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삶에 관하여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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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인지도 몰랐고, 그저 제목 하나에 끌렸다.

“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삶”이라는 저 제목이.

이 책은 저자가 10명의 철학자들의 언어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존엄과 존재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한다.

예전에는 속한 집단 속에서 쓸모를 증명해야했는데, 현재의 삶은 내 삶 전반에서 나의 쓸모가 필요해졌다. SNS, 회사, 가정. 그리고 이제는 AI의 등장까지. 사람뿐 아니라 기계와의 경쟁 속에서도 나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어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몽테뉴까지로 이어지는 축적되어진 지혜 속에서 인간은 인간자체로써 존엄한 존재임을 분명히 학습했음에도 우리는 왜 쓸모를 찾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잠깐 “토”를 달았던 부분이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에 대한 부분이였다. 당시의 교육은 “인간의 본성대로 살도록 돕는일”이 교육이였으나, 현재는 좀더 경쟁력있는 인제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으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맞는말이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교육이 평균화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에 커리큘럼을 집중시키며 능력제일주의라는 이상을 만들어냈으니까.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은 그런것을 하지 않아도되는 노예제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아니였나. 하는..

그렇다면 현실에 발을 딛고 먹고사니즘을 고민해야하는 우리와 먹고사니즘을 고민할 필요없었던 노예제 시대의 사회 두 사회의 교육관은 당연히 다를수밖에 없지 않나하는 생각.

물론 능력제일주의 만을 위한 교육이 현재의 “쓸모”를 증명하는 사회의 기반이 되었고, 그것이 결국 도구화된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이 인간으로써 살아내기 위한 기본을 잊지말라는 것이다. 죄책감, 부끄러움, 그리고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에서는 우위에 서라는 것이 아니라 이타성을 가져야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좋은 말이고, 우리가 잊지말하아햘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책속과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나 벌어진 지금에서 뭐랄까.. 너무너무 착한 친구가 내게와 “착하게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말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도 누군가는 이런 글을 쓰고 상기시켜줘야겠지. 무엇이 우리를 허무하게 만들고 지치게만드는지.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역시 죽음이였다. ”몽테뉴“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 p.220

삶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것에 대한 말이다. 삶의 유한함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것의 중요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죽음은 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구속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도 있다. 매 순간 도구로써의 인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으로써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본다면, 내가 어떤 순간을 가장 후회할까, 아니면 어떤 순간을 가장 행복해할까를 생각해본다면 지금의 내가 가지는 생각을 달리할지도.


재밌는 책이다. 너무 착한 친구가해주는 충고 같으면서도 순간순간 뼈때리는 말들이 숨어있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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