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 이어령 유고시집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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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제목만으로도 아련함이 느껴졌다. 고 이어령작가님의 작품이기도 하고, 그분의 시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제목에서 오는 시를 읽으며 알았다. 아련함은 그리움이였고, 보고픔이였다. 


신에 대한 공경, 어머니에 대한 보고픔, 딸에 대한 그리움등으로 구성된 각 챕터의 시들은 다, 가슴아팠다. 특히 딸에 대한 그리움. 표제인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라는 시는 먼저 간 딸에 대한 아버지의 부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토록 넓게 펼쳐진 비치의 바람에서 소리에서, 햇살에서, 그곳을 날아다니는 바다새에서 다 딸을 찾는다. 딸과 함께했던 그 시간속의 나와 딸을.

어떤 은유가 있어서 시의 한 구절 구절을 분석하고 다시 곱씹어보고 하지 않아도, 시를 읽으며 시인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시들이다.


대체로 어찌할수 없는 그리움과 보고픔에 대한 시들이지만, 이 시들 중간에 아이들에 대한 시가 있는 점은 뭔가 생경했다. 다른 시들이 지났기에 다시 잡을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아이들에 대한 시는 앞으로를 보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아이들을 보며 갖는 생생하고 풋풋한 감정이 어쩌면 슬프고 힘들지만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근원이였기에 이 시집에 나란히 실렸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내일은 없어도 모레는 있다>, <신 포도를 먹는 사람들> 당장의 내일보다 더 먼 미래를 바라보길, 그 미래속에 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길 바라는 노 시인의 당부. 


이어령 작가님의 글은 늘 놀라웠다. 무심코 흘려가듯 듣는 단어에서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정말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느낌이랄까. 그 느낌을 이분의 시에서도 느낄 줄이야.

하지만 그리움에 대한 시는 늘 슬프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감정이니까.


이 분의 앞으로의 글을 더 읽을 수 없다는 사실도 슬프다.

Good.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이로 만들지말고,

내 아이가 진정 좋아하는 삶을 만들어주세요

그것이 높은 나뭇가지의 포도가 아니라도 좋으니,

정말 자기 입에 맞는 포도를 발견하게 하세요."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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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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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청화대 의전비서관이 쓴 총 1195개의 국가행사 비하인드 스토리. 사실 탁현민이라는 이름 만으로도 내게는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충분했다. 이 분의 말을 많이 들어서. 의전비서관은 대체 무슨 일을 할까? 막연히 행사를 기획하는거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며, 참...고생이 많으셨겠구나.싶었다. 뭐 모든 비서관 이하 공무원들 전부다.

책을 다 읽은 나의 소감은 일단 "재밌다"였다. 말을 워낙 유려하게 하시는 분이다보니, 글도 이분의 말과 비슷했다. 어느편은 웃겼고, 어느편은 뭉클했고, 어느 편은 슬펐다.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은 북한관련 행사였다. 판문점 행사의 환송공연의 암전이 뜻하는 바를 이제서야 알았고, 평양공연의 <발해를 꿈꾸며>가 흘러나왔을때의 감동, 그리고 그 감동에 더해지는 서태지씨의 말. 서로 아직까지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남과 북의 상황속에서 서로가 배려했던 공연의 뒷 이야기까지. 그 때왔던 봄은 언제쯤 다시오려나하는 지금의 아쉬움이 더 컸던 이유였을까. 평창올림픽부터 판문점행사까지 이어왔던 남북관계의 봄날이 너무나도 그리워지게했다.


그리고 101년만에 탑골공원에서 울려펴진 만세소리. 낭독했던 <기미독립선언서>의 의미.  그리고 이제서야 본국으로 돌아온 한국장병의 유해 및 홍범도 장군의 유해 송환. 우리의 아프지만 그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지금을 다시금 감사하는 송환식 및 안장식은 글을 읽는 내내 숙연해지게 했다. 하와이에서 서울로 모셨던 국군 전사자의 유해가 비행기 좌석위에 있는 사진에서는 유해가 아닌, 생존자로 함께 하셨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


매년 열렸던 행사이지만, 그 행사속에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던, 그래서 모든 행사가 국민의 가슴속에 그 의미로 남길 바랬던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 행사가 내게 그저 휴일 또는 당일 오전 10시에 방송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던 화면들이, 각 행사 챕터의 QR코드로 그 행사들을 다시 되도아보게했다. 알고 보기에 다시보이고,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각 행사의 담겼던 뒷이야기와 그 행사 자체의 의미, 그래서 다시 찾아보게되던 모든 행사.

무엇보다 작가의 글이 재밌어서 더 즐거웠다!


추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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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
존 디디온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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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 왜 이 책이 내 장바구니 안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기에 읽었다.

존 디디디온이라는 작가도 처음이고, 무슨 책인지도 모른 상태로 읽은 책.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사람의 생각에 의해 쓰여진 책이기에 사실 좀 어려웠다. 굉장히 감정적인 문체도, 스토리 없이 그저 생각의 흐름에 의해 쓰여진 내용이  혼란스러웠다.


하지지만 감정만으로 한권의 책으로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도 했다. 그 감정이 누군가의 상실에 의한 슬픔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슬펐고...

 작가 존 디디온은 70대 중반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남편과 딸을 잃고서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슬픔과, 딸 퀸타나를 잃은 상실감에 대한 책이라.


책을 읽으며 문득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이의 죽음이 떠올랐다. 일상을 살며, 문득 어떤 사람을 보며, 장소를 지나가며, 시간을 떠올리며, 음식을 보며, 계절을 지내며, 매 순간 그사람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며, 그 감정이 다시 물밀듯 밀려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작가의 글은 그사람을 보내고 시시 때때로 몰려오는 감정에 슬픔을 느꼈던 나의 그 시절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은 철저하게 개인의 사색을 담고 있다는 감정의 이입이 있고서야 나는 그제서야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자식인데, 부모가 그 슬픔을 어떻게 쉬이 잊겠는가.


 가장 사랑했던 이와의 이별에 나는 어떤 위로도 감히 건낼 수가 없다. 그 위로가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 감히 그 감정을 이해하는 척조차 할 수가 없다. 시간이 해결해 줄 뿐이라는 위로조차. 어떤 이와의 이별은 시간조차 해결해주기 힘들기에.


그녀는 ”두려움은 상실되지 않는 것에 관한 것 p.259“ 이라고하지만, 그 상실이라는 말의 정의가 가장 사랑했던 이의 물리적 죽음이라는 것과 맞닿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다. 가장 가까운이의 죽음은.

나의 죽음에 대한 죽음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알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나의 남은 온 생을 통해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을 가져옴에도 함께 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싫다. 내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슬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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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1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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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밌네..라는 생각에 읽었는데, 알고보니 꽤 유명한 책이였다. 책의 작가는 일본인이고, 그런 작가는 영국에서 공부를 했고, 아일랜드인 만나 결혼해 영국에서 살고있는 칼럼니스트이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고, 그런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아들과 나눈 대화, 아들과 있었던 일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책의 부제는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 이다.


 저자의 아들은 소위 명문 초등학교인 카톨릭 초등학교를 나왔으나. 본인의 선택으로 공립 중학교로 진학한다. 소위 ‘구 밑바닥 중학교’. 중학교 이름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붙이 별칭이다. 공영주택지에 있는 학교로 하층민이 다니던 학교였는데, 그런 공여주택지가 민간에 분양되었고, 말그대로 학교의 수준이 올라가게 된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구 밑바닥 중학교’라고 말한다. 여기서 재밌던 점은, 영국에서는 백인들이 많은 학교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백인 노동자계급 아이들이 많은 학교’는 기피 대상이라는 것이다. 반면 인종적 다양성이 많은 학교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소위 ‘다양성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아들은 자신이 졸업한 명문학교인 카톨릭 초등학교에서 카톨릭 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으나, ‘구 밑바닥 중학교’를 선택한다. 작가의 배우자는 아들이 카톨릭 중학교로 진학하길 원했으나, 아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책은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며, 배우고 자신의 부모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책을 읽으며, 영국은 다문화에 대하여 꽤 다양한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는점을 알았다. 다문화에 대한 지식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p.84


엠퍼시가 무엇이냐고 묻는 아버지의 대답에 아들이 답한 답이다. 엠퍼시. 우리가 공감으로 알고 있는 단어. 그 단어의 뜻이 뭘까.라는 말에 아들이 스스럼없이 답한답. 나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사실 좀 울컥했다. 누군가에 대한 동정이나 안쓰러움(심퍼시)는 감정이지만, 엠퍼시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맞다. 누군가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우리가 실제로 하고자하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아이도 스스럼없이 답하는 저 단어의 뜻을 우리는 왜 모르는 것일까.

아이는 저 단어를 단순히 단어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배워간다. 누군가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고, 선의로 받아들이고자하는 노력. 그리고, 다름과 틀림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계속해서 다가가며, 그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노력. 그리고 자신에 대한 차별이나 멸시를 알고 부당함을 알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 노력을 말이다. 또한 자신과 같은 다문화 친구들에 대한 걱정을 ’걱정이라는 이름의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으려는 노력을 말이다.


그런 아들을 비롯 아이들의 마음을 저자는 ‘선의 마음을 지닌 아나키스트 p.192’라고 말한다. 그런 아이들이 사회를 배워갈수록 이런저런 틀에 갖혀 생각의 자유로움과 명랑함을 잃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과연 우리는 하고 있는가. 아이들만이 갖는 수백만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하나로 정형화 시켜가고 있는 현실이 자꾸 떠오르는 것에 씁쓸함은 어쩔수가 없었다. 


책은 엄마와 아이의 대화이기에 생각해보면 주제는 무겁지만 그 주제를 다루는 두 사람의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생그럽다고 해야 할까.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지식뿐 아니라 마음으로 배워가는 아이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자니, 각종 편견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다. 


 책의 제목은 아이의 정체성과 감정을 담고 있지만, 책의 말미에 보여지는 지금은 '그린'이라는 단어는 방긋 웃음짓게 한다.


진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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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 전2권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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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를 다 읽었다. 1권을 읽고, 2권을 멈출수가 없었다. 

선자가, 그리고 노아가, 모자수가 어떤 삶을 펼쳐나갈지, 그들의 삶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 학교를 다녔지만, 여전히 외국인 취급을 받는 노아와 모자수. 차별받고  멸시받는 조선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와세대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자신의 출생을 알고서 떠나는 노아. 반대로 형과는 달리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던 모자수는 고노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파친코에서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는다. 

 떠났던 노아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고 파친코에 취직해, 아내 리사를 만나 결혼을 하지만, 끝끝내 자신이 조선인임을 그녀에게 조차 말하지 못한다.

반면 모자수는 아내 유미를 만나 솔로몬을 낳았지만, 유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에쓰코라는 일본인 여자를 만나 사랑하지만, 결혼하지는 않는다. 에쓰코가 더이상 자식들에게 미안해 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조선인과 결혼한 엄마라는 말을 듣게하고 싶지 않아서 였다.


그리고, 모자수와 유미의 아들 솔로몬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피비를 만나 사랑한다. 피비는 미국에서 낳고 자란 미국계 한국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취직한 솔로몬을 따라온 피비는 일본에서 낳았고 자란 솔로몬이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취급받는 것, 누구보다 뛰어난 인재임에도 일본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무시하고 멸시한다는 것 등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일본에서 솔로몬이 일본인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회사에서 쫒겨났음에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그를 영영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은 그와 헤어진다.


이 책은 살던 고국을 떠나 어쩔수 없이 자리잡게 된 타국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일대기이다. 고국으로 돌아 올수도 없었기에 결국 타지인 일본에서 살 수 밖에 없던 선자와 경희, 그곳에서 자란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그곳에서 낳고 자란 솔로몬. 그들 모두 그들의 고향인 조선에서도 일평생을 살았던 일본에서도 그저 외국인으로 취급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버텨냈고, 살아서 또 다른 삶을 이어갔다. 너무나 약해서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이들의 삶이였지만, 그들은 그 고난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이 이야기에서 나는 눈을 뗄수가 없었다. 조선인이면서 조선인일수 없었고,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결코 일본인이 될수 없었던 이들은 그들의 뿌리를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었다. 그 딜레마를 이겨내지 못한 이도 안타까웠고, 잘 살아내어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자식에게 자신의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이의 마음도 아팠다. 


1권을 마칠 때만해도 제목이 파친코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지만, 2권을 덮으며 조금을 알 수 있었다. 파친코에 들어와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그 마음이 이들의 삶 같았으니까. 불안했지만 잘 살아내면 성공할 수 있을것 같았지만, 그것은 허상이다. 아니, 반대였을까. 파친코는 허상을 이용해 돈을 버는 곳이니까, 허상을 가지지 말라고, 현실을 눈 똑바로 뜨고 직시하고 살으라는 의미였을까.


"에쓰코는 이 중요한 면에서 실패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이길지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믿어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 p.254


한국인의 디아스포라라는 책의 소개가 너무나 깊이 와서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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