 
그 형벌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장 높다. 
그러나 특별법에 가면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도 살인죄와 
같거나 그보다 무겁게 처벌되는 범죄가 얼마든지 있다. 
강도상해나 강도강간범이 8년 안에 다시 같은 범죄를 
범한 경우에는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4 제3항)으로 살인죄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특수강도가 강간한 경우(성폭력처벌법 
제3조 제2항 특수강도강간)에 대한 법정형도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국국가에 대한 민사재판권

[사안] 

한국인 甲은 한국에 있는 미합중국 乙 산하의 비세출자금
기관인 ‘육군 및 공군 교역처‘ (The UnitedStates Army 
and Air Force Exchange Service)에 고용되어
미군 2사단 소재 캠프 케이시 (Camp Cacey)에서 
근무하였다. 甲은 乙이 정당한 이유 없이 자신을 
해고하였다고 주장하면서, 乙을 상대로 하여 위 해고의 
무효확인과 위 해고된 날로부터 자신을 복직시킬 때까지의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한국의 법원에 제기하였다. 
이경우 한국의 법원은 乙에 대해 민사재판권을 갖는가?

[판결요지] 

"국제관습법에 의하면 국가의 주권적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원칙이라 할 것이나,
 국가의 사법적 행위까지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것이 오늘날의국제법이나 국제관례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영토 내에서 행하여진 외국의 
사법적 행위가 주권적 활동에 속하는 것이거나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이에 대한 재판권의 행사가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국의 사법적 행위에 대하여는 당해 국가를 피고로 하여 우리나라의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수 있다고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