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실험적 사유
자연과학이 대재난의 결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한다고 상상해보자. 일반 대중은 일련의 환경 재해들이 자연과학자들의 책임이라고 비난한다. 대대적인 폭동이 일어나고, 실험실들은 불타고, 과학자들은 구타를 당하고, 책과 기구들은 파괴된다.
마침내 ‘아무것도 모른다‘는 지식무용론의 정치적 운동이 세력을 얻고, 학교와 대학에서의 과학 수업을 폐지하는 데 성공하고, 남아 있는 과학자들을 투옥하고 처단한다.
한참 후에 이 파괴적 운동에 대한 반동적 움직임이 일어나, 계몽된 사람들은 비록 과학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대부분 잊었지만 과학을 부활시키려 한다. - P35
그렇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단편들뿐이다. 실험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론적 콘텍스트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유리된 몇몇 실험들에 관한 지식, 그들이 소유하거나 실험한 다른 이론의 편린들과 전혀 관계 지을 수 없는 이론의 조각들, 사용법을 잊어버린 도구들, 한 장의 반쪽가량이 날아가버린 책, 논문중 남아 있는 낱장들, 찢기고 까맣게 타버려 온전히 읽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단편들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이라는 부활된 이름으로 분류되는 일련의 실천체계로 다시 구현된다. - P35
성인들은 비록 지극히 단편적인 지식만을 보유하고 있지만, 상대성 이론진화론, 연소 이론이 가지는 각각의 장점에 관해 서로 토론한다. 아이들은 원소주기율표의 남아 있는 부분을 암기하고, 유클리드 기하학의 일반 원리가 부활한 듯 이를 낭송한다. 아무도 거의 아무도 그들이 행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연과학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일관성과정합성의 기준에 일치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콘텍스트들이 상실되고, 아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 P36
이런 문화에서 사람들은 ‘중성자‘, ‘질량‘, ‘비중‘, ‘원자량‘ 등의 표현들을 체계적이고 종종 상호 연관된 방식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 방식들은 자연과학적 지식이 대부분 상실되기 이전 시대에 그런 표현이 사용되던 방식들과 어느 정도 유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표현들의 사용을 전제로 한 많은 믿음은 이미 상실되어버렸고, 우리에게 매우 놀라워 보이는 그 사용에서도 자의성과 선택의 요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의 논증이 주어질 수 없는 대립적 · 경쟁적 전제조건들이 얼마나 많다고 여겨지겠는가? 주관주의적 과학 이론이 나타나게 되고, 이는 자신들이 과학이라고 간주하는 것 속에 구현된 진리개념은 주관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비판받을 것이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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