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칼로레아 철학 수업 - 논리적 사고를 위한 프랑스식 인문학 공부
사카모토 타카시 지음, 곽현아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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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로레아“ 나는 이 프랑스 졸업시험을 알고 있었다.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시험인데, 이 시험의 주제가 발표되는 날, 많은 프랑스 인들이 이 주제를 놓고 토론한다고. 사실인지 여부는 이 책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나는 꽤나 그 사실이 멋져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은 불수능이냐, 물수능이냐등의 난이도나 결과만 이야기 할 뿐, 시험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데, 프랑스는 한 주제를 놓고 시민들이 토론을 한다니… 그렇다면 그 시험은 대체 어떤 시험인지, 구체적으로 궁금했다.

이 책은 프랑스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에 대해 어떤 시험이고, 이 시험의 목적, 그리고 말그대로 주제에 대해 나의 논거를 풀어가는 과정에 대하여 어떻게 사고를 발전시켜, 답안을 작성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미 졸업한지 백만년이 지난 나로써는 요즘의 교육과정을 잘 모르지만, 나는(라떼는.ㅎㅎ) 전문적인 논술 교육을 받아본적이 없다.  또한 철학은 윤리과목 중 말그대로 그들의 역사(지식)만을 배웠을 뿐, 철학적 사고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배운적이 없다.(있는데, 기억이 안나는건가….)…ㅠ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과정은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 사고의 틀을 완성시켜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주어진 문제를 정확히 분석(단어의 정의, 표현의 정의, 세부내용에 대한 분석, 질문의 변환), 구성 즉 도입, 전개, 결론의 형태를 띄도록 한다. 그리고, 그 구성에 따라 나의 논거를 풀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수정이 될 수 있으나, 맥락의 흐름에 어긋남이 없는 선에서 이뤄져야 하며, 중간에 철학사상에 대한 인용이 포함되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단순한 철학사상에 대한 인용이 아니라, 그 인용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인용 그자체의 적절함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책은 실제 바칼로레아에서 출제되었던 문제의 일부를 통해 실제 논거를 풀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읽고 있다보면 와.우 싶었다. 나의 논리를 상대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이런것이구나..라는 꽤나 체계적인 설명을 처음 들어봐서 였을까. 

그렇다면 프랑스 치르는 이 어려운 시험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수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고 표명하여 행동함으로써 민주주의 이념이 실행되도록 함에 있다. 즉 비판적 사고를 하는 시민의 힘을 길러내는 것.
이 시험을 치르기위해 중 고등학교의 철학, 논문 수업을 통해,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우고, 그들의 사상을 깊이 사유하고,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통해 차이에 대한 관용 즉 반대 의견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그들의 타당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편견에 갖힌 사고를 벗어나,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당장의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동물로,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갈 힘을 기르는 교육인 것이다.

하지만  이 시험 역시 프랑스에서 그 목적한 바대로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고득점을 위해 철학자들의 사상을 단순이 외우거나 짝퉁 변증법의 도식에 사고를 밀어넣은 정도라고 하니.. 아마 우리나라에 이 시험이 도입된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긴하다. 사교육에서 특정 질문들에 대한 틀을 만들고 달달 외우고 있진 않을지..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 역시 이런 교육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휴대폰을 통해 발전된 뉴 미디어. 각종 앱의  알고리즘으로 인해 사고의 편향은 물론 그런 편향이 더더욱 심해지는 요즘, 이런 수업, 이런 시험이 가지는 본래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사고의 관용, 비판적 사고의 힘에 대해서 말이다.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고, 조금이라도 편견을 벗어나, 나의 사고를 자유롭지만 논리적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 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성인에게도, 청소년들에게도 좋은 책.

굿.


“철학 교육은 어떤 능력을 기르기 위한 것일까요? 최종 목적은 ‘의문을 품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배려심과 분석력, 자립적인 사고’를 키우는 것입니다.” p.40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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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의 법칙 - 충돌하는 국제사회, 재편되는 힘의 질서 서가명강 시리즈 36
이재민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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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서가명강 시리즈이다. 부제가 “충돌하는 국제사회, 재편되는 힘의 질서”를 보고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학과의 강의인지가 가늠이 되질 않아서… 
 결론을 말하자면 법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제법. 법과 지배라… 사실 저자도 설명했지만, 우리의 삶과 법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 행동의 모든것이 법과 규칙으로 점철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국제법은?
 
국제법의 시작을 저자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라한다. 베스타팔렌조약은 독일에서 구교와 신교의 30년전쟁을 마치는 평화협정이였으며, 정교일치 사회였던 중세를 벗어나, 국가라는 개념을 확립하고, 각 국가의 왕과 그 관계를 규정하는 조약이였다고 한다. 그렇게 국가간 협약이라는 개념의  최초 시발점이 베스트팔렌 조약이며, 지금까지도 그 협약 하에 전세계의 국가는 ”각 주권 국가로써 의사결정을 하고 분쟁을 겪는p.36“것이 바로 이 체제 하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400년간 이어진 이런 국제 협약 속에서 현재의 분쟁은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가?를 놓고 보면,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딱 맞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각자가 당위성을 찾는 싸움이랄까. 미중전쟁, EU 와 러시아간 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전쟁, 중국과 대만간 이슈. 이 모든 것이 국제법 하에 패권을 둘러싼 각자의 행위에 대한 당위를 찾는 싸움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놓고,  ICJ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제노사이드 협약위반으로 제소했다. (사실 무력침공 이지만 무력침공으로 제소하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한다. 당연히 러시아는 합의하지 않을 것이기에 제노사이드로 제소를 한 상황) 두 국가는 무력으로도 싸우고 있지만 ICJ에서 국제법으로도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우크라이나가 이긴다면, 러시아는 협약위반이되고, 타 국가가 이 전쟁에 개입할 빌미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저 재판역시 양국모두 치열할 수 밖에.

그렇다면 이런 국제법은 국가간의 무력, 이권 등에서만 유효할까? 기술의 발전으로인한 국경이 모효해지는 요즘 국제법도 다양하게 변해가고 있다. 특히나 디지털 관련 이슈. 디지털 범죄는 국경이 없다. 피싱, 사기, 데이터유출, 요즘 가장 심각한 사회 이슈로 떠오른 디지털 성범죄 등이 그러하다. 한 국가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기에 국제사법 공조, 범죄인 인도 조약, 범죄정보 공유 등을 통해 국경없이 밠생하는 범죄에 대해 국가간 긴밀한 공조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협약이 “부다페스트 협약” 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국가간에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공조하리라 생각했는데, 협약이 있고, 우리나라도 현재 구체적인 가입방안을 협의중이라하니,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에 맞도록 국제법 역시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강제성을 띠고 있지 않기에 권고나 외교적 압박 외에는 큰 방법이 없다는 점.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띈 부분은 우주에 대한 국제 협약이였다. 일전에 김상욱 교수님이 특정 프로그램에서 지금 외국에서 우주 연구를 하는 것을 보면 대항해 시대가 떠오른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이 파트가 그 말을 떠오르게했다. 
 디지털 사회를 넘어서 AI,스마트카 등등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희토류 등 우리에게 가장 필수인 광물의 선점을 위해 우주 활동 분야에 미국, 중국, 소련, 유럽 등은 엄청나게 투자를 하고 있다. 자본이 가지는 힘을 기반으로 발전하는 기술, 우주 활동을 위한 기술발전 역시 소리없는 전쟁터이다. 
이런 우주분야에도 협약이 있다. 가장 최초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우주조약. 이 우주조약은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 시 만들어졌으나, 현재 우주활동을 하는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이 조약의 가장 큰 원칙은 ”국가가 우주를 소유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소유는 못해도 누군가 어느 행성에 도착하여 뭔가를 시작한다면, 글쎄…. 소유와 개발은 또 다른 개념이니 어마어마한 이권이 달려있다면  결국 당위성에 대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겠지. 싶긴하다. 그리고 요즘은 스페이스X와같은 민간기업 역시 우주산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기에 특정회사의 이권을 국제법 또는 협약에서 어떻게 볼지도 또 한 이슈이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대한민국은 뭐하고 있나-_-;;

여전히 총칼을 통한 분쟁이 있기도 하지만, 지금은 법을 통한 싸움 역시 치열하다. 그것은 곧 생존경쟁이면서, 이권경쟁의 치열한 싸움이다. 이 싸움의 승자는 결국 자국의이익과 당위성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결과를 얻는다. 그러니 이겨야 한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그래서 국제법이 중요한 셈.
그런 국제법을 악용이 아니라, 이용을 통해 우리 역시 대비해야 할 현실이고 미래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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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단어 - 정치적 올바름은 어떻게 우리를 침묵시키는가
르네 피스터 지음, 배명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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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은 어떻게 우리를 침묵시키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무슨 말일까. 궁금했다. 선거가 다가오는 철일 수록 나는 정치인들의 말이 더 궁금해진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들이 내뱉는 수많은 말들, 그 말 중 취사선택되어 언론을 통해 재 편집되어 또 전해지는 그 수많은 말들이.

이 책은 독일인인 저자가 현재의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절대 선을 추구하는 말들, 그로 인해 입을 닫은 시민들, 그에 반발하여 쏟아지는 각종 헤이트스피치에 열광하는 시민들. 이 책은 미국의 정치를 통해 왜 민주당의 위기가 왔으며, 극우가 득세하는 지를 "언어"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사실 번역의 이슈인지, 주제 자체의 어려움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게는 조금 어려웠다. 중첩된 부정어들이 등장해서 였을까.ㅠ 
하지만 나의 이해도와는 별개로 갈수록 화합이 되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양극단으로 쪼개지는 사회를 봐야 하는 것인지, 우리가 갖혀있는 사고는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본질을 흐리는 언어의 사용까지.

과거의 미국은 인종차별에 대한 주제를 놓고 말한다면,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는 토론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인종차별은 말그대로 차별받는 대상이 하는 말 이외에는 의미가 없고, 그 대상이 아닌 이들(예를들면 백인) 말하는 인종차별관련 의견에는 위선이라는 날선 반응이 앞선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N워드' 그 단어를 그대로 지칭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모욕이기에 대체 수단으로 쓰는 저 단어조차 함부로 내뱉을 수가 없는 분위기인 것. 특정 주제 대하여 단어 사용의 '허용한계선'이 너무나 빠르게 바뀌고, 범위가 넓어지면서, 선의를 가진 사람 조차 그 한계선을 자기도 모르게 넘어서는 순간 인종차별주의가가 되어버리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인종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토의나 토론이 가능해지겠는가? 누구도 그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셈이다. 내가 쓰는 말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아무도 모르기에. 그렇기에 학교에서조차 이런 논의를 할수 없다고 한다. 양쪽 모두에게서 비난이 쏟아지는 형국이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그 사회는 어떤 이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런 소수자에 대한 인식, 지원 정책, 교육 정책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이란 것이 가능할까? 결국은 이런 논의조차 할수 없는 사회는 정말 민주주의 사회일까. 
나는 미국의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의 청년정책, 양성평등정책, 노인우대 정책등을 논하는 부분에서 지난 대선에 쏟아졌던 서로에 대한 비난이 생각났다. 여성을 이야기하면, 남성이 외면당했다고 말하던 이들, 노인을 말하면 청년이 외면당했다고 말하던 이들, 그 반대의 이들. 왜 우리는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 조차 못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을까. 모두가 침묵하고, 아니면 아예 대놓고 한쪽만을 지지하는 말도안되는 말들이 쏟아지는 것일까.

저자는 이 문제를 정치의 언어에서 설명하고 있다. 독단적 좌파와 극단적 우파의 언어를 통해서 말이다.
"절대선"을 추구하는 정치 역시 극우의 언어만큼이나 위험한 것. 그리고 미국의 좌파 즉 민주당이 놓치고 외면했던 부분, 그리고 '개탄스러운 자들'이라는 표현과 같이 잘못된 단어가 어떻게 상대의 분노를 이끌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소외된 이들을 트럼프가 캐치하여 끌어들였는지를 말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개인의 보호만을 위한 철학이 아니다. 사회에서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p. 204

책을 어렵다고 느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러면 어떤 언어를 써야 하는가?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아닌 중간의 언어는 과연 있는가? 그 누군가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되는 언어의 한계 허용선은 어디까지 일까? 등이 기준을 잡는 부분이 명확치가 않아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기준선의 무너짐은 선의의 말을, 누군가의 의견을 그 의견 자체로 놓고 판단하는 여유가 사라져서 일까. 요즘은 누군가에 대한 분노와 혐오 발언만 기억한다. 왜지? 

 노인에 대한 정책은 어떤 사회 취약층에 대한 정책일 뿐이다. 그것이 청년을 배제하거나, 아이를 배제하는 정책이 아닌것. 배제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실을 우리는 또다른 이슈로 제기하면 되는 것이다. 대체 왜 우리는 그 자체를 자체로 바라보는 여유를 잊은 것일까? 
 아니면 정치의 언어가, 언론의 언어가 분노의 연료가 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잘못된 단어를 쓰는 대상이 정치일까? 언론일까? 아니면 우리 자신일까? 궁금하다. 결국은 모두겠지만, 정말 모두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듣고 말해야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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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이방원
이도형 지음 / 북레시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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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한 제목. “국회의원 이방원”이라니. 내가 아는 그 이방원 맞는가…? 싶었는데, 내가 알던 그 이방원이 맞았다. 태종 이방원이 2024년의 신입국회의원 이동진의 몸에 빙의되었다는 소재로 쓰여진 소설. 단순히 생각해보면, 모두 죽여라!할 것 같은데..

제목그대로 조선 시대 세종대왕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2024년 초선 비례 국회의원 이동진의 몸에 들어왔다. 이것은 사고 였을까. 이동진이라는 국회의원은 여당 비례대표이고 정치학과 교수였다. 여당이지만 말그대로 팽당할 위치에 놓인 그저그런 국회의원. 그런 그의 몸에 사고?로 들어온 이방원은 이동진의 보좌관 선호와 다혜, 수찬의 도움으로 빠르게 현대에 적응해간다. 하지만 작금의 정치상황은 공황장애라는 핑계로도 더이상 동진의 상태를 숨길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든다. 여당의 패권과 다음 대권, 그리고 대통령과의 힘싸움을 두고, 동진은 모두에게 팽당한 입장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일종의 캐스팅 보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선호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고, 정치부기자 한주는 동진의 행동 모든 것에 의심을 품으며 다가온다.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이동진 속의 방원은 빠르게 현실 정치에 적응하고, 정치의 수가 아니라 사람의 수를 읽어가며, 다소 이상하지만, 누구보다 기민하게, 대한민국 정치판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동진. 동진은 수개월동안 자신이 이뤄던 것들이 자신의 정치가 아니였고, 자신이 내세운 가치와 달랐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보좌관 선호의 야망이 반영된 정치였다는 이유로 정계은퇴를 결정한다.
정말, 정치는 가치만으로, 누군가의 소신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판타지를 통해 정치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저자의 소설을 읽으며,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정치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현실과 소신 사이에서 방황하는 초짜 정치인의 딜레마.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느정도는 소위 X물에 발을 담궈야 하고, 결국 권력은 나의 소신을 이뤄줄 도구이기에 가져야 하는 무엇이면서도, 나의 소신과 나의 날것 그대로의 야망에 나 스스로도 당황하는 상황을 그린 드라마였는데, 정치 9단의 이방원은 그런 나의 딜레마 사이에서, 또 권력의 중심부로 가기위한 줄타기에서 정치인 이동진의 소신과 현실 사이의 외줄타기를 보며, 정말 이건 판타지겠지 싶은 나의 헛웃음은 무엇일까.ㅎ

정치인의 딜레마.
그래도 국민의 대표라고 뽑아놓은 이들이 이 딜레마를 딛고, 현실에서 소신의 정치를 하길 바라는 개인적인 소망.

재밌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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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인 (15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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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이다. 책을 받고, 책 표지의 띠지를 걷어내고 나니, 거대한 거인과 작은 인간이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 드러났다. 마지막이라. 인간과 더큰 인간의 교감을 그리는 동화인가? 


나는 부두에서 어느 노인에게 2기니를 주고 ‘거인의 이’라는 물건을 구입했다. 속임수라고 생각했지만,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구입했다. 나는 '이'를 유심히 보다가 지도를 발견하고, 그곳이 실존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그곳을 찾아 떠난다. 중앙아시아의 어느 쯤. 다 죽어가던 중에 찾은 거인들. 나는 그들에 의해 살았고, 그들과 교감하며 그곳에서 10개월을 보낸다. 그들을 찾던 중 찾은 그들의 시체는 100구가 넘었지만, 남아있는 거인들은 고작 9명. 어느 날 나는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들은 나를 사람이 있는 곳 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영국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강연을 했다. 그렇게 나는 유명해졌고,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 그곳을 찾았을 때 그들은 그곳에 없었다. 


이 책은 거인을 통해 인간의 관심이 무엇을 어떻게 망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거인은 지금의 우리에게 자연이다. 우리의 호기심이 지나간 곳에 남은 것은 황폐화 뿐. 아주 예전에 우리의 독도에는 강치라는 생물이 살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무분별한 남획과 이후 독도 인근에서 일어난 군사훈련등으로 인해 현재는 멸종되고 없다. 그리하여 독도 근처 생태계에 문제가 생겼었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정말 인간이라는 종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그저 궁금함과 호기심 뿐이였다는 별것 아닌 동기에도 사람들이 모이면, 결국 그것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세력이 모이고, 그곳은 그 자체의 본질을 잃는다. 결국 여느 관광지와 다를바 없어지는 상황이 되고, 그 중간에서 훼손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무관심과 강력한 통제만이 지켜낼 유일한 방법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작가는 그것을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라는 말로 대신하는 듯 했다.


슬프네. 자연의 일부의 인간이 자연을 지키는 방법이란 것은 결국 그것을 모르거나, 모른척하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란게..

모른척 해야 하는 것이겠지. 

마지막 거인이라도 지키려면 말이다. 그래야 결국 인간이라는 종도 유지 될 수 있을테니..



좋은 책. 아이들이 읽는 동화지만, 어른에게 더 필요치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알고 있어야, 아이들에게도 알려줄 수 있으니까.

동화책을 읽으며, 그림 한장이 이토록 슬프게 다가올 수 있다니….(다시 찾은 거인의 땅에서 보여지는 그림은 정말 가슴을 쿵.하고 내려 앉게 만든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p.72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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