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 인격들은 특별한 지위를 지닌다. 
인격들이 서로 함께 하나의 자연적 종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우리가 ‘어떤 것‘ 과혹은 ‘어떤 사람‘과 관계하는지 알기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존재를 말하는지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 즉, 한 인격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그에게 고유한 지위에 대한 권리를 인정할 때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P9

인격은 "이성적 본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라고 한
보에티우스(Boethius)의 유명한 정의 이후, 철학은 
어떤 근거로 우리가 특정한 존재를 "인격"이라고 칭하는지 
그 특징을 세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노력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보에티우스에게서 ‘이성적(rationabilis)‘ 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상세히 연구하는 방향이었다. 
무엇보다 로크부터 현대의 언어 분석에 이르는 영국의
사상은 인격들을 정의하는 일련의 서술어를 가려내 
작업을 하였다. 스트로슨(Strawson)은 인격이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서술어를 동시에 이끄는 담지자, 
즉 데카르트의 의미로 "사유하는 사물" 만이 아니라는 
것이 본질이라고 판단한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인격 철학을 주관성 이론 혹은 의식 이론과 구별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그러나 "의식의 서술어"라는 표현이 
주관적 체험의 모든 종류를 표시한다면 스트로슨의 
정의는 너무 앞질러 갔다. 아마도 작은부리울새한테도 
"내면"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다른 저자들은 인격의 특징을 의식, 기억, 자기 삶
전체에 대한 관계, 이 생애에 대한 관심 등 내면적인 것으로 규정하려고 노력했다. 이미 막스 셀러는 인격을 다양한 
유형의 지향적 활동을하는 주체로 정의하였다. - P9

인격 개념에 대한 이해의 또 다른 방향에서는 인격 존재의 
사회적 성격이 중심에 세워졌다. 인격들은 오직 복수로만 
있다. 인격들에게는 상호 인정의 관계가 본질을 이룬다. 

인격은 단지 종의 특성 때문에 인격인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하기에 인격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피히테와 헤겔을 이 사상의 대부로 인정하기 쉽다. 
그러나 헤겔은 이 지위를 종국에 가서 포괄하는 
이성적 보편자 안에서 다시 지양했기 때문에 이른바 
인격주의는 20세기 전반기 동안 헤겔로부터 이반하면서 
자기 고유한 모습을 획득했다.


- P10

인격 개념에 대한 사변적인 노력은 지금까지 이론적, 
학문적 관심에 관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지난 수년 동안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보에티우스 이후 ‘인격‘ 은 존엄한 이름으로, 즉 가치론적 
함축을 지닌 개념으로 통용되었다. 칸트 이후에 인격은 
인권을 근거 짓는데 있어서 중심 개념으로 작용했다. - P10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인격의 기능은 반대가 되었다. 
인격 개념은 인간이 인격이기 때문에 다른 인격에 대해 
권리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의 해체 작업에서 
갑자기 열쇠 말 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인격이라는 
한도에서만 그렇다. 

모든 인간이 인격이 아니며, 인간 생애의 모든 단계에서 
인격인 것도 아니고, 인간 의식의 모든 포착이 인격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인간은 이를 통해 비로소 인격이 되는 
인정공동체에서 처음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인격이 아니다. 또한 어떤 이들에게 우리가 일반적 
인격성을 지닌 인간이라고 부르는 특징들이 개체로서 
결여되어 있다면, 즉 그들이 이 특징들을 아직 더 이상, 
과도기적으로 혹은 온 생애 동안 갖추지 못하다면 
인격이 아니다. 

예컨대 유아ㆍ중증 정신박약인, 노인 치매 환자 등은 
인격이 아니다. 이 방향의 근본주의적 사상가인 
데이비드 파핏(David Parfit)에 따르면 잠자는 이와
잠정적인 의식 불명자도 인격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생명에 대한 청구권 같은 것을 허용할 어떤 근거도 없다. 
이것을 허용한다면 자기종에게 유리하게 하는 비도덕적 
당파성, 즉 호주의 동물 보호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피터 싱어 (Peter Singer)가 도발적으로 표현하고 있듯이 
"종적 우월주의 (Speziesismus)"가 될 것이다.
- P11

종적 우월주의에서 발생한 충격 현상으로 인해, 이 테제에서 이론적난점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태까지 어떤 설명도 필요해 보이지 않던 문화적 자명성이 갑자기 의문에 부쳐진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은 
이례적이지 않다. 놀라움에 대한 저항력은 그런 경우에 
필요한 첫 번째의 것이지만 이것으로 숙고를 대신할 수 없다.

자명한 것도 그것이 논쟁거리가 되면 장기적으로는 근거 
짓기가 필요하다. 고대 그리스적 생활방식의 해석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떤 이에게는 논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질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들의 도전 
덕분에 직관적인 확실성에 대해 더 깊은 근거를 찾아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자명한 것들은 그런 경우에 근거 지어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그러고 나면 그것의 
명성에 상처를 입게된다.
- P11

모든 사람이 인격인가? 이 물음에 긍정하는 대답에는
전제가 있다. 이 대답은 인격들이 비록 선험적으로 인정을 
기초로 하는 상호 관계 안에 있지만, 이 인정은 인격 
존재에게 있어서 그것의 조건으로 선행하는 것이라기보다 
누군가로부터 기인하는 요구에 답해서 나온 것이다.  - P12

생명은 존재자에게 경우에 따라 속하거나 속하지 않거나 
하는 특징 혹은 성질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살아있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생명체의 핵심"이다. 
인격은 살아 있는 존재들이다. 
인격들의 존재와정체성의 조건들은 각각 특정한 종에 
속한 살아 있는 존재의 그것이다.

우리는 인격들을 하나의 종 혹은 하나의 유로 편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리상으로는 어떤 유일한 종에 속한 것으로 
제한되지 않고, 그러나 이종에 속한 각자는 유일하고 
고유한 그리고 바로 자기 자신에 의해 정의된 지위를 
획득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편입한다. 

이 지위를 받은 자는 ‘어떤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 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어떻게 ‘인격‘ 에 관한 말이 발생했는가?
인격은 무엇을 전제로 하고, 무엇을 내포하며, 
무엇을 배제하는가?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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