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천
이매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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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서 나는 왜 이 책의 제목이 “음천”일까 궁금했다. 왜일까? 책의 말미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아. 싶었다.

책 소개 글에 분명히 드러나 있었는데, 소개글을 제대로 안읽었다는…이 책은 재미교포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책 제목인 “음천”은 그녀의 어머니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한국에서 여성이라는 위치,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불합리를 말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했고, 자식을 길러야 했던 어머니들의 이야기 이다. 아이를 낳지 못한 음천은 결국 작은 댁을 들인다. 남편과의 사이나 돈독하지 않다면, 좀더 나았을까? 남편과의 사이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결국 들인 작은 댁 수양. 그녀라는 존재 자체가 음천에게는 재앙이겠지만, 수양의 삶 역시 녹록치 않았다. 다리에 흉이 있다는 이유로 첫날밤에 소박을 맞아 돌아와 결국 어느 누구의 작은댁으로 가는 수양. 아들을 낳지 못해도 아들을 낳아도 내자식인냥 키울수나 있을까,  본처에게 구박을 당한다 해도 하소연 할 곳이나 있으랴. 


그렇게 만난 두여인. 그리고 터지는 한국전쟁. 귀용과 음천 사이의 업둥이 미나. 미나는 자신이 말그대로 고추를 달고 나오지 못해 엄마가 고통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데 누군가 내게 너는 업둥이라 말한다. 그럴리가 없는데, 나는 엄마를 닮았고, 내가 업둥이라면 우리엄마와 아빠가 내게 이렇게 할리가 없는데, 엄마는 결단코 아니라고 하고, 나는 작은엄마가 밉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하나의 가족으로는 살 수가 없는 묘한 관계는 이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아들선호사상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님에도 대체 죽어서 받드는 제사가 무엇이간데. 과학적으로도 모계유전이라는데, 대체.


그래도 이젠 큰댁, 작은댁(첩)같은 일은 없지만, 여전히 그 시대를 살아내셨던 분들은 계시다. 어떻게 버텨내셨을까. 사실 책속에 소위 빌런은 누구도 없다. 작은댁을 들여야 했던 시어머니도 음천에게 미안했고, 수양에게도 미안했다. 두 부인 사이에서 음천에게 미안하고 수양에게 미안했던 귀용 역시 쉽지 않은 삶이였다.

모두가 피해자였던, 심지어 그들의 자식조차 듣지 말아야할 말을 듣고 차별을 견뎌내야했던 시절.


다시는 이런 악습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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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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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작품집은 대체로 읽어보는 편이다. 대체로 시의성이 있는 작품들이고 새로운 작가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어서랄까. 아는 작가님도 있고 처음 만나는 분들도 있었다. 김승옥 문학상 작품집은 처음인데, 내게 꽤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뭔가 굉장히 사실적인 작품들이였다. 조금 더 과장하자면 노골적이라는 느낌이 들정도로…


대상작품인 편혜영 작가님의 포도밭 묘지.
수영, 한오, 윤주, 그리고 나의 이야기.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동기 4명이 현실사회에 나오는 이야기. 지금 88만원 세대, N포 세대의 이야기 이기도 하면서, 어쩌면 그 세대에서 더 약자인 이들의 삶이였다. 
 우리 4명중 가장 우등생이였고, 가장 준비된 인재였지만 외모로 인해, 백화점 판매직에 머물다 2년만에 퇴사하여, 알바와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수영, 하지만 윤주가 지금도 시험준비를 하는지는 모른다.
 가장 반항적인 성격을 가진 이로, 불합리를 참지않지만, 다니던 회사에서 그녀의 실수로 오타를 내었고, 그 모든 책임이 가장 말단에 있던 그녀에게 쏟아지자, 결국 그 때 아주 간단한 도움을 주었던 13살 연상 대리와 결혼하여, 직장을 그만두었으나, 결국 못배우고, 아랫사람 취급으로 무시당하며 사는 윤주.
 은행에 취직해 가장 성실하게 일하지만, 소위 호구 취급을 당하지만, 끝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 공부를 병행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현오.
 가장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누구보다 현실속에 사는 나. 
 이런 4명의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의 기일을 보내다 발견한 나무에 다 말라비틀어져 있는 포도. 
지금의 현실이면서, 너무나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말라비틀어진 포도는 지금 사회에 누군가의 노동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태움을 강요하고, 가장 말단에서의 아귀다툼을 외면하는 사회 속에서 희생당하는 이들에 대한 묘사이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으며 드는 답답함은 아마도 현실은 더 어둡기에 느껴지는 감정일까.


개인적으로는 김연수 작가님의 “진주의 결말”이였다.
뭐랄까.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의 진의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했달까. ‘이해’라는 단어는 결국 타인을 향한 것일까 나를 향한 것일까? 우리가 오롯히 타인을 이해 할 수는 있는 것일까? 납득이라는 말이 맞는것은 아닐까. 뭐 어휘의 정확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이야기는 타인의 삶을 결과를 놓고, 판단하는 것의 어불성설을 말하고 있었다. 
 치매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집에 불을 낸 유진주의 삶. 그녀를 심리를 분석하는 법 심리학자인 나. 그리고 나와 그녀의 사건을 두고 방송을 하는 강PD의 <사건의 전말> 프로그램. 각자의 시선에서 각자의 생각으로 유진주라는 인물을 분석하지만, 결말에서 드러나는 반전. 사실 반전인지 여부조차 확실치 않은 결말이지만, 결국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였을까를 골똘이 생각하게 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p.68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는 행위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소위 선입견, 판단이라는 것을 너무나 쉽게 누군가를 마녀사냥하듯 그저 가십거리로만 씹어대는 지금에 대해 말하고 싶은것은 아닐까. 

 소위 브루주아의 위선과 그 위선을 바라보는 프롤레탈리아의 반란. 웃음으로 그 위선을 보기 좋게 뭉그러뜨리는 이연의 연기가 통쾌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런 브루주아의 위선을 동경하는 것인지 시원하면서도 씁쓸한 김애란 작가님의  ’홈파티‘.

K를 잃은 나가 깊은 우울감에 빠지는 내용인가 싶다가 결국 나의 이야기로 귀결되게 만든 다소 으스스하면서도 뭐지 싶었던 정하나 작가님의 ’일시적 이탈‘

성수대교와 그 성수대교의 생존자인듯 아닌듯한 내가 성수대교를 토대로 논문을 쓰며 다시 그 때를 돌이키며 논문인듯 소설같은 이야기를 쓰는 문지혁 작가님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때‘


딸과의 관계가 그리 썩 좋지 않고, 정해진 일정대로 살던 내게 어느날 맡겨진 앵무새. 그 불편함이 어느덧 소중한 일상으로 바뀌던 어느날 떠나고 남은 내가 드디어 나를 제대로 돌이켜 보게 만드는 날. 내게 무엇이 없었던 것인지를 내가 놓쳐버린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백수린 작가님의 ’아주 환한 날들‘


지금 우리가 외면하는 것, 놓쳐버린 것, 잊지 말아야 함에도 잊어버린 사건들에 대해 각 작가님들의 작품은 불편하지만 직시해야 함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굉장히 사실적이면서 내게는 다소 노골적인 찌름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재밌었지만 아팠고, 이 이야기를 읽으며 각 사건들을 돌이킬 때는 쓰렸다.

굿.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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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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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수의 레토릭에 관한 책이다. 알릴레오에 출연했던 경제학 교수님이 언급하신 것을 보고 궁금해진 책이다. 책은 보수의 언어에 대해 3가지로 분류하고, 설명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명제 자체는 많이 들어봤던 말이지만, 설명하는 부분은..... 어렵다.ㅠ

첫번째 명제, 그래봐야 너만 힘들어진다. 역효과의 명제.
두번째 명제, 해봐야 소용없다. 무용 명제.
세번째 명제, 그러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위험명제.

정말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재밌는 점은 이런 보수가 내세우는 명제가 프랑스 혁명당시에도 있었다는 것이고, 더 끔찍한것은 지금도 흔히 쓰이는 말이라는 것이다.


첫번째. 역효과의 명제.
이 명제는 최근 실업급여 사태를 보면 뚜렷히 보인다. 시럽급여같은 소리를 하며, 실업급여가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악용되고 있는 몇가지 경우를 들어, 그 실업급여의 취지 자체를 흔들었었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목적을 가진 사회적 행위"는 의도 하지 않은 긍정적 결과과 부정적 결과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으며, 어느 것이 더 큰지는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정적 부작용에 대해 더 큰 인식을 갖는 경향이 있으며, 본래의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판단이 흔히 내려지게 된다고 한다. 몇 명의 악용사례를 마치 전체 인마냥 호도하며, 그 본질 자체를 흐리는 행위를 통해 본래의 취지마저 빛바랜것으로 만들어 없는 것으로 만든다면 사회는 결국 진보할 수 없지 않은가.

두번째 명제. 무용 명제. 
저자는 이 무용명제가 가장 나쁘다고 말한다. 왜냐면, 다른 명제는 시도라도 할 수있지만, 무용은 말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무엇이라도 해보고 그것이 옳든 그르든 판단할 수 있지만, 무용 즉 해봐야 소용없다는 식의 인식은 결국 인간을 무력화 시킬 뿐이라는 것. 무용명제의 예로 든 사건 중 하나는 프랑스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이 과연 무엇을 가져왔는지에 대해, 그 혁명과 혁명이 나아가고 있는 시민권, 투표권등을 무력화 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는 것. 우리는 지금 그 결과를 뚜렷히 보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점이 그저 놀라웠을 따름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우리가 절대권력을 타파하려고 시도 할 때마다, 우리는 노예의 몸 위에 자유의 머리를 엊는 일에만 성공했을 뿐이다." p. 86

세번째 명제. 위험 명제.
이것은 역효과 명제보다 더 과격한 언어이다. 말 그대로 더 위험해진다는 말이다.  이 명제가 쓰였던 것이 대표적으로 선거권의 확대가 이뤄졌던 20세기 초반이다. 대중에게 투표권을 주는 행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보통선거권은 기본적 자유, 재산을 소유할 자유를 침해하고, 부자의 재산을 강탈함으로써 군부의 개입이나 독재정부로 이어저 자유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니... 이런 모순적 주장이라니. 
즉 위험명제는 제로썸이 아니라 마이너스를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진보의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왔지, 피폐하고 황폐함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 아닌가.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이 아주 얄팍한 논리에 의거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_-;

이런 세가지 명제는 하나의사건에 하나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등장하고, 하나의 명제는 다른 하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모순적이며, 양립 불가능한 명제 들이다.  

"형식적인 관점에서 위험론과 무용론 사이의 상호작용이 지닌 한가지 흥미로운 모습은, 두 주장이 각기 참정권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돕기보다는 모두 서로를 손상시킨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대체로 일종의 속임수라고 보는 무용 명제는, 민주주의를 '자유'에 대한 공포스런 위협이라고 보는 위험 명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p.198

허.. 참.. 그런데 왜 우리는 저런 말들에 쉽게 혹하는 것일까..?

재밌는 부분은 저자가 이런 보수의 명제들에 반대되는 진보의 명제들에 대해서도 짧게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반동주의자(보수)들이 제로섬이나 마이너스를 주장할 때, 진보는 대체로 '좋은 일들은 공존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쪽은 극히 어두운 면을 한쪽은 극히 밝은 면을 본다니,, 양쪽은 대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정치는 각자 말만 하는 것인지.)

이런 나의 생각에 대해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균형을 말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 진영의 치열한 싸움 즉 논쟁, 토론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양쪽 진영이 얻고, 그런 정보를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기반으로 변화된 사항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있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만들어 진다는 것.... 

어렵다. 책의 내용을 오롯히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만, 우리가 지금 택한 민주주의라는 것 그 자체가 참 어려운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나같은 팔랑귀는 더더욱 ㅠ

좋은 책.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음 좋겠다!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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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금속 - 그린 뉴딜의 심장, 지정학 전쟁의 씨앗 / 희귀 금속은 어떻게 세계를 재편하는가
기욤 피트롱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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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인간에게 불을 준 신. 그 이름이 붙은 금속은 뭐지? 하는 생각에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정말 흥미로웠다. 

그린뉴딜, ESG등등 녹색 혁명의 시작 아니 중간에 있는 지금 우리가 눈감고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책이였다. 나는 감히 생각조차 못했던 것을 말이다.

디지털 시대에 나는 생각이나했을까? 가장 바탕이 되는 것에 대해.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 휴대폰, 워치, 이어폰 등등 이런 기기의 재료가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희귀금속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그 희귀 금속은 어떻게 채굴되고 있는가가 이 책의 시작이다. 이름도 생소한 희토류, 셀레늄, 텔루륨.. 등등 이런 희귀금속은 바위 속에서 채굴한다. 몇그람의 희귀금속을 얻기위해 필요한 바위의 양이 적게는 수 톤에서 수십 수천톤이라니. 그렇게 바위를 부셔 각종 화학약품을 들이부어야 이런 희귀금속을 자연 속에서 분리해 낼 수 있다. 결국 들이 부은 화학약품은 광산 부근의 수천 킬로미터를 오염시킨다. 광업이 오염산업 2위라니..(우리가 절대 반대하는 화학산업은 10위권 내에 들어오지도 못한단다..) 생각도 못했던 현실이다.

그렇게 환경을 파괴하는 희귀금속을 제공하는 가장 큰 주체가 현재 중국이다. 과거 유럽, 미국등이 오염으로인해 시민 반발이 거세어지자 오염을 막고, 친환경적 방법을 강구 하는 대신 이것을 자본주의적 측면에서 가장 가격이 싼 중국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중국은 전세계의 희귀금속 헤게모니를 쥔 강자가 되었다.(이 시장에선 판매자가 갑이다. 갑이 팔지 않으면 전세계의 디지털 장비생산은 거짓말 조금 보태 스톱!이 될지도..) 이 시장의 절대 강자로 떠오른 중국은 희귀금속을 통해 전세계의 디지털 산업에 발목이 되었고, 그런 시장에서 가진 독점 지위권을 남용하는 것이 지금 현실인 셈.  시작이 돈이였는데, 다시 돈으로 되갚음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중국이가졌든, 미국이 가졌든 독점 그 자체가 나쁘다는 측면을 제외하고는 결국 우리가 지금 내세우는 친환경 정책이 결국 친환경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2025년인가 대한민국 수도권에서는 더이상 내연기관차를 운영할 수 없다. 전기나 전기수소차만 운영이 가능하다. 그런데 결국 그 차들이 생산되는 과정을 놓고 본다면 과연 내연기관차보다 얼마나 더 친환경일까?(저자는 중형차를 기준, 1번충전에 120km가는 밧데리 장착 시, 전기차의 탄소배출량은 가솔린차의 4분의 3정도, 밧데리 효율이 커진다면 탄소배출량이 가솔린차보다 더 커질수도..p.63) 그리고 그 수많은 차를 생산해내기 위한 희귀금속은 과연 충분한가? 그리고 금속을 추출하는 과정속에서 파괴되는 환경에 대한 비용은 그 차값에 포함되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폐기되는 가전제품에서 다시 재활용 되는 측면 역시 녹록치 않은 현실.

사실 책의 말미에 이런 총체적 난국의 디지털 전환 시대의 녹색혁명이 진정한 녹색이 되기 위한 결론이 있지않을까 했지만,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불을 밝히기 위한 고래기름을 위해 고래를 남획하다 고래씨가 마를 무렵 등유를 발견했고, 석유를 발견하며, 지금까지 왔다. 어떤 방법을 강구했다기보다, 계속해서 대체제만을 찾아 현재까지 온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을 타계할 방법을 찾고는 있을까?

어쩌면 그 시간을 벌기위해서 시작은 아는 것 부터다. 개개인이. 국가나 기업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제품의 시작을 알아야 한다. 시민 의식이 변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가격 측면만을 고려하여 싼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에서 광물체굴에 합당한 비용을 들여 친환경적으로 체굴하고, 시민들은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는 이 행성에서 멸종위기종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지구라는 한 행성에 살고 있는 생물로, 모든 자연 생태계는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후로 체감하는 요즘이라…

“소비자들 또한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환경과 에너지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2년도 안되어 성능이 저하되는 전자제품의 소비를 제한하고, 재활용이 쉽도록 처음부터 친환경 제품을 기획해야 하며, 낭비를 줄이고, 자원을 저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역시나 가장 좋은 에너지는 우리가 소비하지 않는 에너지이다.“ p.230

몰랐던 사실을 알게한 책이지만, 흥미롭웠다고만 말하기에는 사실이 너무나 무거웠던 책.

하지만 추천!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일으킨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그것이 산업 혁명이든 사회 혁명이든, 모든 혁명은 우리 의식의 혁명이 동반되어야만 의미를 지닌다.”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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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 2 - 여의주를 쥔 왕후
서자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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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왕후. 조선의 역사를 좋아했던 내게 원경왕후는 귀에 익은 인물이였다. 고등학교 때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박종화 작가님의 세종대왕에서부터 몇해 전 육룡이나르샤라는 드라마까지 조선 건국 스토리에 빠지지 않는 인물로, 조선 건국의 공신 중 한 명으로 보였으니까.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몇차 때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으나 왕자의 난 때, 덜덜 떠는 이방원에 갑옷을 입혀 내보낸 분이라는 야사가 있을 정도이니,,
 그런 원경 왕후를 주인공으로 한 책이 나왔다. 물론 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임을 밝힌다.  이 소설은 조선 건국의 관점을 원경왕후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기에, 그분이 가졌던 생각, 감정등이 너무나 잘 녹여져 있는 소설이다.


 아버지 민제대감의 셋째 딸로 태어난 자경은 유난히 학문도 미모도 뛰어났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의지와 추진력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여자이기에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현실에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함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런 자경(원경왕후)과 방원의 어린시절 만남에서 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당시 방원을 유심히 보던 민제대감은 그를 자신의 제자로 들이고, 민제대감의 수하생으로 들어온 방원은 두살 연상인 자경을 자신도 모르게 사랑한다. 그를 문하생 정도로만 여겼던 자경은 자신의 이야기나 충고를 받아들여 발전해가는 방원을 다시 보게 되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낙점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이 생겨버린 둘은 결혼을 결심하는데..
 하지만 자경이 택한 방원은 당시로써는 권문세가 였던 민제의 집안의 입장에서는 기우는 혼사였다. 하지만 새 국가에 필요한 무인집안이라는 점, 방원이 그 집안에서 문인으로 컸다는 점, 그리고 방원이 가진 잠재력이 자경으로하여금 그를 선택하게 했다. 모두가 갸우뚱하는 혼사였지만, 아버지 민제는 자경의 뜻을 알아, 허락했고, 둘은 행복했다. 

그리고 이후의 스토리는 조선 건국의 역사. 소설은 그 조선건국의 시나리오를 자경의 관점에서 그린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그자리. 여자로써 누구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존호만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자경의 의지와 목표는 방원을 왕위에 옹립하지만, 누구를 위한 왕위 였는지조차 모르겠는 방원의 후회와 이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자경과 방원의 사이를 갈라놓는다. 자경은 방원의 여림에 방원은 자경의 목적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된 셈이다. 

하지만 결국 가장 든든한 정치적 동반자이자, 서로를 가장 연모했던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버텨낸다.

하지만 자경의 입장에서 조선 건국에 그녀의 지략과 그녀의 아버지 민제대감이 가지는 영향력 등이 큰 도움이 되었으나, 결국 남편 방원으로 인해 친정이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장 가까이 아꼈던 행아와 상인에게 상처가 되었다.(상인의 마지막은 너무 슬펐어요.ㅠ) 그럼에도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감내하며 버텼다. 자신이  여자라 가질 수 없었던 그 시대 속에서 그녀가 가졌던 목표로 인해  그녀가 버텨야 할 시간이였으니까...그리고 결국 해내었다. 수도없는 고통스런 나날을 참아내야 했지만.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그녀는 방원을 사랑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사랑했고, 그의 사랑을 외면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 그를 사랑했기에 받아들이 시간이였음을 깨닫는다.

서자영 작가님의 책은 처음 읽는데, 소설인것을 알면서 읽으면서도 사실인가 싶을 정도로 역사적 사실 안에 소설의 내용을 너무나 리얼하게 녹였다는 점에서 읽는 내내 놀라웠다. (역사적 사실만 놓고 보면 비약이라 할 수 있으나, 소설인데뭐!!) 하지만 생각해보면 남성중심이였던 그 시대 속에 원경왕후의 공이 축소되었는지 어찌 알겠는가. 남성우위 사회였음에도 그녀의 영향력은 알음알음 전해지고 있으니.. 사실 뭐 원경왕후가 얼마나 큰 일을 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은가! (라고 혼자 생각하는 중~.ㅎ)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스토리!
킬링타임용 소설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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