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의 경우
안토니오의 몸에서 1파운드의 살을 떼어내기 위해 샤일록으로 하여금 재판의 수단을 취하게 한 것은 증오와 복수심이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샤일록의 입을 빌려 한 대사는 다른 사람의 입에서는물론 샤일록의 입에서 나오더라도 똑같은 진리다. 이는 침해된 권리감각이 시공간에 상관없이 나오는 것임에 틀림없는 말로서, 법과권리는 여하튼 계속 법과 권리라고 하는 부동의 확신이다.
그것은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본인만이 아니라 법률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의 기개와 열정을 담은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 1파운드의 고기에 대해 샤일록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 P105
이 몸이 요구하는 한 파운드 살덩어리는 비싸게 샀으며 내 것이니 가지겠소. 그걸 거부한다면 당신의 법을 멸시하겠소. 베니스의 법령은 강제력이 없으니까. (・・・) 나는 법과 계약서의 벌칙과 몰수물을 갈구하오. - P105
"나는 법을 갈구하오." 작가는 오로지 이 한마디로 주관적 의미의 레히트(권리)와 객관적 의미의 레히트(법) 사이의 참된 관계,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의 의의를 어떤 법철학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정확하게 말한다.
이 한마디로써 이 사건은 샤일록의 권리 요구문제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베니스 국법의 문제가 되었다. 이 말을 했을 때, 그의 모습은 얼마나 강력하고 거대하게 보였겠는가!
법정에 판단을 구하는 것은 더 이상 1파운드의 살을 구하는 유대인이아니라, 베니스의 법률 그 자체다. 왜냐하면 그의 권리와 베니스의 법은 일체이고, 그의 권리가 파멸하면 베니스의 법도 파멸하기 때문이다. - P106
그럼에도 비열한 기지를 사용해 그의 권리를 좌절시키는 판결의 중압감에 샤일록이 굴복했다고 한다면, 즉 지독한 조소를 받아 기가 꺾여 다리를 끌고 법정을 나섰다면, 샤일록을 굴복시킴으로써 베니스의 법이 굴복당했다는 감상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법정에서 도망친 사람은 샤일록이라는 특정한 유대인이 아니라, 중세 유대인의 전형적인 모습, 즉 권리를 요구하며 큰소리로 외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천민의 모습이라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 P106
샤일록의 운명이 매우 비극적인 이유는 그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은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세의 한 유대인이 -마치 한 기독교인의 예수를 향한 신앙처럼 -법과 권리를 믿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는 법과 권리에 대한 확고한 신뢰로 결정적인 순간까지는 재판관 또한 여기에 가세했다. 그런데 청천벽력처럼 갑자기 파멸의 운명이 샤일록을 덮쳐 제정신을 차리게만들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중세사회의 소외당한 유대인에 불과하다는 것,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기만당하는 방식 외에는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P107
샤일록의 비극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권리를 사기당했다. 적어도 법률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작가가 자기 나름의 법학을 창조하는 것은 자유이고, 셰익스피어가 그렇게 했다고(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래된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했다고)유감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법률가가 이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
즉 그 증서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무효라고 말이다. 그 이유에 따라 재판관이 증서를 처음부터 배척해야 했다. 그러나 재판관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상, 즉 현명한 ‘다니엘 님‘이 그 증서를 유효하다고 인정한 이상, 살아 있는 몸에서 1파운드의 살을 떼어내는 권리를 인정받은 사람에게 그 살에 당연히 붙어 있는 피는 흘려서는 안 된다고 금하는 것은 한심스러운 놀거로서 놀라운 궤변에 불과하다. 그런 방식이 허용된다고 한다면, 재판관은 마찬가지로 지역권자에게 통행권을 인정하면서 땅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지역권 설정 계약에 명기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 이유에서)을 금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샤일록의 이야기를 고대 로마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12표법의 필자는 채권자가 행한 채무자의 신체 절단(크든 작든 죄가 되지않는다)을 명시적으로 주기할 필요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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