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586 의 진짜 문제는 그들이 이미 사회의 새로운 
주류임에도 여전히 주류는 따로 있다고 여기는 그들 
고유의 자기 규정과 비주류 의식에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586 은 언제나 실제 생각하는 것과 대외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을 동시에 사고해야하는 이중 사고를 발전시켰다.……혁명론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상류 중산층으로서의 모든 
혜택을 누리고자 했던 이중 생활은 자신들을 새로운 
주류이자 기득권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 성찰의 부재, 
그리고 과거의 급진적 면모와 현재의 대중적 면모가 
혼재한 이중 사고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 P285

"비주류는 문제 제기로도 충분하지만, 주류는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비주류가 정치적으로 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주류는 이견을 포용하고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시민운동은 몰라도 
정치의 영역에서 시장, 욕망, 이익은 조정의 대상이지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비주류에게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지만, 주류는 거기서 머물면 안 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낡은 질서는 오직 새로운 
질서에 의해서만 청산되기 때문이다."" - P286

권력 집단의 ‘비주류 의식‘은 ‘책임 의식‘을 죽인다는 
점에서두렵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간 비판을 많이 
받아온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과 ‘피해자 코스프레‘도 바로 그런 비주류 의식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90년대생의 지지를 회복하려면 이젠 곰팡이 냄새가 날 
정도로 케케묵은 비주류 의식을 ‘남 탓‘이 아닌 ‘내탓‘을 
앞세우는 책임 의식으로 대체해야 하지 않을까? - P287

"최선은 차선의 적이 될 수 있다. "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의 말이다. 이 세상의 거대한 문제와 씨름하는 
사상가가 추상적인 이론의 세계에 빠져 최선을 추구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현실 세계의 작지만 구체적인 고통의 
문제를 외면하기 쉽다는 뜻이다. 시간의 문제도 있다. 
최선을 추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최선은 아닐망정 차선의 해결책이라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은 적이 될 수밖에 없다. - P289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에 담겨 있는 이른바 
‘경로의존path dependency‘ 때문이다. 혁명은 처음부터 
다시시작하는 걸 어느 정도 가능케 하지만, 개혁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기존 제도와 이에 따라 
형성된 사람들의 관습과 습관을 고려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이게 좋거나 바람직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해 ‘최선‘은
커녕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290

혁명을 하면 모든 걸 다 일시에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역시 착각이다. 개혁에 비해 어느 정도 파격적인 
정책을 취할 수있을 뿐, 여전히 ‘경로의존‘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철학자 카를 포퍼가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 P291

"다주택자 양도차익 100퍼센트 과세"를 주장한 청와대 
참모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정의로운 
사람이었을 게다. 비극은 그가 너무도 성급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집단적차원에서 부동산 불로소득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역사는 반세기가 넘는다. 그 세월 동안 사람들은
 "부동산만이 살길이다"는 삶의문법을 체화했다. 
그걸 무슨 수로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는가? - P291

더는 악화되지 않도록 하면서 한 걸음씩 개혁의 길로 
나아가는 ‘차선‘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일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 한일은 ‘최선‘을 앞세워, 아니 
‘최선‘을 빙자해 ‘최악‘으로 가는 길만 활짝 열어젖힌 
것이었다. 다른 주요 정책들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무주택자들이 볼 때엔 이건 ‘실수‘가 아니라 ‘죄악‘이다. - P291

이른바 ‘분노를 이용한 권위 창출법‘이란 게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영학자 제프리 페퍼는 
『권력의 기술』에서 "때론 분노를 표출하라"고 권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상대에게 분노를 표출하면 자신이 
‘위압적이고 강인하고 유능하고 똑똑하게‘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분노를 드러내면 지위가 높고 유능하게 
보일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맞서길 꺼린다. 
화를 정면으로 맞고 싶은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P296

선거 캠페인에서도 분노를 활용하는 게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다만, 용의주도하게 해야 한다. 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은 이런 주의 사항을 제시한다. 

"분노를 이용해 열정을 불러일으키려면무엇보다 
구체적인 인물과 사물을 겨냥해 집중적으로 퍼붓고, 
산탄처럼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분노를 분산시키면 
겨냥한 표적 대신 자신을 연상시켜 오히려 역효과만 
초래한다."

- P296

어떤 방법을 쓰건 문제의 핵심은 분노를 조절하거나 
관리할 수있느냐는 것이다. 감성지능의 저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보스가 교묘하게 의도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효과적인 자극이될 수 있지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리더십 전술로는 빵점이다"고 말한다. 
그런 상하 관계가 아닐지라도 과유불급의 원칙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정의로운 분노마저 역효과를 내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P297

어떤 방법을 쓰건 문제의 핵심은 분노를 조절하거나 
관리할 수있느냐는 것이다. 감성지능의 저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보스가 교묘하게 의도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효과적인 자극이될 수 있지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리더십 전술로는 빵점이다"고 말한다. 그런 상하 
관계가 아닐지라도 과유불급의 원칙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정의로운 분노마저 역효과를 내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P297

누구를 위한 분노인가? 지도자에겐 이게 가장 중요하다. - P297

지도자의 분노는 국민을 위한 분노여야 한다. - P298

‘무엇‘, ‘왜‘, ‘어떻게‘ 가운데 어떤 게 가장 중요한지를 놓고 
많은 이가 말을 남겼다. 물론 정답은 없다. 각 분야나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왜‘가 아니라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는 글쓰기와 관련된 조언이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1970년대 이후 사회과학에서 ‘왜‘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어떻게‘라는 
물음만 남았다"고 개탄했는데진보적 사상가들은 대체적으로 ‘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 임상심리학자 에른스트 푀펠은 "항상 모든 것에 
‘왜‘라고 질문하는 이성에 대한 중독증은 그 자체로 
질병이 아니라면 편협함의 신호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회가 아닌 개인적 차원의 조언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 P299

이렇듯 분야나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유불급의 원리다. ‘무엇‘, ‘왜‘, ‘어떻게‘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게 좋다는 뜻이다. 
‘무엇‘이나 ‘왜‘를 앞세우더라도 어떻게‘에 실패하면
 ‘무엇‘이나 ‘왜‘의 의미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특히 학문 세계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과 씨름을 해야 하는 
정치 ·행정의 세계에선 더욱 그렇다. 물론 정치·행정에도 
가치와 비전이 필요하므로 ‘무엇‘과 ‘왜‘를 중시해야 하지만, 
‘어떻게‘에 실패하면 ‘무엇‘과 ‘왜‘는 의미를 잃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 - P300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무엇‘과 ‘왜‘의 관점에서 보자면정의롭고 아름다웠다. 누가 감히 문재인 정권의 선의를 의심할 수있으랴. 그러나 선의만 흘러넘쳤을 뿐 ‘어떻게‘에선 믿기지 않을정도로 무관심했고 무능했다. 부동산 정책은 일단 ‘욕망에 불타는 시민‘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물론 공기업 직원과 공무원도 그런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전제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해야 ‘의도하지 않은 결과‘나 ‘역효과‘를 예방하거나 최소한으로줄일 수 있다. 이건 대단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는, 상식 중의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선의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문재인 정권엔 그런 상식이 없었다. - P301

문재인 정권이 협치를 거부한 이유도 ‘무엇‘과 ‘왜‘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무엇‘과 ‘왜‘는 가치와 비전의 
영역이므로 협의대상이 되기 어렵다. 

협치는 사실상 ‘어떻게‘의 영역에서 작동할수 있다. 
그런데 부동산이나 일자리 등과 같은 민생 문제는 
대부분 ‘어떻게‘와 관련된 것이다. ‘어떻게‘에도 이념과 
가치가 끼어들순 있지만,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한 것들에 숨어있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디테일의 완성‘을 위해선 귀를 활짝 
열어야 하며, 특히 반대편의 의견을 경청해야만 한다. - P301

‘큰 정부‘를 지향하면서 공무원 수를 대폭 늘린 것도 그렇다.
어떻게 기존 공무원 조직 문화를 민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게끔개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적극 논의해야 하건만, 그런 이야기는전혀 들을 수 없었다. 이 또한 ‘어떻게‘를 무시하는 버릇 탓이다.
의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큰 정부‘와 ‘공공부문 강화‘가 ‘어떻게‘
에서 실패하면 ‘작은 정부‘와 ‘시장 만능주의‘로 가는 길을 닦아주는 꼴이 되고 만다. 문재인 정권이 ‘무엇‘과 ‘왜‘에 경도된 만큼의도적으로 ‘무엇‘과 ‘왜‘보다 ‘어떻게‘가 중요하다고 여겼어야했건만, 문재인 정권은 끝내 그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게바로 문재인 정권이 실패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 P302

‘풀뿌리‘를 집어삼킨 ‘인조 잔디‘

"그들이 벌인 행사들은 상습적으로 그런 일들을 해온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풀뿌리 운동이다. 
폭스뉴스의 전폭적인 홍행 지원도 한몫 거들고 있잖은가?"  - P303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2009년 4월 12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당시 주요 이슈였던 우익 포퓰리즘 
운동인 티파티 TeaParty를 두고 한 말이다. 
이 말이 시사하듯이, 미국에선 ‘풀뿌리‘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자주 벌어진다. 

이는 한국의 ‘정치적 팬덤‘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에 시시하는 바가 크므로, 그 논쟁의 전말을 
살펴보기로 하자. - P303

묻혀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광업자에겐 그야말로 
거저먹는횡재나 다를 바 없었다. 미국에서 정치인이 grass 
roots를 강조할 땐 자신이 "흙의 아들son of the soil"
이라는 의미였지만, 그건 농업 중심 시대의 이야기고 
오늘날엔 일반 서민층으로 간주된다. 서민층이 아니라 
하더라도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밑에서 위로‘의 변화 
방식을 취할 때에 그런 운동을 가리켜 grass roots 라는
말을 많이 쓴다. - P303

한때는 groundswell(대중적 지지, 여론 등의 고조)이라는 말도 쓰였으나, 이 단어는 이젠 grass roots로 흡수된 
느낌이다.

groundswell은 먼 곳의 폭풍이나 지진 등에 의해 
일어나는 큰파도 등과 같은 여파를 말하는데, 
이것을 비유적으로 grass roots와 비슷한 개념으로 썼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쓰나미 tsunami로 볼수 있는 
groundswell은 파도와 달리 전혀 감지할 수 없는데, 
이런 특성이 여론의 고조나 비등과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 P304

1962년 법무부 장관 로버트 케네디가 동아시아 국가들을 
순방하고 있을 때 뉴스위크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그는 미국 정책을 일반 대중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하려고 애를 썼다 He soughtto make US. policies understandable at the tice-roots level."

rice-roots는grass roots의 의미를 살리면서 쌀농사로 
먹고사는 아시아 지역의 특성을 살린 재치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 P304

grass roots는 미국에서 좋은 느낌을 주는 단어인지라 
정치적 좌우를 막론하고 이 말을 즐겨 쓴다. 

2003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당선되어 주지사로 변신한 할리우드 
스타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이미 정계 진출을 결심한 
2001년 1월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실현된 모든 좋은 아이디어는 풀뿌리 조직에서 나왔다는게 나의 신념이다." - P304

유행에 민감한 의류업자들은 grass roots가 호감을 받는 단어라는 점을 놓치지 않고 공략한다. 예컨대, 젊은 전문직을 위한의류 아웃렛인 바나나리퍼블릭은 1986년 가을 카탈로그에서 자사 제품이 "풀뿌리 감수성grass-roots sensibility"이 뛰어나다고 선전했다.  - P305

미국에서 grass roots 와 대비되는 용어는 인조 잔디의 상표명인 Astro Turf다. Astroturf로도 쓰며, Astroturfing이라고도 한다. 1966년에 나온 것으로 미국 우주 프로그램의 중심지인텍사스주 휴스턴에 세워진 실내 스포츠 경기장 Astrodome에최초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astro라는 이름이 붙었다. Astro Turf는 비유적으로 관제 또는 특정 세력의 지원과 부추김을 받아 움직이는 ‘사이비 grass roots‘로 보면 되겠다. - P305

오늘날 종이 편지는 이메일로 바뀌었는데, Astro Turf라고 하면 연상되는 게 바로 로비성이메일 공세다. 바로 이런 공세 때문에 미 의회가 매년 받는 이메일은 8,000만 건에 이르렀던바,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말았다. 의회가 그런 이메일을 아예 무시하기로했기 때문이다.  - P306

2009년은 앞서 소개한 폴 크루그먼의 주장처럼 티파티가
 ‘풀뿌리‘냐 ‘인조 잔디‘나를 따지는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2009년4월 15일 민주당 소속의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는 
티파티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이건 저 높은 곳 어딘가에서 자금 지원을 받고있기 때문에
 ‘풀뿌리운동‘이 아니라 ‘인조 잔디‘다. 미국의 부유층이 
다수 중산층 대신 자기들의 감세 혜택을 누리는 데 초점을 
맞춘 ‘인조 잔디 운동‘인 것이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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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 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어떤 것을 이러저러한 
것으로 표시함으로써 표시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만드는 종류를 구분하는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이것은 사람이다." 또는"이것은 램프이다."라고 대답하지. "이것은 인격이다." 라고 답하지는않는다. 그것이 인격들인지를 알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그 전에 그것이 사람인지 램프인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인격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으로서의 어떤 것을 확인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러저러하게 정해진 것에 관해 무엇인가를 표현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이 개념은 이미 자신의 종으로 분류된 것에서 특정한 추가적인 속성에 귀속되는 술어와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인격적 존재‘ 라고 불리는 속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가 이전에
확인했던 특정한 속성들을 근거로 존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고, 이 존재들이 인격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P17

그렇다면 이 속성들은 어떤 것이며, 인격적 존재를 
술어적으로 서술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속성들을 확정하여 추가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잠정적이고 비체계적인 
정보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 P17

어떤 선개념이 그러한 출발의 모색에서 우리를 이끌어 
줄 수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우리가 이미 발견한 것, 
즉 그 단어를 사용할때의 특징으로부터 발생한다. 

한편으로 인격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것에 어떤 특별한 존엄성을 부여하며, 
다른 한편으로 인격이라는 용어는 특성들을 구분하는 
것을 무시하고, 단순히 수에 대응하는 것을 표시하는데 
기여한다. 한편으로 이 용어는 우리가 어떤것을 그것이 
속하는 종류의 어떤 것으로 동일화할 수 있도록 하는 
분류적인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용어는 속성도 아니다.

오히려 이 용어는 특정한 속성들의 담지자를 나타낸다. 
이제 우리가 이두 가지 쓰임새를 단순히 이름만 갖고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로 여기지않고 그들의 상관성에 
집중한다면, 우리가 찾아야 하는 방향에서 첫 번째로 
암시하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 인격은 다른 사물들이나 
생명체가 무엇인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어떤 분일 것이다. 

- P18

무엇인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어떤 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른 방식은 무엇인가? "마술피리‘의 
한 문장이 아마도 이 물음에 도움을 줄 것이다. 

사라스트로스(Sarastros)의 유명한 아리아 "이 거룩한 
장소에서는 누구도 복수(復)를 알지 못하네."는 
박애주의적인 선언인데, 다소 의아하기는 하지만, 
누구나 이해할만한 문장으로 끝을맺는다. 
"그런 교훈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인간일 자격이 없으리라."

여기서 인간됨이란 하나의 특권으로서, 상실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왕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사례가 어떤 것인지는 쉽게 이해한다. 

하지만 인간이 될 자격이 있거나 없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여기서 "인간은 소위 분류적인 용어로서, 
이 용어를 통해 무엇보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거나 
자격이 없는 어떤 사람과 동일시 할 수 있다.  - P18

여기서 "인간은 소위 분류적인 용어로서, 이 용어를 통해 무엇보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거나 자격이 없는 어떤 사람과 동일시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 표현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즉 실체는 어떤 것에 의해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바로 그것으로 확정할 수 있게 만들며, 그렇게 확정된 것에 대해 다른 것이 더 서술되는 것이다. - P18

두 표현 간의 차이는 어떤 경우에는 짖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짓지않는 개의 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개는 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개이기를 
멈추는 순간, 이때 우리는 개가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된다. 우리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수 있다. 
개가 짖기를 멈춘다면, 그 개는 이제 짖지 않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더는 개가 아닐 뿐이다. 개가 개이기를 멈춘다면, 그 개는 무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것으로 곧 썩은 짐승의 시체로, 그 후에는 흙으로 변화된다. 
남는 것은 한때 개라고 불렀고, 후에는 흙이라 부르는 
물질적인 기체이다. - P19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이러한 사유를 거부했으며, 그는 
두 가지 종류의 ‘변동‘을 올바르게 구분한다. 생성과 소멸이 그 한 종류이고, 변화가 다른 하나이다. 

어떤 사람이 죽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마치 시공간에 있는 
한 조각의 물질처럼 여기서 어떤 것의 상태가 변화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사람, 곧 한 인간의 실존이 
중단되었다고말한다. 우리가 이것저것이라고 말하는 
어떤 사물을 분별할 때, 그 분류 용어는 그것으로 우리가 
이 사물을 비로소 온전히 분별하게 만드는개념이다. 

어떤 것이 생성된 그것은 우선 이 사물의 유래로서 분별될
수 있지만, 우리가 그에 대해서 진술하는 진짜 주어는 아니다.  - P19

사라스트로스가 "그런 교훈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인간일 
자격이 없으리라."고 말할 때, 그는 시공간적인 한 조각의 
물질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왕자의 
자격을 상실할 수 있듯이, 그것이 인간됨을 상실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어떻게 한 조각의 물질이 어떤 것에 자격을
부여하거나 상실할 수 있겠는가. 

사라스트로스가 말한 것은 그러므로 모순적이다. 
사람만이 사람됨에 자격이 있거나 상실할 수 있다. 
이럴수 있기 위해서 그는 이미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라스트로스의 말을 
어떤 식으로든 직관적으로 이해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인간과 그 인간됨의 관계를 개와 개임의 관계와는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을 
한 종(種)의 예시로 파악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르게 
하나의 관계, 즉 내적 차이를 생각한다. 인간은 개가 
개인 것과 동일한 방식, 즉 그의 종개념과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이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다. - P20

‘인간적인(menschlich)‘과 ‘인간의 (human)‘ 같은 
개념들을 사용하는 예를 살펴보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의 특정한 의미에서보자면 ‘인간적인‘ 이라는 말은 
정확히 인간이 행동하는 바이다. 즉 어떤 동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특히 추악한 행동들이 ‘인간적‘ 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적‘ 이라는 용어를 이처럼 사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훨씬 더 많이 이 용어를 규범적으로 우리가 
동의하는 특정한 행위방식을 우리가 비난하는 행위와 구
분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때로는이런 언어 사용이 
이상한 방식으로 전도되기도 한다. 

우리는 살며시 거부하면서 용서를 구하고 싶을 때 하는 
행동방식을 ‘인간적‘ 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실수는 
인간적이다."와 같은 경우이다. 이 같은 경우에서
인간적이라는 용어는 항상 나약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서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식과 관련된다. 
그러나 나쁜 의도, 곧 악의적인 위반의 경우에, ‘인간적‘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비록 이 나쁜 의도가
인간에게 특징적인 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 P21

특히 역겨운 나쁜 의도와 같은 것을 우리는 ‘비인간적‘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비인간적‘ 이라는 말은 인간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귀속되는 것이 분명하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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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도덕의 차이를 설명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법과 도덕의 차이는 오랜 세월 동안 이들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한 노력을 하여 왔지만, 상호 간 경계가 
모호하고 또 법과 도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은 더더욱 
용이하지 않다. - P3

관습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전해져 내려와 
‘사회 구성원 중 누구를 데려다 놓아도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관습은 정착하는 과정이 규범이나 
윤리, 도덕과는 완전한 별개이기 때문에 때로는 불합리하고 차별의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종교적인 관습이나 
미신에 의해 내려온 관습들은 젊은 세대들의 시선에서는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점도 없는 것은 아니다. - P3

기본적으로 법이란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서 
권장되거나 지양을 요하는 행동이 아니라 ‘소속 집단의 
공공질서‘, 즉 개인이 아닌 단체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그 단체에 의해 강제되는 규범을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법이라는 것이 개개인이 아닌 집단의 
구성원 전체를 하나로 보고 제정되기 때문에, 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구성원 중의 일원이나 일부에게
불공평하고 불합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의 구성원전체로 보면 옳은 일, 혹은 이익이 되는 일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원치 않는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 P3

외면성과 내면성

라드부르흐(Gustav Radbruch)

법은 외면성, 도덕은 내면성이라는 징표는 오랫동안 
그리고 비교적 선명하게 인정되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라드브루흐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외부적 행위는 법적 규제에 속하고, 내부적 행태는 도덕적 규제에 속한다고 믿는 경우, 즉 사색에는 누구도 
벌을 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그것은 ‘외면성-내면성‘의 대립을 법과 도덕의 기초와 관련시킨 것이다. 
이 명제는 무엇보다도 법을 인간의 공동생활규칙의 
총체로 파악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공동생활은 개인과 개인이 행동적으로 교섭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기 때문이다." - P4

구스타프 라드 브루흐(Gustav Radbruch, 1878~1949, 
하이델베르크). 신칸트파의 서남학파에 속하는 독일의 
형법 · 법철학자. 바이마르 공화국 법무장관이었고, 
쾨니히스베르크대학 · 킬대학 ㆍ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를 지냈다. 바이마르 초기의 1920~1924년 사회민주당의 
국회의원이 되며, 두 번에 걸쳐 법무장관을 맡아 형법 
초안을 기안했다. 1933년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추방되며, 1945년 복직. 존재와 당위비판적 지성, 인식과 신앙의 
이원론, 자유주의적 경향 등에서 칸트적 정신의 계승자이다. 그러나 법철학에서의 가치상대주의, 법학론에서의 자유법론 등 칸트와 다른 측면도 많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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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의 기능으로는, 1) 법력으로서의 관찰 가능성과 
절차적 보장이다. 단 헌법상 기본권은 주관적 공권이고 
공법의 영역에서 기능하지만, 사법질서 내에서 제3자적 
효력, 일반조항 등을 통하여 간접 적용될 수 있다. 

2) 권리는 권리자의 인격과 관련된 자기주장과 
방어능력이고, 원칙적으로 포기가불가하다. 
예컨대 재산권 보장과 같은 것은 자유로운 인격, 
즉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책임을 지는 개인을 
전제하는 것이다. 

다만 이는 단지 이상이자 요청이고, 그것이 현실적인지는 
의문이 있다.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 갈등이 있고, 
빈자에게는 현실적인 자유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 P33

예링은 그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이를위한 수단은 투쟁"이라고 하면서, "권리 추구자의 권리주장은 그 자신의 인격 주장"이고, "권리주장은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라고까지 말한다. 

나아가 개인의 이기주의적 본성에 기하여 개인이 사회에 
대하여 이기적 계산을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고, 
사회와 개인의 상호보완적 관계 내지 사회내지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 이익의 공속성을 강조한다(권리를 위한 
투쟁 외, 275 이하). 

예링이 말하는 이익은 통찰력 있는 사업가의 경영철학인 
멀리 내다보는 이익이고, "개인을 사회 목적에 기여하게 
하는 것은 낮은 이기주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보다 고차원적인 어떤것, 즉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공동체주의자들이 말하는 
‘권리의 사회성, 테일러(C. Taylor)가 말하는 사회성 
명제(thesocial thesis)에 상응하고, 예링이 요구하는 
도덕성은 바로 자기 진정성 (authentidity)이라고 
할 것이다(김정오 외, 법철학, 190면). 

권리의 사회성은 바로 민법 제2조의 신의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이나 헌법 제23조 제2항 
재산권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성에 구현되어 있다. 
이를 강조하면 현대 민법의 공동체주의적 기초가 될 수 있다. - P34

민법이론상 권리의 종류는, 내용상으로, 재산권, 인격권, 
가족권, 사원권으로 분류되고, 그 작용의 면에서, 지배권, 
형성권, 청구권, 항변권, 절대권, 상대권, 일신전속권, 
종된 권리, 기대권 등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권리는
경합되거나 선택적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 P34

그런데 법이론상 권리와 법적 지위, 권한, 권능 등의 
개념이 구별될 수 있는지, 자유권이 권리인지 등의 
문제는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미국의 
호펠드(W. Honfeld)가 다루었는데(김정오 외, 법철학, 
172면 이하), 그는 엄격한, 좁은 의미의 권리는 청구권
(claim right)이고, 이는 청구에 따라 급부를 할 
의무(duty)와 상관되어 있다. 다만 법상 의무 없는 
권리나 권리 없는 의무도 있을 수 있으므로, 상관성이 
언제나 타당한 것은 아니다. - P34

청구권 이외에 넓은 의미에서의 권리로는 자유(권)과 
권한, 면제(권)을 들수 있다. 자유는 일반적으로 소극적 
허용이지만, 일반적 자유 침해에 대하여 방어권 내지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는 
권리로볼 수 있어서 (권) 표시를 한 것이다. 
즉 자유 자체가 권리가 아니고 규범논리상 소극적 
허용의 영역으로서 이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방어권의
형태로 법에 등장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금지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소극적 허용이 된다. 그리고 물권과 같은 지배권의 
경우, 소유물을 자유롭게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지만(이는 독자적 권리가 아니라 권능), 그 침해에 
대하여 이를 배제하는 대세적인 물권적 청구권이 
발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격권이나 지식재산권도 그 침해에 대한 구제 청구권이 
중요하므로, 자유권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로부터 다양한 구체적 권리(성명권, 퍼블리시티권, 
전용실시권이나 로얄티 청구권 등)가 파생된다. - P34

호펠드는 이러한 자유 내지 허용을 privilege라고 하여 
특권으로 번역될 여지가 있으나, 특권은 일반적 청구권적 
권리보다 많은 이익이 부여되고 강한보호의 대상으로 
보여질 수 있어 privilege를 자유(권)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자유(권)은 타인의 
무권리(no right), 즉 타인의 자유 영역에 대한 침해 
금지와 상관되어 있다. - P35

한편 권한(power)은 어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계약을 체결하거나 유언을 할 수 있는 지위는 
사법상의 권한으로 볼 수 있고, 대리권이나 대표권 등과 
같은 것도 사법상 지위 내지 권한이다. 공법상 개인의 
허가 등의 신청권이나 투표권 등과 같은 것은 통상 
권리라고 불리지만, 공법상의 지위 내지 권한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한편 국가기관의 조직법상의 권한인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등도 공법상의 권한이라고 할 수 있다. 
권한도 넓은 의미에서는 권리라고는 할 수 있지만, 
청구권과 달리 권한에 상관되는 의무자는 없다. 권한에는 
거의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점에서 권한의 상관개념은 
책임(liability)이다. - P35

면제(immunity)는 면책특권이나 면책조항의 경우와 같이 책임이나 의무가 면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권리라고는 할 수 있다. 책임이 면제되는 경우, 그 상대방은 면책자에 대하여 무권한이므로 면제와 무권한은 서로
상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호펠드는 엄밀하지는 
않지만, 반대개념의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권리와 무권리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권리의 반대는 무권리이다. 
자유(권)에는 의무가 붙을 수 없으므로, 그 반대는 의무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권한의 반대는 무권한이고, 면제 내지 면책의 반대는 당연히 책임이 될 것이다. - P36

가족권의 경우와 같이 권리가 의무와 결합된 경우도 있고
(친권과 부양의무), 상속권은 피상속인의 사망을 조건으로 
하는 순수한 재산상의 권리이지만, 유류분이나 기여분 
등과 같은 여러 법적 제약이 있어 호펠드의 권리 개념에
반드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 P36

한편 사원권이나 주식 내지 주주권 등과 같은 것은 하나의 
독립된 권리라기보다는 법적 지위라고 할 수 있으나, 
이를 넓은 의미로는 권리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법적 지위에서 개개의 권능이 발생하는데, 
권능은 통상 법적 지위뿐만 아니라 포괄적 권리에서 
도출되고 파생되는 것이다.

권능으로는 물권의 사용, 수익이나 처분권과 같은 
자유권 내지 허용이 있고 권한인 경우도 있으며, 
청구권으로 구체화 현실화되는 것도 있다. 

예컨대 주식회사의 주식은 주주권이라고 하지만, 
이는 주주로서의 법적 지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권능으로는 공익권과 자익권이 
있는데, 공익권인 의결권이나 소수주주권 등은 권한에 
해당하고, 자익권인 이익배당청구권은 주주총회의 
결의로 구체화되면 청구권이 된다. 

또 지식재산권이라는포괄적 권리에서 사용권이나 
전용실시권 사용허락권 등의 구체적 권리가 파생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권능은 법적 지위나 자유에서 도출되는 
파생적이고 조건적인 것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권리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 P37

반면에 권력이라는 말은 법적 개념이 아니라 정치학적 
개념으로서 ‘타인의 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이나 
능력‘이라고 할 것인데(막스 베버의 정의), 권력은 법적 
권한(특히 직무상 지시권한이나 인사권)에서 비롯되어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타인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사실상의 힘이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푸코(Michel Foucault)는 권력의 개념과 
속성을 파헤쳤고, 이는 물리적 힘이나 법적 규제와 
구분되는 것이라고 하였다(왁스, 법철학, 104 면 이하). 
그는 근대부터 인간의 신체는 공장이나 병원, 학교나 
감옥 등과 같은 제도의 지형을 통하여 권력과 그에 따른 
제재의 새로운 미시물리학에 복종하게 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제재적 권력은 우리들이 스스로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되는 방식으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고, 
따라서 우리는 제재의 실천 기술들에 의해 조정되고 
관리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로써 우리는 질서에 
순응하게 되고, 그 결과 자본주의가 살아남고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P37

푸코의 권력 분석은 자유주의적 사고와 중앙집중적 
국가권력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권력이라는 것이 자유주의가 감축하려고 노력하던 
지배 그 자체를 실제로는 더 증진시키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제재적 권력이 거의 모든 사회생활의 요소에 침투하여 
법 자체가 특별한 우위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 사회화된 법이 내세우는 형식적 
평등이나 그 제도적인 작용은 포스트모던 국가를 특징짓는 권력의 배후에 있는 연막과 같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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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um wir von Personen sprechen

왜 우리는 인격들에 대해 말하는가 - P15

‘인격(Person)‘이라는 말의 의미는 다른 말과는 달리 
유난히 문맥에 따라 좌우된다. 대개의 경우 인격들이라는 
말은 인간들을 의미한다. 예를들어 "우리는 오늘 저녁에 
여덟 명 [=인격]과 식사를 하게 된다."라고말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 "명"이라고 나타낸 "인격" 은 결코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여덟 사람(Menschen)을 기다린다."고 하는 표현이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하고 
더 격조 높은 것으로 들린다. 반면에 "여덟 명 [Personen]"은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요소가 좀 덜 개입되어서, 단순히 
수를 세는 방식으로 들린다. 말하자면 단순히 수적인 
측면을 언급할 때, 우리는 인격들에 대해서 말하게 된다. 
예컨대, "여객 열차(Personenzügen)" 라고 하지 않고 
"인간 열차 (Menschenzügen)" 라고 말한다면, 이는 
그 가치를 무시하기보다 불필요하게 부풀린 것처럼 보인다.
또 우리가 "이 인격"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격적으로 느껴진다. 굳이 공적인 대화방식이 아니라면, 이렇게 
부르는 것은 부정적으로 들릴 것이다. - P15

하지만 이와 다른 맥락에서는 정확히 정반대로 적용된다.
 ‘인격‘ 이라는 용어가 술어로 쓰일 때, 곧 구체적으로 
명시된 어떤 주체가 인격이라고 말할 때 그러하다. 
최근에 ‘인간의 권리‘ 라는 말을 인격의 권리‘로 대체하려는 새로운 제안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인격이 특정한 성질을 
통해 구분되어 표시되는 그러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는 언어사용법이다. 

반면에 모든 인간들이 인격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인격‘을 ‘존엄성의 이름‘으로도 사용한다. 누군가를 
인명부에서 볼 수 있는이름 정도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명시적인 ‘인격 존재‘ 를 귀속시키는 것은 그와 
특별한 방식으로 교제하기를 원하는 어떤 사람으로 그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 P16

우리는 전혀 다른 의미로 고풍스럽게 이용하는 용례를 
연극 티켓에서 발견한다. 이 티켓에 인쇄된 페르조넨
(Personen)‘은 인격들, 곧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배우 자신과 구별되는 배역일 뿐이다.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은 역할(Person)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고 
말했을때 이와 거의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하느님이 보시는 대상이 무엇인지 되묻는다면, 그분이 
보시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인격들‘ 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답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인격 
의미의완벽을 기하기 위해서, 1인칭, 2인칭, 3인칭‘ 이라는 문법적 표현 역시도 숙고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법적 
표현은 오늘날 인격 개념에 비하면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 P16

아래에서는 먼저 ‘인격‘ 이라는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여기서는 인격이라는 용어가 문장에서 
술어로 사용될 때, 곧 "이리저러한 존재가 ‘인격‘ 이다." 
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인격에 관련된다.
그러나 이 용어는 단순히 수적인 것과 동일한 것으로 
여김으로써 ‘비인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야기된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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