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연
청예 지음 / 래빗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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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예작가님의 이야기는 도무지 종잡을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평온하게 쓸 수 있는 것이지?! 그저 불륜에 대한 복수인가 싶었던 이야기는 나를 종잡을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갔다.

한글로는 “주와 연”이지만, 책 표기에 ‘와‘의 표기는 정말…


아버지가 바람을 폈고, 엄마를 버렸다. 부모에게 버려진 오주희는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받았다. 사랑의 부적이였다. 그리고 그 부적을 내연녀의 손에 쥐어주고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오연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태어났다.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와 계모의 딸로. 

축복받은 삶을 살기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복수의 심정으로 태어난 그녀의 손가락은 6개였고, 해를 넘기고 태어나면 큰 복을 누리지만, 해를 넘기지 못하면 대흉일 것이라는 늙은 무당의 말에 기여코 해를 넘기기 5초전에 태어났다. 

두번째 인생이기에 많은 것이 수월했다. 알고 있는 지식들을 이용해 오연린은 그녀의 부모에게 큰 자신감을 넣어주었다. 끝없이 돈을 쓰게 했고, 그녀는 그 모든것들을 원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서 그녀는 모든것을 망쳤고, 아버지와 계모는 절망했다.

자신들의 딸이 왜 그런지조차 모른채.


그녀는 그녀의 삶 전체를 들여 그들에게 복수를 했다. 늙은 무당인 할머니부터 아버지 계모까지.

그러다 만난 은정. 아버지로부터 학대받고 자란 아이. 둘은 합심하여 부모에게 상처를 입히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던 중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며 연린은 대체 누구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것인지가 흐려졌다. 분명 시작에는 분명했던 복수의 대상이 점차 흐릿해지며, 스스로에게 가해지고 복수의 결과가 정말 그들을 위한 것이였을까.

누군가는 삶을 살아가며 잊었던 과거를 그녀는 두번의 생을 살아가면서도 잊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가해로써 복수를 행하는 것일까.


보통의 회귀환은 통쾌하던데,ㅠ

통쾌함이라는 것 자체가 판타지려나. 복수라는 감정의 바탕에 깔려있는 그 분노가 통쾌함이라는 감정과 맞닿을 수 없는 것이니까. 그녀의 분노가 만들어낸 과정에서 빚어진 또다른 분노는 결국 또다른 결과를 낳는 결말에서 우리가 회귀환이라는 소재를 통해 가지고 싶었던 복수에 대한 통쾌함은 결고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닐 수도 있음을 작가님은 말하고 있는듯 했다. 내 인생 전체를 걸고하는 복수의 다음 생이 정말 “극락”일 수는 없을테니까.


 책의 전반에 깔려있는 윤회, 극락과 같은 단어가 의미하는 불교 철학사상은 결국 흘러갈 것을 흘러가게 두지 못하고 끝내 쥐고 놓지 못해 또다른 억겁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슬펐던 걸까.

무시무시한 이야기 한편을 읽었는데,

왜 내게는 슬픔으로 남는 것일까.


“할머니가 아무리 많은 부적을 써서 칠갑으로 붙여두어도, 이미 닿은 연을 지우지는 못한다.”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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