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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의 지혜
이문영 엮음 / 정민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김삿갓.
김삿갓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건 '방랑시인'이라는 타이틀이다.
그가 방랑의 길로 접어든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 조부의 내력을 모른 채 관아에서 벌어진 백일장에서 자신의 조부를 신나게 비난하며 그날의 장원이 되었지만, 어머니로부터 숨겨진 조부의 진실을 알게된 후, 방랑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조부를 비난한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관직에 오르지 못한다는 자신의 한계로 인해 삶의 목표가 사라져 버려, 삿갓 하나만 달랑 쓰고 세상을 떠돌아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세상을 떠돌면서 겪은 이야기가 시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 오는데,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그가 남긴 시를 바탕으로하여 저자의 상상이 담겨있는데, 인생/처세/성공/행복/인격/정의/배움이라는 일곱의 지혜로 구분하여 담겨있다. 긴 세월 세상을 떠돌며 그가 남긴 시를 들여다 봅니다.
是是非非非是是(시시비비비시시)
是非非是非非是(시비비시비비시)
是非非是是非非(시비비시시비비)
是是非非是是非(시시비비시시비)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건 아닐새.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시비일세.
온통 是非(옳을 시/아닐 비)라는 글자만 반복되어 적혀있네요. 한글로 풀이된 글을 읽어도 어떤 의미인지 곰곰히 새기며 읽어야 겨우 뜻을 알 수 있는데, 인생의 지혜편에서 '세 사내의 추위 자랑'이라기를 풀어낸 후, 담겨진 시의 내용인데 이야기가 옳으냐 옳지 않으냐를 따지는 게 시비(是非)가 아니고 옳은건 옳다하고 그른건 그르다고 말하는게 시비(是非)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뭔 말인지 햇갈리네요.
이 외에도 세상을 방랑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기도 하고 방랑생활이기에 세상의 인심을 시에 담아 달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론 백성의 송사나 혼사를 멋진 시 한수로 해결하기도 하고 몇 마디의 말로 부부싸움을 말리기도 하네요.
순간순간 재치와 촌철살인의 해학이 담겨있습니다.
어쩌면 원하지 않았던 방랑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자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살이가 꼭 벼슬을 하고 명예를 얻어야만 즐겁게 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자신처럼 세상을 방랑하며 사람들과 부딪치며 자신의 재능을 한껏 뽐내며 사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라는 스스로의 위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방랑생활 속에서 행복의 의미도 찾아갑니다.
四脚松盤粥一器(사각송반죽일기)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
吾愛靑山到水來(오애청산도수래)
네 다리 소반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 없다 말하지 마오.
나는 물속에 비치는 청산을 좋아한다오.
며칠을 굶고 겨우 죽 한그릇을 가난한 부부에게 얻어먹고 그가 답래로 전한 시 한수입니다.
겨우 죽만 줄 수 있어 미안하다는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하였는데, 글을 읽지 못해 그 뜻을 알지못해 죄송하다는 말에 그는 부부에게 고객를 숙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뜬구름 같다고, 죽 한그릇만으로 이들 부부는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살아가는 이치를 조금씩 알아가네요.
40여 년간의 긴 방랑. 자신의 원하지 않던 방랑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삶이 더 풍성한 삶이었을지도 모르겟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